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흥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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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흥택(玄興澤, ?~?)은 조선 말기 무신이자 대한제국기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보빙사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하였다.

생애[편집]

1883년에서 1884년 사이 현흥택은 미국에 파견되었던 보빙사 일원이었다.[1] 1890년 현흥택은 수안군수를 지냈고, 1894년 친군통위부령이 되었다.[2] 을미사변 당시 현흥택은 명성황후가 일본인 한 명에게 칼에 찔렸을 때 왕비를 구하고자 옥호루에 뛰어갔으나 살리지는 못하였다.[3] 이후 현흥택은 친일 내각을 몰아내기 위한 춘생문 사건에 배후조정자로 지정되었다. 이후 독립협회가 결성되자, 현흥택은 일원으로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이후 군인으로서 친위 제1연대장을 지냈으며 최종계급 정령으로 1906년 승진하였다. 이후 1908년 태극장을 받았다.[2]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