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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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용(金雄鎔, 1962년 3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공학자이다.

4살 때인 그는 일본에서 8시간 동안의 지능검사를 통해 IQ 210을 기록해 1980년기네스북에 "세계 최고 지능 지수 보유자"로 등재되었다. 그러나, 그 어떠한 기록도 남아있지않아서 실제로 밝혀지지않았다. 그가 5살이 되었을 때에는 자국어 이외에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의 4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구구단을 배운 지 7개월 만에 미적분을 풀 수 있었다고 한다. 5살이었던 1967년 11월 2일, 일본후지 TV에 출연해 방청객들 앞에서 막힘없이 미적분을 풀어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방송에서 독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타갈로그어, 일본어, 한국어를 짓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출처 필요]

학력[편집]

생애[편집]

유년 시절과 미국 유학(1963~1978)[편집]

태어날 때부터 김웅용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두 조숙함을 보였다. 그는 생후 80일에 걸어다닐 수 있었고, 생후 100일에는 19개의 치아를 가지고 있었다. 이때 엄마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생후 6개월이 지났을 때는 간단한 문장을 말할 수 있었다. 만 2살이 되자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만 3살이 된 그는 한양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외국 기자들 주변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6개월 동안 합숙하며 같이 지냈다고 한다. 이때 자연스럽게 외국어에 익숙해지게 되었는데, 한 언어를 터득하는 데 걸린 시간은 1개월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만 4살의 나이에 한양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고, 그가 만 7살이었던 1970년에는 콜로라도 광업 대학교(Colorado School of Mines)에 청강생으로 입학한다. 그리고 1974년에 그곳에서 청강생으로 열물리학/핵물리학에 관한 박사공부를 한다. 그는 1978년에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사에서 선임연구원으로서 일을 계속한다. 후에 그는 나사에서의 생활이 지옥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나사가 수치분석에서 엄청난 재능을 보였던 그를 계산과 같은 단순 업무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으로의 귀환(1978~)[편집]

미국 생활에 환멸을 느낀 그는 대한민국에 돌아와서는 검정고시를 치른다. 그는 대한민국,1981년 충북 청주에 있는 명문 국립 충북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전공을 물리학에서 토목공학으로 바꾼 후 박사학위를 따게 된다.

2006년 그는 세계 3대 인명 사전 중 하나인 미국 《마퀴스 후즈 후 세계 인명사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3판과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가 선정하는 21세기 우수 과학자 2000에 이름을 올린다. 곧이어 미국인명연구소(ABI)의 21세기 위대한 지성에도 선정되었다. 또한 IBC의 토목 및 환경공학분야 ‘올해의 국제교육자’로도 뽑혔다. 그는 IBC의 종신 부이사장으로 선임되어 아시아를 대표하게 되었다. 2014년 1월까지 대한민국충북개발공사에서 근무하였으며 2012년 8월 28일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슈퍼스칼러(SuperScholar)'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10인'에 선정됐다.[1] 2014년 1월 14일자로 신한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약력[편집]

주석[편집]

  1. http://www.superscholar.org/smartest-people/

바깥 고리[편집]

참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