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오 바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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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오 바쇼
松尾 芭蕉
MatsuoBashoChusonji.jpg
이와테 현 히라이즈미에 있는 바쇼의 동상
출생 1644년
일본 일본 이가노쿠니
사망 1694년 11월 28일 (50세)
일본 일본 오사카
국적 일본 일본
장르 하이쿠
주요 작품 오쿠노 호소미치

마쓰오 바쇼(일본어: 松尾 芭蕉 (まつお ばしょう), 1644년 ~ 1694년 11월 28일)는, 일본 에도 시대(江戶時代) 전기의 하이쿠 시인으로 에도 시대 전기 하이카이(俳諧)[1]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긴자쿠(金作)이며, 통칭은 진시치로(甚七郎) 또는 진시로(甚四郎)이다. 본명은 주고에몬 무네후사(忠右衛門宗房)로 처음에는 이 「무네후사」를 필명으로 사용하다가 그 뒤에 도세이(桃青), 마지막으로 바쇼라는 필명을 썼다.[2]

에도 전기의 가인(歌人)이자 학자였던 기타무라 기긴(北村季吟)의 문하에서 하이쿠를 배웠다. 「쇼후(蕉風)」라 불리는 예술성 높은 문장 경향을 확립하여 후세에 「하이쿠의 성인(俳聖)」으로서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진 일본 역사상 최고의 하이쿠 시인의 한 사람이다.

제자 가와이 소라(河合曾良)와 함께 겐로쿠(元禄) 2년 3월 27일(1689년 5월 16일)에 에도(江戶)를 비롯한 도호쿠(東北), 호쿠리쿠(北陸) 지방을 돌며 기후(岐阜)의 오가키(大垣)까지 여행한 기행문 『오쿠노 호소미치(おくのほそ道)』를 남겼다.

생애[편집]

1644년 지금의 미에 현(三重県) 이가 시(伊賀市)에서 농민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무네후사(宗房)이다. 처음에는 무네후사를 배호로 사용하다가 그 후 모모아오, 마지막으로 바쇼라고 고쳤다. 1662년 쓰 번의 번주 도도 다카쓰구의 조카 도도 요시타다에게 봉사했고, 도도 요시타다가 세상을 떠난 1666년까지 섬기는 한편 하이쿠를 배웠다.

쇼후로 불리는 예술성 높은 문장 경향을 확립하여 하이쿠의 명인으로 불린다.

작품[편집]

바쇼가 제자인 가와이 소라를 동반해 겐로쿠 2년 3월 27일(1689년 5월 16일)에 에도를 출발하여 도호쿠, 호쿠리쿠를 돌아 다녀 기후 현 오카이까지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 『오쿠노 호소미치』가 있다.

대표작[편집]

  • 命二つの中に生きたる櫻哉//いのちふたつのなかにいきたるさくらかな//두사람의 운명이여 그 사이에 핀 벚꽃이런가 = 1685년작.
  • 雲折々 人をやすむる 月見哉//くもおりおり ひとをやすむる つきみかな//구름이 잠시 달구경 하는 사람 쉴 틈을 주네 = 1685년작.
  • 古池や蛙飛込む水の音//ふるいけやかわずとびこむみずのおと//오랜 못이여 개구리 뛰어들어 물치는 소리 = 1686년작.

관련 서적[편집]

  • 《일본 하이쿠 선집》/마쓰오 바쇼 등 지음/오석윤 옮김/책세상/2006년
  • 《바쇼의 하이쿠 기행 1~3》/마쓰오 바쇼 지음/김정례 옮김/244, 164, 160쪽/바다출판사/2008년

주석[편집]

  1. 일본 특유의 짧은 시.
  2. 바쇼는 파초에서 따온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은 파초와 비슷한 열대식물인 바나나에서 착안했다. 매일신문, 야고부 바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