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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출신의 가수 김혜연은 20세가 되던 해 [[1991년]]에 <[[전국노래자랑]] 인천광역시편>에 참가하여 인기상을 수상했다. 이를 계기로 [[1992년]],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김나현]]이라는 이름으로 댄스가수로 데뷔했다. 데뷔 초 남성미를 느끼게 하는 강한 록사운드의 음악을 구사해 주목을 받으며 호소력 짙은 창법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3년]]에 트로트로 전향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세대 트로트가수로 떠올랐다. 특히, 댄스가수 출신으로 트로트에 접목시키며 트로트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인천]] 출신의 가수 김혜연은 20세가 되던 해 [[1991년]]에 <[[전국노래자랑]] 인천광역시편>에 참가하여 인기상을 수상했다. 이를 계기로 [[1992년]],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김나현]]이라는 이름으로 댄스가수로 데뷔했다. 데뷔 초 남성미를 느끼게 하는 강한 록사운드의 음악을 구사해 주목을 받으며 호소력 짙은 창법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3년]]에 트로트로 전향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세대 트로트가수로 떠올랐다. 특히, 댄스가수 출신으로 트로트에 접목시키며 트로트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트로트전향에 성공적으로 이뤄낸 그녀는 [[1994년]], 작곡가 [[서판석]]으로 부터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이라는 곡을 받아 활동에 나섰다. 이 곡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무려 앨범이 100만장이나 팔리면서 김혜연이라는 이름을 날렸다. 이 곡으로 90년대 초반, 각종 인기차트에서 휩쓸며 각종 행사,무대에 러브콜이 들어올 만큼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1995년]]에는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의 실상이 담겨 있는 <간큰 남자>라는 곡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무서운 신인가수로 트로트계의 샛별로 거듭났다. 또한 [[1997년]]에는 <예쁜 여우>라는 곡도 차례로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젊은 여가수라는 점과 신세대 트로트 가수라는 이미지를 접목시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데뷔와 동시에 전성기를 누렸다. 그리고 4,5년만에 <유일한 사람>이라는 곡이 또 한번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트로트 여왕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수로 한창 잘 나갈 때는 하루에 10곳 이상의 행사에 섭외되어 노래를 부를만큼 많은 행사를 장악했고 콘서트 무대와 지방 공연, 각종 행사, 방송프로그램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2008년]]에는 <[[1박2일]]>이라는 오락프로에서 그녀의 곡 <참아주세요>가 기상송으로 쓰이면서 여러 세대층들로부터 많이 불렸다. [[2011년]]에는 KBS <[[스타부부쇼 자기야]]>에서 넷째를 임신했다고 알려져 [[김지선]]과 함께 다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트로트전향에 성공적으로 이뤄낸 그녀는 [[1994년]], 작곡가 [[서판석]]으로 부터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이라는 곡을 받아 활동에 나섰다. 이 곡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무려 앨범이 100만장이나 팔리면서 김혜연이라는 이름을 날렸다. 이 곡으로 90년대 초반, 각종 인기차트에서 휩쓸며 각종 행사,무대에 러브콜이 들어올 만큼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1995년]]에는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의 실상이 담겨 있는 <간큰 남자>라는 곡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무서운 신인가수로 트로트계의 샛별로 거듭났다. 또한 [[1997년]]에는 <예쁜 여우>라는 곡도 차례로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젊은 여가수라는 점과 신세대 트로트 가수라는 이미지를 접목시켜 인기를 모으며 데뷔와 동시에 전성기를 누렸다. 그리고 4,5년만에 <유일한 사람>이라는 곡이 또 한번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트로트 여왕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수로 한창 잘 나갈 때는 하루에 10곳 이상의 행사에 섭외되어 노래를 부를만큼 많은 행사를 장악했고 콘서트 무대와 지방 공연, 각종 행사, 방송프로그램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2008년]]에는 <[[1박2일]]>이라는 오락프로에서 그녀의 곡 <참아주세요>가 기상송으로 쓰이면서 여러 세대층들로부터 많이 불렸다. [[2011년]]에는 KBS <[[스타부부쇼 자기야]]>에서 넷째를 임신했다고 알려져 [[김지선]]과 함께 다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2011년 10월 10일 (월) 22:55 판

