룀 스캔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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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8일 (금) 23:42 판

룀 스캔들은 1931년과 1932년 반(反)나치 세력이 나치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에른스트 룀의 동성애적 성적 지향을 공개한 사건이다.

배경

독일에서 가장 유명했던 게이 관련 시설이었던 엘도라도[1]의 1932년 모습

에른스트 룀(독일어: Ernst Röhm, 1887년 ~ 1934년)은 초기 나치당을 이끌었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독일의 공산주의자들과 나치에 반하는 세력들을 공격한 준군사조직 돌격대(독일어: Sturmabteilung 슈투르맙타일룽[*], SA)의 증진을 이끌었다.[2] 또한 후에 독일의 독재자가 되는 아돌프 히틀러의 친구였으며, 맥주 홀 반란이라고도 불리는 뮌헨 폭동에 가담하여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3] 1924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입법부 하원으로 선출되어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긴 룀은 엘도라도 나이트클럽을 비롯하여 동성애자 시설에 자주 방문했다.[4] 1929년에는 동성애자 협회였던 인권을 위한 연합(독일어: Bund für Menschenrecht 분트 퓌어 멘셴레히트[*])[4][5]에 입단하면서 베를린의 동성애자 공동체에 존재를 알렸다.[2][6] 룀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기는 것을 싫어했으며,[4] 공식적으로 언급을 피하는 대신 성적 지향을 공개하다시피 행동했다.[7] 1925년에는 매춘부로 고용한 남성이 돈을 갈취하였고, 룀은 경찰에 매춘부를 신고했다. 히틀러는 해당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4][5][8]

룀과 하임조트의 편지

1928년, 동성애자이자 민족주의자 의사였던 카를-귄터 하임조트는 룀의 자서전 《대(大)반역자 이야기》(독일어: Die Geschichte eines Hochverräters)의 한 구절에 의문을 제기하는 편지를 부쳤다.[9][10] 저서에서 룀은 보수와 부르주아적 도덕성을 비난하면서 "오늘날 사회의 가식, 기만, 위선에 대한 투쟁은 요람에서 인간들에게 놓인 추진력의 선천적 성질에서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중략) 이 분야에서 투쟁하는 것이 성공하게 된다면, 가면은 인간 사회와 법질서의 모든 영역에서 이화(異化)되어 찢어질 수 있다."라고 적었다.[6][11][12] 룀은 부르주아적 도덕성이 자살의 원인이라고 제시하였으나,[13][14] 다른 나치당원들은 룀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다.[15][16]

하임조트는 룀에게 구절을 쓴 의도가 남성 간의 성관계를 금지하는 독일 형법 175조를 비판하기 위해서인지 물었다. 룀은 이에 "당신이 나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회신하면서[6][10] 처음에는 조금 더 노골적으로 쓰고 싶었으나,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해당 구절을 수정하였다고 언급했다.[17][18] 룀과 하임조트는 서로 친구가 되었으며 베를린 내 동성애자들이 만나는 장소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6][19] 룀은 1928년 볼리비아에 군사 고문으로 일하기 위해 이민을 갔고, 둘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냈다.[9] 둘은 동성애와 나치즘이 양립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하임조트는 룀이 나치당을 이끌며 동성애를 받아들이길 바랐다.[20] 룀은 편지에 자신의 성적 지향에 관해 "동성 지향적"(gleichgeschlechtlich)이라는 명확한 단어를 사용하였으며, 동시에 여성에 대한 혐오가 있다고 적었다.[21][22][23]

동성애에 대한 정치적 견해

1928년, 나치당은 형법 175조에 대한 견해를 묻는 설문지에 "동성애를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우리의 적"이라고 선언하며 배척적인 반응을 보였다.[24] 나치의 정치인들은 동성애가 독일 국민들을 약화하기 위한 유대인의 음모라고 주장하였고, 권력을 쥐게 된다면 동성애자들을 살균시키겠다고 약속하였다.[25] 대다수의 나치당원들은 전통적인 도덕적 신념을 견지하였으며, 동성애자인 룀과 조력자들에 참을 수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26] 당시 동성애자임이 발각된 공무원이나 공직자들은 형법 175조에 위배되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해임되었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돌격대는 암묵적으로 동성애자들에게 포용적인 반응을 보였다.[27][28] 여기서의 관용은 SA가 지닌 남성적 이미지에 의문을 품지 않도록 신중하고도 공개적으로 밝혀지지 않는 선에서 유지되었다.[29] 룀은 사생활과 정계에서의 생활을 분리하려고 했지만, 역사학자인 로리 마르회퍼는 "대부분의 나치는 성행위와 같은 사적 문제를 공적이고 정치적으로 받아들였다"고 언급하였다.[30][31] 전기 작가 엘레너 핸콕은 "만약 룀이 조금이라도 혁명가 기질이 있었다면, 그는 국가사회주의와 독일 사회에 있는, 다른 남성을 탐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를 혁명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라고 표현했다.[32]

