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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지(瑜伽師地) - 17지(地)

무엇을 유가사지(瑜伽師地)라고 하는가?[1]

17지(地)를 말한다.

첫째는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 둘째는 의지(意地), 셋째는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 넷째는 무심유사지(無尋唯伺地), 다섯째는 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 여섯째는 삼마희다지(三摩 多地), 일곱째는 비삼마히다지(非三摩 多地), 여덟째는 유심지(有心地), 아홉째는 무심지(無心地), 열째는 문소성지(聞所成地), 열 한째는 사소성지(思所成地), 열 둘째는 수소성지(修所成地), 열 셋째는 성문지(聲聞地), 열 넷째는 독각지(獨覺地), 열 다섯째는 보살지(菩薩地), 열 여섯째는 유여의지(有餘依地), 열 일곱째는 무여의지(無餘依地)이다. 이와 같이 열 일곱 가지를 간략히 설하여 유가사지(瑜伽師地)라고 한다.

(1) 5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편집]

무엇을 5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라고 하는가?

5식신(識身)의 자성(自性) 그것의 소의(所依) 그것의 소연(所緣) 그것의 조반(助伴) 그것의 작업(作業)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을 총괄하여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라고 한다.[2]

무엇 등을 5식신(五識身)이라고 하는가?

소위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이다.[3]

(1.1) 안식(眼識)[편집]

(1.1.1) 안식(眼識)의 자성(自性)[편집]

무엇을 안식(眼識)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4]

안[眼 : 眼根]을 의지하여 색(色)을 요별(了別)하는 것을 말한다.

(1.1.2) 안식(眼識)의 소의(所依)[편집]

그것[眼識]의 소의(所依)란 구유의(俱有依)는 안근[眼 : 眼根]을 말하고,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을 말하고, 종자의(種子依)는 이것의 일체종자(一切種子)를 집수(執受)하는 소의(所依)로서 이숙(異熟)에 포함되는[所攝]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한다.[5]

이와 같은 것을 간략히 두 가지 소의(所依)로 설명하면 색(色)과 비색(非色)이다. 안근[眼;眼根]은 색(色)이며 나머지는 비색(非色)이다.

안[眼 : 眼根]은 4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안식이 의지하게 되는[眼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근[意;意根]는 안식(眼識)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無間]의 과거식(過去識)을 말하며,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은 무시시래(無始時來)로 희론(戲論)을 즐겨 집착하여[樂著] 훈습(薰習)한 것이 원인[因]이 되어서 생기는 것[所生]으로서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이숙식(異熟識)을 말한다.

(1.1.3) 안식(眼識)의 소연(所緣)[편집]

그것[眼識]의 소연(所緣)이란 색(色)으로서 유견유대(有見有對)를 말한다. 여기에 다시 여러 가지를 간략히 설명하면 현색(顯色)과 형색(形色)과 표색(表色)의 세 가지가 있다.[6]

(1.1.3.1) 현색(顯色)[편집]

현색(顯色)이란 푸르고[靑] 누렇고[黃] 붉고[赤] 희고[白] 빛[光] 그림자[影] 밝음[明] 어두움[闇] 구름[雲] 연기[煙] 티끌[塵] 안개[霧] 공일현색(空一顯色)을 말한다.[7]

또한 현색이란 색이 완전히 드러났을 때에[顯了], 안식의 소행(所行)을 말한다.

또한 현색(顯色)이란 빛과 밝음 등의 차별(差別)을 말한다.

이와 같은 모든 현색 형색 표색은 바로 안근[眼 : 眼根]의 소행이며 안근의 경계이며, 안식(眼識)의 소행(所行)이며 안식의 경계(境界)이며 안식의 소연(所緣)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고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이를 차별(差別)이라고 한다.

(1.1.3.2) 형색(形色)[편집]

형색(形色)이란 길고[長] 짧고[短] 모나고[方] 둥글고[圓] 굵고[麤] 가늘고[細] 곧고[正] 곧지 않고[不正] 높고[高] 낮은[下] 색(色)을 말한다.[7]

또한 형색(形色)이란 색이 모아졌을 때에[積集], 길고 짧은 것 등으로 갈라지는[分別] 상(相)을 말한다.

또한 형색(形色)이란 길고 짧은 것 등으로 모아지는 것[積集]의 차별을 말한다.

이와 같은 모든 현색 형색 표색은 바로 안근[眼 : 眼根]의 소행이며 안근의 경계이며, 안식(眼識)의 소행(所行)이며 안식의 경계(境界)이며 안식의 소연(所緣)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고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이를 차별(差別)이라고 한다.

(1.1.3.3) 표색(表色)[편집]

표색(表色)이란 취하고[取] 버리고[捨] 굽히고[屈] 펴고[伸] 가고[行] 머무르고[住] 앉고[坐] 눕는[臥] 이와 같은 등의 색(色)을 말한다.[7]

또한 표색(表色)이란 모아진[積集] 색이 생멸상속(生滅相續)하고, 달라진[變異] 인(因)에 의하여 먼저 생긴 곳[先生處]에서 거듭 생기지 않고, 다른 곳[異處]에 전전하며 생기는 것인데, 무간(無間) 혹은 유간(有間) 혹은 가깝게 또는 멀게 차별이 생기는 것이며, 혹은 이 곳에서 달라져서[變異]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를 표색이라고 한다.

또한 표색(表色)이란 업의 작용[業用]을 의지로 하여 구르고 움직이는 것[轉動]의 차별을 말한다.

이와 같은 모든 현색 형색 표색은 바로 안근[眼 : 眼根]의 소행이며 안근의 경계이며, 안식(眼識)의 소행(所行)이며 안식의 경계(境界)이며 안식의 소연(所緣)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고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이를 차별(差別)이라고 한다.

(1.1.3.4) 호현색(好顯色)·악현색(惡顯色)·구리현색(俱異顯色)[편집]

또한 이 색에는 다시 호현색(好顯色)과 악현색(惡顯色)과 구리현색(俱異顯色)의 세 가지가 있다. 색과 흡사하게 현현(顯現)한다.[8]

(1.1.4) 안식(眼識)의 조반(助伴)[편집]

그것[眼識]의 조반(助伴)이란 그것과 함께 있으면서[俱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의 심소유법(心所有法), 즉 작의(作意) 촉(觸) 수(受) 상(想) 사(思)와 그 밖에 안식과 함께 있으면서[具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 심소유법들[心所有法]을 말한다. 또한 이 제 법(法)은 동일한 소연(所緣)이지만 동일한 행상(行相)이 아니며, 함께 있고[俱有] 상응하면서도 하나 하나 전전하며, 또한 그 일체는 각각 자기[自]의 종자(種子)로부터 생겨난다.[9]

(1.1.5) 안식(眼識)의 작업(作業)[편집]

그것[眼識]의 작업(作業)이란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10]

  1. 오직 자신의 경계[自境]의 소연을 요별(了別)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첫 번째 업[初業]이라고 한다.
  2. 오직 자상(自相)만을 요별하고,
  3. 오직 현재만을 요별하며,
  4. 오직 한 찰나만을 요별한다.
  5. 또 두 가지 업이 있다. 의식을 따라 구르며, 선(善) 염(染)에 따라 구르며, 일으킨 업[發業]에 따라 구른다.
  6. 또한 능히 애(愛)와 비애(非愛)의 과(果)를 취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작업[業 : 作業]이다.

(1.2) 이식(耳識)[편집]

(1.2.1) 이식(耳識)의 자성(自性)[편집]

무엇을 이식(耳識)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11]

이근[耳 : 耳根]에 의지하여 성(聲)을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1.2.2) 이식(耳識)의 소의(所依)[편집]

그것[耳識]의 소의는 구유의(俱有依)는 이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이다.[12]

이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이식이 의지하게 되는[耳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란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즉, 의(意;意根)는 이식(耳識)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無間]의 과거식(過去識)을 말하며,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은 무시시래(無始時來)로 희론(戲論)을 즐겨 집착하여[樂著] 훈습(薰習)한 것이 원인[因]이 되어서 생기는 것[所生]으로서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이숙식(異熟識)을 말한다.[5]

(1.2.3) 이식(耳識)의 소연(所緣)[편집]

그것[耳識]의 소연(所緣)은 성(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56)를 말한다.[13]

여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소라고둥 소리 크고 작은 북 소리 춤 소리 노랫소리 여러 가지 음악 소리 울부짖는 소리[俳戲叫聲] 여자 소리 남자 소리 바람이 스치는 숲의 소리 명료한 소리 명료하지 않은 소리 뜻이 있는 소리 뜻이 없는 소리 상중하(上中下)의 소리 강하(江河) 등의 소리 투쟁하면서 떠드는 소리 수지(受持)하여 연설하는 소리 논의결택(論議決擇)하는 소리 등 이와 같은 종류의 많은 소리가 있다.

이를 세 가지로 간략히 하면, 즉 집수대종(執受大種)에 의한 소리 불집수대종(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 집수불집수대종(執受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이다.

처음 것은 오직 안[內]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며, 다음 것은 밖[外]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며, 마지막 것은 안팎[內外]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다.

여기에도 가의(可意)의 소리 불가의(不可意)의 소리 구상위(俱相違)의 소리의 세 가지가 있다. 또한 소리[聲]에는 즉, 울음 소리 말 울부짖음 드러내는 말 등의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는 이근의 소행(所行)이며 이근의 경계이며, 이식(耳識)의 소연(所緣)이며 이식의 경계이며 이식의 소연이며, 의식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이를 차별(差別)이라고 한다.]

(1.2.4) 이식(耳識)의 조반(助伴)[편집]

조반(助伴)은 안식(眼識)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14]

그것[眼識]의 조반(助伴)이란 그것과 함께 있으면서[俱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의 심소유법(心所有法), 즉 작의(作意) 촉(觸) 수(受) 상(想) 사(思)와 그 밖에 안식과 함께 있으면서[具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 심소유법들[心所有法]을 말한다. 또한 이 제 법(法)은 동일한 소연(所緣)이지만 동일한 행상(行相)이 아니며, 함께 있고[俱有] 상응하면서도 하나 하나 전전하며, 또한 그 일체는 각각 자기[自]의 종자(種子)로부터 생겨난다.[9]

(1.2.5) 이식(耳識)의 작업(作業)[편집]

업(業)은 안식(眼識)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14]

그것[眼識]의 작업(作業)이란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10]

  1. 오직 자신의 경계[自境]의 소연을 요별(了別)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첫 번째 업[初業]이라고 한다.
  2. 오직 자상(自相)만을 요별하고,
  3. 오직 현재만을 요별하며,
  4. 오직 한 찰나만을 요별한다.
  5. 또 두 가지 업이 있다. 의식을 따라 구르며, 선(善) 염(染)에 따라 구르며, 일으킨 업[發業]에 따라 구른다.
  6. 또한 능히 애(愛)와 비애(非愛)의 과(果)를 취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작업[業 : 作業]이다.

(1.3) 비식(鼻識)[편집]

(1.3.1) 비식(鼻識)의 자성(自性)[편집]

무엇을 비식(鼻識)의 자성이라 하는가?[15]

비근[鼻 : 鼻根]에 의지하여 향(香)을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1.3.2) 비식(鼻識)의 소의(所依)[편집]

그것[鼻識]의 소의(所依)는 구유의(俱有依)는 비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을 말한다.[16]

비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 진 것[四大種所造]이며, 비식이 의지하게 되는[鼻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는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즉, 의(意;意根)는 비식(鼻識)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無間]의 과거식(過去識)을 말하며,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은 무시시래(無始時來)로 희론(戲論)을 즐겨 집착하여[樂著] 훈습(薰習)한 것이 원인[因]이 되어서 생기는 것[所生]으로서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이숙식(異熟識)을 말한다.[5]

(1.3.3) 비식(鼻識)의 소연(所緣)[편집]

그것[鼻識]의 소연이란 향(香)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를 말한다.[17]

여기에도 즉 호향(好香) 악향(惡香) 평등향(平等香)의 여러 가지가 있으며, 냄새맡아서 알게 되는 뿌리 줄기 꽃 잎사귀 과실의 향, 이런 등등의 많은 종류의 여러 가지 향(香)이 있다.

또한 냄새[香]란 이른바 코로 맡는 것[鼻所聞]과 코로 취하는 것[鼻所取]과 코로 냄새맡는 것[鼻所嗅] 등의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것은 비근의 소행이며 비근의 경계이며, 비식(鼻識)의 소행이며 비식의 경계이며 비식의 소연이며, 의식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이를 차별(差別)이라고 한다.]

