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아비달마집론 > 대승아비달마집론 제2권 > 1. 본사분(本事分) ② > 26 - 35쪽
K.572(16-157), T.1605(3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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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아비달마집론 제2권
무착보살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1. 본사분(本事分) ②
1) 삼법품 ②
[문] 다시 온(蘊)ㆍ계(界)ㆍ처(處)를 자세하게 분별하면 어떻게 됩니까?
[답] 올다남(嗢柁南)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실유성(實有性)ㆍ소지(所知)와 색(色)ㆍ누(漏)ㆍ이생(已生)과 과거세(過去世)의 여러 연(緣) 따위는 그 종류가 몇이며, 어떠한 이치가 있는가?
[문] 온ㆍ계ㆍ처 가운데에서 어떠한 것이 실유(實有)입니까? 또 몇 가지가 실유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실유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명자와 언어를 관대(觀待)하지 않는, 이 같은 여러 근(根)과 경(境)이 실유의 이치이다. 따라서 일체가 모두 실유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실유를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실유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가유(假有)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가유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가유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명자와 언어에 관대하는, 이 같은 여러 근과 경이 헛되게 존재한다는 이치를 가리킨다. 따라서 일체가 모두 가유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실유를 ‘나’라고 집착 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가유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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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세속유(世倚有)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세속유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세속유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명자와 언설에 관대하는, 이 같은 여러 근과 경이 세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이치를 가리킨다. 따라서 일체가 모두 세속유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잡염(雜念)의 모양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세속유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숭의유(勝義有)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승의유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승의유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답] 청정한 소연(所緣)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는 이치를 가리킨다. 따라서 일체가 모두 승의유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청정한 모양이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승의유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소지(所知)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소지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소지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답] 소지에는 다섯 종류가 있다. 첫째가 색법(色法)이고, 둘째가 심법(心法)이고, 셋째가 심소유법(心所有法)이고, 넷째가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이고, 다섯째가 무위법(無爲法)이다. 여기에서의 색을 색온이라 말하기도 하니, 10색계(色界)와 10색처(色處) 및 법계(法界)의 법처(法處)에 소속된 여러 가지 색에 해당된다. 또 마음을 식온(識鏡)이라 말하기도 하니, 7식계(識界) 및 의처(意處)에 해당된다.
심소유법은 수온과 상온 및 이에 상응하는 행온이며, 아울러 법계와 법처의 일부분에 해당된다. 심불상응행은 불상응행온 및 법계와 법처의 일부분에 해당되고, 무위법(無寫法)은 법계와 법처의 일부분에 해당된다. 혹시 이 같은 처(處)에 잡염과 청정(淸淨)이 있거나, 또는 소잡념(所雜念)과 소청정(所淸淨)이 있거나, 또는 능잡념(能雜念)과 능청정(能淸澤)이 있거나, 이 같은 분위(分位)이거나, 이 같은 청정한 성품이라는, 이러한 것에 연유해서 일체가 모두 소지에 해당된다. 여기에서 색을 색온이라 말하기도 하니, 10색계(色界)와 10색처(色處) 및 법계(法界)의 법처(法處)에 소속된 여러 가지 색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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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음을 식온(識蘊)이라 말하기도 하니, 7식계(識界) 및 의처(意處)에 해당된다. 심소유법은 수온과 상온 및 이에 상응하는 행온이면서 아울러 법계와 법처의 일부분에 해당된다. 심불상응행은 상응하지 않는 행온 및 법계와 법처의 일부분에 해당된다. 또 소지법(所知法)이란 승해지(勝解智)로서 행해지는 바이고, 도리지(道理智)로서 행해지는 바이고, 불산지(不散智)로서 행해지는 바이고, 내증지(內證智)로서 행해지는 바이고, 타성지(他性智)로서 행해지는 바이고, 하지(下智)에서도 행해지는 바이고, 상지(上智)에서도 행해지는 바이고, 염환지(厭患智)로서 행해지는 바이고, 불기지(不起智)로서 행해지는 바이고, 무생지(無生智)로서 행해지는 바이고, 지지(智智)로서 행해지는 바이고, 구경지(究竟智)로서 행해지는 바이고, 대의지(大義智)로서 행해지는 바이다. 이 같은 소지의 이치에서, 일체가 모두 소지에 해당된다. 지각하는 주체[知者]와 인식하는 주체[見者]를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소지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소식(所識)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소식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소식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무분별(無分別)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유분별(有分別)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인(因)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전향하기 때문이고, 그 모양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그 모양에서 생겨나기 때문이고, 능치(能治)와 소치(所治)이기 때문이고, 미세한 차별(差別)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식의 이치에서 일체가 모두 소식에 해당된다. 능히 발견하는 자[能見者] 등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소식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능히 발견하는 자’ 등이라고 말하는 것은 견자(見者)ㆍ문자(聞者)ㆍ취자(臭者)ㆍ상자(嘗者)ㆍ촉자(觸者)ㆍ식자(識者)를 외부적으로 드러내는 것임을 숙지해야 한다.
