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2000년대 이후: 대학평가 순위 내용도 주해 처리 합니다.
431번째 줄: 431번째 줄:
[[파일:Hanasquare nightview.jpg|thumb|left|300px|자연계지역 하나스퀘어]]
[[파일:Hanasquare nightview.jpg|thumb|left|300px|자연계지역 하나스퀘어]]
[[2006년]] 9월 완공된 하나스퀘어를 중심으로 [http://eng.korea.ac.kr/ 공과대학], [http://science.korea.ac.kr/ 이과대학], [http://cic.korea.ac.kr/ 정보통신대학], [http://lifesci.korea.ac.kr/ 생명과학대학]의 일부 교수 연구실이 위치하고 있다. 모든 부지는 안암동에 속해 있다.
[[2006년]] 9월 완공된 하나스퀘어를 중심으로 [http://eng.korea.ac.kr/ 공과대학], [http://science.korea.ac.kr/ 이과대학], [http://cic.korea.ac.kr/ 정보통신대학], [http://lifesci.korea.ac.kr/ 생명과학대학]의 일부 교수 연구실이 위치하고 있다. 모든 부지는 안암동에 속해 있다.
* '''과학도서관과 하나스퀘어''' : 과학도서관은 자연계지역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이공계 관련 서적은 대부분 이 곳에서 보유하고 있다. 단행본실 1층에는 한국도서, 2층에는 외국도서가 있으며, 이 건물의 1층과 4층, 5층에는 열람실이 위치하고 있다. 하나스퀘어는 [[2006년]] 8월 완공된 과학도서관 앞에 위치한 지하 건축물로서, 총무부, 열람실, 휴게실 등의 시설이 있다. 자연계 One-Stop 서비스센터는 하나스퀘어에 위치하고 있다. [[하나은행]]에서 130억원을 기부하여 지어졌으며<ref>{{뉴스 인용|제목=그때 그곳엔 하나스퀘어|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435|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경민 기자|작성일자=2010-05-29|확인일자=2011-06-09}}</ref> [[2007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ref>{{뉴스 인용|제목=하나스퀘어|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10/e2007100113514069550.htm|출판사=서울경제|작성일자=2007-10-01|확인일자=2010-03-28}}</ref> 과학도서관과 하나스퀘어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지상을 통하지 않고 이동 가능하다.
* '''과학도서관과 하나스퀘어''' : 과학도서관은 자연계지역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이공계 관련 서적은 대부분 이 곳에서 보유하고 있다. 단행본실 1층에는 한국도서, 2층에는 외국도서가 있으며, 이 건물의 1층과 4층, 5층에는 열람실이 위치하고 있다. 하나스퀘어는 [[2006년]] 8월 완공된 과학도서관 앞에 위치한 지하 건축물로서, 총무부, 열람실, 휴게실 등의 시설이 있다. 자연계 One-Stop 서비스센터는 하나스퀘어에 위치하고 있다. [[하나은행]]에서 130억원을 기부하여 지어졌다.<ref>{{뉴스 인용|제목=그때 그곳엔 하나스퀘어|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435|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경민 기자|작성일자=2010-05-29|확인일자=2011-06-09}}</ref>{{#tag:ref|하나스퀘어 건물은 [[2007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ref>{{뉴스 인용|제목=하나스퀘어|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10/e2007100113514069550.htm|출판사=서울경제|작성일자=2007-10-01|확인일자=2010-03-28}}</ref>|group="주"}} 과학도서관과 하나스퀘어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지상을 통하지 않고 이동 가능하다.
* '''생명과학대학'''(자연계 지역) : CJ식품안전관은 자연계캠퍼스 북문을 지나기 직전에 바로 동쪽에 보이는 건물로, [[2008년]] 준공되었으며 [http://foodscience.korea.ac.kr/ 생명과학대학 식품공학부]에 재직중인 일부 교수들의 연구실이 위치하고 있다. 생명과학관(서관)은 자연계캠퍼스 북문의 오른편, CJ식품안전관의 뒷편에 위치한 건물이다. [[1973년]] 10월에 확정된 서독 정부의 원조<ref name="kuhistory"></ref>로 지어진 생명과학관(서관)은 [[1977년]] 준공되어 농과대학의 건물로 사용되다가 단과대 명칭 변경 및 통합 작업에 의해 생환대 본관 등의 이름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http://ls.korea.ac.kr/ 생명과학부], [http://lifesci.korea.ac.kr/~life/ 생명공학부], [http://lifesci.korea.ac.kr/~eco/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들의 연구실이 위치하고 있다. [[2004년]]에 리모델링을 실시한 바 있으며, 자연계 북문에서 2층으로 바로 진입하는 입구가 별도로 존재한다. 생명과학관(동관)은 자연계캠퍼스 북문을 지나서 바로 왼편에 보이는 건물로, [[2003년]] 준공되었다. 완공 당시에는 생환대 신관으로 불렸으며 생명과학대학 생명공학부, 환경생태공학부, 식품자원경제학과가 이용하고 있다.<ref name="presidenteo"></ref>
* '''생명과학대학'''(자연계 지역) : CJ식품안전관은 자연계캠퍼스 북문을 지나기 직전에 바로 동쪽에 보이는 건물로, [[2008년]] 준공되었으며 [http://foodscience.korea.ac.kr/ 생명과학대학 식품공학부]에 재직중인 일부 교수들의 연구실이 위치하고 있다. 생명과학관(서관)은 자연계캠퍼스 북문의 오른편, CJ식품안전관의 뒷편에 위치한 건물이다. [[1973년]] 10월에 확정된 서독 정부의 원조<ref name="kuhistory"></ref>로 지어진 생명과학관(서관)은 [[1977년]] 준공되어 농과대학의 건물로 사용되다가 단과대 명칭 변경 및 통합 작업에 의해 생환대 본관 등의 이름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http://ls.korea.ac.kr/ 생명과학부], [http://lifesci.korea.ac.kr/~life/ 생명공학부], [http://lifesci.korea.ac.kr/~eco/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들의 연구실이 위치하고 있다. [[2004년]]에 리모델링을 실시한 바 있으며, 자연계 북문에서 2층으로 바로 진입하는 입구가 별도로 존재한다. 생명과학관(동관)은 자연계캠퍼스 북문을 지나서 바로 왼편에 보이는 건물로, [[2003년]] 준공되었다. 완공 당시에는 생환대 신관으로 불렸으며 생명과학대학 생명공학부, 환경생태공학부, 식품자원경제학과가 이용하고 있다.<ref name="presidenteo"></ref>
* '''미래융합기술관과 정보전산처''' : 미래융합기술관은 자연계캠퍼스 북문을 지나면 정면에 멀리 보이는 건물로 [[2008년]]에 준공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영리 연구기관인 바텔연구소와 [[WCU]](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사업에 따라 개설된 [http://brain.korea.ac.kr/ 뇌공학과] 등이 들어서 있다. 미래융합기술관 바로 아래편 또는 애기능생활관 맞은편에 위치한 [http://ic.korea.ac.kr/ 정보전산처]에는 학교 전산망를 담당하는 정보전산처와 전산실, 실습실 등이 있다.
* '''미래융합기술관과 정보전산처''' : 미래융합기술관은 자연계캠퍼스 북문을 지나면 정면에 멀리 보이는 건물로 [[2008년]]에 준공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영리 연구기관인 바텔연구소와 [[WCU]](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사업에 따라 개설된 [http://brain.korea.ac.kr/ 뇌공학과] 등이 들어서 있다. 미래융합기술관 바로 아래편 또는 애기능생활관 맞은편에 위치한 [http://ic.korea.ac.kr/ 정보전산처]에는 학교 전산망를 담당하는 정보전산처와 전산실, 실습실 등이 있다.

