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나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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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나비얀
غزنویان
963년~1186년
 

국기
국기
수도가즈나
(963-1163)
라호르
(1163 1186)[1]
정치
정치체제세습군주제
술탄
977-997
1160-1186

와지르
998-1013
12세기

사부크티긴 (초대)
쿠스라우 말리크 (말대)


아불 하산 이스파라이니 (최초)
아불 마알리 나스랄라 (마지막)
역사
 • 설립중세
963년
 • 멸망1186년
지리
1029년 어림 면적3,400,000 km2
인문
공용어페르시아어[2][3]
공통어아랍어(신학어)
튀르크어(군사어)[4]
종교
종교수니파 이슬람교
힌두교(인도인들 다수)
기타
현재 국가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란
파키스탄 파키스탄
인도 인도
이전 국가
다음 국가
사파르 왕조
사만 왕조
마문 왕조
힌두 샤히
구르자라-프라티하라 왕조
합바리 왕조
구르 왕조
셀주크 제국

가즈나 왕조(페르시아어: غزنویان, 로마자: Ġaznaviyā), 가즈나비얀 또는 가즈나 제국은 977년부터 1186년까지 이란, 호라산, 인도 북서부를 지배했던 페르시아화된 튀르크계 이슬람 왕조이다.

왕조의 개창자 사부크티긴은 튀르크계 노예 장군, 즉 맘루크로서 사만 토후국 밑에서 일했으나, 그의 주인 알프 티긴이 죽자 가즈니의 총독으로 부임하여 왕조의 기반을 닦았다. 그의 아들 마흐무드는 왕조의 영토를 동쪽으로는 아무다리야 강, 인더스 강, 인도양 연안까지, 서쪽으로는 레이하마단까지 넓힘으로써 대제국을 건설했다.

마흐무드의 후계자 마수드 1세 통치 하의 가즈나 왕조는 1040년 단다나칸 전투의 패배 이후 셀주크 제국에게 호라산을 비롯한 서부 지역을 빼앗겼으며, 그 결과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북부로 영토가 급격히 축소되었다.

1151년, 바흐람 샤는 수도 가즈니를 구르 왕조의 알라 앗 딘 후세인에게 빼앗겼다. 이후 몇 번인가 도시를 되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갔으며, 결국 가즈나 왕조는 제 2의 도시였던 펀자브의 라호르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1186년, 라호르마저 구르 왕조의 무이즈 앗 딘 무함마드(무함마드 고리)에게 함락당하면서 가즈나 왕조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역사[편집]

배경[편집]

8~9세기 초까지 번영을 누리던 중동의 아바스 칼리파국은, 9세기 중반부터 점차 바그다드 정부가 주변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면서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제로서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서 아바스 왕조의 동방 영토, 즉 호라산·중앙아시아 일대에는 여러 반독립적인 토후국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819년 건국된 사만 왕조도 그 중 하나였는데, 그들은 자신의 조상을 사산 제국의 위대한 영웅이자 찬탈자 바흐람 추빈에서 추적했으며 10세기 초반까지 중앙아시아에서 상당한 세력을 구축했다. 사만 왕조는 그 근거지를 부하라에 두었는데, 이 곳은 북방의 대초원 지대와 상당히 근접해 있어 유목민들의 침입이 잦은 지역이었고, 따라서 사만 통치자들은 주변 지역에 방벽을 쌓고 소규모 군사 원정을 감행하여 이러한 위협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사만 왕조에 포로로 잡힌 튀르크계 유목민 출신의 노예들이 대거 유입되었는데, 이들은 주로 군인이나 광부로 착취되었다.

10세기 후반, 사만 왕조는 이미 쇠퇴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세지는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무력이 뛰어난 튀르크계 노예 병사들에게 점점 의존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동시대의 비잔티움 제국바랑기아인 또는 라틴인 용병들을 고용하거나, 이전의 로마 제국게르만족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고 포에데라티로 임명한 것, 그리고 아바스 칼리파국의 군부에서 튀르크계 장군들의 비율이 점차 높아진 현상 등과 연결될 수 있다.

이렇게 힘을 가지게 된 튀르크계 노예 군인, 이른바 '맘루크'들은 당대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 집단으로 부상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에도 손을 뻗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왕조를 세우려고까지 들었다.

961년의 사만 왕조. 호라산트란스옥시아나 등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지역이 맘루크계 장군들에게 장악당한 상태였다.

945년까지, 사만 왕조에서는 맘루크 군부가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왕은 명목상의 권력만 가진 허수아비로 전락해버렸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에 이란의 부와이흐 왕조이라크를 정복하고 아바스 칼리파를 괴뢰로 만들어버린 것과 유사했다.

맘루크 장군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 벌인 투쟁은 사만 왕조의 쇠퇴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980년대부터는 사만 왕조의 지방 총독들마저 중앙 정부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이 무렵 중앙아시아의 카라한 칸국트란스옥시아나를 침공하였다.

당시 사만 왕조의 명목상 신하였던 알프 티긴은 962년 가즈니를 정복한 뒤, 그곳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장악한 상태였다. 알프 티긴 사후인 977년, 알프 티긴의 부하였던 사부크티긴이 정권을 탈취하고 총독으로 등극했다.

군림[편집]

사부크티긴[편집]

가즈나 왕조의 창시자인 사부크티긴(페르시아어: سبکتگین)의 초기 생애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는데, 최근에는 그가 카를루크 출신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에 튀르크계 노예병사인 맘루크로 팔렸으나 나중에 가즈니 총독이 된 알프 티긴의 휘하에서 일하게 되었고, 962년 아프가니스탄계 토착 왕조인 라위크 왕조를 무찌르고 도시를 정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알프 티긴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아부 이샤크 이브라힘이 3년 동안 가즈나를 통치했고, 그 다음에는 알프 티긴의 전 맘루크였던 빌게 티긴이 권력을 잡았다. 빌게 티긴의 통치는 너무 가혹했고, 가즈니 시민들은 라위크 왕조의 아부 바크르 라위크를 다시 추대했다. 이때 아부 바크르는 힌두 샤히자야팔라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군대를 이끌었다. 사부크티긴은 가르데즈, 가즈니, 바미얀의 튀르크 병력들을 규합하여 이에 맞섰고, 라위크-힌두 연합군을 물리쳤다. 이후 병사들의 지지로 사부크티긴은 빌게 티긴을 대신하여 가즈니 총독이 되었다.

이 무렵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Lahore" Encyclopædia Britannica
  2. Homa Katouzian, "Iranian history and politics", Published by Routledge, 2003. pg 128: "Indeed, since the formation of the Ghaznavids state in the tenth century until the fall of Qajars at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century, most parts of the Iranian cultural regions were ruled by Turkic-speaking dynasties most of the time. At the same time, the official language was Persian, the court literature was in Persian, and most of the chancellors, ministers, and mandarins were Persian speakers of the highest learning and ability"
  3. "Persian Prose Literature." World Eras. 2002. HighBeam Research. (3 September 2012);"Princes, although they were often tutored in Arabic and religious subjects, frequently did not feel as comfortable with the Arabic language and preferred literature in Persian, which was either their mother tongue—as in the case of dynasties such as the Saffarids (861–1003), Samanids (873–1005), and Buyids (945–1055)—or was a preferred lingua franca for them—as with the later Turkish dynasties such as the Ghaznawids (977–1187) and Saljuks (1037–1194)". [1]
  4. C.E. Bosworth, The Ghaznavids:994–1040, (Edinburgh University Press, 1963), 134.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