[문] 소통달(所通達)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소통달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소통달이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답] 그 전변(轉變)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다문(多聞)에 따르기 때문이고, 수행의 입문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태어나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죽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출리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통달의 이치에서 일체가 모두 소통달에 해당된다. 나중에 이 세 가지 신통력이 일체의 경계에 두루 연하는 것이 기인된 덕망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소통달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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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유색(有色)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유색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유색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색의 자체적인 성품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대종(大種)에 의지하기 때문이고, 기꺼이 모이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방향과 장소가 있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처소마다 두루 존재하기 때문이고, 방향과 장소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 방향과 처소로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고, 둘이 함께 갈 수 있기 때문이고, 모양에 속하기 때문이고, 가까이 따르기 때문이고, 외부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고, 변하여 없어지기 때문이고, 표현하기 때문이고, 축적되어 건립되기 때문이고, 외문(外門)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내문(內門)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길고 먼 때문이고, 한계가 있기 때문이고, 순간적이기 때문이고, 시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같은 유색의 이치에서 일체가 모두 유색에 해당된다. 혹 그 대응하는 바에 따라 일체가 모두 유색에 해당한다는 것이란 변하여 없어지는 색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유색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유색’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무색(無色)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무색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무색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유색의 모양이 아닌 것을 말한다. 이 같은 무색의 이치에서 일체가 모두 무색에 해당된다. 혹 그 대응하는 바에 따라 무색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무색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유견(有見)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유견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유견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안근이 작용하는 경계가 유견의 이치이다. 나머지 차별은 유색에서 설명한 그대로이다. 따라서 일체가 모두 유견에 해당된다. 혹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 안경(眼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무색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무견(無見)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무견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무견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안근이 경계에 적용하지 않는 것이 무견의 이치이다. 따라서 일체가 모두 무견에 해당된다. 혹 그 대응하는 바에 따라 안근의 경계가 아닌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무색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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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유대(有對)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유대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유대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유견은 모두가 유대이다. 또 세 가지 인(因)이 있는 까닭에 유대라 이름한다고 해설한다. 종류가 있기 때문이고, 축적되기 때문이고, 수행으로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종류가 있기 때문이란 모든 색법이 서로 간에 장애를 주면서 또 서로 간에 장애받는 것이고, 축적되는 것이란 극미(極微)가 조합되는 것이고, 종류가 있다는 것이란 자체적인 성품의 이치이다. 축적된다는 것이란 극미색 이상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의 극미색은 상대되는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수행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란 삼마지(三摩地)에서 자유롭게 그 색이 전향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또 처(處)에 의지하는 손해(損害)가 유대의 이치이기에, 일체가 모두 유대에 해당된다. 이는 그 상응하는 바에 따른 그 밖의 이치까지도 말하는 것이다. 불변행(不遍行)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유대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무대(無對)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무대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무대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유대와 서로 어긋나는 것이 무대의 이치이다. 따라서 일체가 모두 무대에 해당된다. 혹 그 대응하는 바에 따라 변행(遍行)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무대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유루(有漏)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유루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유루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누(漏)의 자체적인 성품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누의 모양에 속하기 때문이고, 누의 결박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누에 따라가기 때문이고, 누에 순종하기 때문이고, 누의 종류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유루의 이치에서 5취온(取蘊)ㆍ15계ㆍ10처의 전부 및 3계 2처의 약간 부분이 유루에 해당된다. 누(漏)의 합성이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유루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무루(無源)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무루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무루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이 같은 유루와 반대되는 것이 무루의 이치이다. 5무취온(無取蘊)의 전부 및 3계 2처의 약간 부분이 무루에 해당된다. 누가 아닌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무루’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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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유쟁(有諍)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유쟁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유쟁이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문] 이와 같은 탐ㆍ진ㆍ치에 의지하기 때문에 칼과 창을 쥐고서 모든 ‘서로 다투고 어긋나는 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 같은 자체적인 성품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모양의 속성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결박되는 바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부림받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순종하는 바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종류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유쟁의 이치에서, 유루가 편재하는 범위를 따져 본 그대로 유쟁도 그와 같다. 서로 투합해서 다투는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유쟁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무쟁(無諍)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무쟁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무쟁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유쟁과 반대되는 것이 무쟁의 이치이다. 여기까지는 무루가 편재하는 범위를 따져 본 것 그대로 무쟁도 그와 같다. 서로 투합해서 다투지 않는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무쟁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유염(有梁)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유염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유염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이 같은 탐ㆍ진ㆍ치에 의지하기 때문에 후유(後有)의 자신에게 염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 같은 자체적인 성품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의 모양에 소속되기 때문이고, 그것에 결박되기 때문이고, 그것에 부림을 받기 때문이고, 그것에 순종하기 때문이고, 그것에도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같은 유염의 이치에서 유쟁이 편재하는 범위를 따져 본 것 그대로 유염도 그와 같다. 염(梁)의 합성을 ‘나’ 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유염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무염(無梁)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무염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무염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유염의 모양과 반대되는 것이 무염의 이치이다. 무쟁이 편재하는 범위를 따져 본 것 그대로 무염도 그와 같다. 염착을 여윈 것이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무염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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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기호의 탐닉에 의지하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기호의 탐닉에 의지하는 것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기호의 탐닉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답] 이와 같은 탐ㆍ진ㆍ치에 의지하기 때문에 5욕에 염착하는 것이다. 그 같은 자체적인 성품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의 모양에 소속되기 때문이고, 그것에 결박되기 때문이고, 그것에 부림 받기 때문이고, 그것에 순종하기 때문이고, 그것에도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것이 기호의 탐닉에 의지하는 것의 이치이다. 무쟁이 편재하는 범위를 따져 본 것 그대로 기호의 탐닉에 의지하는 것도 그와 같다. 기호의 탐닉이 합성된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기호의 탐닉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출리에 의지하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출리에 의지하는 것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출리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답] ‘기호의 탐닉에 의지하는 것의 모양’과 반대되는 것이 출리에 의지하는 것의 이치이다. 무염의 편재하는 범위를 따져 본 것 그대로 출리도 그와 같다. 출리에 의지하는 것이 ‘나’라는 집착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출리에 의지하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유위(有爲)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유위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유위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이 같은 법은 생겨나는 것이고, 소멸하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이고, 상대적인 것이니, 이 같은 것이 유위의 이치임을 숙지해야 한다. 일체가 모두 유위에 해당되나, 오직 법계의 법처 일부분만이 제외된다. 무상한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유위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무위(無爲)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무위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무위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유위의 모양과 반대되는 것이 무위의 이치이다. 따라서 법계의 법처의 일부분이 무위에 해당된다. 상주하는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무위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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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5온(蘊)을 취하지 않는 것은 유위라고 말해야 합니까? 무위라고 말해야 합니까?
