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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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보수주의민주주의세력, 재야 운동권세력, 학생 운동권세력, 중도진보 세력 등이 서로 이합집산하면서 수차례 정계개편을 통해 이어져 온 자유주의 정당의 한 계통이다. 현재의 민주당계 정당의 기둥은 평화민주당 계열과 민주화 운동의 주축을 이루어 온 386세력이 이루고 있다.

대체적으로 김대중 정부까지는 군사정권독재, 권위주의의 반대를 포함한 온건보수 및 반권위주의적, 자유주의적인 색채, 재야 운동권에 대한 호의 등을 드러내고 있었고,[1]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2003년 이후의 노무현 정부부터는 진보적 색채가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목차

해방 ~ 제1공화국 [편집]

고려민주당 (1945년) [편집]

1945년 8월 18일원세훈 등이 창당한 최초의 한국 우익정당이다. 김병로백관수도 정당 결성 준비를 하자, 원세훈은 고려민주당을 해체하고 이들과 합작하여 조선민족당을 결성하였다.

한국국민당 (1945년) [편집]

1945년 8월 16일 이인, 윤보선 등이 만든 정당

조선민족당 (1945년) [편집]

1945년 8월 28일 조헌영, 조병옥 등의 고려민주당계와 김병로계, 신간회 경성지회계, 윤보선, 이인계 등이 참여한 정당.

한국민주당 (1945년) [편집]

1945년 9월 16일고려민주당, 조선민족당, 한국국민당 등이 만든 보수정당으로 송진우, 김성수, 장덕수, 조병옥, 윤보선 등이 참여하였다. 약칭은 한민당이다. 사실상 민주당계 정당의 뿌리격이다. 미군정의 실질적 여당으로 초기에는 한국독립당대한민국임시정부에 우호적이었으나, 임정 계열에서 송진우장덕수를 연이어 암살하면서 관계가 악화되었다. 1947년 6월 이승만의 단정수립에 적극 찬성하였으나, 1948년 8월 15일 내각에서 배제당하자 야당화되었다. 1949년 1월 26일 대한국민회, 대동청년단과 통합하여 민주국민당을 창당함으로써 흡수해체되었다.

민주국민당 (1949년) [편집]

1949년 2월 10일, 한국민주당(한민당)이 대한국민회, 신익희 세력, 대동청년단(지청천 세력) 등과 통합하여 창당한 정당이다. 약칭은 민국당이다. 수 차례에 걸친 개헌 파동 등 난관과 억압을 받다가 1955년 9월 19일 민주당에 흡수되었다. 주요 인물로는 신익희, 김도연, 이영준, 백남훈, 서상일, 조병옥 등이 있다.

민주당 (1955년) [편집]

1955년 자유당사사오입개헌 사건을 계기로 민주국민당의 보수파와 자유당 탈당파, 흥사단 등의 범 야권 세력이 모여 호헌동지회를 결성한 뒤, 호동을 중심으로 9월 18일 창당하였다. 그러나, 구 한민당-민주국민당 출신 구파와 자유당 탈당파, 흥사단계 등 신파의 내부적 갈등이 지속되었다. 1956년 대선 후보 선출 전 곽상훈의 중개로, 대통령 후보에 신익희, 부통령 후보에 장면을 내세워 제3대 정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신익희는 선거 직전 사망했고, 장면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무너진 이후,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국무총리 등 제2공화국의 집권 여당이 되었다. 그러나 집권 이후 구파와 신파간의 분당, 당내 분열 등으로 혼란을 겪다가 5·16 군사 정변 이후 해산되었다. 구파의 주요인물로는 신익희, 조병옥, 윤보선, 김도연, 김준연, 김성수가 있었고, 신파의 주요인물로는 장면, 곽상훈, 박순천 등이 있었다.

통일당 (1957년) [편집]

1957년 11월 18일, 민주당에서 제명당한 김준연의 주도로 창당하였고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해체되었다.

