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의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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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의사당 앞의 모습

그리스 의회의사당(현대 그리스어: Βουλή των Ελλήνων)은 그리스 의회 의결이 이뤄지는 곳이다. 원문을 우리말로 해석하면 "그리스의 의지"라는 뜻 정도로 풀이해볼 수 있다. 4년 임기의 의회 의원 300명이 업무를 보고 의결을 하는 곳이다.


역사[편집]

그리스 혁명 당시에도 의회에서 정기 총회가 열리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최초의 독립 국가 그리스의 의회는 1843년에서야 이뤄졌다. 9월 혁명 이후 왕이 물러나면서 헌법이 제정된 데에 따른 것이었다.

1911년 그리스 헌법이 개정되면서 인권이 크게 인식되고 기본권과 더불어 현대적인 법제 의식이 자리하게 된다. 이후로는 군사 독재시기를 맞으면서 7년간 민주의식에 암흑기를 맡게 되기도 한다. 1974년에 이르러서 국민의 자연권을 인정하고 의회 내에서 69.18%의 득표로 군주제에 반하는 그리스 공화제에 대한 찬성 법안이 통과된다.

건물[편집]

군인의 묘 앞에 있는 호위대

의회는 원래 1843년~1854년까지 스타디우 가의 구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이는 1875~1932년까지도 지속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신고전주의의 3층 건물로서 프레드릭 본 가트너가 1843년 완성하였다. 사실 이 건물은 그리스의 군주가 사용하던 궁전이었다. 1909년 화재 피해가 있으면서 재보수 공사에 상당한 시일을 보내게 된다. 왕실은 1924년까지 이곳에서 머물렀다. 왕정이 의회의 결정에 따라 폐지되자 다른 용도로 쓰이기도 하였다. 병원, 박물관 등으로도 쓰였다. 1929년 11월, 그리스 정부는 의회를 이곳에 세우기로 결정을 내렸고 , 1934년 8월 2일 의회를 이곳에서 소집하게 된다. 5대 의회 때의 일이었다. 같은 해 왕정이 복고되기 하였지만 의회 활동은 이곳에서 계속 이뤄지게 된다.

의회의사당 앞에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군인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어로 "Μνημείο του Αγνώστου Στρατιώτη"라고 표시하는 이곳은 대통령 경호대가 지키고 있으며 의사당의 앞쪽에 위치한다. 이곳의 기념물은 1929년에 건설이 시작되었다.

의회의사당에는 2개의 큰 출입구가 있다. 서쪽 출입구는 군인들의 묘와 헌법 광장을 바라보고 있다. 반면 동쪽 출입구는 국립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지하에는 8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기구[편집]

의회의사당의 운영은 크게 최고 의원 간부회가 총 관리하며 5명의 하원 대변인과 공식 대변인, 세 명의 지구위원장, 6명의 서기관으로 이뤄져 있다.

대변인 직이나 서기관 직은 선거 이후의 야당과 여당의 차이에 따라 직위 수행에 제한이 따르기도 한다. 임기 초기에 임기 수행자가 결정된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