[답] 그것은 무위와 유위 어느 쪽이라고도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업번뇌(業煩惱)에 작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유위라고 말할 수도 없고, 욕(欲)의 현전하거나 현전하지 않는 것에 따르기 때문에 무위라고도 말하지 못한다. 박가범께서 “법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유위와 무위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문] 어째서 지금 이 같은 법이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닌 것이라고 합니까?
[문] 만약 이 같은 이치에 연유해서 저것을 설명하여 유위라 이름하면, 이 같은 이치로써 이것을 설명하여 무위라 이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이 같은 이치에 연유해서 이것을 설명하여 무위라 이름한다면, 이 같은 이치로써 저것을 설명하여 유위라 이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리에 따라서 오직 두 가지만을 해설할 수밖에 없다.
[문] 세간(世間)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 세간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세간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삼계에 포함되는 것을 가리킨다. 아울러 출세한 다음 그 후득지(後得智)에 의해 반조(返照)하는 때에 저것이 드러나는 이 같은 세간의 이치에서, 여러 온의 일부분과 15계 10처의 전부 및 삼계 1처의 일부분이 세간에 해당된다. 세간에 의지하는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세간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출세(出世)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출세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출세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계를 대치(對治)하려는 때문이고, 그 전도되지 않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희론(戱論)이 아닌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무분별에 기인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분별없이 세간을 출리하는 이치이다. 또 출세한 다음의 후득지에 의해 얻어지는 세간도 역시 출세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 또한 출세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출세의 이치에서 여러 온의 일부분 및 3계 2처의 일부분이 세간에 해당된다. 독존(獨存)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출세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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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이생(已生)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이생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이생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과거와 현재에 이미 생겨난 이치이니, 일체의 일부분이 이생에 해당된다. 무상한 것이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세간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이생에는 스물네 가지 종류가 있으니, 최초이생(最初已生)ㆍ상속이생(相續已生)ㆍ장양이생(長養已生)ㆍ의지이생(依止已生)ㆍ전변이생(轉變已生)ㆍ성숙이생(成熟已生)ㆍ퇴타이생(退墮已生)ㆍ승진이생(勝進已生)ㆍ청정이생(淸淨已生)ㆍ불청정이생(不淸淨已生)ㆍ운전이생(運轉已生)ㆍ유종이생(有種已生)ㆍ무종이생(無種已生) ㆍ영상자재시현이생(影像自在示現已生)ㆍ전전이생(展轉已生)ㆍ찰나괴이생(刹那壞已生)ㆍ이회이생(已會已生)ㆍ이위이생(異位已生)ㆍ생사이생(生死已生)ㆍ성괴이생(成壞已生)ㆍ선시이생(先時已生)ㆍ사시이생(死時已生)ㆍ중시이생(中時已生)ㆍ속시이생(續時已生)을 가리킨다.
[문] 비이생(非已生)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비이생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비이생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미래와 무위법이 비이생의 이치이니, 일체의 일부분이 비이생에 해당된다. 상주하는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비이생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이생과 반대되는 것이 비이생의 이치이기도 하다.
