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경기 대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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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여자 육상선수인 [[신금단]]은 육상 200m, 400m, 800m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3관왕이 되었다. 특히 400m와 800m에서 51초 4와 1분 59초 1로 각각 세계신기록을 수립하였으나, [[국제육상경기연맹]]에서 신흥국 경기 대회 참가선수에게 자격정지 경고를 한 바가 있어 이 두 기록을 승인하지 않아 비공인 기록이 되고 말았다.
**북한의 여자 육상선수인 [[신금단]]은 육상 200m, 400m, 800m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3관왕이 되었다. 특히 400m와 800m에서 51초 4와 1분 59초 1로 각각 세계신기록을 수립하였으나, [[국제육상경기연맹]]에서 신흥국 경기 대회 참가선수에게 자격정지 경고를 한 바가 있어 이 두 기록을 승인하지 않아 비공인 기록이 되고 말았다.
**북한의 남자 역도선수인 [[리형욱]]은 역도 반탐급 용상부문에서 141kg을 들어 세계기록을 수립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의 남자 역도선수인 [[리 치유안]]은 역도 반탐급 인상부문에서 108kg을 들어 세계기록을 수립하였으나, [[국제역도경기연맹]]에서 이를 승인하지 않아 비공인 기록이 되고 말았다.
**북한의 남자 역도선수인 [[리형욱]]은 역도 반탐급 용상부문에서 141kg을 들어 세계기록을 수립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의 남자 역도선수인 [[리 치유안]]은 역도 반탐급 인상부문에서 108kg을 들어 세계기록을 수립하였으나, [[국제역도경기연맹]]에서 이를 승인하지 않아 비공인 기록이 되고 말았다.

*[[일본]]은 [[1964년 하계 올림픽]]의 개최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일본 NOC에서 선수들을 공식파견하지 않았으나, 올림픽 참가가 어려운 2진·3진급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참가하는 것을 방임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의 가네포 대회 성적은 매우 저조하였다.


*[[1964년 하계 올림픽|1964년 동경 올림픽]]때 [[신금단]]은 가네포에 참가한 선수였다는 이유로 올림픽 참가자격이 박탈되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일본 [[동경]]에 파견했던 올림픽 선수단 전원을 철수시켰다.
*[[1964년 하계 올림픽|1964년 동경 올림픽]]때 [[신금단]]은 가네포에 참가한 선수였다는 이유로 올림픽 참가자격이 박탈되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일본 [[동경]]에 파견했던 올림픽 선수단 전원을 철수시켰다.

2011년 9월 6일 (화) 17:02 판

신흥국 경기 대회는 통상 가네포 (GANEFO: Games of the New Emerging Forces)라 불린다.

1962년 제4회 아시안 게임을 개최한 인도네시아는 대만이스라엘의 선수들에게 대회 참석을 위한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정치적인 대회라고 비난하고, 인도네시아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제명하는 강력한 처벌을 하였다.

이러한 국제올림픽위원회 (IOC)의 제재가 있은 직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대항하여 인도네시아, 중화인민공화국, 아랍 연합 공화국의 주도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12개국이 1962년 신흥국 경기연맹을 창설하고, 이듬해인 1963년 11월 1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제1회 신흥국 경기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신흥국 경기 대회는 주로 사회주의 신흥독립국들이 참가하였다.

신흥국 경기연맹의 헌장(constitution)에 정치와 스포츠는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명시하였다. 이는 올림픽 위원회(IOC)의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 정책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IOC는 신흥국 경기 대회(가네포)를 불인정하고 가네포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도록 조치하였다.

제1회 가네포

제1회 가네포 이모저모

  • 소련은 신흥국들과의 연대를 위해 제1회 신흥국 경기 대회에 선수를 파견하기는 하였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의 지위를 고려하여 올림픽 기량의 선수들을 파견하지는 않았다.
  • 제1회 가네포 대회에서 세계신기록 4개가 수립되었으나, 국제공인 되지 않아 모두 비공인 기록으로 남았다.
    • 북한의 여자 육상선수인 신금단은 육상 200m, 400m, 800m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3관왕이 되었다. 특히 400m와 800m에서 51초 4와 1분 59초 1로 각각 세계신기록을 수립하였으나, 국제육상경기연맹에서 신흥국 경기 대회 참가선수에게 자격정지 경고를 한 바가 있어 이 두 기록을 승인하지 않아 비공인 기록이 되고 말았다.
    • 북한의 남자 역도선수인 리형욱은 역도 반탐급 용상부문에서 141kg을 들어 세계기록을 수립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의 남자 역도선수인 리 치유안은 역도 반탐급 인상부문에서 108kg을 들어 세계기록을 수립하였으나, 국제역도경기연맹에서 이를 승인하지 않아 비공인 기록이 되고 말았다.
  • 일본1964년 하계 올림픽의 개최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일본 NOC에서 선수들을 공식파견하지 않았으나, 올림픽 참가가 어려운 2진·3진급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참가하는 것을 방임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의 가네포 대회 성적은 매우 저조하였다.
  • 1964년 동경 올림픽신금단은 가네포에 참가한 선수였다는 이유로 올림픽 참가자격이 박탈되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일본 동경에 파견했던 올림픽 선수단 전원을 철수시켰다.
  • 가네포에서 북한의 명칭을 코리아(KOREA)로, 북베트남의 명칭을 베트남(VIETNAM)으로 표기하였다. 대한민국남베트남은 가네포 대회에 참석하지 않아 이에 대한 항의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 이탈리아 육상연맹은 가네포 대회에 개인참가했던 자국의 육상선수들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조치를 취하였다.