제2공화국 ~ 제4공화국 [편집]

신민당 (1960년) [편집]

민주당의 구파가 분당하여 1960년 12월 14일에 창당하였다.

민정당 (1963년) [편집]

윤보선김병로 등을 중심으로 신민당·자유당·민주당·무소속 등 4개 세력의 단일야당으로 모여 1963년 6월 28일 창당하였다. 그 해 5대 대선에서 윤보선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지만 박정희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였다. 1963년 11월 26일 김준연의 자유민주당을 흡수하였다. 6대 총선에서 제1야당이 되었다. 이후, 대일굴욕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반대투쟁에 나서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1965년 5월 11일 제2야당인 민주당과 함께 한일기본조약 체결의 반대투쟁을 단일화하기 위해 민중당을 신설합당하여 소멸하였다.

민주당 (1963년) [편집]

1963년 7월 18일, 박순천 등을 중심으로 민주당이 재건되었다.

  • 1963년 8월 17일 등록하였다.
  • 1963년 총선에서 11석을 얻어 제2야당이 되었다.
  • 1964년 6월 10일 - 국민의당(김병로)을 흡수.
  • 1965년 5월 11일 - 원내 제1야당인 민정당과 함께 민중당으로 신설합당하여 소멸하였다.
  • 대표: 박순천

자유민주당 (1963년) [편집]

1963년 9월 3일 김준연 주도로 창당하였고 1964년 11월 26일 민정당에 흡수되면서 소멸하였다.

국민의 당 (1963년) [편집]

1963년 9월 5일 민우당신정당 그리고 민주당과 민정당의 일부 의원과 무소속 참여하여 창당하였고 이범석 등 자유당 탈당파 일부도 참여하였다. 뒤에 이범석 등은 탈당하였고 1964년 9월 17일 민주당과 통합하면서 소멸하였다.

민중당 (1965년) [편집]

1965년 제1야당인 민정당과 제2야당인 민주당이 통합하여 창당하였다.

신한당(1966년) [편집]

1966년 3월 30일,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입장 차이로 윤보선 등의 강경파가 독립해서 창당했다.

  • 1965년 5월 30일 등록.
  • 1967년 2월 11일, 민중당과 함께 신민당으로 신설합당하여 소멸하였다.
  • 대표: 윤보선

신민당 (1967년) [편집]

1967년 2월 7일, 민중당과 신한당을 중심으로 분열된 민주세력을 모아 창당했다.

  • 1967년 2월 11일 등록.
  • 1969년 9월 8일 자진해산.
  • 1969년 9월 22일 등록.
  • 1970년 1월 26일 - 자유당 잔존파를 흡수합당.
  • 1970년 2월 3일 - 한국독립당 잔존파를 흡수합당.
  • 1971년 - 김대중 후보가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 1971년 대통령선거 이후 신민당은 유진산파와 김대중이 지지하는 김홍일파로 양분되어 있었다. 1972년 9월 20일 유진산이 이끄는 소위 진산계만으로 시민회관에서 전당대회가 강행되어 유진산을 당수로 선출하자, 반 진산연합계는 효창동의 김홍일 자택에서 단독 전당대회를 열고 김홍일을 당수로 선출함으로써 두 개로 쪼개졌다. 그런 분당 상태에서 유신이라는 날벼락을 맞은 신민당은 충격을 받고 재통합하면서 유진산을 당수로 추대하였으며, 유진산은 선거 실시 전에 잠시 사임하였다가 선거 후 다시 당수로 복귀하게 되었다.[2]
  • 1980년 10월 27일 제5공화국 헌법 부칙에 의해 자동해산되었다. [3]
  • 대표: 유진오 ⇒ 유진산(70.2.17) ⇒ 권한대행 김홍일(71.5.12) ⇒ 김홍일(71.10.16) ⇒ 유진산(72.9.28) ⇒ 권한대행 김의택(74.5.8) ⇒ 김영삼(74.8.27) ⇒ 이철승(76.9.21) ⇒ 김영삼(79.6.7)

국민당 (1971년) [편집]

1971년 1월 6일 김대중 후보가 신민당의 대통령후보로 결정되자 이에 반발하여 민주당 구파 계열 윤보선, 박기출 등을 중심으로 창당하여 활동하였다.