[문] 능취(能取)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능취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능취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모든 색의 근(根)과 심(心)ㆍ심소(心所)가 능취의 이치이니, 세 종류의 온 전부와 색온과 행온의 일부분 및 12계와 6처의 전부와 법계의 법처 일부분에 상응하는 것이 능취에 해당된다. 능히 수용(受用)하는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능취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또 능취에는 네 종류가 있으니, 부지능취(不至能取)ㆍ지능취(至能取)ㆍ자상현재각별능취(自相現在各別能取)ㆍ자상공상일체시일체경계능취(自相共相一切時-切境界能取)를 가리킨다. 또 식 등의 화합에 연유하여 생겨나는 까닭에 능취를 임의로 만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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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소취(所取)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소취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소취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모든 능취(能取)가 바로 소취이니, 안근 등을 써서 의식에 취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취하는 것이 바로 능취는 아니지만 일체가 모두 소취에 해당된다. 경계를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소취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외문(外門)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외문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외문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욕계에 계류(繫留)되는 법이 외문의 이치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 생겨난 문혜(聞慧)ㆍ사혜(思慧) 및 수법행(隨法行)에 소속되는 심ㆍ심소 등을 제외한 4계(界)와 2처(處)의 전부와 그 나머지의 일부분 및 욕계에 소속되는 것이 외문에 해당된다. 욕망을 여의지 못한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외문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내문(內門)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내문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내문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외문과 반대되는 것이 내문의 이치이다. 4계 2처의 전부를 제외한, 그 나머지의 일부분이 내문에 해당된다. 욕망을 여윈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내문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염오(梁汚)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염오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염오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불선법(不善法)과 유부무기법(有覆無記法)이 염오의 이치라고 말한다. 유부무기법이란 의(意)에 상응하는 번뇌 등과 색계와 무색계에 계류된 여러 번뇌 등이다. 여러 온과 10계ㆍ4처의 일부분이 염오에 해당된다. 번뇌의 합성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염오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대승아비달마집론 > 대승아비달마집론 제2권 > 1. 본사분(本事分) ② > 36 - 45쪽
K.572(16-157), T.1605(3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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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불염오(不梁汚)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불염오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불염오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답] 선법(善法)과 무부무기법(無覆無記法)이 불염오의 이치이니, 8계 8처의 전부와 여러 온 및 여타의 계와 처의 일부분이 불염오에 해당된다. 번뇌의 합성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불염오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과거(過去)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과거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과거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자체적인 모양의 이생(已生)인 까닭이고, 이미 소멸한 까닭이고, 인과가 이미 수용된 까닭이고, 잡염과 청정의 공용(功用)이 이미 시든 까닭이고, 인(因)의 수렴이 이미 흩어졌기 때문이고, 자체적인 모양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분별된 모양을 억념하기 때문이고, 잡염의 모양이 변화하기 때문이고, 청정한 모양을 버렸기 때문이니, 이러한 과거의 이치에서 일체의 일부분만이 과거에 해당한다. 미래와 현재 및 무위가 제거되기 때문이다. 유전하는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과거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미래(未來)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미래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미래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인(因)이 있으나 이생하지 않은 까닭이고, 아직 자체적인 모양을 얻지 못한 까닭이고, 인과를 아직 수용하지 못한 까닭이고, 잡염이나 청정한 성품이 현전하지 않은 까닭이고, 인과 자체적인 모양의 존재가 아직 존재하지 않은 때문이고, 잡염의 모양을 기대하기 때문이고, 청정한 모양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것의 미래의 이치이니, 일체의 일부분이 미래에 해당된다. 유전하는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미래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현재(現在)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현재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현재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자체적인 모양이 이생하여 아직 소멸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인과가 수용되는 도중이기 때문이고, 잡염과 청정이 바로 현전하는 때문이고, 과거ㆍ미래의 모양이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고, 작용이 현전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것이 현재의 이치이니, 일체의 일부분이 현재에 해당된다. 유전하는 것은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현재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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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어째서 과거ㆍ미래ㆍ현재를 설명하여 열반법에 해당하지 않는 언사(言解)라고 이름합니까?
[답] 내자소증(內自所證)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과거ㆍ미래ㆍ현재는 언설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문] 선(善)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선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선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자체적인 성품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모양에 속하기 때문이고, 가까이 따르기 때문이고, 일어나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제일의(第一義)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생득(生得)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가행(加行)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현전의 공양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이익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잘 이끌어 보호하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대치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적정(寂靜)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등류(等流)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것이 선의 이치이니, 5온ㆍ10계ㆍ4처의 일부분이 선에 해당된다. 법의 합성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선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자체적인 성품의 선법입니까?
[답] 신(信) 등의 11종류의 심소법이다.
[문] 어떠한 것이 모양에 속하는 선법입니까?
[답] 그것과 상응하는 법이다.
[문] 어떠한 것이 선법에 가까이 따르는 것입니까?
[답] 바로 제법(諸法)의 습기(習氣)이다.
[문] 어떠한 것이 선법을 일으키는 것입니까?
[답] 그것이 신업(身業)ㆍ어업(語業)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제일의(第一義)의 선법입니까?
[답] 진여(眞如)를 말한다.
[문] 어떠한 것이 생득선(生得善)입니까?
[답] 예전에 한결같이 익힌 것에 연유해서 이와 같은 과보를 성취하는 것을 가리킨다. 자체적인 성품에 연유해서 이 같은 처(處)에 태어나서 사유하지 않고도 자유로이 경계에 따라[任運] 즐거움에 머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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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어떠한 것이 가행선(加行善)입니까?
[답] 선지식에 가깝게 의지하기 때문에 정법을 듣고 실답게 작의(作意)하되, 청정한 선법을 수습하여 법에 따라 행하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현전공양선(現前供養善)입니까?
[답] 마음속으로 여래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 사리탑이나 탱화를 그리는 것을 말한다. 또는 정법만을 생각하여 법장(法藏)을 써서 베끼거나 공양을 베푸는 업이기도 하다.
[문] 어떠한 것이 이익선(利益善)입니까?
[답] 4섭사(攝事)로서 일체 유정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선법으로 보호하고 이끄는 것입니까?
[답] 보시의 성품도 복업을 짓는 일이고, 계율의 성품도 복업을 짓는 일이기 때문이다. 잘 이끌고 보살펴서 천상에 태어나 그 즐거움을 이숙(異熟)시키는 것이고, 잘 이끌고 보살펴서 편안한 가문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고, 잘 이끌고 보살펴서 청정한 법에 순종케 하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선법의 대치입니까?