독일 사회민주당독일 공산당은 형법 175조를 폐지하는 데 찬성하였지만, 정적(政敵)의 반동성애 성향을 비난하기 위해 기회주의적으로 이용하였다.[33][34][35] 당시 사람들은 이 접근법의 모순에 주목하였다.[36] 나치즘의 부상에 직면한 사민당과 공산당원들은 이전에 동성애와 관련된 스캔들이었던 오일렌부르크 사건 생긴 고정관념으로 하여금 나치와 군국주의를 연관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1927년 사민당 의원들은 빌헬름 프리크가 동성애에 대한 가혹한 처벌에 대해 언급한 후 "히틀러,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오일렌부르크!"[a]라고 야유를 보냈다.[37]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 옹호자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치의 권력 탈취를 저지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룀 스캔들을 일으켰다.[38][39]

과정

룀의 독일 귀국

1930년 11월 히틀러의 요청으로 독일로 역이민을 하게된 룀은 1931년 1월 5일 돌격대의 참모총장으로 임명됐다.[40][41] 당시 많은 사람들은 참모총장은 나치 운동에서 두 번째로 영향력 있는 직위로 생각했지만,[41] 룀의 지위는 동성애로 인해 약화되었으며, 히틀러의 개인적 지지에만 의존하였다.[42] 전임 참모총장이었던 프란츠 폰 페퍼는 "아마도, 그가 가진 성향 때문에 (중략) 언제든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공격 지점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하였다.[8]

일부 돌격대원들은 룀의 임명이 돌격대가 나치당의 정치 조직으로서 종속되는 것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면서 처음부터 반대 의견을 보냈다. 결국 룀의 동성애는 조직 개혁에는 반대하나 지도자원리에 의해 나치즘과 결별하지 않고서는 히틀러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없는 사람들에 둘러싸이게 되었다.[41] 2월 3일, 히틀러는 돌격대가 "고위층 딸들을 교육하기 위한 학교가 아닌 거친 전사들로 이루어진 학교"라고 얘기하며 룀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였다.[43][44] 히틀러는 나치당원이 나치즘의 기본원칙에 반하는 경우에만 사생활을 우려한다고 말하였다.[45][43] 베를린의 돌격대 지도자 발터 슈테네스는 돌격대 지도부에 반기를 들고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은 "룀과 푸펜융겐(남성 매춘부) 밑에서는 절대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46] 이에 히틀러는 "돌격대는 여자 기숙학교가 아니다"라며 슈테네스의 거절을 일축시켰다.[47] 룀이 오랜 친구들을 돌격대의 주요 직책에 배치한 것에 룀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분노하였지만, 대중적인 인식과는 달리 당시 모든 이들이 동성애자였던 것은 아니며, 성적 문제보다는 충성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임명된 것이었다.[48]

1931년 2월 히틀러가 슈테네스를 베를린 돌격대 두 명의 동성애자 의심자였던 에드문트 하이네스와 카를 에른스트를 추천한 폴 슐츠로 대체하면서 룀에 대한 내부의 반발이 거세졌다. 에른스트가 나치당원이나 돌격대 소속이 아닌 룀의 친구인 폴 뢰르바인과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승진하였다는 루머가 존재하기도 했다. 많은 베를린 내 돌격대 요원들은 임명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룀-뢰르바인-에른스트 삼국 동맹"을 언급하며 동성애 집단으로 인식되는 것을 불평하였다. 룀의 반대파들은 "베를린당 동지들의 대규모 집단이 동성애 클럽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고 부정확한 사실을 주장했고,[26] 이러한 소문이 좌파 언론에 노출된 것에 만족하였다. 6월 26일, 발터 베르크만이라는 이름의 나치당원이 에른스트와 뢰르바인이 함께 있던 베를린의 펍에서 체포되었다. 베르크만은 "여기 당의 기생충들을 봐, 이 푸펜융겐들, 당의 명성을 지옥으로 보낼 이 망할 똥꼬충들을"이라고 소리쳤다.[26] 룀이 하임조스에게 보낸 편지 중 하나에 당이 "나의 범죄적인 별남에 익숙해졌다"고 썼지만,[18][42] 마르회퍼는 이것이 "광기적인 낙관주의 또는 자기 망상"이라고 결론지었다.[42]