(1.3.4) 비식(鼻識)의 조반(助伴)[편집]

조반(助伴)은 안식(眼識)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18]

그것[眼識]의 조반(助伴)이란 그것과 함께 있으면서[俱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의 심소유법(心所有法), 즉 작의(作意) 촉(觸) 수(受) 상(想) 사(思)와 그 밖에 안식과 함께 있으면서[具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 심소유법들[心所有法]을 말한다. 또한 이 제 법(法)은 동일한 소연(所緣)이지만 동일한 행상(行相)이 아니며, 함께 있고[俱有] 상응하면서도 하나 하나 전전하며, 또한 그 일체는 각각 자기[自]의 종자(種子)로부터 생겨난다.[9]

(1.3.5) 비식(鼻識)의 작업(作業)[편집]

업(業)은 안식(眼識)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18]

그것[眼識]의 작업(作業)이란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10]

  1. 오직 자신의 경계[自境]의 소연을 요별(了別)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첫 번째 업[初業]이라고 한다.
  2. 오직 자상(自相)만을 요별하고,
  3. 오직 현재만을 요별하며,
  4. 오직 한 찰나만을 요별한다.
  5. 또 두 가지 업이 있다. 의식을 따라 구르며, 선(善) 염(染)에 따라 구르며, 일으킨 업[發業]에 따라 구른다.
  6. 또한 능히 애(愛)와 비애(非愛)의 과(果)를 취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작업[業 : 作業]이다.

(1.4) 설식(舌識)[편집]

(1.4.1) 설식(舌識)의 자성(自性)[편집]

무엇을68) 설식(舌識)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19]

설근[舌 : 舌根]에 의지하여 미(味)를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1.4.2) 설식(舌識)의 소의(所依)[편집]

그것[舌識]의 소의(所依)는 구유의(俱有依)는 설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이다.[20]

설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설식이 의지하게 되는[舌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는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즉, 의(意;意根)는 설식(舌識)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無間]의 과거식(過去識)을 말하며,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은 무시시래(無始時來)로 희론(戲論)을 즐겨 집착하여[樂著] 훈습(薰習)한 것이 원인[因]이 되어서 생기는 것[所生]으로서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이숙식(異熟識)을 말한다.[5]

(1.4.3) 설식(舌識)의 소연(所緣)[편집]

그것[舌識]의 소연(所緣)은 미(味)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를 말한다.[21]

여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쓰고[苦] 시고[酢] 맵고[辛] 달고[甘] 짜고[鹹] 싱거운 것[淡]이 있고, 가의(可意), 불가의(不可意), 혹은 사(捨)의 처소(處所)가 있으며, 설근이 맛보는 대상[所嘗]이 있다.

또한 미(味)란 이른바 맛보겠다, 삼키겠다, 씹겠다, 마시겠다, 핥겠다, 빨겠다, 수용하겠다는 등의 위와 같은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것은 설근의 소행이며 설근의 경계이며, 설식(舌識)의 소행이고 설식의 경계이고 설식의 소연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이를 차별(差別)이라고 한다.]

(1.4.4) 설식(舌識)의 조반(助伴)[편집]

조반(助伴)은 안식(眼識)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22]

그것[眼識]의 조반(助伴)이란 그것과 함께 있으면서[俱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의 심소유법(心所有法), 즉 작의(作意) 촉(觸) 수(受) 상(想) 사(思)와 그 밖에 안식과 함께 있으면서[具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 심소유법들[心所有法]을 말한다. 또한 이 제 법(法)은 동일한 소연(所緣)이지만 동일한 행상(行相)이 아니며, 함께 있고[俱有] 상응하면서도 하나 하나 전전하며, 또한 그 일체는 각각 자기[自]의 종자(種子)로부터 생겨난다.[9]

(1.4.5) 설식(舌識)의 작업(作業)[편집]

업(業)은 안식(眼識)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22]

그것[眼識]의 작업(作業)이란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10]

  1. 오직 자신의 경계[自境]의 소연을 요별(了別)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첫 번째 업[初業]이라고 한다.
  2. 오직 자상(自相)만을 요별하고,
  3. 오직 현재만을 요별하며,
  4. 오직 한 찰나만을 요별한다.
  5. 또 두 가지 업이 있다. 의식을 따라 구르며, 선(善) 염(染)에 따라 구르며, 일으킨 업[發業]에 따라 구른다.
  6. 또한 능히 애(愛)와 비애(非愛)의 과(果)를 취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작업[業 : 作業]이다.

(1.5) 신식(身識)[편집]

(1.5.1) 신식(身識)의 자성(自性)[편집]

무엇을 신식(身識)의 자성(自性)이라 하는가?[23]

신근[身 : 身根]에 의지하여 촉(觸)을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1.5.2) 신식(身識)의 소의(所依)[편집]

그것[身識]의 소의(所依)는 구유의(俱有依)는 신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이다.[24]

신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신식이 의지하게 되는[身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는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즉, 의(意;意根)는 신식(身識)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無間]의 과거식(過去識)을 말하며,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은 무시시래(無始時來)로 희론(戲論)을 즐겨 집착하여[樂著] 훈습(薰習)한 것이 원인[因]이 되어서 생기는 것[所生]으로서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이숙식(異熟識)을 말한다.[5]

(1.5.3) 신식(身識)의 소연(所緣)[편집]

그것[身識]의 소연이란 촉(觸)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를 말한다.[25]

여기에도 즉 땅[地] 물[水] 불[火] 바람[風]과 가벼운 성질[輕性] 무거운 성질[重性] 미끄러운 성질[滑性] 껄그러운 성질[澁性] 차가움[冷] 배고픔[飢] 목마름[渴] 배부름[飽] 힘 있음[力] 힘 없음[劣] 느슨함[緩] 급함[急] 병듦[病] 늙음[老] 죽음[死] 간지러움[] 답답함[悶] 끈끈함[粘] 고달픔[疲] 쉼[息] 연약[軟怯] 기운[勇]의 여러 가지가 있으며, 위와 같은 종류의 여러 가지 촉(觸)이 있다.

여기에도 즉 호촉(好觸) 악촉(惡觸) 사(捨)의 처소의 촉[處所觸]의 세 가지가 있으며, 신근[身]이 감촉하는 대상[所觸]이 있다.

또한 촉(觸)이란 즉 어루만지고 부딪치고 혹은 단단하고 부드럽고 혹은 움직이고 따뜻한 등의 이와 같은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는 신근[身 : 身根]의 소행(所行)이며 신근의 경계이며, 신식(身識)의 소행이며 신식의 경계이며 신식의 소연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고 의식의 소연이다.[이를 차별(差別)이라고 한다.]

(1.5.4) 신식(身識)의 조반(助伴)[편집]

조반(助伴)은 안식(眼識)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26]

그것[眼識]의 조반(助伴)이란 그것과 함께 있으면서[俱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의 심소유법(心所有法), 즉 작의(作意) 촉(觸) 수(受) 상(想) 사(思)와 그 밖에 안식과 함께 있으면서[具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 심소유법들[心所有法]을 말한다. 또한 이 제 법(法)은 동일한 소연(所緣)이지만 동일한 행상(行相)이 아니며, 함께 있고[俱有] 상응하면서도 하나 하나 전전하며, 또한 그 일체는 각각 자기[自]의 종자(種子)로부터 생겨난다.[9]

(1.5.5) 신식(身識)의 작업(作業)[편집]

업(業)은 안식(眼識)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26]

그것[眼識]의 작업(作業)이란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10]

  1. 오직 자신의 경계[自境]의 소연을 요별(了別)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첫 번째 업[初業]이라고 한다.
  2. 오직 자상(自相)만을 요별하고,
  3. 오직 현재만을 요별하며,
  4. 오직 한 찰나만을 요별한다.
  5. 또 두 가지 업이 있다. 의식을 따라 구르며, 선(善) 염(染)에 따라 구르며, 일으킨 업[發業]에 따라 구른다.
  6. 또한 능히 애(愛)와 비애(非愛)의 과(果)를 취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작업[業 : 作業]이다.

(1.6) 5식(五識)과 근(根)·경(境)·작의(作意)[편집]

안근[眼 : 眼根]이 무너지지 않고, 색(色)이 앞에 나타나고[現在前], 능생(能生) 작의(作意)가 바로 일어나지 않으면 소생(所生) 안식(眼識)은 결코 생겨날 수 없다.[27]

반드시 안근이 무너지지 않고 색(色)이 앞에 나타나며[現在前] 능생(能生) 작의(作意)가 곧바로 다시 일어날[現起] 때에 소생[所生]의 안식(眼識)도 비로소 생겨날 수 있다.

안식(眼識)이 생기는 것과 같이, 그 밖의 식신(識身)도 위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1.7) 5식(五識)과 5심(五心)[편집]

안식(眼識)의 생겨나기 때문에 세 가지 심(心)을 가히 얻을 수 있으니, 그 차례대로 말하면 솔이심(率爾心)과 심구심(尋求心)과 결정심(決定心)이다. 처음 것은 안식(眼識)이며, 두 번째 것은 의식(意識)에 존재하며, 결정심(決定心) 뒤에 마침내 염(染) 정(淨)이 있고 이 이후에야 등류(等流)의 안식(眼識)이 있어서 선(善)과 불선(不善)이 구르게 된다.[28]

그래서 저것[眼識]이 자기의 분별력에 의지하지 않고 내지 이 의식[意 : 意識]도 나머지 경(境)에 나아가지 않는 이와 같은 때에 이르러야 안식[眼 : 眼識]과 의식의 두 식(識)은 선(善) 혹은 염(染)에 상속하여 구르는 것[轉]이다. 안식(眼識)이 생겨나는 것과 같이, 신식(身識)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1.8) 5식(五識)의 5상(五相)에 대한 비유[편집]

5식(五識)의 소의(所依)는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의 탈것과 같으며, 소연(所緣)은 하는 일과 같으며, 조반(助伴)은 동반자[同侶]와 같으며, 작업(作業)은 스스로의 공능(功能)과 같음을 관(觀)해야만 한다.[29]

또한 5식(五識)의 소의(所依)는 집에 머무는 자의 집과 같고, 소연(所緣)은 수용하는 대상과 같고, 조반(助伴)은 심부름꾼과 같고, 작업(作業)은 작용(作用)과 같은 차별이 있음을 관찰[觀]해야만 한다.

(2) 의지(意地)[편집]

무엇을 의지(意地)라고 하는가?[30]

여기에서도 5상(相)이 있음을 알아야만 하니, 즉 자성(自性)때문이요, 그것94)의 소의(所依)때문이요, 그것의 소연(所緣), 그것의 조반(助伴), 그리고 그것의 작업(作業)때문이다.

(2.1) 의지(意地)의 자성(自性)[편집]

무엇을 의(意)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31]

심(心) 의(意) 식(識)을 말한다.

(2.1.1) 심(心)[편집]

심(心)이란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소수의지성(所隨依止性)이며 소수의부의지성(所隨依附依止性)으로서 본체[體]는 능히 집수(執受)하는 이숙에 포함되는[異熟所攝]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32]

(2.1.2) 의(意)[편집]

의(意)란 항행의지성(恒行依止性)의 의(意)와 그리고 6식신(六識身)의 무간멸(無間滅)의 의(意)를 말한다.[32]

(2.1.3) 식(識)[편집]

식(識)이란 현전(現前)에서 소연(所緣)의 경계(境界)를 요별(了別)하는 것이다.[33]

(2.2) 의지(意地)의 소의(所依)[편집]

그것[意識]의 소의(所依)로는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고 종자의(種子依)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34]

즉, 의근[意;意根]은 의식(意識)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無間]의 과거식(過去識)을 말하며,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은 무시시래(無始時來)로 희론(戲論)을 즐겨 집착하여[樂著] 훈습(薰習)한 것이 원인[因]이 되어서 생기는 것[所生]으로서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이숙식(異熟識)을 말한다.

(2.3) 의지(意地)의 소연(所緣)[편집]

그것[意識]의 소연(所緣)이란 그 상응하는 것[所應]에 따른 일체법(一切法)이다.[35]

불공인 경우[不共者]의 소연(所緣)은 즉 수(受) 상(想) 행온(行蘊)과 무위(無爲)와 무견무대색(無見無對色)과 6내처(六內處)와 그리고 일체종자(一切種子)이다. [이를 차별(差別)이라고 한다.]

(2.4) 의지(意地)의 조반(助伴)[편집]

그것[意識]의 조반(助伴)이란[36]

  1. 작의(作意) 촉(觸) 수(受) 상(想) 사(思)와
  2. 욕(欲) 승해(勝解) 염(念) 삼마지(三摩地) 혜(慧)와
  3. 신(信) 참(慚) 괴(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 정진(精進) 경안(輕安) 불방일(不放逸) 사(捨) 불해(不害)와
  4. 탐(貪) 에(恚) 무명(無明) 만(慢) 견(見) 의(疑)와
  5. 분(忿) 한(恨) 복(覆) 뇌(惱) 질(嫉) 간(慳) 광(誑) 첨(諂) 교(憍)) 해(害) 무참(無慚) 무괴(無愧) 혼침(惛沈) 도거(掉擧)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사욕(邪欲) 사승해(邪勝解) 망념(忘念)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와
  6. 악작(惡作) 수면(睡眠) 심(尋) 사(伺)를 말한다.

