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실업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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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실업축구는 대한민국 실업축구의 1949년 시즌으로, 이 해에는 봄, 가을 두 차례의 서울시실업축구연맹전 및 그 사이에 서울시실업축구대회가 열렸다.

제1회 서울시실업축구연맹전(춘계 리그)[편집]

서울시실업축구연맹 주최로 1949년 5월 18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운동장에서 5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풀리그로 경기가 열렸으며, 전매국이 우승하였다.[1].

순위 경기
1 전매국 4 3 1 0
2 경성전기 4 2 1 1
2 상호은행 4 2 1 1
4 조선전업 4 1 1 2
5 교통부 4 0 0 4
1949년 춘계 서울시실업축구연맹전
전매국
첫 번째 우승

제2회 서울시실업축구연맹전(추계 리그)[편집]

서울시실업축구연맹 주최로 11월 27일 서울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원래 조선전업, 상호은행, 전매국, 경성전기 등 4팀이 참가할 예정이었으나[2], 조선전업과 전매국이 불참하고 교통부가 대신 참가하여 경성전기, 교통부, 상호은행 3팀으로 풀리그전을 치른 끝에 경성전기가 우승하였다[3].

경기 결과[편집]

1949년 11월 27일
상호은행 6-0 교통부 서울운동장
1949년 11월 27일
경성전기 3-0 상호은행 서울운동장
1949년 11월 27일
경성전기 교통부 기권 교통부

순위표[편집]

순위 경기
1 경성전기 2 2 0 0
2 상호은행 2 1 0 1
3 교통부 2 0 0 2
1949년 추계 서울시실업축구연맹전
경성전기
첫 번째 우승

제4회 서울시실업축구대회(컵대회)[편집]

대한축구협회 서울시지부 및 서울신문사 공동 주최로 8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4일간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다. 총 9개 팀[4](경성전기, 서울시청, 전매국, 조선전업, 상호은행(우리은행의 전신), 식산은행(산업은행의 전신), 주한미대사관직원팀, 조선서적, 교통부)이 토너먼트를 치르어 전매국, 조선전업이 공동 우승하였다[5][6][7][8].


1회전[편집]

1949년 8월 31일
경성전기 2-1 식산은행 서울운동장
심판: 이용수

2회전[편집]

1949년 9월 1일
전매국 9-1 조선서적 서울운동장
심판: 김영근
1949년 9월 1일
상호은행 2-1 서울시청 축구단 서울운동장
심판: 김덕준
1949년 9월 1일
조선전업 4-0 교통부 서울운동장
심판: 이시동
1949년 9월 1일
경성전기 경성전기 부전승 주한미국대사관 한인직원

준결승[편집]

1949년 9월 2일
전매국 3-0 상호은행 서울운동장
심판: ?
1949년 9월 2일
조선전업 2-0 경성전기 서울운동장
심판: ?

결승[편집]

1949년 9월 3일
조선전업 2-2 전매국 서울운동장
심판: 김성간
1949년 서울시실업축구대회
조선전업
전매국
공동 우승

각주[편집]

  1. “實業蹴球聯盟戰(실업축구연맹전)에 專賣局軍優勝(전매국군우승)”. 동아일보. 1949년 6월 5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 “秋期實業蹴球聯盟戰(추기실업축구연맹전)”. 동아일보. 1949년 11월 18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서울市實業蹴球聯盟戰(시실업축구연맹전)에 京城電氣軍優勝(경성전기군우승)”. 동아일보. 1949년 11월 29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4. 8월 26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조선피혁까지 합해서 10개팀이 참가할 예정이라고 되어있으나, 실제 경기 결과에 없는 것으로 보아 취소된 것으로 보인다.
  5. “實業蹴球大會人氣絕頂(실업축구대회인기절정) 十團體參加(십단체참가)로一日開幕(일일개막)”. 동아일보. 1949년 8월 26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6. “實業蹴球第二日戰績(실업축구제이일전적) 決勝戰(결승전)은今日擧行(금일거행)”. 동아일보.  다음 글자 무시됨: ‘1949-09-03’ (도움말)[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7. “서울시실업축구대회 전업과 전매 양군 우승”. 동아일보.  다음 글자 무시됨: ‘1949-09-05’ (도움말)[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8. “電業·專賣 양군 우승, 서울실업축구 폐막”. 자유신문. 1949년 9월 6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