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일 (농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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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센터
개인 정보
출생1942년 2월 25일(1942-02-25)
사망1975년 5월 23일(1975-05-23)(33세)
전라남도 광주시 동성동 극락강변 철길[1]
국적대한민국
188cm[1]
선수 경력
고등학교경기고등학교[1]
대학교연세대학교[1]
클럽한국은행 농구팀
클럽 경력
국가대표팀
1962–1970[2]대한민국
지도자
1971–1976한국은행 농구팀

김영일(한국 한자: 金永一, 1942년 2월 25일 ~ 1976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이다. 1964년 하계 올림픽1968년 하계 올림픽 남자 토너먼트에 출전했다.[3]

생애[편집]

축구 선수인 아버지 김성간씨와 탁구 선수인 어머니 김연경씨 사이에서 자란 김영일 선수는 본래 고등학생 때까지 수영 선수, 빙상 선수 및 수구 선수,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하다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후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했다.[1]이후 국가대표팀까지 소집되면서 주장직을 맡으면서 1969년 아시아 남자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의 최초 우승과 1970년에 연속 우승을 거두는데 주역으로 활약하면 자신이 아시아 최고 센터임을 증명했다.[1]

1976년 자신이 감독으로 있던 한국은행 농구팀 지도를 앞두고 5월 23일 새벽 6시 경에 전라남도 광주시 동성동 극락강변 철길 옆 목초지 부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1]

수상[편집]

개인 수상[편집]

각주[편집]

  1. 기영노 (2020년 7월 21일). “스포츠 사건, 농구 천재 김영일의 의문의 죽음”. 미디어피아. 
  2. “한국농구대표팀 주장 김영일 선수 은퇴”. 경향신문. 1970년 7월 13일. 
  3. Evans, Hilary; Gjerde, Arild; Heijmans, Jeroen; Mallon, Bill. “Kim Yeong-il Olympic Results”. 《Olympics at Sports-Reference.com》. Sports Reference LLC. 17 April 2020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6 July 2018에 확인함. 
  4. “농협결정 국가대표급의 우수선농구선수 24명 고교생도 2명 뽑혀”. 경향신문. 1962년 11월 29일.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