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전종실/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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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삭(全方朔), 1545 ~ 1598)은 조선 중기의 무장이며 의병장이다. 본관은 천안(天安)이고 자(字)는 일진(日進), 호(號)는 규암(葵庵)이다.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우산리 택촌에서 부사를 지낸 전윤부(全潤富)의 외 아들로 태어나 무예를 익히고 있을때 동갑인 이순신이 보성군수 방진(方震)의딸 방태평과 결혼후 장인에게 무예를 익히고자 줄곧 11년간 처가에 머무를때 전방삭과 이순신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목차

1.생애 2.사후 3.가족관계 4.같이보기

생애 전방삭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를 좋아했으며 광해군 세자 사부인 죽천(竹川) 박광전(朴光前)선생과 우계(牛溪) 성혼(成渾)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무예를 익히는 청년시절 전방삭과 동갑인 이순신이 21세 되던해에 보성군수 방진(方震)의 딸 방태평과 결혼하고 장인으로부터 무술을 11년간 익히고 있을때 같은 활터와 경마장을 이용 하였기에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전방삭은 31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에서 근무하게 되고 실력을 인정받아 48세에 훈련원 부정(副正) 건공장군(建功將軍)으로 승진하였다. 1592년 뜻하지 않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왕실이 위태로워 피신할때 광해군 세자를 호종(扈從)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세자의 윤허를 받아 삼도수군 통제사 이순신 막하로 백의종군하여 20여회의 크고작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누명으로 이순신이 하옥되자 관군은 와해되고 전방삭은 고향의 연해안을 지키고자 미리 보아둔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연등포에 진지를 마련하고 의병 300명을 모집 정예병으로 훈련한뒤 고향뿐만 아니라 인근 고흥, 낙안, 순천 등지로 쳐들어오는 왜적을 동료장수인 송대립, 김덕방, 최대성, 황원복등과 함께 수차에 걸쳐 왜적을 물리쳤다.

사후 선조임금께서는 전방삭의 공적을 인정하고 선무원종공신 2등에 등재하고 록권을 하사 했으며 훈련원정(訓鍊院正)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추증 하였다.

선조임금께서 하사하신공신록권
부정 전방삭 개인에게 하사한 증거

가족관계 조부 전청(全淸)은 진사이시고 부친 퇴한당(退漢當) 전윤부(全潤富)는 부사(府使)를 지냈으며 전방삭(全方朔)은 외 아들이다. 그 아들 또한 외 아들인 전홍례(全弘禮)는 훈련원 판관(判官) 재직시 병자호란때 임금을 강도로 모시다 전사하였다. 후세들이 일문(一門)에 쌍충(雙忠)이 났다고 칭찬 하였다.

같이보기 선무원종공신록권 ― 보성군청(보성군 향토문화유산 제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