[답] 염괴대치(厭壞對治)ㆍ단대치(斷對治)ㆍ지대치(持對治)ㆍ원분대치(遠分對治)ㆍ복대치(伏對治)ㆍ이계대치(離繫對治)ㆍ번뇌장대치(煩惱障對治)ㆍ소지장대치(所知障對治)이다.
[문] 어떠한 것이 적정선(寂靜善)입니까?
[답] 탐욕을 영구히 끊는 것이고, 노여움[瞋恚]을 영구히 끊는 것이고, 어리석음[癡]을 영구히 끊는 것이고, 일체 번뇌를 영구히 끊는 것이니, 상(想)과 수(受)가 소멸하는 것이거나 유여의열반계(有餘依涅槃界)이거나 무여의열반계(無餘依涅槃界)이거나 무소주열반계(無所住涅槃界)를 가리킨다.
[문] 어떠한 것이 등류선(等流善)입니까?
[답] 적정을 이미 성취한 이가 이것에 연유하여 그 세력이 증상(增上)되는 까닭에 신통력이나 세간(世間)ㆍ출세간(出世間)의 공공덕(共功德)과 불공공덕(不共功德)의 승품(勝品)을 일으키는 것이다.
[문] 불선(不善)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불선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불선이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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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자체적인 성품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모양에 속하기 때문이고, 가까이 따르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일어나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제일의(第一義)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생득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가행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현전의 공양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손해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잘 이끌어 보호하기 때문이고, 소치(所治)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장애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것이 불선법의 이치이니, 5온ㆍ10계ㆍ4처의 일부분이 불선법에 해당된다. 비법(非法)의 합성이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불선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자성불선(自性不善)입니까?
[답] 염오가 의(意)와 상응하는 것 및 색계와 무색계의 번뇌 등을 제외한 그 나머지의 악행을 능히 발동하는 번뇌와 수번뇌(隨煩惱)를 가리킨다.
[문] 어떠한 것이 상속불선(相續不善)입니까?
[답] 이같이 번뇌와 수번뇌가 상응하는 법이다.
[문] 어떠한 것이 수축불선(隨逐不善)입니까?
[답] 바로 그것의 습기를 말한다.
[문] 어떠한 것이 발기불선(發起不善)입니까?
[답] 바로 그것에서 일어나는 신업과 어업이다.
[문] 어떠한 것이 제일의불선(第一義不善)입니까?
[답] 일체의 유전(流轉)을 가리킨다.
[문] 어떠한 것이 생득불선(生得不善)입니까?
[답] 한결같이 불선을 익힌 것에 기인해서, 이 같은 이숙을 감득(感得)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자체적인 성품에 연유한 불선에 처해서 자유로이 경계에 낙주(樂住)하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가행불선(加行不善)입니까?
[답] 어질지 못한 사람과 서로 의지하고 가까이하는 까닭에 바르지 못한 법을 듣고 실답지 못하게 작의하여 신ㆍ어ㆍ의의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현전공양불선(現前供養不善)입니까?
[답] 많은 천신(天神)의 무리 가운데에서 그 어느 하나에 귀의하는 것을 상(想)의 대경(對境)으로 삼는 것이다. 또는 해치려는 생각[意]을 앞세우거나 사악한 생각을 앞세워 사당이나 묘당을 세우고 널리 공양을 베푸는 업이다. 한없는 중생에게 널리 복이 아닌 것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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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어떠한 것이 손해불선(損害不善)입니까?
[답] 일체의 처에서 신ㆍ어ㆍ의의 갖가지 삿된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인섭불선(引攝不善)입니까?
[답] 신ㆍ어ㆍ의로 온갖 악행을 저질러서 악도에 있거나 선도에 있거나 잘못 이끌어 보살펴서 그 불애과(不愛果)를 이숙시키는 인업(引業)이나 만업(滿業)을 가리킨다.
[문] 어떠한 것이 소치불선(所治不善)입니까?
[답] 여러 가지 대치에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장애불선(障碍不善)입니까?
[답] 모든 선품(善品)의 법에 장애가 되는 것이다.
[문] 무기(無記)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무기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무기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자체적인 성품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모양에 속하기 때문이고, 가까이 따르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일으키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승의(勝義:第一義)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생득(生得)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방편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현전의 공양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이익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수용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잘 이끌어 보살피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대치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적정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등류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것이 무기의 이치이니, 8계 8처 전부와 그 밖의 온ㆍ계ㆍ처의 일부분이 무기에 해당한다. 8계란 5색근계(色根界)와 향계ㆍ미계ㆍ촉계를 말하는 것으로 8처 또한 이와 같다. 법과 비법을 여윈 것이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무기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자성무기(自性無記)입니까?
[답] 여덟 가지 색(色)ㆍ계(界)ㆍ처(處)에서의 의(義)ㆍ상응(相應)ㆍ품(品)ㆍ
명근(命根)ㆍ중동분(衆同分)ㆍ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 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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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어떠한 것이 상속무기(相續無記)입니까?
[답]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마음을 품는 것으로, 일체의 명신ㆍ구신ㆍ문신에 섭수되는 심ㆍ심소의 법이다.
[문] 어떠한 것이 수축무기(隨逐無記)입니까?
[답] 희론의 습기를 가리킨다.
[문] 어떠한 것이 발기무기(發起無記)입니까?
[답] 섭수되는 모든 심ㆍ심소의 법에서 일어나는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이다.
