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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측의 기록 중 소그디아 왕족의 성씨는 온(溫)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평강 공주와 결혼한 온달,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호위 무사였던 온군해도 소그디아 왕족 출신일 수도 있다. 또 다른 근거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통틀어서 온씨 성을 가진 사람은 온달과 온군해 두 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중국 측의 기록 중 소그디아 왕족의 성씨는 온(溫)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평강 공주와 결혼한 온달,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호위 무사였던 온군해도 소그디아 왕족 출신일 수도 있다. 또 다른 근거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통틀어서 온씨 성을 가진 사람은 온달과 온군해 두 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소그드인'''들은 8세기 [[신라]]와도 교역을 하였다. [[최치원]]의 '''속독'''(束毒)은 소그드인 탈춤을 묘사한 것이다. [[처용가]]의 처용이 서역인, 즉 소그드인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8세기 신라 음악이 서역인(소그드인)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라 시대에는 고유 음악을 '''향악'''(鄕樂), 서역에서 유래한 음악은 '''속악'''(俗樂), 중국 당나라의 음악은 '''당악'''(唐樂)이라고 불렀다. 통일신라 때에 [[최치원]]이 지은 향악잡영(鄕樂雜詠)에 "수만리를 걸어오느라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구나"라는 구절이 있는데, 북청사자놀이와 같은 서역에서 들어온 연희를 보고 지은 시구라고 한다. 본래 소그드인은 스키타이로 불렸는데, 그들도 신라처럼 금관 문화을 가지고 있었다.
'''소그드인'''들은 8세기 [[신라]]와도 교역을 하였다. [[최치원]]의 [[속독 (춤)|속독]](束毒)은 소그드인 탈춤을 묘사한 것이다. [[처용가]]의 처용이 서역인, 즉 소그드인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8세기 신라 음악이 서역인(소그드인)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라 시대에는 고유 음악을 '''향악'''(鄕樂), 서역에서 유래한 음악은 '''속악'''(俗樂), 중국 당나라의 음악은 '''당악'''(唐樂)이라고 불렀다. 통일신라 때에 [[최치원]]이 지은 향악잡영(鄕樂雜詠)에 "수만리를 걸어오느라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구나"라는 구절이 있는데, 북청사자놀이와 같은 서역에서 들어온 연희를 보고 지은 시구라고 한다. 본래 소그드인은 스키타이로 불렸는데, 그들도 신라처럼 금관 문화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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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4일 (월) 19:46 판

소그드인(Sogd人, 속특 粟特)은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를 근거지로 하는 이란계(系)의 주민이다.

개요

소그드인은 본래 "스키타이"라고 불렸다. 스키타이 (Scythian), 사쿠라 (Skudra), 소그디아 (Sogdian), 사카 (Saka) 라고도 한다. 소그드(Sogd)인은 이란계의 민족이었으며, 5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중국과 인도, 동로마 제국에 걸쳐 통상을 하였다.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소그드 문자을 여러 지역에 전파하였다. 중국에서는 속특(粟特)이라고 불렀다. 유럽에서는 특별한 명칭은 없으나 픽트족이 스키타이, 소그드인과 같은 민족으로 믿어 진다. 이들은 습성이 잔인하고 부녀자을 납치하는 문화가 있었고, 모계 중심 사회를 이루었다.

소그드인의 성씨 중 석(石)씨가 있는데, 오호 십육국(五胡 十六國)시대때의 후조(後趙)를 건국한 석륵 (石勒)이 갈족이고, 갈족은 이란계의 소월지(小月氏)에서 비롯되었다 하며, 석륵의 석씨가 소그드 (Sogd)라는 발음에서 비롯되었다 해 석륵은 소그드인으로볼 수도 있다.

소그드인 성씨로는 강(康), 사(史), 안(安), 조(曹), 석(石), 미(米), 하(何), 화심(火寻), 무지(戊地)라는 성씨가 있어 중국에서는 소무구성(昭武九姓)이라고 하였다. 당나라 현종 때 난을 일으킨 안록산이란계 소그드인이며, 어머니는 돌궐족이라고 한다. 소그드인은 당나라 현종 무렵에 발란을 일으켰으며, 반란이 진압된 후 동아시아로 대거 이주하였다. 5호 10국 시대에는 사토족을 비롯한 유목민족이 난립하기도 하였다.

중국 측의 기록 중 소그디아 왕족의 성씨는 온(溫)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평강 공주와 결혼한 온달,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호위 무사였던 온군해도 소그디아 왕족 출신일 수도 있다. 또 다른 근거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통틀어서 온씨 성을 가진 사람은 온달과 온군해 두 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소그드인들은 8세기 신라와도 교역을 하였다. 최치원속독(束毒)은 소그드인 탈춤을 묘사한 것이다. 처용가의 처용이 서역인, 즉 소그드인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8세기 신라 음악이 서역인(소그드인)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라 시대에는 고유 음악을 향악(鄕樂), 서역에서 유래한 음악은 속악(俗樂), 중국 당나라의 음악은 당악(唐樂)이라고 불렀다. 통일신라 때에 최치원이 지은 향악잡영(鄕樂雜詠)에 "수만리를 걸어오느라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구나"라는 구절이 있는데, 북청사자놀이와 같은 서역에서 들어온 연희를 보고 지은 시구라고 한다. 본래 소그드인은 스키타이로 불렸는데, 그들도 신라처럼 금관 문화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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