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토리우스파: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정동철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6번째 줄: 6번째 줄:
경교는 [[424년]]경부터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티나]] 지방 및 [[인도]]에까지도 전도되었다. 또 [[7세기]]에는 [[중국]]([[당 태종]] 때)에서 '''경교'''(景敎)라 불리었고, 그 교회를 파사사(波斯寺)라 불렀다. [[당 현종]](玄宗) 때에는 대진사(大秦寺)라 개칭하고, 각지에 이를 건립하여 교세를 제법 떨쳤다. 그 후 200년간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당 무종|무종]] 때 박해를 받아 쇠퇴하였다. 그러나 [[원나라|원조]]의 치하(治下)에서는 그 신앙이 다시 허락되어 신자와 교회가 증가하였고 그때는 예르게운(야리가온)이라 불리었다.
경교는 [[424년]]경부터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티나]] 지방 및 [[인도]]에까지도 전도되었다. 또 [[7세기]]에는 [[중국]]([[당 태종]] 때)에서 '''경교'''(景敎)라 불리었고, 그 교회를 파사사(波斯寺)라 불렀다. [[당 현종]](玄宗) 때에는 대진사(大秦寺)라 개칭하고, 각지에 이를 건립하여 교세를 제법 떨쳤다. 그 후 200년간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당 무종|무종]] 때 박해를 받아 쇠퇴하였다. 그러나 [[원나라|원조]]의 치하(治下)에서는 그 신앙이 다시 허락되어 신자와 교회가 증가하였고 그때는 예르게운(야리가온)이라 불리었다.
===경교 전래설===
===경교 전래설===
한국에는 당(唐)과 빈번한 문화적 교류를 가졌던 남북국시대에 경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특히 경교 유물인 '돌십자가' '십자무늬장식', '마리아상'이 발견됨으로써 남북국시대(8~9세기)에 이미 기독교가 한반도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ref>한국기독교박물관 안내책자(2009), 한국기독교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3.ssu.ac.kr{{깨진 고리}} </ref>.
한국에서는 당(唐)과 빈번한 문화적 교류를 가졌던 남북국시대(8~9세기) [[통일 신라]]에 경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경교 유물인 '돌십자가', '십자무늬장식' 등의 발견에 근거하고 있다.<ref>한국기독교박물관 안내책자(2009), 한국기독교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3.ssu.ac.kr{{깨진 고리}}</ref>.


==같이 보기==
==같이 보기==

2013년 1월 4일 (금) 02:29 판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 또는 경교콘스탄티노플네스토리우스(?∼451?)총주교를 시조로 하는 기독교의 일파이다.

그리스도론 논쟁

그리스도의 신격과 인격을 구별하는 그리스도 이성설(二性說), 마리아에게는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라는 호칭을 붙일 수 없다는 주장을 하여,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몰려 네스토리우스는 면직되어 리비아로 추방당했다.

동방 기독교

경교는 424년경부터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티나 지방 및 인도에까지도 전도되었다. 또 7세기에는 중국(당 태종 때)에서 경교(景敎)라 불리었고, 그 교회를 파사사(波斯寺)라 불렀다. 당 현종(玄宗) 때에는 대진사(大秦寺)라 개칭하고, 각지에 이를 건립하여 교세를 제법 떨쳤다. 그 후 200년간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무종 때 박해를 받아 쇠퇴하였다. 그러나 원조의 치하(治下)에서는 그 신앙이 다시 허락되어 신자와 교회가 증가하였고 그때는 예르게운(야리가온)이라 불리었다.

경교 전래설

한국에서는 당(唐)과 빈번한 문화적 교류를 가졌던 남북국시대(8~9세기) 통일 신라에 경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경교 유물인 '돌십자가', '십자무늬장식' 등의 발견에 근거하고 있다.[1].

같이 보기

주석

  1. 한국기독교박물관 안내책자(2009), 한국기독교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3.ssu.ac.kr[깨진 링크]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