  • 1972년 유신헌법으로 해산되고 신민당에 흡수되었다.

민주통일당 (1973년) [편집]

1972년 10월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된 후, 신민당의 반유진산계(反柳珍山系, 김홍일, 양일동, 윤제술 등)가 중심이 되어 1973년 1월 27일 창당하고 양일동을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하였다. 기본노선은 보수정당에 바탕을 두고 혁신적·진보적인 정강정책을 추진하였다. 약칭은 통일당(統一黨).

제 5공화국 이후 [편집]

평화민주당 (1987년) [편집]

1987년 11월 12일, 통일민주당을 탈당한 김대중을 중심으로 창당했다. 약칭은 평민당.

  • 대표: 김대중 ⇒ 직무대행 박영숙(88.3.31) ⇒ 김대중(88.6.20)

한겨레민주당(1988년) [편집]

  • 1988년 4월 6일 등록
  • 1991년 3월 13일 - 정당법에 의해 등록취소.
  • 총재: 예춘호

민주당 (1990년) [편집]

1990년 6월 15일 삼당합당을 반대하는 이기택, 노무현, 김정길 등의 통일민주당 잔류 세력과 박찬종, 이철 등의 무소속 의원 등을 중심으로 창당했다.

보통 꼬마 민주당으로 불린다.

  • 1990년 6월 18일 등록.
  • 1991년 9월 16일 - 신민주연합당과 함께 민주당으로 신설합당되어 소멸하였다.
  • 대표: 이기택

신민주연합당 (1991년) [편집]

1991년 4월 15일, 평화민주당이 당명을 바꾸어 창당했다. 약칭은 신민당.

  • 1991년 9월 16일 - 꼬마 민주당으로 불린 민주당과 함께 민주당으로 신설합당하여 소멸하였다.

문민정부 수립 이후 [편집]

민주당 (1991년) [편집]

1991년 9월, 민주당과 신민주연합당 등을 중심으로 창당했다. 1990년의 민주당과 구분해서 보통 통합민주당으로 부른다. 1995년 정계복귀한 김대중이 새로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며 분당하면서, 원내 제2야당으로 축소되었다.

  • 1991년 9월 16일 등록.
  • 1995년 3월 7일 - 새한국당(이종찬)을 흡수합당.
  • 1995년 12월 21일 - 개혁신당과 함께 통합민주당으로 신설합당하여 소멸하였다.
  • 대표: 김대중 ⇒ 김대중/이기택(92.6.24) ⇒ 이기택(93.4.8) ⇒ 홍영기/박일(95.9.1)

새정치국민회의 (1995년) [편집]

1995년 9월 5일, 김대중 등을 중심으로 창당했다. 약칭은 "국민회의".

통합민주당 (1995년) [편집]

1995년 12월,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은 민주당 세력이 개혁신당과 통합, 통합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약칭은 민주당. 1997년 신한국당과 합당하였다. 일부는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 1995년 12월 21일 등록.
  • 1996년 6월 13일 -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 1997년 11월 24일 - 신한국당과 함께 한나라당으로 신설합당하여 소멸.
  • 대표: 이기택/김원기/장을병 ⇒ 이기택(96.6.13) ⇒ 조순(97.9.18)

새천년민주당 (2000년) [편집]

2000년 1월 20일 "새정치국민회의"를 확대개편해서 창당하였다. 약칭은 민주당.