[문] 어떠한 것이 승의무기(勝義無記)입니까?
[답] 허공(虛空)과 비택멸(非擇滅)이다.
[문] 어떠한 것이 생득무기(生得無記)입니까?
[답] 온갖 불선법에서 유루선법의 과보가 이숙되는 것을 가리킨다.
[문] 어떠한 것이 방편무기(方便無記)입니까?
[답]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닌 마음에서의 모든 위의로법(威儀路法)과 공경처볍(恭敬處法)을 가리킨다.
[문] 어떠한 것이 현전공양무기법(現前供養無記法)입니까?
[답] 많은 천신의 무리 가운데에서 그 어느 하나에 귀의하는 것을 상의 대경으로 삼는 것이다. 또는 죽이거나 해치려는 생각을 앞세우거나 사악한 생각을 멀리 떠나서 사당이나 묘당을 세우고 널리 공양을 베푸는 것이니, 무량한 중생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처소에서 복을 늘리지 못하는, 소위 복이 아닌 것을 가리킨다.
[문] 어떠한 것이 요익무기(饒益無記)입니까?
[답] 있는 그대로 한결같이 자신의 종복이나 처자 등에 대한 선도 악도 아닌 마음에서 은혜로운 보시를 행하기 때문이다.
[문] 어떠한 것이 수용무기(受用無記)입니까?
[답]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는 염착되지 않은 마음에서 생필품을 받아쓰는 것을 가리킨다.
[문] 어떠한 것이 인섭무기(引攝無記)입니까?
[답] 그 있는 그대로 공교처(工巧處)에서 기술을 익힌 까닭에 내세에 다시 이와 같은 모양을 지닌 신체를 인섭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같은 신체에 연유해서 공교처에서 속히 그 구경을 익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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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어떠한 것이 대치무기(對治無記)입니까?
[답] 있는 그대로 질병을 치료하여 안락함을 얻기 위한 까닭에 좋고 나쁨을 가리는 마음으로 약물을 잘 복용하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적정무기(寂靜無記)입니까?
[답] 색계와 무색계의 모든 번뇌 등이 사마타(奢摩也:禪定)에 기인한 섭수로써 굴복되기 때문이다.
[문] 어떠한 것이 등류무기(等流無記)입니까?
[답] 능변화심(能變化心)이 구생(俱生)하는 품지이다. 또 시현선불선무기법(示現善不善無記法)이 있다.
[문] 이것은 또 어떠한 것입니까?
[답] 부처님과 제일가는 구경(究竟)을 성취한 보살마하살이 여러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에서 유(有) 가운데로 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진실한 존재로서의 유일법(有一法)이란 없음을 숙지해야 한다.
[문] 욕계의 번뇌[繫]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욕계의 번뇌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욕계의 번뇌를 관찰하게 됩니까?
[문] 욕을 여의지 못한 자가 소유하는 선법ㆍ불선법ㆍ무기법을 가리킨다. 이 같은 것이 욕계의 번뇌의 이치이니, 4계 2처의 전부 및 그 밖의 온ㆍ계ㆍ처의 다른 일부분이 욕계의 번뇌에 해당된다. 욕계의 욕망을 여의지 못하는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욕계의 번뇌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색계의 번뇌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색계의 번뇌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색계의 번뇌를 관찰하게 됩니까?
[문] 욕계의 욕을 여의었으나 색계의 욕을 여의지 못한 자가 소유하는 선법ㆍ불선법ㆍ무기법이 색계의 번뇌의 이치이다. 앞에서 해설한 4계와 2처는 여기서 제외되었다. 4계ㆍ2처의 전부 및 여타의 온ㆍ계ㆍ처의 그 나머지의 일부분이 색계의 번뇌에 해당된다. 욕계의 욕망을 여윈 것이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색계의 번뇌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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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무색계의 번뇌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무색의 번뇌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무색계의 번뇌를 관찰하게 됩니까?
[답] 색계의 욕을 여의었으나 무색계의 욕을 여의지 못한 자가 소유하는 선법ㆍ불선법ㆍ무기법이 무색계의 번뇌의 이치이다. 4계ㆍ2처의 전부 및 그 밖의 온ㆍ계ㆍ처의 그 나머지 일부분이 무색계의 번뇌에 해당된다. 색계의 욕망을 여윈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무색계의 번뇌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일분이욕(一分離欲)ㆍ구분이욕(具分離欲)ㆍ통달이욕(通達離欲)ㆍ손복이욕(損伏離欲)ㆍ영해이욕(永害離欲)이 있고, 다시 열 가지 이욕이 있으니, 자성이욕(自性離欲)ㆍ손해이욕(損害離欲)ㆍ임지이욕(任持離欲)ㆍ증상이욕(增上離欲)ㆍ우치이욕(愚癡離欲)ㆍ대치이욕(對治離欲)ㆍ변지이욕(遍知離欲)ㆍ영단이욕(永斷離欲)ㆍ유상이욕(有上離欲)ㆍ무상이욕(無上離欲)이 있다.
[문] 어떠한 것이 자성이욕입니까?
[답] 고수(苦受) 및 순고수처(純苦受處)의 법에서 생겨난 것을 염대(厭對)하는 성품이다.
[문] 어떠한 것이 손해이욕입니까?
[답] 욕을 익혀 가는 자에게 번창한 열뇌(熱惱)의 이생(已生)을 염대하는 성품이다.
