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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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후시(柵門後市)는 조선 현종 초년부터 구련성(九連城)과 봉황성(鳳凰城) 중간의 책문에서 행해지던 청과의 통상을 말한다.[1]

조선의 교역으로는 에 대한 조공무역, 사행(使行)에 의한 사무역, 기타 청구에 의한 교역이 행해졌다. 그리고, 중기 이후에는 압록강변의 중강개시야인에 대한 경원·경성·회령에서 개시를 행하였다.[1]

후기의 대청(對淸) 무역상 중강개시는 인조 24년(1646년)에 다시 설치되었는데 법규로 금지된 사상(私商)이 크게 날뛰어 마치 자유무역의 양상을 나타냈으며, 그 후 약 50년 간 ‘중강후시(中江後市)’란 이름으로 번영을 이룩하였다.[1]

숙종 26년(1700년)에 일단 폐지되었다가 현종 초년부터 통상이 시작되어 소위 ‘책문후시’란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상당히 번창하였다. 조정에서는 시초에는 금하였으나 할 수 없이 묵인하는 대신 세금을 부과하여 국고수입을 삼았다.[1]

영조 30년(1754년)에 책문후시가 공인됨에 따라 피물(皮物)·지물(紙物)·수(紬, 명주)·저포(苧布, 모시) 등의 수출은 막대하였다.[1]

정조 11년(1787년) 후시를 일체 혁파하고자 하였으나 효과가 없었고, 이곳에서의 조선상인과 만주상인들의 교역은 개항 때까지 계속되었다.[1]

각주[편집]

  1. 책문후시, 《글로벌 세계 대백과》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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