이러한 등의 것들은 함께 있으면서[俱有] 상응(相應)하는 심소유법(心所有法)이며, 이를 조반(助伴)이라고 이름한다.

동일(同一)한 소연(所緣)이면서도 동일한 행상(行相)은 아니라서, 일시(一時)에 함께 있으면서도[俱有] 하나 하나 구른다. 각자의 종자로부터 생겨나면서도 서로 상호 상응하여 (능연[能緣]의) 행상(行相)이 있고 소연(所緣)이 있으며 소의(所依)가 있다.

(2.5) 의지(意地)의 작업(作業)[편집]

(2.5.1) 의식(意識)의 전5식(前五識)에 대한 작업(作業)[편집]

그것[意識]의 전5식(前五識)에 대한 작업(作業)이란[37]

  1. 즉 능히 자기의 경계[自境]의 소연(所緣)을 요별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을 첫 번째 업[初業]이라고 한다.
  2. 다시 능히 자상(自相) 공상(共相)을 요별하고,
  3. 능히 과거[去] 미래[來] 현재세[現世]를 요별하고,
  4. 다시 찰나에 요별하고 혹은 상속하여 요별한다.
  5. 다시 구르고[轉] 따라서 구르면서[隨轉] 청정하고[淨]과 청정하지 않는[不淨] 일체법(一切法)의 업(業)을 일으킨다.
  6. 다시 능히 탐애[愛]와 비탐애[非愛]의 과보[果]를 취하고,
  7. 다시 능히 다른 식신(識身)을 이끌며
  8. 또한 능히 인(因)이 되어 등류(等流)의 식신(識身)을 일으킨다.

(2.5.2) 의식(意識)의 전5식(前五識)과 함께하지 않는 불공업(不共業)[편집]

또한 제 의식(意識)은 다른 식신(識身)에 비해서 뛰어난 작업(作業)이 있다. 즉 소연(所緣)을 분별하고, 소연(所緣)을 심려(審慮)하며, 취(醉)하거나, 미치거나[狂], 꿈꾸거나[夢], 깨어나거나[覺], 기절하거나[悶], 성성하거나[醒], 혹은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을 능히 일으키거나, 능히 이욕(離欲)하거나, 이욕(離欲)에서 물러나거나, 선근(善根)을 끊거나, 선근(善根)을 잇거나, 죽거나[死] 태어나는[生] 등을 말한다.[38]

(2.5.2.1) 소연분별(所緣分別)[편집]

무엇을 소연을 분별하는 것이라 하는가?[39]

일곱 가지의 분별 즉 유상분별(有相分別) 무상분별(無相分別) 임운분별(任運分別) 심구분별(尋求分別) 사찰분별(伺察分別) 염오분별(染汚分別) 불염오분별(不染汚分別)에 의한다.

  1. 유상분별(有相分別)이란 먼저 받아들인 대상[先所受義]에 대하여 제 근(根)을 성취하고 명언(名言)을 잘 아는 자(者)가 일으키는 분별을 말한다.
  2. 무상분별(無相分別)이란 먼저 끌어당긴 것[先所引]에 따르는 것이며, 명언(名言)을 잘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 등이 지니고 있는 분별을 말한다.
  3. 임운분별(任運分別)이란 현전(現前)의 경계에 대하여 경계의 세력에 따라서 자연스럽게[任運] 구르는 모든 분별을 말한다.
  4. 심구분별(尋求分別)이란 제 법을 관찰(觀察) 심구(尋求)해서 일어나게 되는 분별을 말한다.
  5. 사찰분별(伺察分別)이란 이미 심구(尋求)하고 이미 관찰(觀察)한 것을 사찰(伺察)하고 안립(安立)해서 일어나게 되는 분별을 말한다.
  6. 염오분별(染汚分別)이란 과거를 되돌아보고 연연해하는 것과 함께 작용하고[俱行] 미래를 즐기는 것과 함께 작용하며 현재를 집착하는 것과 함께 작용하는 모든 분별과, 욕분별(欲分別)이나 에분별(恚分別) 혹은 해분별(害分別)의 하나 하나의 번뇌나 수번뇌(隨煩惱)에 따라 상응해서 일어나게 되는 분별을 말한다.
  7. 불염오분별(不染汚分別)이란 선(善)과 무기(無記)이며, 출리분별(出離分別) 무에분별(無恚分別) 불해분별(不害分別)의 하나 하나의 신(信) 등의 선법(善法)과 상응하거나 혹은 위의로(威儀路) 공교처(工巧處) 및 모든 변화(變化)가 소유하고 있는 분별을 말한다.

위와 같은 종류를 소연(所緣)을 분별(分別)하는 것이라고 한다.

(2.5.2.2) 소연심려(所緣審慮)[편집]

무엇을 소연(所緣)을 심려(心慮)하는 것이라고 하는가?[40]

여리(如理)의 소인(所引) 비여리(非如理)의 소인(所引) 비여리비불여리(非如理非不如理)의 소인(所引)을 말한다.

  1. 여리(如理)의 소인(所引)이란
    1. 진실(眞實)이 아닌 유(有)를 증익(增益)하는 4가지의 전도(顚倒), 즉 무상(無常)을 항상함[常]이라고 전도하고, 괴로움[苦]을 즐거움[樂]이라고 전도하며, 깨끗하지 않은 것[不淨]을 깨끗함[淨]이라고 전도하고, 무아(無我)를 아(我)라고 전도하지 않는 것이다.
    2. 또한 모든 사견(邪見) 즉 '베풀 필요 없다[無施與]' 등의 모든 사견(邪見)의 행(行)과 같이 여러 진실유(眞實有)를 손감(損減)하지 않는 것이다.
    3. 법주지(法住智)가 여실(如實)하게 제 소지사(所知事)를 요지(了知)한다거나
    4. 매우 청정한[善淸淨] 출세간의 지혜[出世間智]가 여실하게 소지(所知)의 제 법(法)을 깨달는[覺知] 이와 같은 것들을 여리(如理)의 소인(所引)이라고 한다.
  2. 위와 서로 다른 것을 비여리(非如理)의 소인(所引)인줄 알아야 한다.
  3. 비여리비불여리(非如理非不如理)의 소인(所引)이란 무기(無記)의 지혜[慧]를 의지하여 제 법(法)을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것[審察]을 말한다.

위와 같은 것을 소연(所緣)을 심려(審慮)하는 것이라고 한다.

(2.5.2.3) 취(醉)[편집]

무엇을 취함[醉]이라고 하는가?[41]

의지(依止) 성품[性]이 약[羸劣]하기 때문에, 혹은 익숙하지 않은데도 (술을) 마셨기 때문에, 혹은 너무 자주 마셨기 때문에, 혹은 지나친 양을 마셨기 때문에, 곧 취해서 어지러운 것[醉亂]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2.5.2.4) 광(狂)[편집]

무엇을 미침[狂]이라고 하는가?[42]

먼저 지었던 업[先業]에 이끌렸기 때문에, 혹은 여러 가지 계[諸界]의 착란(錯亂) 때문에, 혹은 놀라고 두려워서 의지[志]를 잃었기 때문에, 혹은 말마(末摩)를 맞았기 때문에, 혹은 귀신과 도깨비[鬼魅]에 홀려서 전광(癲狂)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2.5.2.5) 몽(夢)[편집]

무엇을 꿈을 꾸는 것[夢]이라고 하는가?[43]

의지(依止)의 성품[性]이 약[羸劣]하기 때문에, 혹은 피로[疲倦]나 과실(過失) 때문에, 혹은 지나치게 먹는 것에 빠졌기[沈重] 때문에, 혹은 암상(闇相)을 작의(作意)하고 사유하였기 때문에, 혹은 일체의 사업(事業)을 휴식(休息)하였기 때문에, 혹은 수면(睡眠)을 자주 익혔기[串習] 때문에, 부채질[搖扇]이나 명주(明呪)나 약이나 신통과 같은 다른 것에 이끌렸기 때문에, 혼몽(惛夢)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2.5.2.6) 각(覺)[편집]

무엇을 깨어남[覺]이라고 하는가?[44]

잠을 푹 잔 사람[睡增者]이 피극(疲極)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할 일이 있는 사람[所作者]이 미리 잠 잘 시간을 잡았기 때문에, 혹은 다른 것에 이끌려서 꿈으로부터 깨어나는 것을 말한다.

(2.5.2.7) 민(悶)[편집]

무엇을 기절[悶]이라고 하는가?[45]

바람과 열로 어지럽기 때문에, 혹은 매를 맞았기 때문에, 너무 지나치게 설사[痢]를 계속하거나 출혈(出血)과 같이 쏟았기 때문에, 혹은 극히 과로했기 때문에, 기절[悶絶]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2.5.2.8) 성(醒)[편집]

무엇을 성성[醒]이라고 하는가?[46]

기절하였다가 다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2.5.2.9) 신업(身業)과 어업(語業)[편집]

무엇을 신업(身業) 어업(語業)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하는가?[47]

즉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을 일으키는 지(智)가 먼저 작용[前行]하기 때문에, 다음으로 욕(欲)이 생기기 때문에, 다음으로 공용(功用)이 일어나기 때문에, 다음으로 공용에 수순(隨順)함을 우선으로 하여 신(身)과 어(語)의 업풍(業風)이 구르기 때문에, 이것으로부터 신업(身業) 어업(語業)을 일으키는 것이다.

(2.5.2.10) 이욕(離欲)[편집]

무엇을 이욕(離欲)이라고 하는가?[48]

즉 이욕(離欲)에 수순하는 감각기관[根]을 성취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르침[敎誨]을 받아서 따르기[隨順] 때문에, 그것의 장애를 원리(遠離)하기 때문에, 방편(方便)을 바르게 닦아서[正修] 전도 없이[無顚] 사유하기 때문에, 비로소 이욕(離欲)할 수 있는 것이다.

(2.5.2.11) 이욕퇴(離欲退)[편집]

무엇을 이욕(離欲)에서 물러나는 것이라고 하는가?[49]

즉 연근기[軟根]의 성품[性]이기 때문에, 새로 선품(善品)을 닦은 사람이 그것의 형상상(形狀相)을 사유하기 때문에, 순퇴법(順退法)을 받아 행하기[受行] 때문에, 번뇌에 장애 받기 때문에, 나쁜 벗[惡友]에 포섭되기 때문에, 이욕(離欲)으로부터 물러나는 것이다.

(2.5.2.12) 단선근(斷善根)[편집]

무엇을 선근(善根)을 끊는 것[斷]이라고 하는가?[50]

즉 이근자(利根者)가 상품(上品)의 여러 악한 의요[諸惡意樂]들이 현행하는 법을 성취하기 때문에, 그 나쁜 벗[惡友]을 수순하게 되기 때문에, 그 사견(邪見)의 전(纏)이 극히 매우 원만하게 되어 구경(究竟)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 일체의 악(惡)이 현행하는 가운데에 무외(無畏)를 얻기 때문에, 애민(哀愍)이 없기 때문에, 능히 선근(善根)을 끊는 것이다.

이 가운데 종자도 선근(善根)이라고 하고 무탐(無貪) 무진(無瞋) 등도 또한 선근(善根)이라고 하지만, 상속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相違] 때문에, 단지 현행(現行)의 선근(善根)만을 안립(安立)하여 선근을 끊는다[斷]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히 그 종자를 뽑아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5.2.13) 속선근(續善根)[편집]

무엇을 선근(善根)을 잇는 것[續]이라고 하는가?[51]

즉 이근(利根)의 성품[性]이기 때문에, 친한 벗[親朋友]을 보고서 복업(福業)을 닦기 때문에, 착한 장부(丈夫)에 나아가 정법(正法)을 듣기 때문에, 유예(猶豫)가 생겨도 증(證)을 결정하기 때문에, 도로 선근(善根)을 잇는 것[續]이다.