  • 2000년 1월 20일 등록.
  • 2005년 5월 6일 - 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개혁국민정당 (2002년) [편집]

2002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 직전 친노무현계열의 인사들 주축으로 창당되었고, 한나라당에서 김원웅 등이 뒤에 합류하였다. 유시민대표는 2003년 3월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2003년 1월 공동대표직을 내놓았다. 2003년 11월, 전국상임위원회 당내회의를 개최하고 모바일 투표 결과를 검토하여 개혁당을 해산시킨다는 방침을 발표, 같은 해 12월, 유시민의원은 한나라당, 민주당내 개혁파 의원들과 열린우리당을 창당, 입당하였다.

  • 대표: 유시민(2002/12) ⇒ 유시민, 김원웅(2002/12) ⇒ 김원웅(2003/1) ⇒ 오정례[대행](2003/12)

참여정부 수립 이후 [편집]

열린우리당 (2003년) [편집]

2003년 11월 11일개혁국민정당,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의 내 정당 개혁, 정치 개혁의 완수를 요구하던 개혁 세력들이 모여 창당한 정당이다. 약칭은 우리당이다. 같은 해 11월 17일에 정당 등록하였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으로 일시적인 민주당계 정당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사건의 여파로 17대 총선에서 1988년 이후 처음으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여 원내 1당으로 발돋움하였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수석 당원 자격으로 입당하여 집권여당이 되었다. 그러나, 재보궐선거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참패하였다. 지지도는 계속해서 떨어졌고 잇따라 의원들이 탈당하여 과반이 무너졌다. 결국, 2007년 8월 18일에 신당인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되는 형식으로 합당하였다.

민주당 (2005년) [편집]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사건의 여파로 17대 총선에서 9석만 얻게되는 등 지지를 잃게 되자 2005년 5월 6일 새천년민주당에서 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2007년 6월 29일 민주당중도개혁통합신당이 합당하여 박상천, 김한길을 공동대표로 하는 중도통합민주당이 출범하였다. 그러나, 8월 3일 중도개혁통합신당계열이 탈당하여 8월 9일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입당하였다. 그래서 2007년 8월 13일 당명과 로고를 민주당으로 원상복구하였다. 17대 대선에서 이인제를 대통령 후보를 내세웠으나 미미한 득표율로 낙선하였고 이듬해 2008년 2월 17일 대통합민주신당과 함께 통합민주당으로 합당하여 소멸하였다.

중도개혁통합신당 (2007년) [편집]

2007년 2월 6일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강봉균, 김낙순, 김한길, 노웅래, 노현송, 박상돈, 변재일, 서재관, 양형일, 염동연(2007년 1월 31일 열린우리당 탈당), 우제창, 우제항, 이강래, 이근식, 이종걸, 장경수, 전병헌, 제종길, 조배숙, 조일현, 주승용, 최규식, 최용규 등 국회의원 23명은 2월 12일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을 만들었고 4월 13일 우윤근(2007년 2월 10일 열린우리당 탈당)이, 4월 30일 신국환(국민중심당 탈당)이 추가로 모임에 가입하였고 5월 9일 창당에 반대한 노웅래, 우윤근, 이강래, 이종걸, 전병헌, 제종길을 제외하고 유필우(2007년 5월 7일 열린우리당 탈당)가 추가로 합류하여 국회의원 20명으로 김한길 의원을 대표로 하여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했다. 같은 해 6월 29일민주당과 함께 중도통합민주당으로 합당하였다.

대통합민주신당 (2007년) [편집]

2007년 8월 5일열린우리당의 탈당파와 중도통합민주당의 탈당파,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를 중심으로 하는 선진평화연대 세력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의 미래창조연대 등 크게 4가지 세력이 뭉쳐 창당한 정당이다. 같은 해 8월 18일, 열린우리당을 흡수하는 형식으로 열린우리당과 합당하여 원내 1당이 되었다. 정동영을 후보로 내세워 2007년 대선에 참여했다. 부단히 친(親)노무현 이미지를 벗기위한 명분없는 차별화를 시도했으나, 이에 대한 국민들에 대한 반감이 작용하여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명박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배하였다. 이로 인해 이른바 친노 세력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대통령 선거 이후에는 한나라당 출신의 손학규를 당 대표로 세우고, 이명박 신정부에 대한 견제 활동을 계속 하였다. 그 후 2008년 2월 17일 민주당과 함께 통합민주당으로 합당하여 소멸하였다.

