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오리 노리나가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년∼1801년)은 일본 에도시대의 국학자이다.
이세(伊勢) 지방 마쓰사카(松阪) 출신이다. 아버지는 에도에 점포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호상(豪商)이었으나 가운이 기울기 시작해 노리나가가 11세 때 병사했다. 가업을 이어받은 형마저 죽자,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해 1752년 교토(京都)로 상경한다.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의 영향을 입은 호리 게이잔(堀景山, 1688~1757)에게서 유학을, 무카와 고준(武川幸順) 등에게서 의학을 배운다. 그러던 중에 게이잔의 소개로 게이추(契沖, 1640~1701)의 저술을 접하고 고전 연구에 눈뜬다. 1757년 마쓰사카에서 소아과 병원을 개업하고 1763년 가모노 마부치(賀茂眞淵, 1697~1769)와의 만남을 계기로 국학에 입문하여 <고지키전(古事記傳)> 집필에 착수한다. 이 무렵부터 <겐지 이야기를 읽는 요령(紫文要領))>, <이소노카미노사사메고토(石上私淑言)>를 집필하는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기 시작해 1771년에는 복고사상(復古思想)의 총론이라 할 수 있는 <나오비노미타마(直毘靈)>를 출판한다. 1786년에 간행된 <가카이카(呵刈葭)>에 수록된 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 1734~1809)와의 논쟁도 유명하다. 1798년 35년간 몰두한 <고지키전>을 완성했다. 복고사상에 입각해 일본의 고대 정신을 규명하고자 평생을 바쳐 고전을 연구했던 사람으로, 그의 문하생은 전국에 걸쳐 500명에 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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