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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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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선대부 교지

윤완


효자

윤완(尹浣, 1602~1669)은 칠원 윤씨(漆原尹氏) 28세이며 충효공(尹桓: 문하시중) 후손이다. 부친 증이조참의 천록과 모친 숙부인 예천임씨(醴泉林氏)사이의 사남이다. 자는 공탁(公濯)이다.


출 생 : 1602년 4월 18일

사 망 : 1669년 11월 17일

출생지 : 청양군 청남면 인양리

안 장 : 청양군 장평면 중추리 성재동(聖才洞) 남서향(艮坐)

해 문 : 향토사학자 윤경수


의금부도사

효자 증직(贈職)으로 1671년 종6품 선무랑 의금부도사이며, 1682년 11월12일 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 벼슬에 증직되었다.


공탁(公濯)은 천성이 효성스러웠는데 아버지께서 병환이 중하자 손가락을 베어서 피를 흘려 넣어 소생을 시켰고 어머니의 병환에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를 흘려 넣었더니 효험이 있었다. 또 어머니께서 상추 잡수기를 원하였는데 겨울철이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밭 둑에 앉아 소리를 내어 울었더니 상추잎 몇개가 언 땅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어머니에게 드려 잡수시게 하였다.

결국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산소 아래에 여막을 짓고 3년의 시묘살이를 하였다.

장평면 중추리 소재지에 조석다리라 별칭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아침 저녘으로 잉어를 낚아 봉양하였다고 가승은 전하였다.


참고문헌) 1 .칠원윤씨 가승(윤성원). 2. 청양군지. 3. 칠원윤씨 충효열록(2022. 윤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