[문] 어떠한 것이 임지이욕입니까?
[답]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포식하고 난 다음의 이것을 염배(厭背)하는 성품이다.
[문] 어떠한 것이 증상이욕입니까?
[답] 숭처(勝處)를 성취하고서 하지(下地)의 열등한 처소에 대해 생겨나는 염대의 성품이다.
[문] 어떠한 것이 우치이욕입니까?
[답] 여러 범부가 열반계를 대하는 때에 생겨나는 염대의 성품이다.
[문] 어떠한 것이 대치이욕입니까?
[답] 세간의 출세간도에 기인하여 여러 번뇌를 끊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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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어떠한 것이 변지이욕입니까?
[답] 이미 견도를 성취한 이가 삼계의 법의 성품에 대해서 염배하는 성품이다.
[문] 어떠한 것이 영단이욕입니까?
[답] 각각의 품지 및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어 염배의 성품이 이미 생겨난 것을 가리킨다.
[문] 어떠한 것이 유상이욕입니까?
[답] 세간의 성문과 독각에게 있는 이욕을 가리킨다.
[문] 어떠한 것이 무상이욕입니까?
[답] 불보살의 모든 이욕을 가리킨다. 여러 유정이 이롭고 즐겁도록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문] 유학(有學)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유학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유학을 관찰하게 됩니까?
[답] 해탈을 구하는 이의 모든 선법이 유학의 이치이다. 10계ㆍ4처와 여러 온의 일부분이 유학에 해당된다. 해탈을 구하는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서 유학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무학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무학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무학이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답] 모든 학처(學處)에서 이미 구경을 얻은 이의 모든 선법이 무학의 이치이다. 이미 해탈한 것이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무학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유학도 아니고 무학도 아닌 것[非有學非無學]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비유학비무학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비유학비무학이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답] 여러 이생(異生)의 모든 선법ㆍ불선법ㆍ무기법과 여러 유학의 염오무기법(染汚無記法)과 여러 무학의 무기법 및 무위법이 비유학비무학의 이치이기에, 8계ㆍ8처의 전부와 나머지 온ㆍ계ㆍ처의 일부분이 비유학비무학에 해당된다. 해탈하지 못한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비유학비무학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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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견도(見道)에서 끊어지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이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답] 분별에서 일어나는[分別所起] 염오(染汚)ㆍ사견(邪見)ㆍ의심(疑心)ㆍ견처(見處)ㆍ의처(疑處) 및 사견 등에서 일어난 삿된 행위ㆍ번뇌ㆍ수번뇌 및 사견 등에 기인하여 발동된 신ㆍ어ㆍ의 3업 및 일체의 악취(惡趣) 따위의 온ㆍ계ㆍ처가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의 이치이다. 따라서 일체의 일부분이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에 해당한다. 그 견(見)이 원만한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문] 수도(修道)에서 끊어지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수도에서 끊어지는 것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수도에서 끊어지는 것이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답] 견도를 성취한 다음에, 그 견도에서 끊어지는 것과 배치되는 여러 유루법이 수도에서 끊어지는 것의 이치이기에, 일체의 일부분이 수도에서 끊어지는 것에 해당된다. 그 수행이 원만한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수도에서 끊어지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끊어지지 않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답] 순결택분(順決擇分)의 선법을 제외한 모든 무루법을 끊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10계의 4처와 모든 온의 일부분이 끊어지지 않는 것에 해당된다. 그 원만함을 이룬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끊어지지 않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문] 연에서 생기는 것[緣生]이란 무엇입니까? 또 몇 가지가 연에서 생기는 것입니까? 어떠한 이치에서 연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관찰하게 됩니까?
[답] 모양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분별지(分別支)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약섭지(略攝支)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지연(支緣)의 건립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지업(支業)의 건립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지분(支分)의 잡염에 포섭되기 때문이고, 이치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심오함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차별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순역(順逆)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연생의 이치에서, 일체가 모두 연에서 생기는 것에 해당되나, 오직 법처ㆍ법계의 일부분과 모든 무위법만이 제외된다. 무인(無因)이나 불평등인(不平等因)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기 위한 까닭에 연에서 생기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대승아비달마집론 > 대승아비달마집론 제2권 > 1. 본사분(本事分) ② > 46 - 55쪽
K.572(16-157), T.1605(31-663)
[46 / 159] 쪽
[문] 모양에서 기인하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답] 만들지 않는 연(緣)에서 생기기 때문이고, 상주하지 않는 것에서 생기기 때문이고, 세력이 연을 써서 생겨나기 때문이니, 이러한 것이 연에서 생기는 것의 모양이다.
[문] 어떠한 것이 분별지(分別支)입니까?
[답] 연에서 생겨나는 것을 분별하여 열두 가지로 나눈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그 열두 가지입니까?
[답] 무명(無明)ㆍ행(行)ㆍ식(識)ㆍ명색(名色)ㆍ6처(處)ㆍ촉(觸)ㆍ수(受)ㆍ애(愛)ㆍ취(取)ㆍ유(有)ㆍ생(生)과 노사(老死)이다.
[문] 어떠한 것이 약섭지(略攝支)에 기인하는 때문입니까?
[답] 능인지(能引支)ㆍ소인지(所引支)ㆍ능생지(能生支)ㆍ소생지(所生支)를 가리킨다. 여기서 능인지란 무명ㆍ행ㆍ식의 지분이고, 소인지란 명색ㆍ6처ㆍ촉ㆍ수의 지분이고, 능생지란 애ㆍ취ㆍ욕의 지분이고, 소생지란 생ㆍ노ㆍ사의 지분이다.
