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니코스 팔레올로고스 칸타쿠지노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안드로니코스 팔레올로고스 칸타쿠지노스(그리스어: Ανδρόνικος Παλαιολόγος Καντακουζηνός, 1453년 6월 4일 사망)는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메가스 도메스티코스였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당시 도시에 있었던, 그는 도시가 함락된 지 5일 만에 오스만의 술탄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처형된 제국의 고위 관리들 중 한 명이었다.[1]

안드로니코스는 콘스탄티노스 11세에게 세르비아의 전제공 주라지 브란코비치의 딸인 마라 대신에 그의 세 번째 아내로 트라페준타의 다비드의 딸인 안나를 맡으라고 조언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2] 그의 이름은 1448년 4월에 체결된 동로마 제국과 베네치아 사이의 조약에서 당시 편찮았던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 칸타쿠지노스를 대신하여 나타난다.[3]

그는 1436년 가을 요안니스 8세 팔레올로고스 황제가 세르비아인에게 교회 연합에 관해 페라라-피렌체 공의회에 대표단을 보내도록 설득하기 위해 보낸 메가스 도메스티코스 칸타쿠지노스일 가능성이 높다. 역사학자 실베스트로스 시로풀로스는 이 사람을 "세르비아 전제공의 처남"이라고 묘사했다. 따라서 안드로니코스 팔레올로고스 칸타쿠지노스는 주라지 브란코비치의 아내 이리니 칸타쿠지니의 남자형제이다.[3] 세르비아 교회는 이 공의회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고, 만약 신원 확인이 정확하다면 안드로니코스가 콘스탄티노스 황제와 마라 브란코비치의 결혼을 반대하게 된 동기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편집]

위그 부사크가 편찬한 그의 아내의 계보에 따르면, 안드로니코스는 요르요스 팔레올로고스 칸타쿠지노스의 형제이며, 요르요스와 함께 디미트리오스 1세 칸타쿠지노스 혹는 테오도로스 칸타쿠지노스의 아들로 추정된다. 그는 결혼을 했고, 적어도 한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메가스 둑스 루카스 노타라스의 딸과 결혼했다. 두카스는 그 젊은 칸타쿠지노스가 어떻게 그의 장인과 함께 그들의 처형에 동행했는지 전한다.[4]

각주[편집]

  1. Nicol, Donald (1968). 《The Byzantine family of Kantakouzenos (Cantacuzenus) ca. 1100-1460: A Genealogical and Prosopographical Study》. Dumbarton Oaks studies 11. Washington, DC: Dumbarton Oaks Center for Byzantine Studies. 179ff쪽. OCLC 390843. 
  2. George Sphrantzes, 32.7, translated in Marios Philippides, The Fall of the Byzantine Empire: A Chronicle by George Sphrantzes, 1401-1477 (Amherst: University of Massachusetts, 1980), p. 63
  3. Nicol, Byzantine Family, p. 180
  4. Nicol, Byzantine Family, pp. 180f. However, Nicol had backed away from the identification of Demetrios as Andronikos' and George's father; see his "The Byzantine Family of Kantakouzenos: Some Addenda and Corrigenda", Dumbarton Oaks Papers, 27 (1973), pp. 312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