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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에서의 제국 선포[편집]

배경[편집]

베르사유에서의 제국 선포(카를루스에에 위치한 1897년 카이저 빌헬름 기념비 기슭에 있는 그림)

독일 문제나폴레옹 전쟁 이후 "통일 독일에는 오스트리아포함할 것인가, 배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독일의 여러 국가들의 동맹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프로이센의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통일은 오스트리아를 배제해야만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다른 독일어권 국가들 뿐만 아니라 발칸 반도의 슬라브인들과도 영향을 주고받았었기 때문이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인해 프라하 협정이 체결되어 1815년 형성된 독일 연방이 해체되고 프로이센의 패권 하에 있는 독일 동맹 체제가 형성되었다.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한 후, 합스부르크에 희망이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스마르크는 1866년 8월 북독일 연방을 오스트리아를 배제하고 형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1년 뒤, 북독일 연방은 헌법을 제정하고 국가가 되었다.

1868년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 2세가 군사 쿠데타로 인해 폐위되었다.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의 레오폴트 왕자는 프로이센 수상 비스마르크의 지원을 받아 스페인의 왕위 계승 후보로 활동했다.

각주[편집]

한편 루스벨트와 그의 주요 보좌진들이 미국이 영국이나 소련보다 더 강력한 국가로서 전쟁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소련과 영국을 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러한 외교 정책을 펼쳤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1]

  1. Westad 2005, 5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