[문] 어떠한 것이 지연(支緣)의 건립에 기인하는 것입니까?
[답] 습기(習氣)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그 인발(引發)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사유(思惟)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구유(俱有)에 기인하기 때문이니, 이 같은 지연의 건립도 그 상응되는 바에 부수된다.
[문] 어떠한 것이 지업(支業)을 건립하는 것입니까?
[문] 무명(無明)에는 두 종류의 업이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유(有)에 처하도록 하는 우치(愚癡)이고, 두 번째는 행과 더불어 연을 만드는 것이다.
행(行)에도 두 종류의 업이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모든 취 가운데의 온갖 차별에 처하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식과 더불어 연을 만드는 것이니, 그 훈습에 연유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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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識)에도 두 종류의 업이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유정이 일체의 업에 얽어 매이도록 지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명색과 함께 연을 만드는 것이다.
명색(名色)에도 두 종류의 업이 있다. 첫 번째는 모든 유정의 자체를 거두는 것이고, 두 번째는 6처와 더불어 연을 만드는 것이다.
6처(處)에도 두 종류의 업이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유정의 자체(自體)를 원만하게 수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촉과 함께 연을 만드는 것이다.
촉(觸)에도 두 종류의 업이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경계를 받아쓰는 바에 따라 유전하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수와 함께 연을 만드는 것이다.
수(受)에도 두 종류의 업이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생사를, 그 받아쓰는 바에 따라 유전하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애(愛)와 함께 연을 만드는 것이다.
애(愛)에도 두 종류의 업이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유정을 이끌어 생사에 유전하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취와 함께 연을 만드는 것이다.
취(取)에도 두 종류의 업이 있으니, 첫 번째는 후유(後有)를 받아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유를 발동시켜 식을 받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유와 함께 연을 만드는 것이다.
유(有)에도 두 종류의 업이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유정의 후유가 현전하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생과 함께 연을 만드는 것이다.
생(生)에도 두 종류의 업이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유정의 명색ㆍ6처ㆍ촉ㆍ수가 차제에 따라 생겨나도록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노사와 함께 연을 만드는 것이다.
노사(老死)에도 두 종류의 업이 있으니, 첫 번째는 유정이 시분(時分)에 따라 달라진다고 헤아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유정의 수명이 달라진다고 헤아리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잡염(雜染)에 포섭되는 지분(支分)입니까?
[답] 무명이기도 하고 애이기도 하고, 취(取)이기도 하다. 이 같은 번뇌는 잡염에 의해 거두어지는 것으로, 행이나 식이나 유(有)와 같은 업도 잡염에 의해 거두어지는 것이다. 여타의 생(生)도 잡염에 의해 거두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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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어떠한 것이 이치[義]입니까?
[문] 무작(無作)이라는 이치이고, 원인이 된다는 이치이고, 유정을 여의었다는 이치이고, 의타기(依他起)라는 이치이고, 작용이 없다는 이치이고, 무상(無常)이라는 이치이고, 찰나에 존재한다는 이치이고, 그 인과의 상속에 끊어지지 않는다는 이치이고, 인과의 상사(相似)에 포섭된다는 이치이고, 인과의 차별이라는 이치이고, 인과가 결정된다는 이치이면서, 이 같은 연이 일어난다는 이치이기도 하다.
[문] 어떠한 것이 심오함입니까?
[답] 그 인의 오묘함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그 모양의 오묘함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생기는 것의 오묘함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머무는 것의 오묘함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전향의 오묘함에 기인하기 때문이니, 이 같은 것이 아주 심오함의 이치이다. 또 모든 연기법이 비록 찰나에 소멸된다 하더라도 머무름에 성취할 수 있고, 연을 작용하지 않더라도 유공용(有功用)으로 연을 성취할 수 있다. 유정의 이해 범위를 떠났더라도 유정이 성취할 수 있고, 만들지 않는 것이라도 여러 업의 과보를 훼손시키지 않고 성취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아주 심오한 이치라고 하는 것이다. 또 모든 연기법은 자체적으로 생겨나지도 않고 다른 것에 의해 생겨나지도 않고 함께 생겨나지도 않는다. 자작(自作)이 아니고 타작(他作)의 인에 의해서 생기는 것도 아닌 까닭에 아주 깊다고 하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차별입니까?
[답] 그 식이 생겨나는 것의 차별성[識生差別] 때문이고, 그 내신(內身)이 죽는 것의 차별성[內死生差別] 때문이고, 외부의 신체 따위가 생겨나는 것의 차별성[外殼等生差別] 때문이고, 이루어지고 없어지는 것의 차별성[成壞差別] 때문이고, 그 음식에 지지되는 차별성[食持差別] 때문이고,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을 분별하는 차별성[愛非愛趣分別差別] 때문이고, 그 청정함의 차별성[淸淨差別] 때문이고, 그 덕망의 차별성[威德差別] 때문이니, 이러한 것이 차별의 이치이다.
[문] 어떠한 것이 순(順)과 역(遊)입니까?
[문] 잡염에 순종하고 거스르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청정에도 ‘순’과 ‘역’이 있게 된다. 그리하여 연기가 순종하고 거스르는 이치를 해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