(2.5.2.14) 생사(生死) →[편집]

무엇을 죽는다[死]고 하는가?[52]

수명[壽量]이 다했기 때문에 곧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말하니,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즉 목숨이 다하고[壽盡], 복이 다하고[福盡], 불평등(不平等)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선심(善心) 불선심(不善心) 무기심(無記心)의 시사(時死)와 비시사(非時死)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 태어남[生]이라고 하는가?[53]

아애(我愛)가 곧바로[無間] 이미 생겼기 때문에, 무시이래[無始]로 희론(戲論)을 즐겨 집착한[樂著] 인(因)을 이미 훈습(薰習)하였기 때문에, 청정함[淨] 청정하지 않음[不淨]의 업인(業因)을 훈습하였기 때문에, 그 소의(所依)의 체(體)는 두 가지 인(因)의 증상력(增上力)에 의하기 때문에 자기의 종자[自種子]로부터 즉 이곳 중유(中有)에 이숙(異熟)이 곧바로[無間] 태어나게 된다.

(3)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편집]

(4) 무심유사지(無尋唯伺地)[편집]

(5) 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편집]

(6) 삼마희다지(三摩呬多地)[편집]

(7) 비삼마히다지(非三摩呬多地)[편집]

(8) 유심지(有心地)[편집]

(9) 무심지(無心地)[편집]

(10) 문소성지(聞所成地)[편집]

(11) 사소성지(思所成地)[편집]

(12) 수소성지(修所成地)[편집]

(13) 성문지(聲聞地)[편집]

(14) 독각지(獨覺地)[편집]

(15) 보살지(菩薩地)[편집]

(16) 유여의지(有餘依地)[편집]

(17) 무여의지(無餘依地)[편집]

주석[편집]