통합민주당 (2008년) [편집]

2008년 2월 17일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이 합당하여 창당하였다. 이 합당으로 열린우리당 출범부터 있었던 민주당계 정당의 분열이 종식되었다. 18대 총선에서 원내 2당이 되었다. 같은 해 7월 6일에 열린 제1차 정기 전국대의원대회을 통해 통합민주당에서 통합을 뺀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하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편집]

민주당 (2008년) [편집]

2008년 7월 6일에 열린 제1차 정기 전국대의원대회을 통해 통합민주당에서 통합을 뺀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하였다. 이후 각종 재보선에서 여당인 한나라당 등 보수정당을 압도하며 대표 야당으로 자리매김하였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범야권 단일화를 필두로 여당을 제치고 승리하여 정국주도권 장악했으나 7.28 재보궐선거와 10.27 재보궐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하며 당세확장이 주춤했다. 결국, 2011년 12월 16일 시민통합당,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함께 야권중통합의 일환으로 민주통합당으로 합당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동영, 김근태, 추미애, 천정배, 한명숙, 정세균, 손학규, 박지원 등이 있다.

국민참여당 (2010년) [편집]

열린우리당을 흡수합당한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과의 합당때 합류하지 않은 친노직계 세력이 주축이 되어 2010년 1월 17일 창당한 정당이다. 창당 추진 당시 '친노정당'이라고 불렸다. 참여정부국민의 정부의 가치와 노선 계승을 표방했다. 2011년 12월 6일 민주노동당, 새진보통합연대와 함께 야권소통합의 일환으로 통합진보당으로 합당했다. 당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유시민, 이병완, 천호선, 권태홍, 박무 등이 있다.

시민통합당 (2011년) [편집]

2011년 12월 7일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인사와 친노무현 세력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정당이다. 민주당과의 신설합당을 목적으로 창당되었다. 2011년 12월 16일 민주당,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함께 야권중통합의 일환으로 민주통합당으로 합당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두관, 문재인, 문성근, 이해찬 등이 있다.

민주통합당/민주당 (2011년) [편집]

2011년 12월 16일 야권중통합의 일환인 민주당, 시민통합당,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합당으로 출범한 정당이다. 약칭은 민주당이다. 이번 합당으로 사실상 민주당계 정당의 분열이 종식되었다. 상징색은 기존의 민주당계와는 달리 열린우리당에서 이어져온 노란색을 사용한다. 2012년 총선에서 사실상 패배하였다. 이후, 완전국민경선을 통해 18대 대통령 후보를 문재인으로 정하여 대선을 진행하였다. 이후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인적쇄신 요구가 일어나게 되자 대선을 한달여 앞두고 이해찬을 비롯한 2기 지도부 전원이 총사퇴를 했다. 대선 후보가 대표 권한 대행도 동시에 겸하는 체제가 되었다.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를 노렸으나 낙선하여 야당으로 계속 남게 되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유지하다가 2013년 5월 4일,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대표를 선출하고 당명을 민주당으로 개명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문재인, 한명숙, 문희상, 김진표, 정세균, 박영선, 신경민, 박원순, 송영길, 최문순, 안희정 등이 있다.

참고 [편집]

주석 [편집]

  1. 한민당외에 강력한 보수주의, 반공주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닌 정당은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참고
  2. 1971년 대통령선거 이후~: 한배호, 《한국정치변동론》(법문사, 1994) 362쪽.
  3. 새로운 정치질서의 확립을 위하여 이 헌법 시행과 동시에 이 헌법 시행당시의 정당은 당연히 해산된다. - 1980년 10월 27일 제5공화국 헌법 부칙 제7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