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환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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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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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 |||
생년월일 | 1988년 3월 16일 | |||
출신지 | 서울특별시 | |||
사망일 | 2012년 12월 21일 | (24세)|||
신장 | 185cm | |||
체중 | 105kg |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
수비 위치 | 1루수 | |||
프로 입단 연도 | 2007년 | |||
드래프트 순위 | 2007년 7차 2라운드(두산 베어스) | |||
첫 출장 | KBO / 2007년 9월 9일 사직 대 롯데전 | |||
마지막 경기 | KBO / 2010년 9월 24일 잠실 대 넥센전 | |||
계약금 | 1억 원 | |||
경력 | ||||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 ||||
대륙간컵 | 2010 대만 | |||
이두환(李枓煥, 1988년 3월 16일 ~ 2012년 12월 21일)은 KBO 리그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1])의 내야수였다.
출신 학교[편집]
어린 시절[편집]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서울수유초등학교, 이수중학교, 장충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06년 세계 청소년대회에 참가하여 양현종과 이재곤 등과 함께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프로야구 선수 시절[편집]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2007년 두산 베어스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고, 원래 포수였으나 1루수로 전향했다. 2010년 퓨처스 올스타전 이전까지는 퓨처스 홈런 선두였으나, 그 후 1군으로 승격되면서 2군 홈런왕 타이틀을 당시 군 복무 중이었던 내야수 최주환에게 내주었다. 2010년 1군 13경기에 출장하여 가능성을 보여 주었고, 그 해 최종전이었던 잠실 넥센전에서는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하였다.[2] 이듬해 연습 경기에서 타구에 맞아 봉와직염에 걸려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수술 후 재활군에 머물렀다.
KIA 타이거즈 시절, 그리고 사망[편집]
2011년 11월 22일에 처음으로 시행된 2차 드래프트에서 KIA 타이거즈의 1순위 지명으로 이적하게 되었다.[3] 그러나 이적 후 뼈에 발생하는 암의 일종인 대퇴골두육종 판정을 받아 2012년 1월 25일 서울 노원구 원자력병원에서 왼쪽 대퇴골두 종양 수술을[4]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신고선수로 전환되어 전력 외로 밀렸다.[5] 의사는 환자가 활발하고 그래서 나을 거라고 했지만 암 세포가 점점 많이 늘어나 수술을 했다. 하지만 수술 경과가 좋지 않아 병세 악화로 왼쪽 다리 절단 수술을 받게 되면서 야구 선수로의 생명은 끝나게 되었고, 암 세포가 폐까지 전이된 끝에 2012년 12월 21일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오랫동안 투병하였던 원자력병원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25세[6]
양현종은 2013년 시즌을 앞두고 모자 왼쪽에 'DH'라는 이니셜을 새겼는데 이는 이두환의 약자이며, 이두환과 함께 먼저 떠나간 옛 동료들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호세 리마와 김동재 코치의 이니셜 옆에 붙였을 정도였다.[7] 이재곤도 그가 죽은 날에 '올해는 두환이를 생각해서라도 야구장에서 좋은 모습 보여 주자' 고 약속했다고 한다.[8]
각주[편집]
- ↑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실제로 활동한적이 없다.
- ↑ 두산 이두환, 생애 첫 4번 선발 출전 - 스포츠조선
- ↑ ‘KIA 이적’ 이두환 “친정 팀 두산 후회하게 될 것” - 아시아경제
- ↑ KIA 내야수 이두환 종양 수술 받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일간스포츠
- ↑ ‘두목곰의 침묵’과 두산의 위기 도래 - OSEN
- ↑ '암 투병' 이두환, 끝내 눈 감다 - 조이뉴스24
- ↑ 재기의 빛 밝힌 KIA 양현종 '4월의 사나이' 등극 - 스포츠서울
- ↑ '657일만의 승리' 이재곤, 약속 지켰다…"두환아 보고 있니" - O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