  1.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p. 1-3 / 829. 유가사지(瑜伽師地)
    "무엇을1) 유가사지(瑜伽師地)2)라고 하는가?
    17지(地)를 말한다.
    무엇 등을 17이라고 하는가?
    올타남(嗢拕南)3)에서 이르길
      오식상응(五識相應)4)과 의(意)와
      유심유사(有尋有伺) 등의 세 가지5)
      삼마지(三摩地)6)와 함께 함[俱]7)과 그렇지 않음[非]8)
      유심지(有心地)와 무심지(無心地)이며
      五識相應意  有尋伺等三
      三摩地俱非  有心無心地
      문(聞)과 사(思)와 수(修)로 세워진 것9)
      이와 같이 삼승(三乘)10)
      유여의지(有餘依地)와 무여의지(無餘依地)를 갖춘 것이니
      이것을 17지(地)라고 하네.
      聞思修所立  如是具三乘
      有依及無依  是名十七地
    첫째는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 둘째는 의지(意地), 셋째는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 넷째는 무심유사지(無尋唯伺地), 다섯째는 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 여섯째는 삼마희다지(三摩 多地), 일곱째는 비삼마히다지(非三摩 多地), 여덟째는 유심지(有心地), 아홉째는 무심지(無心地), 열째는 문소성지(聞所成地), 열 한째는 사소성지(思所成地), 열 둘째는 수소성지(修所成地), 열 셋째는 성문지(聲聞地), 열 넷째는 독각지(獨覺地), 열 다섯째는 보살지(菩薩地), 열 여섯째는 유여의지(有餘依地), 열 일곱째는 무여의지(無餘依地)이다. 이와 같이 열 일곱 가지를 간략히 설하여 유가사지(瑜伽師地)라고 한다.
    1) 이하는 17지(地)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설하는 부분이다.
    2) 유가(瑜伽)의 원어는 산스크리트의 남성 명사로서 Yoga이며, 여성명사로 표현하면 유기(瑜祇 : Yog )라고 한다. 한역으로 상응(相應)이라고 번역한다. 『유가사지론석(瑜伽師地論釋)』에서는 "일체승(一切乘)의 경행과(境行果) 등의 일체 모든 제 온(蘊)을 모두 유가라고 이름한다. 일체가 모두 방편선교(方便善巧)와 상응한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유가사지론석(瑜伽師地論釋)』에서는 네 가지의 유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경유가(境瑜伽) - 일체의 경(境)은 무전도(無顚倒)의 성(性), 불상위(不相違)의 성(性), 능수순(能隨順)의 성(性), 구경취(究竟趣)의 성(性)으로서 올바르게 교리의 행과(行果)와 상응하기 때문에 경유가(境瑜伽)라고 한다. ② 행유가(行瑜伽) - 일체의 행(行)은 서로 상응하고, 정리(正理)로 지칭되고, 정교(正敎)에 수순하고, 정과(正果)로 나아가기 때문에 행유가(行瑜伽)라고 한다. ③ 과유가(果瑜伽) - 일체의 과(果)는 서로 수순(隨順)하고, 정리(正理)에 화합하고, 정교(正敎)에 수순하고, 정인(正因)으로 지칭되기 때문에 과유가(果瑜伽)라고 한다. ④ 교유가(敎瑜伽) - 일체삼승(一切三乘)의 성교(聖敎)는 정리(正理)로 지칭되고, 정행(正行)에 수순하고, 정과(正果)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교유가(敎瑜伽)라고 한다. 사(師)란 산스크리트어 c rya(;阿遮羅)의 한역으로 아차리(阿闍梨) 아차리아(阿遮梨耶) 등으로 음사되며, 궤범사(軌範師) 정행(正行) 교수(敎授) 등으로 의역된다. 유가사(瑜伽師)의 명칭에 대하여 『유가사지론석(瑜伽師地論釋)』에서는 두 가지로 풀이되는데,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3승(乘)의 행자(行者)가 문(聞) 사(思) 등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유가(瑜伽)를 익히고 행하며, 분(分)에 따라서 만족하고 전전(展轉)하여 모든 유정을 조화(調化)하기 때문에 유가사(瑜伽師)라고 한다. ② 모든 여래(如來)는 유가(瑜伽)를 완벽하게 증득하고,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서 이 유가(瑜伽)를 지니게 하며, 일체의 성제자(聖弟子) 등을 조화(調化)롭게 하여 그로 하여금 차제(次第)로 정행(正行)을 닦게 하기 때문에 유가사(瑜伽師)라고 한다. 지(地)란 산스크리트어 Bh mi의 의역(意譯)으로서 생성(生成)하여 머무른다[住持]는 뜻이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서는 처음 5식신지(識身地)부터 마지막의 무여의지(無餘依地)에 이르기까지 범(梵)과 성(聖)의 인과(因果)를 모두 갖추고, 모두 함께 능히 생성하고 머무름[住持]이 지(地)와 비슷한 종류이므로 지(地)의 명칭을 따서 붙인 것이다.
    3) 산스크리트어 Ud na의 한역(漢譯) 음사로서 집시(集施) 또는 자설(自說)이라고도 번역된다. 축약된 말로서 많은 법(法)의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게송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4) 5식(識)이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식(身識)을 말한다. 식(識)이란 체취(體聚)의 뜻으로서 5식 각각의 자체(自體)를 의미하며, 신(身)이란 5식을 한데 묶어서 하나[一聚]로 하기 때문에 신(身)이라고 하는 것이며, 상응이란 섭속(攝屬)의 뜻으로서 5식신(識身)에 포함되는 법을 설하기 때문에 5식신상응(識身相應)이라고 하는 것이며, 지(地)란 경계(境界)의 뜻으로서 5식신은 유가관행자(瑜伽觀行者)의 소행(所行)의 경계가 되므로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라고 하는 것이다.
    5)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 무심유사지(無尋唯伺地) 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의 세 가지 지(地)를 의미한다.
    6) 범어(梵語) Sam dhi의 음사어[音譯]로서 보통 등지(等持)라고 의역(意譯)된다. 이는 정(定)의 다른 이름으로서, 정(定)을 닦으면 마음이 한 경계에 머물러서 산란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평등하게 마음을 유지하여 경계에 나아가기 때문에 한역(漢譯)에서는 등지(等持)라고 번역한 것이다.
    7) 삼마희다지(三摩 多地)를 의미한다.
    8) 비삼마희다지(非三摩 多地)를 의미한다.
    9) 문소성지(聞所成地) 사소성지(思所成地) 수소성지(修所成地)를 의미한다.
    10) 성문지(聲聞地) 독각지(獨覺地) 보살지(菩薩地)를 의미한다."
  2.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3 / 829. 5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
    "무엇을11) 5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라고 하는가?
    5식신(識身)의 자성(自性) 그것12)의 소의(所依) 그것의 소연(所緣) 그것의 조반(助伴)13) 그것의 작업(作業)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을 총괄하여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라고 한다.
    11) 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에 대하여 종합적 해설을 하는 부분이다.
    12) 5식신(識身)을 의미한다.
    13) 범어 Sa yukta의 의역(意譯)으로서 도움을 주거나 부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3.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p. 3-4 / 829. 5식신(五識身)
    "무엇14) 등을 5식신(識身)이라고 하는가?
    소위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이다.
    14) 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의 하나 하나를 나누어 해설한다. 그 첫 번째로 안식(眼識)의 다섯 가지 상(相), 즉 자성(自性) 소의(所依) 소연(所緣) 조반(助伴) 작업(作業)에 대하여 설명한다."
  4.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4 / 829. 안식(眼識)의 자성(自性)
    "무엇을15) 안식(眼識)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
    안[眼 : 眼根]을 의지하여 색(色)을 요별(了別)16)하는 것을 말한다.
    15) 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에 대한 별석(別釋)이다.
    16) 식(識)이 대상의 경계를 요지판별(了知辦別)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심왕(心王)의 인식작용을 의미한다."
  5.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p. 4-5 / 829. 안식(眼識)의 소의(所依)
    "그것17)의 소의(所依)란 구유의(俱有依)18)는 안근[眼 : 眼根]을 말하고, 등무간의(等無間依)19)는 의근[意 : 意根]을 말하고, 종자의(種子依)20)는 이것21)의 일체종자(一切種子)를 집수(執受)하는 소의(所依)로서 이숙(異熟)에 포함되는[所攝]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을 간략히 두 가지 소의(所依)로 설명하면 색(色)22)과 비색(非色)23)이다. 안근[眼;眼根]은 색(色)이며 나머지24)는 비색(非色)이다. 안[眼 : 眼根]은 4대종(大種)25)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안식이 의지하게 되는[眼識所依] 정색(淨色)26)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27)이다. 의근[意;意根]는 안식(眼識)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無間]28)의 과거식(過去識)을 말하며,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은 무시시래(無始時來)로 희론(戲論)29)을 즐겨 집착하여[樂著] 훈습(薰習)한 것이 원인[因]이 되어서 생기는 것[所生]으로서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이숙식(異熟識)을 말한다.
    17) 안식(眼識)을 가리킨다.
    18) 소의(所依)에는 세 가지, 즉 구유의(俱有依) 등무간의(等無間依) 종자의(種子依)가 있다. 이 가운데에 구유의(俱有依)란 식(識)과 동시(同時)와 구시(俱時)에 있는 근(根)을 의미한다. 안식(眼識)이 일어나는 데에는 안근(眼根)인 생리적 기관을 소의(所依)로 하고 소의(所依)의 안근은 능의(能依)의 안식(眼識)과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구유의(俱有依)라고 하는 것이다.
    19) 첫 번째의 안식(眼識)이 현재 있을 때에는 두 번째의 안식은 현재에 생겨날 수가 없다. 현재 있는 첫 번째의 안식이 사라져야만 두 번째의 안식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첫 번째의 안식이 과거로 물러날 때 자신이 점하고 있는 현재의 위치를 두 번째의 안식에게 물려주고 이끌어 주는 작용을 등무간연(等無間緣)라고 하고, 의근(意根)이라고 이름한다. 그래서 소의(所依)의 등무간연인 첫 번째의 안식의 심 심소법(心心所法)과 두 번째의 심 심소법(心心所法)은 체(體)와 용(用)의 관계와 같아서 제 3의 심 심소(心心所)가 개입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간격이 없기 때문에 등무간(等無間)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20) 종자(種子)란 제8식(第八識)에 섭장(攝藏)되어 있으며, 친히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의 현행(現行)을 생기게 하는 공능차별(功能差別)을 의미한다. 안식(眼識)이 생길 때에는 안식의 종자에 의지하게 되므로 종자의(種子依)라고 하는 것이다.
    21) 안식(眼識)을 가리킨다.
    22) 변애(變礙)의 뜻으로 일반적으로 물질(物質)을 의미하나, 불전(佛典)에서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의 5근(根)과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의 5경(境) 및 무표색(無表色)을 합쳐서 색(色)이라고 통칭한다.
    23) 색(色)과 반대되는 것으로 변애(變礙)의 작용이 없는 심(心) 심소법(心所法)을 비색(非色)이라고 한다.
    24) 등무간의(等無間依)와 종자의(種子依)를 가리킨다.
    25) 일체의 물질(物質)을 능히 만들기 때문에 능조(能造)의 4대종(大種)이라고도 한다. 견성(堅性)을 능히 지니는 지대(地大)와 습성(濕性)을 능히 지니는 수대(水大)와 난성(煖性)을 능히 지니는 화대(火大)와 동성(動性)을 능히 장양(長養)하는 풍대(風大)를 4대(四大)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4대(大)는 물질이 생겨나는 것을 도와서 능히 만드는 인(因)이 되기 때문에 종(種)이라고 하며, 모든 물질을 두루 만들기 때문에 대(大)라고 한다.
    26) 정(淨)이란 정명(淨明)의 뜻이며, 안근(眼根)은 정명(淨明)과 같은 주보(珠寶)의 빛과 같다. 또한 5근(根)은 5경(境)을 비추어 주는 영묘(靈妙)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정색(淨色)이라고 하는 것이다.
    27) 견(見)은 나타나 보이는 시현(示現)의 뜻이며, 유견(有見)은 방소(方所)가 있어서 여기에 있다거나 저기에 있는 따위의 시현되는 대상의 법을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무견(無見)은 이와 반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對)는 장애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유대(有對)란 예를 들어 손과 손이 마주치거나 물건과 물건이 마주치면 서로 장애가 되어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와 같이 장애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무대(無對)는 이와 반대되는 것이다. 『본론(本論)』에서는 안근(眼根) 등의 오근(五根)은 육안(肉眼)이 미치지 않고 방소(方所)를 시현(示現)하지 않기 때문에, 무견(無見)라고 하고, 장애를 대하기 때문에 유대(有對)라고 한다.
    28) 안식(眼識)과 계속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29) 제7식(第七識)의 유루분별심(有漏分別心)과 언어(言語)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분별심과 언어의 능훈습력(能熏習力)으로 인하여 제8식(第八識)에서 종자를 훈습(薰習)하는데, 이를 명언종자(名言種子)라고 하며, 이 종자의 잠재되어 있는 공능(功能)으로 인하여 뒤에 다시 제 온(蘊)이 생겨나올 수 있는 원인이 된다."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614, T.1579제2권. 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09startNum4 4-5 / 829]. 안식(眼識)의 소의(所依)"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6.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p. 5-6 / 829. 안식(眼識)의 소연(所緣)
    "그것30)의 소연(所緣)이란 색(色)으로서 유견유대(有見有對)31)를 말한다. 여기32)에 다시 여러 가지를 간략히 설명하면 현색(顯色)과 형색(形色)과 표색(表色)의 세 가지가 있다.
    31) 유견유대색(有見有對色)을 말하며, 12처(處) 18계(界)의 색처(色處)를 말한다. 이 때 유견유대(有見有對)라고 하는 것은 가히 볼 수 있는 것[可見]으로서 침입할 수 없는 성품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32) 유견유대(有見有對)의 색(色)을 말한다."
  7.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6 / 829. 현색(顯色)·형색(形色)·표색(表色)
    "현색(顯色)이란 푸르고[靑] 누렇고[黃] 붉고[赤] 희고[白] 빛[光] 그림자[影] 밝음[明] 어두움[闇] 구름[雲] 연기[煙] 티끌[塵] 안개[霧] 공일현색(空一顯色)33)을 말한다. 형색이란 길고[長] 짧고[短] 모나고[方] 둥글고[圓] 굵고[麤] 가늘고[細] 곧고[正] 곧지 않고[不正] 높고[高] 낮은[下] 색(色)을 말한다. 표색(表色)이란 취하고[取] 버리고[捨] 굽히고[屈] 펴고[伸] 가고[行] 머무르고[住] 앉고[坐] 눕는[臥] 이와 같은 등의 색(色)을 말한다.
    또한 현색이란 색이 완전히 드러났을 때에[顯了], 안식의 소행(所行)34)을 말한다. 형색이란 색이 모아졌을 때에[積集], 길고 짧은 것 등으로 갈라지는[分別] 상(相)을 말한다. 표색이란 이 모아진[積集] 색이 생멸상속(生滅相續)하고, 달라진[變異] 인(因)에 의하여 먼저 생긴 곳[先生處]에서 거듭 생기지 않고, 다른 곳[異處]에 전전하며 생기는 것인데, 무간(無間)35) 혹은 유간(有間)36) 혹은 가깝게 또는 멀게 차별이 생기는 것이며, 혹은 이 곳37)에서 달라져서[變異]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를 표색이라고 한다.
    또한 현색(顯色)이란 빛과 밝음 등의 차별(差別)을 말하고, 형색(形色)이란 길고 짧은 것 등으로 모아지는 것[積集]의 차별을 말하고, 표색(表色)이란 업의 작용[業用]38)을 의지로 하여 구르고 움직이는 것[轉動]의 차별을 말한다.
    이와 같은 모든 현색 형색 표색은 바로 안근[眼 : 眼根]의 소행이며 안근의 경계이며, 안식(眼識)의 소행(所行)이며 안식의 경계(境界)이며 안식의 소연(所緣)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고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이를 차별이라고 한다.
    33) 맑은 하늘이 드러날 때에 하늘의 허공에 나타나는 유리색(瑠璃色)을 의미한다.
