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Saratoga9/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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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

현(現)

-오지탐험가

-주한엘살바도르 명예영사

-국립부경대학교 초빙교수

-대구한의대학교 특임교수

-한국국제합창협회 이사장

-부산국제합창제 공동조직위원장

-(사)부산문화예술진흥회 이사장

-뉴월드 오케스트라 단장

-부산재즈클럽 고문

-시인

전(前)

-대구예술대학교 특임교수 역임

-B.B.S. 부산 중고등학교 교장 역임

-도레미문화센터 대표 역임

-한국케이블TV방송국 부산•울산

경남협의회 시청 자위원회 위원장

-팔만대장경세계문화축전 명예홍보대사

-국제신문 상임이사 역임

-청와대 국무총리실 국세청 등 160개 국가 행정기관 '음악이 있는 세계문화기행' 문화예술 강연

-부산 등 10개 교육청

'길 위에 움직이는 학교' 교육 강연

-경기광주시 등 16개 시청

'Do it Now!' 동기부여 강연

-두산건설 등 261개 기업 '기업문화' 강연

-육군사령부 공군사령부 육해공사관학교 등 32개 부대 '성상근야, 습상원야' 자기계발 강연

-27년간 총 2000회 이상 강연

생애 유년 시절

도용복은 1943년 경상북도 안동 옆 풍산에서 태어난 그는 6·25 전쟁 때 안동경찰서장이던 아버지를 여의는 등 큰 아픔을 겪는다. 전쟁 중에 “쌀밥을 준다”는 조건 하나로 한국전쟁 격전지로 유명한 다부동 고지로 총알을 날랐다.

학창 시절

도 명예영사는 좋은 도시외교 방안으로 친절과 문화의 힘을 일관되게 꼽았다. 사실 등으로 두루 널리 알려진 도 명예영사는 아무리 오래 인터뷰해도 그 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이야깃거리·사연·경험·메시지가 풍부한 유명 인사다. 극도로 압축해 소개해보면 이렇다. 도용복은 중학교를 나온 뒤 무작정 부산으로 왔다가 “태평양을 보고는 그 광경에 설레” 정착한다. 소년 시절 부두 노동을 하는 한편 중앙동 다방에서 디스크자키를 보며 음악의 힘을 느낀다. 하루 4시간 자는 엄청난 부지런함으로 사업에 성 오십 대에 접어들면서 사업에 성공한다.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을 능가하는 파란만장이다.

군복무, 종자돈 마련

월남전이 터지자 자원입대해 위생병으로 복무하며 벌어들인 수입을 종자돈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사회 생활

세계 오지 탐험을 시작했다. “1년에 300일 일하고 65일 세계 오지를 탐험하는” 원칙을 실천하다 보니 172개국을 여행했다. 이번 달부터 12개 나라를 더 돌고 오면 184개국이 된다. “무모하다”며 모두 말리던 우즈베키스탄 골프장 경영에 뛰어들어 10여 년 만에 가치를 20배 올리며 큰 성공을 거둔 데는 ‘홀로 하는 오지 탐험’에서 얻은 통찰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엘살바도르 명예영사

“그런 삶을 살다 보니, 탐험 도중 죽을 고비도 꽤 넘겼지만 친절·환대·문화의 힘을 절감했다”고 그는 말했다. 2004년 엘살바도르 명예영사로 위촉된 것 또한 현지를 여행할 때 그곳 가객들에게 친절을 베푼 것이 계기였다. “명예영사가 된 뒤 음악을 중심으로 문화교류를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엘살바도르에 진출하도록 ‘다리’도 많이 놓게 됐다.”

도 명예영사는 “친절과 문화의 힘으로 먼저 우호의 다리를 놓으면 경제교류도 따라 오는 것을 많이 봤다. 부산 도시외교도 문화의 힘에 주목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도용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