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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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일 (일) 17:24 판
최수성(崔壽城, 1487년(성종 18년) ~ 1521년(중종 16년)은 조선시대 전기의 학자이다. 자는 가진(可鎭), 호는 원정(猿亭), 북해거사(北海居士), 경포산인(鏡浦山人),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일찍이 학문을 연마하여 사림(士林)간에 명망 높은 학자가 되었으며 시문이나 서화, 음률, 수학에 모두 뛰어났다. 35살 때 신사무옥(辛巳誣獄)에 관련되어 억울하게 형장에서 죽었고 사후에 인종으로부터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받고 문정공(文正公)의 시호도 받았다. 전국의 명산(名山)을 찾아다니며 시작(詩作)과 서화에 심취했는데 그의 그림은 명나라 사신이 천하의 절보(絶寶)라고 극찬한 만큼 우수했다고 전하나 남은 있는 화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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