    34) 안식(眼識)의 소행(所行)이란 심식(心識)이 여러 가지를 살피면서 유력(遊歷)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35) 무간(無間)이란 하나의 업(業)이 상속(相續)하여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36) 유간(有間)이란 사이에 끊어짐이 있는 것으로 곧 중도(中途)에 끊어졌다가 다음 번에는 다시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37) 이곳이란 먼저 생긴 곳을 의미한다.
    38) 사업(思業)을 의미한다."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614, T.1579제2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09startNum6 6 / 829]. 현색(顯色)·형색(形色)·표색(表色)"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8.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7 / 829. 호현색(好顯色)·악현색(惡顯色)·구리현색(俱異顯色)
    "또한 이 색에는 다시 호현색(好顯色)39)과 악현색(惡顯色)40)과 구리현색(俱異顯色)41)의 세 가지가 있다. 색과 흡사하게 현현(顯現)42)한다.
    39) 겉으로 보기에 좋게 드러난 색을 말한다.
    40) 겉으로 보기에 나쁘게 드러난 색을 말한다.
    41) 호현색(好顯色)도 악현색(惡顯色)도 아닌 현색(顯色)을 의미한다.
    42) 일체(一切)의 유위법(有爲法)은 중연소생(中椽所生)의 의타기성(依他起性)이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색(色)과 흡사하게 현현한다고 한다."
  9.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7 / 829. 안식(眼識)의 조반(助伴)
    "그것[眼識]의 조반(助伴)이란 그것과 함께 있으면서[俱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의 심소유법(心所有法)43), 즉 작의(作意)44) 촉(觸)45) 수(受)46) 상(想)47) 사(思)48)와 그 밖에 안식과 함께 있으면서[具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 심소유법들[心所有法]을 말한다. 또한 이 제 법(法)은 동일한 소연(所緣)이지만 동일한 행상(行相)이 아니며, 함께 있고[俱有] 상응하면서도 하나 하나49) 전전하며, 또한 그 일체는 각각 자기[自]의 종자(種子)로부터 생겨난다.
    43) 심(心), 즉 심왕(心王)의 부수적인 마음의 작용을 의미하며, 촉(觸) 작의(作意) 수(受)상(想) 사(思) 등은 심왕 소유의 권속(眷屬)이므로 심소유(心所有)라고 하며 간략하게 심소(心所)라고도 한다.
    44) 5변행심소(遍行心所) 가운데에 하나로서 심(心)을 경각시켜서 대경(對境)에 나아가도록 하는 작용을 한다.
    45) 5변행심소(遍行心所) 가운데에 하나로서 심(心) 심소(心所) 및 근(根)과 경(境)의 세 가지를 화합시켜서 적의(適意) 부적의(不適意) 적의도 부적의도 아닌 경[非適意非不適意境]을 취하는 작용을 한다.
    46) 5변행심소(遍行心所) 가운데에 하나로 거스르고[違], 수순하며[順], 거스르지도 않고 수순하지도 않는 중간의 경계를 영납(領納)하여 고(苦) 낙(樂) 사(捨)를 아는 작용을 한다.
    47) 5변행심소(五遍行心所) 가운데에 하나로서 경(境)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상(像)을 취하여 받아들이고 언어로 표현하여 대경(對境)을 명명(命名)하는 작용을 한다.
    48) 5변행심소(遍行心所) 가운데에 하나로서 신(身) 어(語) 의(意)의 3업(業)의 작용을 하며, 업의 체(體)에 해당한다. 심리학(心理學)에서 말하는 의지(意志)에 상당(相當)한다.
    49) 심소유법(心所有法)의 하나 하나를 말한다."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614, T.1579제2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09startNum7 7 / 829]. 안식(眼識)의 조반(助伴)"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10.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p. 7-8 / 829. 안식(眼識)의 작업(作業)
    "그것[眼識]의 작업(作業)이란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오직 자신의 경계[自境]의 소연을 요별(了別)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첫 번째 업[初業]이라고 한다. 오직 자상(自相)만을 요별하고50), 오직 현재만을 요별하며51), 오직 한 찰나만을 요별한다52). 또 두 가지 업이 있다. 의식을 따라 구르며, 선(善) 염(染)53)에 따라 구르며, 일으킨 업[發業]에 따라 구른다54). 또한 능히 애(愛)와 비애(非愛)의 과(果)를 취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작업[業 : 作業]이다.
    50) 여섯 가지 안식(眼識)의 작업(作業) 가운데에 두 번째의 작업을 말하는 내용이다.
    51) 여섯 가지 안식의 작업 가운데에 세 번째의 작업을 말하는 내용이다.
    52) 여섯 가지 안식의 작업 가운데에 네 번째의 작업을 말하는 내용이다.
    53) 선(善) 악(惡) 무기(無記)의 3성(性) 가운데에 선(善)과 악(惡)을 말한다.
    54) 여섯 가지 안식의 작업 가운데에 다섯 번째의 작업을 말하는 내용이다."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614, T.1579제2권. 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09startNum7 7-8 / 829]. 안식(眼識)의 작업(作業)"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11.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8 / 829. 이식(耳識)의 자성(自性)
    "무엇을55) 이식(耳識)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
    이근[耳 : 耳根]에 의지하여 성(聲)을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55) 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의 하나 하나를 나누어 해설하는 것이다. 그 두 번째로 이식(耳識)의 다섯 가지 상(相), 즉 자성(自性) 소의(所依) 소연(所緣) 조반(助伴) 작업(作業)에 대하여 설명한다."
  12.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8 / 829. 이식(耳識)의 소의(所依)
    "그것[耳識]의 소의는 구유의(俱有依)는 이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이다.
    이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이식이 의지하게 되는[耳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란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13.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p. 8-9 / 829. 이식(耳識)의 소연(所緣)
    "그것[耳識]의 소연(所緣)은 성(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56)를 말한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소라고둥 소리 크고 작은 북 소리 춤 소리 노랫소리 여러 가지 음악 소리 울부짖는 소리[俳戲叫聲] 여자 소리 남자 소리 바람이 스치는 숲의 소리 명료한 소리 명료하지 않은 소리 뜻이 있는 소리 뜻이 없는 소리 상중하(上中下)의 소리 강하(江河) 등의 소리 투쟁하면서 떠드는 소리 수지(受持)하여 연설하는 소리 논의결택(論議決擇)하는 소리 등 이와 같은 종류의 많은 소리가 있다. 이를57) 세 가지로 간략히 하면, 즉 집수대종(執受大種)에 의한 소리58) 불집수대종(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59) 집수불집수대종(執受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60)이다. 처음 것61)은 오직 안[內]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며, 다음 것62)은 밖[外]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며, 마지막 것63)은 안팎[內外]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다.
    여기에도 가의(可意)의 소리 불가의(不可意)의 소리 구상위(俱相違)의 소리64)의 세 가지가 있다. 또한 소리[聲]에는 즉, 울음 소리 말 울부짖음 드러내는 말 등의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는 이근의 소행(所行)이며 이근의 경계이며, 이식(耳識)의 소연(所緣)이며 이식의 경계이며 이식의 소연이며, 의식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56) 무견유대성(無見有對聲)을 의미한다.
    57)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소리들을 말한다.
    58) 집수(執受)는 신근(身根)의 각수(覺受)를 생기게 함을 의미하므로, 유정(有情)의 육체로부터 생겨나는 언어 박수 등의 소리를 집수대종(執受大種)을 인(因)으로 하는 소리라고 한다.
    59) 불집수(不執受)는 각수(覺受)가 없는 것을 의미하므로 무감각의 4대종(大種)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자연의 여러 가지 소리를 불집수대종(不執受大種)을 인(因)으로 하는 소리라고 한다.
    60) 손으로 북을 쳐서 나는 소리와 같이 유정물(有情物)과 무정물(無情物)이 만나서 소리를 집수불집수대종(執受不執受大種)을 인(因)으로 하는 소리라고 한다.
    61) 집수대종(執受大種)에 의한 소리를 말한다.
    62) 불집수대종(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를 말한다.
    63) 집수불집수대종(執受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를 말한다.
    64) 구상위(俱相違)란 듣기 좋은 가의(可意)의 소리도 아니고, 듣기 나쁜 불가의(不可意)도 아닌 불고불락(不苦不樂)의 무기(無記)의 소리를 의미한다."
  14.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9 / 829. 이식(耳識)의 조반(助伴)
    "조반(助伴) 및 업은 안식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15.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9 / 829. 비식(鼻識)의 자성(自性)
    "무엇을65) 비식(鼻識)의 자성이라 하는가?
    비근[鼻 : 鼻根]에 의지하여 향(香)을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65) 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의 하나 하나를 나누어 해설하는 가운데에, 그 세 번째로 비식(鼻識)의 다섯 가지 상(相), 즉 자성(自性) 소의(所依) 소연(所緣) 조반(助伴) 작업(作業)에 대하여 설명한다."
  16.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9 / 829. 비식(鼻識)의 소의(所依)
    "그것[鼻識]의 소의(所依)는 구유의(俱有依)는 비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을 말한다. 비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 진 것[四大種所造]이며, 비식이 의지하게 되는[鼻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는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17.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p. 9-10 / 829. 비식(鼻識)의 소연(所緣)
    "그것[鼻識]의 소연이란 향(香)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66)를 말한다. 여기에도 즉 호향(好香) 악향(惡香) 평등향(平等香)67)의 여러 가지가 있으며, 냄새맡아서 알게 되는 뿌리 줄기 꽃 잎사귀 과실의 향, 이런 등등의 많은 종류의 여러 가지 향(香)이 있다.
    또한 냄새[香]란 이른바 코로 맡는 것[鼻所聞]과 코로 취하는 것[鼻所取]과 코로 냄새맡는 것[鼻所嗅] 등의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것은 비근의 소행이며 비근의 경계이며, 비식(鼻識)의 소행이며 비식의 경계이며 비식의 소연이며, 의식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66) 무견유대향(無見有對香)을 의미한다.
    67) 호향(好香)도 악향(惡香)도 아닌 향기를 말한다."
  18.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9 / 829. 비식(鼻識)의 조반(助伴)
    "조반(助伴) 및 업은 안식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19.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10 / 829. 설식(舌識)의 자성(自性)
    "무엇을68) 설식(舌識)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
    설근[舌 : 舌根]에 의지하여 미(味)를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68) 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의 하나 하나를 나누어 해설하는 가운데에, 그 네 번째로 설식(舌識)의 다섯 가지 상(相), 즉 자성(自性) 소의(所依) 소연(所緣) 조반(助伴) 작업(作業)에 대하여 설명한다."
  20.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10 / 829. 설식(舌識)의 소의(所依)
    "그것[舌識]의 소의(所依)는 구유의(俱有依)는 설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이다. 설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설식이 의지하게 되는[舌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는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21.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10 / 829. 설식(舌識)의 소연(所緣)
    "그것[舌識]의 소연(所緣)은 미(味)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69)를 말한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쓰고[苦] 시고[酢] 맵고[辛] 달고[甘] 짜고[鹹] 싱거운 것[淡]이 있고, 가의(可意), 불가의(不可意), 혹은 사(捨)70)의 처소(處所)가 있으며, 설근이 맛보는 대상[所嘗]이 있다.
    또한 미(味)란 이른바 맛보겠다, 삼키겠다, 씹겠다, 마시겠다, 핥겠다, 빨겠다, 수용하겠다는 등의 위와 같은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것은 설근의 소행이며 설근의 경계이며, 설식(舌識)의 소행이고 설식의 경계이고 설식의 소연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68) 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의 하나 하나를 나누어 해설하는 가운데에, 그 네 번째로 설식(舌識)의 다섯 가지 상(相), 즉 자성(自性) 소의(所依) 소연(所緣) 조반(助伴) 작업(作業)에 대하여 설명한다.
    69) 무견유대미(無見有對味)를 의미한다.
    70) 가의(可意)도 아니고 불가의(不可意)도 아닌 맛[味]을 말한다."
  22.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11 / 829. 설식(舌識)의 조반(助伴)
    "조반(助伴) 및 업(業)은 앞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23.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11 / 829. 신식(身識)의 자성(自性)
    "무엇을71) 신식(身識)의 자성(自性)이라 하는가?
    신근[身 : 身根]에 의지하여 촉(觸)을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71) 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의 하나 하나를 나누어 해설하는 가운데에, 그 다섯 번째로 식식(身識)의 다섯 가지 상(相), 즉 자성(自性) 소의(所依) 소연(所緣) 조반(助伴) 작업(作業)에 대하여 설명한다."
  24.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11 / 829. 신식(身識)의 소의(所依)
    "그것[身識]의 소의(所依)는 구유의(俱有依)는 신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이다. 신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신식이 의지하게 되는[身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는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25.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11 / 829. 신식(身識)의 소연(所緣)
