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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예(KUMMOOYEH)[편집]

검무예협회로고

검무예는 대한민국에서 일성 정복수총재로부터 창시된 검술기법의 명칭이다.[편집]

검무예 탄생 배경[편집]

검무예의 최초 창시자는 일성 정복수총재(세계검무예연맹)이다.

그가 검무예를 창시하게 된 계기는 그가 검에 관심을 갔게 되었던 시기에 일제강점기와 6.25 남북전쟁으로 인해 전해지지 못해 맥이 끊겨버린 한반도의 검을 대신하여 오히려 이 땅을 강제점령하였던 일제가 남긴 검도-Kendo가 대한민국의 무도로 자리잡혀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한반도의 과거 백제는 검을 잘 쓰는 민족이라 불려 왔고 또 그 기술과 문화를 과거 일본에 전했던 것을 생각하며 가장 한민족의 방식에 가까우면서도 그러나 낡은 것은 삼가하고 더욱 발전시켜 수준이 높은 검술을 만들기에 노력하였다.

검무예 특징[편집]

그가 만든 검무예의 특징은 경쾌하고 빠른 쾌검이면서도 부드러우며, 동시에 차분히 절제된 것에 있으며 대표적으로 '정지법', '뿌림법', '흘림법'이 있고 칼의 방향전환에 있어서 그 흔들림을 최소화 하기 위해 칼면의 공간안에서 날을 바꿔 세워 사용하는 연타후리기 기술등에 있다.

지금 한국의 많은 진검술의 기법들과 심지어 명칭까지도 그 뿌리가 정복수총재의 기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나의 예로 과거 진검술의 그 기술이 부족하였던 타 검도 또는 검술 단체장과의 교류 또는 단체세미나등을 통하여 그는 그의 기법을 많은 곳에 전해 주었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기에 이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기에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인물이 적다.

또한 검무예는 그 검의 기법 그대로 검법과 교전법 그리고 진검베기에 그대로 적용이 가능하며, 기본후리기방법 따로 교전법 따로 진검베기용 자세가 따로 분리가 되는 타 검술과 차별화가 된다.

정복수 검무예, 장현규 검무예??[편집]

원래 검무예의 해외 보급을 위해 일을 맡았던 '장현규'는 어느세 본인이 검무예 창시자인 듯 활동하는 것으로 보이나, 그는 검무예의 창시자가 아니며,(장현규 본인 방식의 검무예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사용하는 도복 디자인도 애초의 본 협회의 디자인이며 본인이 원래 배운 해동검도 외의 동작은 정복수총재의 검무예를 기초로 하고 있었다.)

또한 일성 정복수총재에게 검무예를 깊게 배우지 못했으며 때문에 '직계제자'에 속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 부족한 부분을 결국에는 해동검도의 검법으로 매꾸고 있다. 검무예는 해동검도가 아니다.

검무예 기법과 독창성의 인정[편집]

정복수 총재의 검술 기법이 처음 선보여질 당시 일본의 진검술을 수련하고 있던 대표적 인물들로부터 일성 정복수총재가 정립한 검술은 지금까지의 검술 기법과는 전혀 다른 기법이라 인정하였고 또한 그것을 일본 현지의 선생들에게 한국에 이런 검술이 있다고 선보이고 싶어했다고도 전해진다.

그의 검술(검무예)는 당시 한국의 진검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짚단을 여러단 놓고 베는 다단베기의 최초 시도가 일성 정복수총재이며, 그 다단베기틀을 최초로 고안해 제작한 것도 일성 정복수총재이다.

검무예의 활동 과정[편집]

1989년 대한민국 최초 진검베기 동호회 '달빛서슬회'를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한 후에 1996년 '대한도법검도협회'를 설립하여 활동하게 된다.

이후 2004년 '대한이도류검도협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6년 한국해동검도연합회로 단체를 따로 설립하는데 이것은 당시 해동검도 지도자들이 일성 정복수총재의 검을 배우기 위해 모여들면서 그들의 원할한 도장 운영을 위한 이유이다. 정복수총재는 해동검도를 배운적도 가르친 적도 없으며 검무예와 해동검도는 전혀 다른 무예이다.

2013년 '대한이도류검도협회'에서 대한민국식 명칭을 고려하여 '사단법인 세계검무예연맹'으로 그 명칭을 변경하게 된다.

일본식 명칭 사용에 대한 역사적 배경[편집]

'이도류'라는 명칭 방식은 일본의 방식이다. 때문에 말이 많은데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인식되고 있던 명칭이 검술보다는 '검도'였으며 현대에 와서 한국식 분위기의 복식을 갖추고 있으나, 당시 복식도 일본의 도복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도류라는 명칭도 쌍검이라는 명칭보다 먼저 알려진 명칭이라 사용되어졌으리라 짐작을 한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것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사정이다. 하나의 예로 대한민국 전통 국악 중 가야금 전수자들이 각자의 근본을 표기할때 '류'라는 명칭으로 여전히 유파로 구분하고 있다.

관련링크[편집]

사단법인 세계검무예연맹 링크

일성 정복수총재 검무예 교본

Unesco icm 검무예 홍보영상

일성 정복수총재 시연영상

역사적 사건 기록과 자료 그리고 실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진짜와 가짜를 말없이 구분하게 만든다.[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