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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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장
(民畵匠)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무형문화재
지정 번호 무형문화재 제18호
지정일 1996년 12월 31일
전승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전승자 김만희

민화(民畵)는 과거에 실용(생활공간의 장식이나 민속적인 관습에 따름)을 목적으로 무명인에 의하여 그려졌던 대중적인 실용화를 말한다. 또한 민화장이란 용어는 민화를 잘 그리는 사람을 말한다.

민화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일본어: 柳宗悅, 1889년1961년)로, 그는 '민속적 회화'라는 의미로 민화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뒤 <공예적 회화>라는 글에서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유통되는 그림을 민화라고 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야나기가 민화란 용어를 쓰기 이전부터 우리 나라에서도 민화에 대한 개념은 있었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여염집의 병풍ㆍ족자 또는 벽에 붙어 있는 그림을 '속화(俗畫)'라고 칭하였다.

민화는 산수, 화조 등의 정통 회화를 모방한 것으로 소박하고 파격적이며 익살스러운 것이 특징이다.[1]

기원[편집]

민화의 기원은 선사시대 암각화(岩刻畵)에서 물고기·거북·사슴·호랑이 등에서 민화의 원초적인 화맥(畫脈)을 찾을 수 있다.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四神圖)·신선도, 백제 산수문전(山水文塼)의 산수도, 등은 민화적 소재이며, 특히 처용설화(處容說話)에서 처용의 화상을 문설주에 붙이면 역신(疫神)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벽사(辟邪)를 위한 그림을 대문에 붙였던 풍습은 조선 말기까지도 별성마마 그림 등을 붙이던 풍습으로 이어졌다. 이 밖에도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에 보이는 세화(歲畫)와 도화서 화원들의 그림에 대한 기록을 볼 때 민화는 우리 민족과 함께 존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특징[편집]

민화와 정통회화가 같은 종류로 중복되는 것을 볼 수 있으나, 감상적 회화성에 화관을 둔 정통회화와 실용적 상징성에 화관을 둔 민화와는 차이가 있다. 정통회화에서 볼 수 있는 종류는 민화에서도 대부분 존재하며, 또 민화만이 가지고 있는 대상도 상당히 많아 어느 부류의 그림보다 광범위하고 풍부하다. 민화를 내용상으로 보면 무속ㆍ도교·불교·유교계통과 장식용 민화로 대분된다.

무속과 도교계통의 그림은 장생도 종류로 십장생도·송학도·군학도·해학반도도·군록도·천리반송도·오봉일월도 등이 있다. 방위신으로는 청룡·백호·주작·현무·황제 등이 있고 12지신상의 민화는 벽사진경을 위한 민속에 얽힌 작품이다. 호랑이 그림으로는 작호도·호피도 등과 산신도에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으며, 그밖에 닭·개·사자 그림 등 벽사진경의 뜻을 지니고 있다. 용왕도는 봉황·기린과 함께 상서로움을 기원하는 그림이며, 칠성·별성·오방신장 등 무속과 관계있는 그림이 많다.

불교계통의 민화로는 산신각·칠성각 등에 있는 그림과 탱화·심우도 등이 있다.

유교계통의 민화로는 효자도·행실도·문자도효제충신·예의염치·평생도 등 여러 계통의 그림이 있다.

장식용 민화로는 산수화를 비롯해서 화훼·영모·초충·어해·사군자·풍속화·책거리도·문방사우도·기명절지도 같은 정물화 등 많은 종류의 민화가 있다.

우리 민화는 민족문화의 여러 모습을 폭넓게 묘사했으며, 그 중에도 생활철학과 생활감정을 그림 속에서 구체화시키면서 민중의 생활 속에 정착하고 존속해 왔다. 이 속에는 기원과 위안으로, 또는 보는 즐거움을 담고 있다.

따라서 민화는 민족의 창의성과 시대상을 엿볼 수 있고, 생활감정과 미의식을 느낄 수 있는 민족의 문화유산이다.

주석[편집]

  1.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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