    "그것[身識]의 소연이란 촉(觸)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72)를 말한다. 여기에도 즉 땅[地] 물[水] 불[火] 바람[風]과 가벼운 성질[輕性] 무거운 성질[重性] 미끄러운 성질[滑性] 껄그러운 성질[澁性] 차가움[冷] 배고픔[飢] 목마름[渴] 배부름[飽] 힘 있음[力] 힘 없음[劣] 느슨함[緩] 급함[急] 병듦[病] 늙음[老] 죽음[死] 간지러움[] 답답함[悶] 끈끈함[粘] 고달픔[疲] 쉼[息] 연약[軟怯] 기운[勇]의 여러 가지가 있으며, 위와 같은 종류의 여러 가지 촉(觸)이 있다.
    여기에도 즉 호촉(好觸) 악촉(惡觸) 사(捨)의 처소의 촉[處所觸]73)의 세 가지가 있으며, 신근[身]이 감촉하는 대상[所觸]이 있다.
    또한 촉(觸)이란 즉 어루만지고 부딪치고 혹은 단단하고 부드럽고 혹은 움직이고 따뜻한 등의 이와 같은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는 신근[身 : 身根]의 소행(所行)이며 신근의 경계이며, 신식(身識)의 소행이며 신식의 경계이며 신식의 소연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고 의식의 소연이다.
    72) 무견유대촉(無見有對觸)를 의미한다.
    73) 호촉(好觸)은 닿아서 낙수(樂受)를 일으키는 촉(觸)이며, 악촉(惡觸)은 닿아서 고수(苦受)를 일으키는 촉(觸)이며, 사처소촉(捨處所觸)은 닿아서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을 일으키는 촉(觸)을 말한다."
  26.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11 / 829. 신식(身識)의 조반(助伴)
    "조반(助伴) 및 업(業)은 앞의 경우와 동일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27.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12 / 829. 5식(五識)과 근(根)·경(境)·작의(作意)
    "다음에74) 안근[眼 : 眼根]이 무너지지 않고75), 색(色)이 앞에 나타나고[現在前]76), 능생(能生) 작의(作意)77)가 바로 일어나지 않으면78) 소생(所生) 안식(眼識)79)은 결코 생겨날 수 없다.
    반드시 안근이 무너지지 않고 색(色)이 앞에 나타나며[現在前] 능생(能生) 작의(作意)가 곧바로 다시 일어날[現起] 때에 소생[所生]의 안식(眼識)도 비로소 생겨날 수 있다. 안식(眼識)이 생기는 것과 같이, 그 밖의 식신(識身)도 위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74) 이하는 5식(識)과 근(根) 경(境) 작의(作意)의 관계를 밝힌다.
    75) 안근(眼根)이 결함없이 구족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76) 대상의 경계(境界)가 현재 나타나야 하는 것을 말한다.
    77) 능생(能生)의 작의(作意)는 소생(所生)의 안식(眼識)와 능(能) 소(所)의 관계로 주관과 객관의 관계이며, 능생(能生)이란 능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78) 자동적으로 대상에 취하는 의도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79) 능동(能動)의 작의(作意)에 의하여 일어나게 되는 피동(被動)의 안식(眼識)을 의미한다."
  28.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p. 12-13 / 829. 5식(五識)과 5심(五心)
    "다음에80) 안식(眼識)의 생겨나기 때문에 세 가지 심(心)을 가히 얻을 수 있으니, 그 차례대로 말하면 솔이심(率爾心)81)과 심구심(尋求心)82)과 결정심(決定心)83)이다. 처음 것84)은 안식(眼識)이며, 두 번째 것85)은 의식(意識)에 존재하며, 결정심(決定心)86) 뒤에 마침내 염(染) 정(淨)87)이 있고88) 이 이후에야 등류(等流)의 안식(眼識)89)이 있어서90) 선(善)과 불선(不善)이 구르게 된다.
    그래서 저것[眼識]이 자기의 분별력에 의지하지 않고 내지 이 의식[意 : 意識]도 나머지 경(境)에 나아가지 않는 이와 같은 때에 이르러야 안식[眼 : 眼識]과 의식의 두 식(識)은 선(善) 혹은 염(染)에 상속하여 구르는 것[轉]이다. 안식(眼識)이 생겨나는 것과 같이, 신식(身識)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80) 이하는 5식(識)과 솔이심(率爾心) 심구심(尋求心) 결정심(決定心) 염정심(染淨心) 등류심(等流心)의 5심(心)과의 관계에 대하여 밝힌다.
    81) 솔이심(率爾心)이란 안식과 동시에 의식이 갑작스러운 대경(對境)에 맞닥뜨렸을 때의 갑작스러운 심리상태를 말한다.
    82) 심구심(尋求心)이란 솔이심 다음으로 의식이 대경(對境)에 대해서 무언가를 희망하고 추구하는 단계의 마음을 말한다.
    83) 결정심(決定心)이란 추구심 다음으로 의식이 대경(對境)에 대해서 무엇인지를 알고 인가하고 결정하는 단계의 마음을 말한다.
    84) 솔이심(率爾心)을 가리키며, 5심(心) 가운데에 첫 번째의 심(心)이다.
    85) 심구심(尋求心)을 가리키며, 5심(心) 가운데에 두 번째 심(心)이다.
    86) 5심(心) 가운데에 세 번째 심(心)이다.
    87) 염(染) 정(淨)이란 번뇌에 물들고 번뇌에 물들지 않는 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정심 다음에 의식이 대경(對境)에 대해서 악심(惡心)을 일으키거나 혹은 선심(善心)을 일으키는 단계의 마음을 의미한다.
    88) 5심(心) 가운데에 네 번째의 심(心)이다.
    89) 염정(染淨)의 의식(意識)이 끌어당긴 것에 의해서 이후에 의식 뿐만이 아니라 안식(眼識)도 또한 염정(染淨)의 선(善) 악(惡)에 대해서 상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등류(等流)의 어원적 의미는 등동(等同) 유류(流類)이며, 전념(前念) 후념(後念), 염정선악(染淨善惡), 동성동류(同性同流)의 뜻도 있다.
    90) 5심(心) 가운데에 다섯 번째의 심(心)이다."
  29.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2권. p. 13 / 829. 5식(五識)의 5상(五相)에 대한 비유
    "다음에91) 5식(識)의 소의(所依)는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의 탈것과 같으며, 소연(所緣)은 하는 일과 같으며, 조반(助伴)은 동반자[同侶]와 같으며, 작업(作業)은 스스로의 공능(功能)과 같음을 관(觀)해야만 한다. 또한 5식(識)의 소의(所依)는 집에 머무는 자의 집과 같고, 소연(所緣)은 수용하는 대상과 같고, 조반(助伴)은 심부름꾼과 같고, 작업(作業)은 작용(作用)과 같은 차별이 있음을 관찰[觀]해야만 한다.
    91) 이하는 5식(識)의 5상(相)을 비유를 들어서 설명한다."
  30.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p. 13-14 / 829. 의지(意地)
    "2) 의지(意地)92)
    이미 오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를 설명하였다.
    무엇을93) 의지(意地)라고 하는가?
    여기에서도 5상(相)이 있음을 알아야만 하니, 즉 자성(自性)때문이요, 그것94)의 소의(所依)때문이요, 그것의 소연(所緣), 그것의 조반(助伴), 그리고
    [14 / 829] 쪽
    그것의 작업(作業)때문이다.
    91) 이하는 5식(識)의 5상(相)을 비유를 들어서 설명한다.
    92) 전절(前節)에서는 8식 가운데 전5식(前五識)을 설하였고, 지금부터는 제6, 제7, 제8의 세 가지 식(識)을 설하는 데 있어서, 세 가지 식은 공통적으로 의근(意根)에 포함되기 때문에 의지(意地)에서 설명한다. 이를 원래는 '의식신상응지(意識身相應地)'라고 해야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에 배대하여 볼 때 맞는 명칭이지만 지금은 '식신상응(識身相應)'의 네 글자를 축약하여 의지(意地)라고 한다.
    93)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와 같이 의지(意地)의 5상(相), 즉 자성(自性) 소의(所依) 소연(所緣) 조반(助伴) 작업(作業)에 대하여 밝힌다.
    94) 의지(意地)를 가리킨다."
  31.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14 / 829. 의지(意地)의 자성(自性)
    "무엇을 의(意)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
    심(心) 의(意) 식(識)을 말한다.
    심(心)이란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소수의지성(所隨依止性)95)이며 소수의부의지성(所隨依附依止性)96)으로서 본체[體]는 능히 집수(執受)하는 이숙에 포함되는[異熟所攝]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의(意)란 항행의지성(恒行依止性)의 의(意)97)와 그리고 6식신(六識身)의 무간멸(無間滅)의 의(意)를 말한다.
    식(識)이란 현전(現前)에서 소연(所緣)의 경계(境界)를 요별(了別)하는 것이다.
    95) 유루종자(有漏種子)는 본식(本識)에 따라서 유루무기(有漏無記)가 되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용(用)은 체(體)에 의지한다는 뜻이다.
    96) 이러한 종자(種子)는 본식(本識)에 의지하더라도 선(善) 염(染)들을 일으키는 공능(功能)이 달라서 같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의부(依附)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97) 제7식을 의미한다."
  32.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14 / 829. 심(心)
    "심(心)이란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소수의지성(所隨依止性)95)이며 소수의부의지성(所隨依附依止性)96)으로서 본체[體]는 능히 집수(執受)하는 이숙에 포함되는[異熟所攝]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95) 유루종자(有漏種子)는 본식(本識)에 따라서 유루무기(有漏無記)가 되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용(用)은 체(體)에 의지한다는 뜻이다.
    96) 이러한 종자(種子)는 본식(本識)에 의지하더라도 선(善) 염(染)들을 일으키는 공능(功能)이 달라서 같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의부(依附)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614, T.1579제1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09startNum14 14 / 829]. 심(心)"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33.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14 / 829. 식(識)
    "식(識)이란 현전(現前)에서 소연(所緣)의 경계(境界)를 요별(了別)하는 것이다."
  34.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14 / 829. 의지(意地)의 소의(所依)
    "그것98)의 소의(所依)로는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고 종자의(種子依)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98) 의식(意識)을 가리킨다."
  35.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14 / 829. 의지(意地)의 소연(所緣)
    "그것의 소연(所緣)이란 그 상응하는 것[所應]에 따른 일체법(一切法)이다. 불공인 경우[不共者]99)의 소연(所緣)은 즉 수(受) 상(想) 행온(行蘊)100)과 무위(無爲)와 무견무대색(無見無對色)101)과 6내처(六內處)102)와 그리고 일체종자(一切種子)이다.
    99) 전5식(前五識)과 공통하지 않는 의식 특유의 대경(對境)을 의미한다.
    100) 색온(色蘊)과 수온(受蘊)과 상온(想蘊)과 행온(行蘊)을 의미하며, 식온(識蘊)을 제외한 것은 다음의 6내처(六內處) 중에 의처(意處)가 있기 때문이다.
    101) 무견무대색(無見無對色)은 무표색(無表色)을 의미한다.
    102) 6근(六根) 즉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를 6내처라고 한다."
  36.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p. 14-15 / 829. 의지(意地)의 조반(助伴)
    "그것의 조반(助伴)이란 작의(作意) 촉(觸) 수(受) 상(想) 사(思)103)와 욕(欲) 승해(勝解) 염(念) 삼마지(三摩地) 혜(慧)104)와 신(信) 참(慚) 괴(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 정진(精進) 경안(輕安) 불방일(不放逸) 사(捨) 불해(不害)105)와 탐(貪) 에(恚) 무명(無明) 만(慢) 견(見) 의(疑)106)와 분(忿) 한(恨) 복(覆) 뇌(惱) 질(嫉) 간(慳) 광(誑) 첨(諂) 교(憍)) 해(害) 무참(無慚) 무괴(無愧) 혼침(惛沈) 도거(掉擧)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사욕(邪欲) 사승해(邪勝解) 망념(忘念)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107)와 악작(惡作) 수면(睡眠) 심(尋) 사(伺)108)를 말한다. 이러한 등의 것들은 함께 있으면서[俱有] 상응(相應)하는109) 심소유법(心所有法)이며, 이를 조반(助伴)이라고 이름한다.
    동일(同一)한 소연(所緣)이면서도 동일한 행상(行相)은 아니라서, 일시(一時)에 함께 있으면서도[俱有] 하나 하나 구른다110). 각자의 종자로부터 생겨나면서도 서로 상호 상응하여 (능연[能緣]의) 행상(行相)이 있고 소연(所緣)이 있으며 소의(所依)가 있다.
    103) 작의(作意) 촉(觸) 수(受) 상(想) 사(思)는 5변행심소(遍行心所)를 나타낸다.
    104) 욕(欲) 승해(勝解) 염(念) 삼마지(三摩地) 혜(慧)는 5별경심소(別境心所)를 나타낸다.
    105) 신(信) 참(慚) 괴(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 정진(精進) 경안(輕安) 불방일(不放逸) 사(捨) 불해(不害)는 선심소(善心所)를 나타낸다.
    106) 탐(貪) 에(恚) 무명(無明) 만(慢) 견(見) 의(疑)는 6대번뇌(大煩惱)를 나타낸다.
    107) 분(忿) 한(恨) 복(覆) 뇌(惱) 질(嫉) 간(慳) 광(誑) 첨(諂) 교(憍) 해(害) 무참(無慚) 무괴(無愧) 혼침(惛沈) 도거(掉擧)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사욕(邪欲) 사승해(邪勝解) 망념(忘念)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는 22수번뇌(隨煩惱)를 나타낸다.
    108) 악작(惡作) 수면(睡眠) 심(尋) 사(伺)는 4부정심소(不定心所)를 나타낸다.
    109) 심왕(心王)과 구유(具有)하고 상응(相應)한다는 뜻이다.
    110) 모든 심소유법(心所有法)은 심왕(心王)에 따라 다니는 것이지만 그 하나 하나의 행상(行相)은 동일하지 않고 그 나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37.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p. 15-16 / 829. 의식(意識)의 전5식(前五識)에 대한 작업(作業)
    "그것111)의 작업(作業)112)이란 즉 능히 자기의 경계[自境]의 소연(所緣)을 요별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을 첫 번째 업[初業]이라고 한다. 다시 능히 자상(自相) 공상(共相)113)을 요별하고,114) 능히 과거[去] 미래[來] 현재세[現世]를 요별하고,115) 다시 찰나에 요별하고 혹은 상속하여 요별한다.116) 다시 구르고[轉] 따라서 구르면서[隨轉] 청정하고[淨]과 청정하지 않는[不淨] 일체법(一切法)의 업(業)을 일으킨다117). 다시 능히 탐애[愛]와 비탐애[非愛]의 과보[果]를 취하고,118) 다시 능히 다른 식신(識身)119)을 이끌며 또한 능히 인(因)이 되어 등류(等流)의 식신(識身)120)을 일으킨다.
    112) 이하는 의식(意識)의 작업(作業)을 밝히는 것으로 여기에는 2문(門)이 있다. 2문(門) 가운데의 그 첫 번째는 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작업(作業)을 밝히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의식이 전5식(前五識)과 함께하지 않는 불공업(不共業)에 대하여 밝히는 것이다. 다음의 일단(一段)은 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작업(作業)을 밝히는 부분이다.
    113) 자상(自相)이란 사법(事法)의 자체 특유의 상(相)이다. 즉 색(色) 성(聲) 향(香) 미(味) 등의 각자 특유의 상(相)으로서 다른 것과 공통하지 않는 대경(對境)을 의미한다. 공상(共相)이란 제 법(法)과 공통하는 것으로서 즉 무상(無常) 고(苦) 공(空) 등과 같은 상(相)이며 이는 일체 유위법(有爲法)에 공통된 상, 즉 공상(共相)이다.
    114) 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두 번째 작업(作業)이다.
    115) 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세 번째 작업(作業)이다.
    116) 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네 번째 작업(作業)이다.
    117) 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다섯 번째 작업(作業)이다.
    118) 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여섯 번째 작업(作業)이다.
    119) 5식신(識身)을 말한다.
    120) 5식신(識身)을 말한다."
  38.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16 / 829. 의식(意識)의 전5식(前五識)과 함께하지 않는 불공업(不共業)
    "또한 제 의식(意識)121)은 다른 식신(識身)에 비해서 뛰어난 작업(作業)이 있다. 즉 소연(所緣)을 분별하고, 소연(所緣)을 심려(審慮)하며, 취(醉)하거나, 미치거나[狂], 꿈꾸거나[夢], 깨어나거나[覺], 기절하거나[悶], 성성하거나[醒], 혹은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을 능히 일으키거나, 능히 이욕(離欲)하거나, 이욕(離欲)에서 물러나거나, 선근(善根)을 끊거나, 선근(善根)을 잇거나, 죽거나[死] 태어나는[生] 등을 말한다.
