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그 티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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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그 티무르(Менгу-Тимур, 멩구 티무르)는 킵차크 한국의 4대 칸(재위: 1266년 ~ 1280년)이었다. 그는 토코칸 칸과 불카 우진의 아들로 바투 칸의 손자였다. 만그 티무르 칸은 크림 한국을 지배하였다.

1266년 베르케는 훌라구의 아들 아바카와 전투 중 사망하였고, 그의 조카인 만그 티무르가 그를 이어 칸 자리를 계승했다.

차가타이의 칸이 바락으로 교체되자 카이두는 다시 원정에 나섰다. 카이두는 킵차크 한국의 만그 티무르의 지원을 받아 차가타이 한국을 침입하여 시르다라강 근처와 코잔드에서 벌어진 두 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 두 번의 전투에서 패한 바락은 트란속시아나로 도망친 뒤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약탈하여 군대를 다시 모았다.

바락의 격렬한 저항으로 전쟁이 장기화될 기미를 보이자 카이두는 배후의 쿠빌라이가 침입해올 것을 염려해 바락과 강화를 체결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강화의 결과 카이두와 만그 티무르가 트란속시아나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됐으며 카이두는 차가타이 칸국이 소유하고 있던 투르키스탄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카이두는 강화에서의 약속대로 이 땅을 만그 티무르에게 주지 않고 자신의 영토로 병합시켰다.

강화는 체결되었지만 바락은 이 강화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부하라를 재정복하려 했으며 사마르칸트를 약탈하려고도 했다. 카이두는 바락의 이러한 불만을 이용하여 바락에게 아바카가 다스리고 있는 일 한국을 공격할 것을 종용했다. 바락은 일 한국을 공격하라는 제의에 쉽게 응하여 일 한국을 공격할 준비에 나섰다. 이에 카이두는 자신의 아들인 차파르가 이끄는 군대를 지원했으며 킵차크 한국 역시 군대를 지원했다. 킵차크 칸국과 카이두의 지원을 받은 바락은 아바카 휘하의 장수인 테구데르에게 반란을 일으키게 한 뒤 군대를 일으켜 호라산에서 일 한국의 군대를 격파했다.

하지만 킵차크 한국과 카이두는 바락의 성공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이 때문에 킵차크 한국 군대는 바락 휘하의 장군인 잘라이르타이(Jalayirtai)와의 언쟁을 구실삼아 군대를 퇴각시켰다. 바락은 잘라이르타이를 보내 킵차크 한국 군대에 용서를 구하고 복귀할 것을 설득했지만 허사였다. 킵차크 한국의 군대가 떠나자 카이두가 보낸 차파르 역시 자신의 군대를 버리고 본국으로 도망가버렸다.

1280년 만그 티무르는 목에 생긴 수포로 죽었고, 동생인 투다멩구가 칸 자리를 계승했다.

전 임
베르케 칸
제4대 킵차크한국의 칸
1266년~1280년
후 임
투다멩구 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