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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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망(李台望, 1653년 9월 9일 - 1728년 9월 7일)은 조선 후기의 무신, 군인으로 병마절도사 충장공 이복남의 증손이다. 본관은 우계(羽溪)이고 자(字)는 현경(鉉卿)이다. 다른 이름은 태망(太望)이다. 1676년(숙종 2년)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벼슬은 절충장군 수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생애

본래는 이복남의 손자이자 이경수의 아들 이흥우(李興雨)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숙부뻘 되는 호조참의 이세구(李世龜)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이복남의 아들 이경여의 아들 이세구는 해주최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없었고 사촌 이흥우의 아들 태망을 양자로 들였다.[1]

1676년(숙종 2년) 무과에 급제 1680년 보사원종공신(保社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그 뒤 1682년(숙종 3년) 도정부장(都政部將), 1681년 오위도총부 경력, 1682년(숙종 8년) 훈련원 부정, 1683년(숙종 9년) 창원부사로 임명되었다. 1688년 명천부사, 그 해 태안군수, 1694년(숙종 20년) 삭주부사(朔州府使), 1696년(숙종 22년) 정주목사, 1701년(숙종 27년) 장연부사, 1706년(숙종 29년) 부산첨사로 나갔다가 우림위장(羽林衛將)이 되었다. 1709년(숙종 35년) 호위위장, 1710년(숙종 36년) 자성부사, 1712년(숙종 38년)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로 발령되었다.

1718년(숙종 44년)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723년(경종 3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나갔다.

병마절도사 재직 중 1724년 진주 촉석루(矗石樓)를 중수하였다.[2]1728년 9월 7일 75세로 사망했다.

사후

묘는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북운리 양좌에 매장되었다가 1994년 3월 17일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지곡리 산 2번지 인좌로 이장했다. 묘지는 계비 능성구씨와 합장되었고, 본부인 남원윤씨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내곡리(현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에 안장되었다.

가계

  • 고조부 이준헌
  • 고조모 전주이씨, 병마절도사 이구침의 딸
  • 고조모 평산신씨, 신직의 딸
  • 증조부 이복남, 충장공
  • 증조모 청주한씨, 한곤의 딸
  • 생 조부 이경수, 숙부 인남의 양자로 입양, 출계하였다.
  • 양 조부 이경여
  • 친 아버지 이흥우
  • 양 아버지 이세구(1614.11.10 - 1697.2.8)
  • 양 어머니 해주최씨(1613.7.17-1665.2.29), 찰방 최산휘(崔山輝)의 딸
  • 부인 숙부인 증 정부인 남원윤씨, 윤자의 딸, 1748년 6월 24일 - 1731년 7월 6일
  • 부인 숙부인 증 정부인 능성구씨, 부위전력 구섭(具涉)의 딸, 1652년 5월 9일 - 1727년 11월 14일
  • 아들 이봉지, 통덕랑
  • 아들 이봉채, 숭록대부 지중추부사
  • 아들 이봉래, 무과 통정대부 갑산부사,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주석

  1. 이흥우에게는 태망 외에도 문망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2. 운남선생의 여행기-진주성 답사기 함양뉴스 2009년 10월 28일자

관련 항목

참고 문헌

  • 숙종실록
  • 영조실록
  • 승정원일기
  • 비변사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