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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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개(雍闓, ?~225년)는 중국 삼국 시대 익주(益州) 익주군(益州郡)의 호족이며, 전한의 숙후(肅侯) 옹치(雍齒)의 후손이다[1].

생애[편집]

건안(196년 1월 7일 ~ 220년 3월) 말기에, 사섭의 회유를 받아 손권에게 투항했다.[2][3] 익주태수 정앙(正昂)을 죽이고, 손권과 내통하여 후임 장예(張裔)를 사로잡아 동오로 압송했다.[4]

유비가 사망한 소식을 듣고 교만한 마음이 더욱 커져, 도호 이엄의 회유를 묵살하였다.[5] 또 동오에 투항하여 영창태수에 임명되었다.[5] 영창군의 오관연공조 여개와 부승 왕항이 옹개가 영창태수로 부임하는 것을 저지하자 격서를 여러 차례 영창군에 보냈으나 여개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다.[5] 이후 여개 등을 계속 압박하였으나, 굴복시키지는 못했다.[5]

225년, 승상 제갈량이 남방의 반란을 토벌하려고 출진하려던 차에(제갈량의 남정), 이미 고정(高定)의 부하에게 살해되었다.[5]

가계[편집]

옹치.png

관련 인물[편집]

옹치

《삼국지연의》에서의 옹개[편집]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건녕태수였다. 건흥 3년(225년), 남만왕 맹획(孟獲)과 연합하고 장가태수 고정, 월수태수 주포와 함께 촉나라에 반기를 들어, 자신들에게 호응하지 않은 영창군(永昌郡)을 공격하였다가, 제갈량이 자신들을 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방향을 돌려 제갈량 군과 싸웠다. 제갈량(諸葛亮)의 이간계에 걸린 고정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주석[편집]

  1. 《삼국지》 권43 황이여마황장전에 수록된 《여개가 옹개의 격문에 답하는 글》에서, 여개는 옹개를 “대대로 한실의 은혜를 입었다”고 했고, 또 “장군의 선조 옹후는 원한을 입은 후 책봉을 받았다.”라고 서술했다.
  2. 진수, 《삼국지》 권49 유요태사자사섭전
  3. 진수, 《삼국지》 권52 장고제갈보전
  4. 진수, 《삼국지》 권41 곽왕상장양비전
  5. 진수, 《삼국지》 권43 황이여마왕장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