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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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연애(宮庭戀愛, Amour courtois, fin'amor)는 중세 유럽 궁정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연애관이다. 기사도적 사랑이라고도 하며, 로맨스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개요[편집]

11세기 남부 프랑스의 독특한 사회환경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초현상이 심했던 성곽 내의 사회에서 귀부인들을 향한 남자들의 정염이 일종의 이상화, 정신화, 숭고화를 거친 것이다. 남자는 한낱 여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성녀를 섬긴다. 귀부인은 고결하여 쉽게 마음을 허락치 않으며, 변덕스러워 기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 이러한 사랑의 고난을 충성스러운 기사는 극복해나가려 한다. 또한 이러한 사랑은 흔히 혼외정사로, 그 은밀함을 특징으로 한다.

당대의 명칭은 Fin'amor로, amor은 사랑을, fine은 완미 완벽 등을 뜻한다. 후대에, 궁정 귀족들의 연애관이라 하여 amour courtois(궁정연애)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연애담은 라틴어가 아닌 로망스어(즉 오일어오크어)로 쓰여졌으므로 로망스라 불렸으며, 로맨스(Romance)라는 말의 어원이 되는데, 이러한 헌신적인 사랑을 오늘날에도 로맨틱하다 부르는 것으로 봐도 알 수 있듯이 궁정연애는 단지 중세의 사고관에만 그치지 않고 현대 서구의 낭만적인 연애관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역사[편집]

트루바두르[편집]

그 시초는 11-12세기의 남불의 음유시인들인 트루바두르이다. 아키텐의 공작이자 시인이었던 기욤 다키텐(1071-1127, 기욤 9세)이 처음으로 이러한 헌신적인 짝사랑을 노래했으며, 프로방스어로 쓴 시가 열한 수 전한다. 그 손녀인 왕비 알리에노르 다키텐(1122-1204)은 처음으로 이러한 연가시인들을 후원해 베르나르 드 방타두르(?~1195)는 왕비를 찬미하는 서정시를 여러 편 썼다.

트루바두르는 궁정의 후원과 총애를 받았으며, 궁정의 귀부인들과는 주종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을 고결한 존재로 떠받드는 시를 쓰게 되었다. 그렇다고 트루바두르의 시에서 단지 기교와 입발림만이 보이는 것은 아니고 현대의 독자에게도 아름다운 연애시로 다가오는 진솔함이 돋보이고 있다.

트루베르[편집]

얼마 지나지 않아 북부의 오일어 시인들 트루베르들에게 이러한 문학사조가 퍼졌으며, 크레티앵 드 트루아 등의 작가에 의해 프랑스의 첫 소설(roman)인 궁정소설이 탄생한다. 비록 직접적인 사랑의 찬가는 아니나 기사도 정신에 근본한 이러한 소설은 귀부인과 기사 사이의 정신적인 사랑을 그 주제로 하고 있다.

풍유소설[편집]

13세기에 쓰여진 장미 이야기는 풍유소설(roman allégorique)의 대표작으로서, 사교계를 상징하는 정원과 귀부인을 상징하는 장미를 통해 또다른 방식으로 궁정연애의 미학을 그려내고 있다.

결혼과 궁정연애[편집]

현대 통념과는 달리 당시 결혼이란 순수히 경제, 권력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궁정연애는 대부분 혼외관계를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12세기 작가 크레티앵 드 트루아는 그 소설에서 결혼제도와 궁정연애를 조화시키려는 시인도 나타났으며, 영국 중세문학에서는 구혼에 있어서의 일부분으로 융합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