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대 레녹스 백작 매슈 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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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스튜어트의 시신 앞에서, 손자 제임스 6세, 매슈와 마가렛 더글라스, 아들 찰스

매슈 스튜어트(Matthew Stewart, 1516년 9월 21일 - 1571년 9월 4일)는 스코틀랜드의 귀족이자 왕족이었다. 매슈 스튜어트의 손자이고 알렉산더 스튜어트의 후손이다. 그는 로버트 2세의 증조부인 제임스 스튜어트의 동생 본킬의 존 스튜어트의 후손이었다. 제임스 6세(영국의 제임스 1세)의 할아버지이다.

생애[편집]

헨리 7세 후손의 가계도, 가운데행 맨 오른쪽이 매슈

왕실인 스튜어트 왕가의 먼 방계로,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왕조의 첫 왕 로버트 2세의 종증조부 본킬의 존 스튜어트 경의 9대손이었다.

할머니 엘리자베스 해밀턴은 제임스 2세의 딸 메리 스튜어트의 딸로 제임스 5세는 모계로 7촌 아저씨뻘이었다. 또한 제임스 4세의 미망인이자 잉글랜드 왕 헨리 7세의 딸 마르그리트 튜더스코틀랜드아치볼드 더글러스의 딸 마르그리트 더글러스와 결혼하여 제임스 5세에게 의붓 매부가 되었다. 두 아들 헨리 스튜어트찰스는 어머니 쪽으로 튜더 왕가의 계승권을 확보하게 된다.

1543년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 왕자(에드워드 7세로 즉위)를 만나 영국과의 그리니치 조약을 체결하는데 참여하였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에서 영국의 왕위 계승 문제에 참여하게 되면서 조약은 깨진다. 그뒤 스코틀랜드 의회의 결의로 영국과의 전쟁이 터지자 러그 우잉 전투글래스고 뮤어의 전투에 참전하였다.

튜더 왕가 가계도

그는 아들 헨리 스튜어트제임스 5세의 딸 메리 스튜어트 여왕와 결혼시켰다.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결혼했다가 프랑수아의 사후 재혼 상대로 헨리 스튜어트가 낙점된 것이다. 그러나 평소 그는 메리 스튜어트 여왕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였고, 헨리 스튜어트와 메리 스튜어트 여왕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1567년에는 메리 스튜어트 여왕에 의해 아들 헨리 스튜어트가 처형당하고 만다.

1567년 스코틀랜드의 다른 귀족들과 함께 메리 스튜어트 여왕의 폐위와 유폐를 주도한다. 바로 메리 스튜어트 여왕은 전쟁을 선포한다. 그는 메리 스튜어트 여왕 및 그녀의 지지자들과 권력투쟁을 하는 한편 레녹스 백작이자 어린 손자 제임스 6세의 섭정으로서 정사를 보좌하였다.

1571년 9월 4일 헌틀리 백작 조지 고든(George Gordon), 파이슬리 경(Lord Paisley) 클로드 해밀턴(Claud Hamilton), 뷰크래치의 이리드(lairds of Buccleuch)와 페르네르스트(Ferniehurst) 등에 의해 암살되었다. 그의 작위는 왕이자 유일한 손자였던 제임스 6세가 계승하였다.

가계[편집]

  • 기타
    • 제임스 4세, 할머니 쪽으로는 외재종조뻘, 부계로는 19촌 아저씨
    • 제임스 5세, 할머니 쪽으로 7촌 아저씨, 부계로는 20촌 종형제뻘

관련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