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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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상(張吉相, 1874년 ~ 1936년)은 조선말과 대한제국의 문신이며 일제강점기의 사업가이다. 경상북도 선산 출생이며 자는 치상(致祥)이고 호는 황재(黃齋)이다. 여헌 장현광의 후손. 형조판서 장석용의 손자이며 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아들이다. 장직상, 장택상의 형이다.

생애[편집]

대한제국 고종 때 사마에 합격하고 규장각 직각을 역임했다.[1],

장길상과 그의 형제들은 1912년 대구의 일본인 자본가들이 선남상업은행을 설립할 때 자본을 투자하여 금융자본가가 되었다. 이 무렵 대구정재학(鄭在學)이 중심인 된 한국인들이 일반은행인 대구은행을 설립할 때도 자본을 투자하여 대주주가 되었다.

지방의 일반은행 설립에 자본을 투자한 경험으로 1920년 4월 자신들이 소유한 자본을 투자하여 대구에 본사를 둔 경일은행(慶一銀行)을 직접 설립하였다. 이때 경일은행은 자본금 2백만 원, 대주주 250명에 총 4만주의 주식을 발행하였는데, 그 중 장길상이 7,283주를 보유하였다.

1936년에 사망하였으며 장길상의 사후 자본 활동은 장직상이 주관하게 되었다.[2]

가족[편집]

  • 아버지 장승원, 구한말 관찰사 역임
  • 아우 장직상
  • 아우 장택상, 대한민국에서 수도경찰청장 국무총리 역임
  • 아들 장병천
  • 아들 장병일(炳日)
  • 아들 장병인(炳寅)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 인동장씨 홈페이지 :::::::”. 2005년 2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7월 9일에 확인함. 
  2. 회원자료실[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