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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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직상(張稷相, 일본식 이름: 張元稷相 하리모토 지키쇼, 1883년 ~ 1959년)은 대한제국의 관료이며 일제강점기의 관료 겸 기업인,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관찰사 장승원의 아들이자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의 둘째 형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원적지는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인의리(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이다. 해방 후에는 기업인으로 활동하며 이천전기를 운영하였다.

생애[편집]

1903년 경기전 참봉, 1904년 감조관, 1910년 6월 경북 신령군수가 되었다.[1] 그는 한일합방 직후 신령군수를 사임하고 고향인 칠곡군 오태로 돌아갔다. 같은 해 10월 다시 신령군수가 되었다.[1]

1911년 비안군수, 1912년 하양군수, 1913년 선산군수(1913) 등을 거쳐 1915년 경상북도 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을 지냈다가 1916년 3월 관직을 그만두었다.[1]

1924년 2월 대구상업회의소 특별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2]

1926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를 지냈다. 해방 직후 동생 장택상이 미군정의 경무국장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던 중, 송진우 피살을 계기로 경찰계에 투신하자 만류하기도 했다.[3]

1949년 1월 반민특위에 기소, 구속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김준연에 의하면 이범석, 지청천, 오광선 장군 등이 그를 탄원하여 석방되었다 한다. 이후 이천전기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사후[편집]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기타[편집]

박정희의 아버지 박성빈과 둘째 형 박무희(1898 ~ 1960)는 그의 집안의 농토에서 소작농으로 있었다.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장승원(張承遠, 1852년 ~ 1917년, 칠곡의 갑부)
  • 부인 : 현부인 신안주씨 개성 출신 이조판서 주호성 차녀
    • 아들 : 장병찬(張炳贊)
    • 아들 : 장병진(張炳眞)
    • 아들 : 장병조(張炳朝)
    • 아들 : 장병호(張炳昊)
    • 아들 : 장병화(張炳和)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회원자료실[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 1924년 일본상업회의소의 과거와 현재(日本商業会議所之過去及現在) 제3편 각론 중 570~574page
  3. 장택상, 대한민국 건국과 나 (창랑장택상기념사업회,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