    121) 이하는 의식의 작업(作業) 가운데의 그 두 번째로 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과 함께하지 않는 불공업(不共業)에 대하여 밝힌다. 여기에서는 소연분별(所緣分別) 소연심려(所緣審慮) 취(醉) 광(狂) 몽(夢) 각(覺) 민(悶) 성(醒) 신업(身業)과 어업(語業) 이욕(離欲) 이욕퇴(離欲退) 단선근(斷善根) 속선근(續善根) 생사(生死)의 열 네 가지 문(門)으로 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39.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p. 16-17 / 829. 소연분별(所緣分別)
    "무엇을 소연을 분별하는 것이라 하는가?
    일곱 가지의 분별 즉 유상분별(有相分別) 무상분별(無相分別) 임운분별(任運分別) 심구분별(尋求分別) 사찰분별(伺察分別) 염오분별(染汚分別) 불염오분별(不染汚分別)에 의한다.
    유상분별(有相分別)이란 먼저 받아들인 대상[先所受義]122)에 대하여 제 근(根)을 성취하고123) 명언(名言)을 잘 아는 자(者)가 일으키는 분별을 말한다.
    무상분별(無相分別)이란 먼저 끌어당긴 것[先所引]124)에 따르는 것이며, 명언(名言)을 잘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 등이 지니고 있는 분별을 말한다.
    임운분별(任運分別)이란 현전(現前)의 경계에 대하여 경계의 세력에 따라서 자연스럽게[任運] 구르는 모든 분별을 말한다.
    심구분별(尋求分別)이란 제 법을 관찰(觀察) 심구(尋求)해서 일어나게 되는 분별을 말한다.
    사찰분별(伺察分別)이란 이미 심구(尋求)하고 이미 관찰(觀察)한 것을 사찰(伺察)하고 안립(安立)해서 일어나게 되는 분별을 말한다.
    염오분별(染汚分別)이란 과거를 되돌아보고 연연해하는 것과 함께 작용하고[俱行] 미래를 즐기는 것과 함께 작용하며 현재를 집착하는 것과 함께 작용하는 모든 분별과, 욕분별(欲分別)이나 에분별(恚分別) 혹은 해분별(害分別)의 하나 하나의 번뇌나 수번뇌(隨煩惱)에 따라 상응해서 일어나게 되는 분별을 말한다.
    불염오분별(不染汚分別)이란 선(善)과 무기(無記)이며, 출리분별(出離分別) 무에분별(無恚分別) 불해분별(不害分別)의 하나 하나의 신(信) 등의 선법(善法)과 상응하거나 혹은 위의로(威儀路)125) 공교처(工巧處)126) 및 모든 변화(變化)127)가 소유하고 있는 분별을 말한다.
    위와 같은 종류를 소연(所緣)을 분별(分別)하는 것이라고 한다.
    122) 대상[義]이란 범어 Artha의 의역(意譯)으로서 경계라는 뜻이다.
    123) 신체가 완벽하게 결함없이 성장하여 구족한 것을 의미한다.
    124) 과거의 소연경(所緣境)에 생각없이 끌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125) 행(行) 주(住) 좌(坐) 와(臥)의 4위의를 일으키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126) 예술 가곡 등을 일으키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127) 선정(禪定) 신통력(神通力)으로서 하나의 경계를 변화하는 마음을 뜻한다."
  40.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p. 17-18 / 829. 소연심려(所緣審慮)
    "무엇을 소연(所緣)을 심려(心慮)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여리(如理)의 소인(所引) 비여리(非如理)의 소인(所引) 비여리비불여리(非如理非不如理)의 소인(所引)을 말한다.
    여리(如理)의 소인(所引)이란 진실(眞實)이 아닌 유(有)를 증익(增益)하는 4가지의 전도(顚倒), 즉 무상(無常)을 항상함[常]이라고 전도하고, 괴로움[苦]을 즐거움[樂]이라고 전도하며, 깨끗하지 않은 것[不淨]을 깨끗함[淨]이라고 전도하고, 무아(無我)를 아(我)라고 전도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견(邪見) 즉 '베풀 필요 없다[無施與]' 등의 모든 사견(邪見)의 행(行)과 같이 여러 진실유(眞實有)를 손감(損減)하지 않는 것이다. 법주지(法住智)128)가 여실(如實)하게 제 소지사(所知事)129)를 요지(了知)한다거나 매우 청정한[善淸淨] 출세간의 지혜[出世間智]가 여실하게 소지(所知)130)의 제 법(法)을 깨달는[覺知] 이와 같은 것들을 여리(如理)의 소인(所引)이라고 한다.
    위와 서로 다른 것을 비여리(非如理)의 소인(所引)인줄 알아야 한다.
    비여리비불여리(非如理非不如理)의 소인(所引)이란 무기(無記)의 지혜[慧]를 의지하여 제 법(法)을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것[審察]을 말한다.
    위와 같은 것을 소연(所緣)을 심려(審慮)하는 것이라고 한다.
    128) 교법(敎法)에 의하여 생기에 되는 지혜를 의미한다.
    129) 알아야 할 대상의 현상들을 의미한다.
    130) 알아야 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41.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18 / 829. 취(醉)
    "무엇을 취함[醉]이라고 하는가?
    의지(依止) 성품[性]이 약[羸劣]하기 때문에, 혹은 익숙하지 않은데도 (술을) 마셨기 때문에, 혹은 너무 자주 마셨기 때문에, 혹은 지나친 양을 마셨기 때문에, 곧 취해서 어지러운 것[醉亂]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42.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18 / 829. 광(狂)
    "무엇을 미침[狂]이라고 하는가?
    먼저 지었던 업[先業]에 이끌렸기 때문에, 혹은 여러 가지 계[諸界]의 착란(錯亂) 때문에, 혹은 놀라고 두려워서 의지[志]를 잃었기 때문에, 혹은 말마(末摩)131)를 맞았기 때문에, 혹은 귀신과 도깨비[鬼魅]에 홀려서 전광(癲狂)132)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128) 교법(敎法)에 의하여 생기에 되는 지혜를 의미한다.
    129) 알아야 할 대상의 현상들을 의미한다.
    130) 알아야 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131) 사혈(死穴) 또는 사절(死節)이라고 번역한다. 우리 몸 안에 사혈은 64곳 혹은 120곳이 있는데, 이 곳을 정통으로 맞게 되면 죽게 된다.
    132) 미치거나 지랄병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43.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19 / 829. 몽(夢)
    "무엇을 꿈을 꾸는 것[夢]이라고 하는가?
    의지(依止)의 성품[性]이 약[羸劣]하기 때문에, 혹은 피로[疲倦]나 과실(過失) 때문에, 혹은 지나치게 먹는 것에 빠졌기[沈重] 때문에, 혹은 암상(闇相)133)을 작의(作意)하고 사유하였기 때문에, 혹은 일체의 사업(事業)을 휴식(休息)하였기 때문에, 혹은 수면(睡眠)을 자주 익혔기[串習]134) 때문에, 부채질[搖扇]이나 명주(明呪)나 약이나 신통과 같은 다른 것135)에 이끌렸기 때문에, 혼몽(惛夢)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133) 눈을 감고 흑암(黑暗)의 색상을 관하거나, 어두움에 대하여 관하는 것을 의미한다.
    134) 습관이 될 정도로 자주 익히는 것을 의미한다.
    135) 자신의 내부적인 것이 아닌 외부적인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44.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19 / 829. 각(覺)
    "무엇을 깨어남[覺]이라고 하는가?
    잠을 푹 잔 사람[睡增者]이 피극(疲極)136)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137), 할 일이 있는 사람[所作者]이 미리 잠 잘 시간을 잡았기 때문에, 혹은 다른 것138)에 이끌려서 꿈으로부터 깨어나는 것을 말한다.
    136) 피로가 다 없어진 것을 의미한다.
    137) 잠을 너무 자서 더 이상 잠을 취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138)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나 다른 사람이 깨우는 등의 일을 말한다."
  45.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19 / 829. 민(悶)
    "무엇을 기절[悶]이라고 하는가?
    바람과 열로 어지럽기 때문에, 혹은 매를 맞았기 때문에, 너무 지나치게 설사[痢]를 계속하거나 출혈(出血)과 같이 쏟았기 때문에, 혹은 극히 과로했기 때문에, 기절[悶絶]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46.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19 / 829. 성(醒)
    "무엇을 성성[醒]이라고 하는가?
    기절하였다가 다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47.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p. 19-20 / 829. 신업(身業)과 어업(語業)
    "무엇을 신업(身業) 어업(語業)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하는가?
    즉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을 일으키는 지(智)139)가 먼저 작용[前行]하기 때문에, 다음으로 욕(欲)이 생기기 때문에, 다음으로 공용(功用)이 일어나기 때문에, 다음으로 공용에 수순(隨順)함을 우선으로 하여 신(身)과 어(語)의 업풍(業風)이 구르기 때문에, 이것으로부터 신업(身業) 어업(語業)을 일으키는 것이다.
    139) 이때의 지(智)는 지혜(智慧)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을 하는 지(智)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48.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20 / 829. 이욕(離欲)
    "무엇을 이욕(離欲)이라고 하는가?
    즉 이욕(離欲)에 수순하는 감각기관[根]을 성취하기 때문에140),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르침[敎誨]을 받아서 따르기[隨順] 때문에, 그것141)의 장애를 원리(遠離)하기 때문에, 방편(方便)을 바르게 닦아서[正修]142) 전도 없이[無顚] 사유하기 때문에, 비로소 이욕(離欲)할 수 있는 것이다.
    140) 6근(根)이 다 구족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141) 다른 이로부터 가르침[敎誨]을 받고 수순하는 것을 의미한다.
    142) 바른 실천을 의미한다."
  49.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20 / 829. 이욕퇴(離欲退)
    "무엇을 이욕(離欲)에서 물러나는 것이라고 하는가?
    즉 연근기[軟根]143)의 성품[性]이기 때문에, 새로 선품(善品)을 닦은 사람이 그것144)의 형상상(形狀相)145)을 사유하기 때문에, 순퇴법(順退法)을 받아 행하기[受行] 때문에, 번뇌에 장애 받기 때문에, 나쁜 벗[惡友]에 포섭되기 때문에, 이욕(離欲)으로부터 물러나는 것이다.
    143) 하열(下劣)한 근기를 의미한다.
    144) 선품(善品)을 가리킨다.
    145) 그것의 형상상(形狀相)이란 새로 닦은 선품(善品)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의 형상(形狀)의 상(相)을 억념(憶念) 사유(思惟)하는 것을 의미한다."
  50.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p. 20-21 / 829. 단선근(斷善根)
    "무엇을 선근(善根)을 끊는 것[斷]이라고 하는가?
    즉 이근자(利根者)가 상품(上品)의 여러 악한 의요[諸惡意樂]들이 현행하는 법을 성취하기 때문에, 그 나쁜 벗[惡友]을 수순하게 되기 때문에146), 그 사견(邪見)의 전(纏)147)이 극히 매우 원만하게 되어 구경(究竟)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 일체의 악(惡)이 현행하는 가운데에 무외(無畏)를 얻기 때문에148), 애민(哀愍)이 없기 때문에, 능히 선근(善根)을 끊는 것이다.
    이 가운데 종자도 선근(善根)이라고 하고 무탐(無貪) 무진(無瞋) 등도 또한 선근(善根)이라고 하지만, 상속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相違] 때문에, 단지 현행(現行)의 선근(善根)149)만을 안립(安立)하여 선근을 끊는다[斷]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히 그150) 종자를 뽑아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46) 여러 악의 의요[諸惡意樂]들이 현행하는 법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147) 상상품(上上品)의 사견(邪見)이 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전(纏)은 전박(纏縛)의 의미로서 번뇌를 일컫는다.
    148) 여러 악의 의요들[諸惡意樂]이 현행하는 법에 대하여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149) 선근(善根)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종자이고 둘째는 현행이다. 종자의 세력을 끊어서 현행하지 않게끔 하는 것을 끊는다[斷]고 한다.
    150) 선근(善根)을 가리킨다."
  51.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21 / 829. 속선근(續善根)
    "무엇을 선근(善根)을 잇는 것[續]이라고 하는가?
    즉 이근(利根)의 성품[性]이기 때문에, 친한 벗[親朋友]151)을 보고서 복업(福業)을 닦기 때문에, 착한 장부(丈夫)152)에 나아가 정법(正法)을 듣기 때문에, 유예(猶豫)153)가 생겨도 증(證)154)을 결정하기 때문에, 도로 선근(善根)을 잇는 것[續]이다.
    151) 여러 선의 의요[諸善意樂]들이 현행하는 법을 의미한다.
    152) 정법(正法)을 가르치는 스승을 의미한다.
    153) 이럴까 저럴까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을 의미한다.
    154) 깨달음의 진리를 확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52.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 21 / 829. 생사(生死)
    "무엇을155) 죽는다[死]고 하는가?
    수명[壽量]이 다했기 때문에 곧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말하니,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즉 목숨이 다하고[壽盡], 복이 다하고[福盡], 불평등(不平等)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156) 이것은 선심(善心) 불선심(不善心) 무기심(無記心)의 시사(時死)157)와 비시사(非時死)158)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155) 『본론(本論)』에서 생사(生死)를 밝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설명된다.(一) 내분유정(內分有情)의 생사를 밝힌다.1. 사(死)를 밝힌다. (1) 여섯 가지 사(死)를 드러내어 해석한다. (2) 여덟 가지 문(門)으로 뜻에 따라서 여러 가지를 설한다.2. 생(生)을 열 네 가지 항목으로 밝힌다. (1) 중유(中有)를 스물 두 가지 문(門)으로 밝힌다. (2) 생유(生有)를 두 가지 문(門)으로 밝힌다. (3) 본유(本有)를 두 가지 문(門)으로 밝힌다.3. 공관루진(空觀漏盡)을 스물 세 가지 항목으로 밝힌다.(二) 외분세계(外分世界)의 성괴(成壞)를 스물 네 가지 항목으로 밝힌다.
    156) 이하 사(死)를 밝히는 두 가지 가운데에, 그 첫 번째로 여섯 가지의 사(死)를 드러내어 해석한다.
    157) 때에 맞는 죽음을 의미한다.
    158) 때에 맞지 않는 죽음을 의미한다."
  53.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권. pp. 26-27 / 829. 생사(生死)
    "무엇을190) 태어남[生]이라고 하는가?
    아애(我愛)가191) 곧바로[無間] 이미 생겼기 때문에, 무시이래[無始]로 희론(戲論)을 즐겨 집착한[樂著] 인(因)192)을 이미 훈습(薰習)하였기 때문에, 청정함[淨] 청정하지 않음[不淨]의 업인(業因)을 훈습하였기 때문에, 그 소의(所依)의 체(體)193)는 두 가지 인(因)194)의 증상력(增上力)에 의하기 때문에 자기의 종자[自種子]195)로부터 즉 이곳 중유(中有)에 이숙(異熟)196)이 곧바로[無間]197)태어나게 된다.
    190) 이하는 생(生)을 중유(中有) 생유(生有) 본유(本有)의 세 가지로 밝히는 가운데에, 그 첫 번째로 중유(中有)에 대하여 스물 두 가지 문(門)으로 밝힌다.
    191) 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첫 번째로 중유(中有)의 인연(因緣)을 밝힌다.
    192) 희론(戱論)의 언어에 의해서 훈습되어진 종자, 즉 명언종자(名言種子)를 의미한다. 이는 제 법(法)의 자과(自果)를 생기게 하는 친인연(親因緣)이며, 여기서의 인(因)은 종자를 의미한다.
    193) 중유(中有)의 색심오온(色心五蘊)의 소의(所依)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체(體)를 의미한다.
    194) 무시이래[無始]로 희론(戱論)을 낙착(樂著)한 인(因)과 정(淨) 부정(不淨)의 업인(業因)을 말한다.
    195) 명언종자(名言種子)를 말한다.
    196) 선업(善業)으로 부르게 되는[所感] 가애(可愛)의 과보(果報), 또는 악업(惡業)으로 부르게 되는[所感] 불가애(不可愛)의 과보를 의미한다.
    197) 사유(死有) 다음 찰나에 간격없이 곧바로 중유(中有)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