제1회 가네포 참가국

제1회 신흥국 경기 대회는 1963년 11월 10일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아메리카의 51개국 약 2,700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였다. 참가국들은 기니, 나이지리아, 네덜란드, 도미니카 공화국, 동독, 라오스, 루마니아, 말리, 멕시코, 모로코, 몽골, 버마 (現 미얀마), 벨기에, 볼리비아, 북한, 불가리아, 브라질, 사우디 아라비아, 세네갈, 소련, 소말리아, 실론 (現 스리랑카) , 아르헨티나, 아프가니스탄, 알바니아, 알제리, 이라크,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칠레, 캄보디아, 쿠바,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폴란드, 프랑스, 핀란드, 필리핀, 헝가리, 북 베트남, 아랍 연합 공화국(現 이집트와 시리아), 우루과이, 유고슬라비아, 태국, 튀니지 등이었다.

제1회 가네포 메달 집계

1963년 가네포 메달 집계
순위 나라 금 은 동 합계
1 중화인민공화국의 기 중화인민공화국 65 56 47 168
2 소련의 기 소련 39 20 8 67
3 인도네시아의 기 인도네시아 17 24 30 71
4 아랍 연합 공화국의 기 아랍 연합 공화국 16 14 12 42
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4 15 23 52
6
합계
  • 6위 이하 국가들의 자세한 성적을 알지 못해 메달 집계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추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2회 가네포 / 제1회 아시아 가네포

제2회 가네포 / 제1회 아시아 가네포

제2회 가네포는 1967년 10월 아랍 연합 공화국(現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경제와 정치적인 고려로 취소되고, 대신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1966년 11월 25일에서 12월 6일까지 12일간 개최되었다.

제2회 가네포는 아시아 이외 지역에서 외면을 받아, 사실상 아시아 국가들만 참가하는 대회가 되었다. 이로 인해 대회명칭을 제2회 신흥국 경기대회(가네포)에서 제1회 아시아 신흥국 경기대회 (아시아 가네포)로 추후 변경하게 된다. 2회 대회에 아프리카의 기니를 제외하곤 모두 아시아 국가들만 참가하였다. 2회 대회에서는 축구 등의 장기간의 토너먼트 기간이 필요한 일부 종목에 대하여, 1965년 8월 1일에서 11일까지 북한, 평양에서 예선을 치르고,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본선이 진행되는 형식을 취하였다. 추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진행된 본선을 제1회 아시아 신흥국 경기 대회 (Asian GANEFO)라 명명하였다.

제1회 아시아 신흥국 경기 대회의 슬로건은 전진-후퇴는 없다로서 다소 공격적인 성격을 띄었다.

제2회 가네포 / 제1회 아시아 가네포 이모저모

  • 중국이 금메달 108개로 종합 1위를 거두면서 시종일관 압도하는 대회였다.
  • 재일동포 출신의 북한 권투 코치 김귀하(당시 27세)가 일본 대사관에 한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하였다. 일본은 망명요청을 거부하여 김귀하 코치는 북한으로 강제송환되었다. 대한민국은 김귀하 코치가 망명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하였으나, 캄보디아 정부는 이를 거부하였다. 이로 인해 캄보디아, 일본,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대한민국캄보디아와 단교를 하였다.
  • 북한신금단 선수는 1회 대회와 마찬가지로 육상 200m, 400m, 800m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3관왕이 되었으나, 기록은 저조하였다.
  • 북한의 축구팀은 5경기 모두 무실점의 퍼펙트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 하였다.

제2회 가네포 / 1회 아시아 가네포 참가국

총 17개국 약 2,0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제1회 가네포 대회에 비해 참가국이 크게 줄었다.

참가국은 네팔, 라오스, 레바논, 몽골, 북베트남, 북한, 시리아, 실론, 싱가포르, 예멘, 이라크, 인도네시아,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캄보디아로서 모두 아시아 국가였다.

아프리카의 기니는 아시아국이 아닌 유일한 참가국이었으나, 1965년 평양 예선에서 탈락하여, 정작 1966년 프놈펜 본선 대회에 참가를 못하였다.

제2회 가네포 / 1회 아시아 가네포 메달 집계

1966년 제2회 가네포/ 제1회 아시아 가네포 메달 집계
순위 나라 금 은 동 합계
1 중화인민공화국의 기 중화인민공화국 108 57 34 199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30 42 32 104
3 일본의 기 일본 10 12 8 30
4
합계
  • 4위 이하 국가들의 자세한 성적을 알지 못해 메달 집계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추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2회 아시아 가네포

제2회 아시아 신흥국 경기 대회는 본래 1967년 9월 중국 북경에서 개최됨을 발표되었으나 취소되고, 이후 1970년 평양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이 또한 제1회 아시아 신흥국 경기대회 직후 신흥국 경기연맹이 해체되어 개최에 난항을 겪게 되면서 대회는 자동적으로 폐지되고 말았다.

함께 보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