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김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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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12년 전 (김봉길님) - 주제: 예술문화계, 그 블루오션을 향한 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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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영합니다 (토론) 2012년 3월 26일 (월) 14:09 (KST)답변

예술문화계, 그 블루오션을 향한 小考[편집]

예술문화계, 그 블루오션을 향한 小考


19세기 후반. 외국 문화가 물밀 듯 유입되던 조선 말엽, 당시 우리 문화 환경은 스스로 힘을 가지고 외래 문화에 대항할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어떤 문화가 좋고 나쁨을 따질 일이 없이 조선의 정체성을 지키려 했던 선구자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묻히게 했다. 그 뒤를 이은 세계 추세의 제국주의 침략과 그 피해, 이념 전쟁의 끄나풀 3.8선, 그리고 민족 간의 6.25전쟁 등 역시 밖에서 불어 닥친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예술계는 우리 문화의 정통성을 유지함에 있어 불행의 벼랑과 계곡을 헤매야 했다.

1960년을 넘어서면서 우리 예술계 불행은 일부 독단적 형태의 정치 행위 수단으로 이어졌고, 그 담보로 경제 발전의 항해에 있어 우리 문화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한계의 절벽에 맞부딪히게 된다. 결국, 예술계 일각 곳곳은 본의 아니게 매도당하거나 저항하는 과정에서 서로 큰 상처를 입게 된 것. 필연적으로 시대 아픔을 극복하려는 밑바탕마다 예술 활동이 이분법적 저항으로 전개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물론 중진국 도약 과정에서 일부 지역에서는 저마다 각종 예술제나 문화제 등을 통해 자기 생활의 특유한 예술적 고유 색깔 갖기를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1980년대 중반을 정점으로 우리 예술계는 큰 변화를 맞는다. '예술과 문화'에 이른바 '민족'이란 단어가 강한 이념 색깔을 띠면서 우리 문화 지도를 흔든다. 우리 예술사의 한 부분을 장식하게 된 ‘학생운동’과 더불어 ‘민족예술’, ‘민중예술’ 등과 같은 용어가 일반화된 것. 이와 더불어 ‘순수예술’, ‘대중예술’이란 용어도 나타난다. 당연지사, 우리나라 민주주의 과정에서 일어난 예술계 변화의 한 양상으로서 우리 문화 정체성 변화에 많은 영향을 준 우리나라 역사의 큰 흐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분단국가라는 이름은 일부 예술인을 이념의 도구와 그 사용자로 끌고 간다. 물론 그 환경의 급변을 바라보는 상당수의 국민 시각은 ‘당혹스러움과 찬사’의 이중적 부조리 경향으로 발전되었다. 결국, 20세기를 마치면서 마치 예술계는 극단적 이분법으로 분류되는 염려로 비쳐졌다. 즉, 인간 사랑을 향한 예술 활동을 통하여 새로움을 분명하게 표현하려는 예술인들은 묵묵히 자기 창조에 더 열정을 쏟는 반면, 무엇보다도 사회 변혁을 먼저 외치는 예술인들은 통일의 현장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노력을 경주했던 것.

정권이 바뀌거나 경제 논리의 향방과 상관없이 예술인 스스로 화합된 모습을 견지하는 자세를 보일 때, 진정 '눈으로 보는 화합'과 '마음으로 연결된 배려'가 이루어지리라 믿고 싶다. 예술계마저 네 편 아니면 내 편으로 몸과 마음을 가르는 일을 떨치지 못한다면, 결국 예술적 창조와 국가발전에 있어 ‘스스로 자기 발목을 잡고 골목길 달리는 결과만 초래하리라’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정치적 논리에 의한 일방적인 판단은 서로 상처만 남길 것이요,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또 다른 상처를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예술인 몇몇이 담소를 나누면서, ‘국내 예술계의 상호 서먹한 관계를 해소하는 일은 예술인의 기본 자세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견제와 화합의 이중주가 되풀이되면서 생긴 양극화 현상을 이겨내는 공통분모 확인이 다시 시작되리라는 말이었다. 그 공감대 안에 ‘변화와 창조정신을 바탕으로 한 보수와 진보’ 가 ‘깨끗한 경쟁과 공동체 생존을 위한 협조’를 해야 하리라는 목소리가 컸었다. 그 목소리의 맨 꼭대기에는 새 예술계의 블루오션 확보가 대안의 하나라는 깃발이 펄럭였다. 서로의 깃발을 들고 골목길에서 큰 길로 나서 새로운 길로 가자는 것. 깃발엔 '지구환경공동체'라는 글자를 함께 쓰면서 말이다.

분명, 예술인은 서로 경쟁 상대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진정 예술인이란 그 경쟁 상대를 자기 자신에 국한시켜야 한다는 말을 믿고 싶은 것. 예술인 스스로 예술 행위 하나 하나를 자신의 최고 모습 중 하나로 승화하도록 겸손한 노력을 할 때 진정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즐거움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임을 다시 깊이 되새김질해 본다. --김봉길 (토론) 2012년 3월 26일 (월) 16:53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