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58.235.122.103 (토론)님의 2014년 4월 27일 (일) 21:10 판

우문호(宇文護, 515년 ~ 572년)는 중국 남북조 시대 북주의 황족, 정치가이다. 대군(代郡) 무천(武川) 출신이다. 자는 살보(薩保). 북주의 실질적인 창건자 우문태(宇文泰)의 형 우문호(宇文顥)의 아들이다. 우문태 사후 권력을 잡았으나, 북주 무제에게 암살당했다. 진국공(晉國公)으로 책봉이 되었는데, 작호를 딴 호칭인 진공호(晉公護)라고 불리기도 한다.

생애

숙부 우문태 휘하 장수로서 공을 세우고, 우문태가 서위의 권력자가 되었을 즈음에 우문태의 최측근이 되었다. 556년 우문태의 사후 실권을 장악했으며, 우문태의 아들들이 어려서 우문태의 유언에 따라 후계자인 우문각을 보좌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우문각을 허수아비를 내세우고 자기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서위 공제(西魏 恭帝)에게 우문각에게 선양을 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가운데, 우문호의 전횡에 반대한 중신인 조귀(趙貴)와 독고신(獨孤信)이 우문호를 죽이려고 하지만, 미리 알아챈 우문호는 조귀와 독고신을 죽이고, 강력한 권력을 얻었다. 효민제 우문각도 우문호의 전횡이 심해지자, 그를 숙청을 하려 했지만 실패하였다. 557년 후문호는 효민제를 폐위를 시키고, 곧바로 시해를 하였고 우문육이 황제로 옹립하였다. 그 이후, 북주와 북제와 전쟁이 일어나는데, 군략에는 능통하지 못하여 곡률광고장공의 군대에게 패하여, 곡률광과 고장공의 명성이 올라가게 만들었다.

560년, 명제 우문육이 자신과 대립을 하자, 황제를 독살하고, 황족인 우문옹을 황제로 옹립하였다. 북주 무제 우문옹은 두명의 선대 황제와 달리 우문호에게 우둔한 모습을 보였고, 우문호는 자신이 완전히 군권을 장악했고, 황제가 우둔하니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문옹의 우둔한 모습은 연기였고, 뒤에서는 측근들과 우문호 암살 계획을 짜고 있었다. 권세가 극에 달했을때 돌궐과 동맹을 맺었다.

572년 지방에 있다가 오랜만에 장안에 돌아왔고 무제를 알현했다. 그 때, 고령에 관계 없이 술을 좋아하는 황태후를 충고를 해달라는 북주 무제에게 청을 받았다. 그 청에 때문에 황태후와 알현하고 단둘이 있게 되고, 서경의 한 편중의 하나인 주고(酒誥)를 읽게 하였다. 그 틈에 무제가 등을 밀쳐 넘어뜨려 쓰러졌다. 그 곳에서 무제와 동복 동생인 위공 우문직(衛公 宇文直)에 의해 숨통을 찔리고 암살당했다. 그가 암살을 당한 뒤에 우문호의 부하들을 일망타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