룀의 이중생활은 높은 인지도와 증가하는 나치당의 인기에 직면하며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전보다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동성애 클럽에 가는 것을 지양했다.[49][50] 룀의 친구였던 피터 그라닝거는 16살에서 20살 사이의 젊은 남성을 구한 뒤 성적인 만남을 위해 자신과 카를 레온 두 모울린-에카르트(독일어: Karl Leon Du Moulin-Eckart)가 함께 소유했던 아파트로 데려왔다.[8] 1931년 4월, 뮌헨의 실직한 웨이터였던 프리츠 레이프가 그를 협박하려 했을 때 언론에 보도되었다.[39][49][50] 1931년 초 신문에서는 동성애를 언급하기 시작했고, 나치의 선전가였던 요제프 괴벨스는 2월 27일 자신의 일기에 나치당이 "175들의 엘도라도"로 가고 있다고 적었다.[49][50]

각주

내용주

  1. 원문: "Hitler, heil, heil, heil. Heil Eulenburg!"

참조주

  1. Whisnant 2016, 92쪽.
  2. Whisnant 2016, 206쪽.
  3. Marhoefer 2015, 150쪽.
  4. Marhoefer 2015, 151쪽.
  5. Schwartz 2019, 166쪽.
  6. Marhoefer 2015, 153쪽.
  7. Hancock 1998, 628쪽.
  8. Hancock 1998, 631쪽.
  9. Marhoefer 2015, 150, 153쪽.
  10. Hancock 1998, 624–625쪽.
  11. Schwartz 2019, 162–163쪽.
  12. Hancock 1998, 623–624쪽.
  13. Schwartz 2019, 167쪽.
  14. Hancock 1998, 623쪽.
  15. Zinn 2018, 246–247쪽.
  16. Hancock 1998, 634쪽.
  17. Schwartz 2019, 166–167쪽.
  18. Hancock 1998, 625쪽.
  19. zur Nieden 2005, 155쪽.
  20. Marhoefer 2015, 154쪽.
  21. Marhoefer, Laurie (2018년 6월 19일). “Queer Fascism and the End of Gay History”. 《NOTCHES》. 2021년 12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1년 12월 28일에 확인함. 
  22. Marhoefer 2015, 151, 154쪽.
  23. Hancock 1998, 626쪽.
  24. Marhoefer 2015, 151–152쪽.
  25. Marhoefer 2015, 152쪽.
  26. Zinn 2018, 248쪽.
  27. Herzer 1995, 214쪽.
  28. Wackerfuss 2015, 93–94쪽.
  29. Wackerfuss 2015, 93–94, 185쪽.
  30. Marhoefer 2015, 170쪽.
  31. Hancock 1998, 624, 635쪽.
  32. Schwartz 2019, 184쪽.
  33. Oosterhuis 1995, 228쪽.
  34. Whisnant 2016, 33쪽.
  35. Tamagne 2007, 290쪽.
  36. Hancock 1998, 630쪽.
  37. Dillon 2018, 390쪽.
  38. zur Nieden 2005, 173쪽.
  39. Göllnitz 2021, 226쪽.
  40. Marhoefer 2015, 150–151쪽.
  41. Wackerfuss 2015, 175쪽.
  42. Marhoefer 2015, 155쪽.
  43. Zinn 2018, 247쪽.
  44. Wackerfuss 2015, 175–176쪽.
  45. Schwartz 2019, 163쪽.
  46. Schwartz 2019, 169쪽.
  47. Schwartz 2019, 169–170쪽.
  48. Wackerfuss 2015, 176쪽.
  49. Marhoefer 2015, 156쪽.
  50. zur Nieden 2005, 165쪽.

참고 자료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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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ur Nieden, Susanne (2005). 〈Aufstieg und Fall des virilen Männerhelden. Der Skandal um Ernst Röhm und seine Ermordung〉 [The rise and fall of the virile male hero. The Ernst Röhm scandal and his murder]. 《Homosexualität und Staatsräson. Männlichkeit, Homophobie und Politik in Deutschland 1900–1945》 [Homosexuality and raison d'état. Masculinity, homophobia and politics in Germany 1900–1945] (독일어). Campus Verlag. 147−192쪽. ISBN 978-3-593-377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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