김혜연
출생1971년 3월 28일(1971-03-28)(53세)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활동 영역가수
활동 기간1992년 ~ (현재)
데뷔작(곡)1집 앨범 <쉿 조용히/ 꿈속에서도 먼 그대>
대표작(곡)서울 대전 대구 부산
소속사탑뮤직엔터테인먼트
대표곡
서울 대전 대구 부산 1994년
간큰 남자 1995년
서울 평양 반나절 1997년
예쁜 여우 1997년
유일한 사람 2000년
화난여자 2003년
토요일 밤에 2007년
참아주세요 2008년

김혜연(1971년 3월 28일 ~ )은 대한민국가수이다.

생애

인천 출신의 가수 김혜연은 20세가 되던 해 1991년에 <전국노래자랑 인천광역시편>에 참가하여 인기상을 수상했다. 이를 계기로 1992년,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김나현이라는 이름으로 댄스가수로 데뷔했다. 데뷔 초 남성미를 느끼게 하는 강한 록사운드의 음악을 구사해 주목을 받으며 호소력 짙은 창법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3년에 트로트로 전향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세대 트로트가수로 떠올랐다. 특히, 댄스가수 출신으로 트로트에 접목시키며 트로트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트로트전향에 성공적으로 이뤄낸 그녀는 1994년, 작곡가 서판석으로 부터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이라는 곡을 받아 활동에 나섰다. 이 곡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무려 앨범이 100만장이나 팔리면서 김혜연이라는 이름을 날렸다. 이 곡으로 90년대 초반, 각종 인기차트에서 휩쓸며 각종 행사,무대에 러브콜이 들어올 만큼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1995년에는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의 실상이 담겨 있는 <간큰 남자>라는 곡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무서운 신인가수로 트로트계의 샛별로 거듭났다. 또한 1997년에는 <예쁜 여우>라는 곡도 차례로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젊은 여가수라는 점과 신세대 트로트 가수라는 이미지를 접목시켜 인기를 모으며 데뷔와 동시에 전성기를 누렸다. 그리고 4,5년만에 <유일한 사람>이라는 곡이 또 한번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트로트 여왕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수로 한창 잘 나갈 때는 하루에 10곳 이상의 행사에 섭외되어 노래를 부를만큼 많은 행사를 장악했고 콘서트 무대와 지방 공연, 각종 행사, 방송프로그램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2008년에는 <1박2일>이라는 오락프로에서 그녀의 곡 <참아주세요>가 기상송으로 쓰이면서 여러 세대층들로부터 많이 불렸다. 2011년에는 KBS <스타부부쇼 자기야>에서 넷째를 임신했다고 알려져 김지선과 함께 다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2009년부터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실용음악학 초빙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력

인천전문대학

정규 음반

2010년 <한방이야/ 마지막은 나와 함께>

2009년 <소문난 사랑/ 토요일 밤에>

2008년 <참아주세요>

2007년 <토요일 밤에/ 어쩌나>

2006년 <어쩌나/ 안성맞춤>

2004년 <유리구두/ 짝짝짝>

2003년 <화난 여자/ 그 사람 그 사랑>

2002년 <묻는 내가 바보지/ 그대를 사랑해>

2000년 <당신은 누구/ 유일한 사람>

1997년 <예쁜여우/ 서울 평양 반나절>

1995년 <아버지/ 세상보기/ 간큰남자>

1994년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바라기>

1993년 <쉿 조용히/ 바보같은 여자>

1992년 <쉿 조용히/ 꿈 속에서도 먼 그대>

수상경력

2005년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2004년 SBS 가요대전 트로트부분상, 제6회 한국예술실연자대상 공로상

2003년 제10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여자가수상

1990년 KBS 전국노래자랑 인기상

홍보대사

  • 2010년 3월에 속초세무서 홍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