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김복동 (19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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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16년 전 (Nichetas님) - 주제: 중추원 참의 김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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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인척[편집]

* 사용자토론:Nichetas에서 옮김.

가족 중에 전 영부인인 김옥숙 말고는 굳이 밝힐 필요가 있을까요? (뭐, 정계-재계 인맥 프로젝트도 아니고요. ) -- ChongDae 2006년 3월 12일 (일) 18:09 (KST)답변

좀 지나쳤네요^^Nichetas 2006년 3월 12일 (일) 18:10 (KST) 삭제하겠습니다.답변

중추원 참의 김영한[편집]

저도 노태우 전 대통령 장인이 중추원 참의였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많이 흘러다녀서 굳이 따져보지 않고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문서를 작성하다 보니 와전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겨 여쭤봅니다.

첫째는 시기적인 문제입니다. 한일합방 직후인 1910년에 중추원을 세워서 조선귀족 13명을 고문에, 그다음 순위의 공적을 세운 사람들을 찬의 18명에 임명한거라 이름만 대도 알만한 상당한 거물들이 들어가 있거든요. 김영한(金榮漢)은 이때부터 중추원 찬의에 임명이 되었는데 같이 찬의가 된 사람들 생년이 1840, 1846, 1847, 1852, 1859, 1862, 1864, 1870, 1871, 이런 식입니다. 제일 젊은 사람이 40대 초반이고 70대도 있습니다. 그런데 김옥숙의 아버지 김영한은 장남이 1927년생이고 막내딸이 1937년생인데 1910년에 이런 고위직에 오르기 어려워 보이네요. 나이로 볼때 두 사람은 거의 한 세대 정도 차이가 나지 않나 싶습니다.

더구나 《월간중앙》 (2001년 9월호) 〈친인척 관리 스타일 전혀 다른 3인의 군 출신 대통령〉에는 노 전 대통령 장인의 한자 이름도 金永漢으로 나와 있습니다. 혹시 자세히 아시는 분이 계시면 보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록 2007년 8월 23일 (목) 12:47 (KST)

중추원 찬의 자리도 세속되는 작위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럴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봄이 좋겠네요.Nichetas 2007년 8월 24일 (금) 08:44 (KST)답변
중추원 찬의는 조선귀족하고는 달라서 세습되는건 아닙니다. 명문가(?)에서 아버지는 고문, 아들은 찬의, 이런 식으로 같이 한 사례는 있습니다. 1910년에 찬의가 된 김영한(金榮漢)은 1903년에 증보문헌비고[1] 인쇄에 참여한 사람과 같은 인물인 것 같아서, 저로서는 김옥숙 씨 아버지하고는 동명이인으로 보입니다. 혹시 어디서 보신 내용인지 기억을 하시는지요? -- 록 2007년 8월 24일 (금) 08:54 (KST)

김옥숙 씨 아버지의 이름 한자를 金永漢이라고 쓴 보도 하나를 김영한 문서 각주에 추가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위의 《월간중앙》 기사에도 나와있지만 열람이 유료라서요. 《한국일보》 1987년 12월 18일자에 실린 대통령 당선자 부인 소개 기사인 알뜰살림 속에 숨은 內助... "보통 부인"입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金永漢은 몰년이 1980년이라 金榮漢이 처음 중추원 찬의가 된 1910년과의 간격이 70년입니다. -- 록 2007년 8월 24일 (금) 14:26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