2011년 6월 25일 (토) 22:21 판

고려대학교
표어자유·정의·진리
라틴어: Libertas, Justitia, Veritas
종류사립
설립1905년
총장김병철
부총장이윤석
학교법인고려중앙학원
학부생 수26,126명 (2008)
대학원생 수9,594명 (2008)
교직원 수교수: 3,570명 (2008)
국가대한민국 대한민국
위치서울 성북구
충청남도 연기군
규모2캠퍼스, 20대학, 20대학원
상징물상징동물: 호랑이
교색: 심홍색
교목: 잣나무
교화: 철쭉
웹사이트http://www.korea.ac.kr/
Map 고려대학교의 위치
본관

고려대학교(高麗大學校, Korea University)는 대한민국의 사립 종합대학이다. 대한제국 광무 9년(1905년) 이용익 등에 의해 한국 최초의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인 보성학교(普成學校)로 개교한 이후 1946년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되어 고려대학교로 개칭, 종합대학교로 재출범하였다. 1952년 12월에는 문과대학을 문리과대학으로 개편하고 1971년에는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을 흡수 및 합병하여 이공·인문·의예·예체능 관련학과를 고루 갖추게 되었다.[1] 또한 고려대학교는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1960년 4·19 혁명의 촉매제가 된 4·18 피습 사건[2]과 각종 시위의 중심에 서기도 하였다. 1975년 4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공포된 긴급조치 제7호는 고려대학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3][4][5]

상징동물은 호랑이, 교색(校色)은 심홍색, 교목(校木)은 잣나무, 교화(校花)는 철쭉이며, 교훈(校訓)은 자유·정의·진리(라틴어: Libertas, Justitia, Veritas)이다. 약칭으로 '고대'라고 부르거나, 영문약칭으로 'KU'로 부르기도 한다.[6]

연혁

대한제국시대 및 일제강점기

1905년 5월 5일 세워져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으로 기록[7]되는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가 고려대학교의 모태가 된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의 교사는 지금의 수송동인 박동에 있었다. 1905년(대한제국 광무9)에 대장원경, 즉 황실의 재정을 담당하는 대신인 이용익(李容翊)이 고종황제의 재정적 후원과 '보성(普成)'이라는 교명(校名)과 황실문장인 '이화문(梨花紋)'을 교표(校表)로 하사받았으며, 이는 보성(普成)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다.[8] '교육구국'의 신념으로 세워진 보성전문학교는 오늘날의 법학과에 해당하는 법률학전문과와 오늘날의 경영학과 또는 경제학과에 해당하는 이재학(理財學)전문과로 편제하여 전동에 위치한 교사(校舍)에서 바로 대학수업을 시작하였다. 이재(理財)라는 것은 돈이나 재물을 관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재학과는 1907년에 경제전문과로 바뀌었다가 1910년 상학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경제척식과로 강등되었다가 변신했다가 해방 이후 상학과와 경제학과로 변모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경영학과와 경제학과의 모태가 되었다.[9] 1905년 9월에는 한성법학교 학생을 인수하였으며 1909년 3월에는 돈명의숙 및 융희학교 학생을 인수하였다.[10] 1907년 2월에는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하지만 시작 과정 자체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906년 12월 일제는 보성전문학교를 관립학교로 만들기 위해 학교 관계자들에게 온갖 압박을 가하였으며, 뜻대로 되지 않자 당시 실권자였던 이종호(李鍾浩) 선생을 안중근(安重根) 의사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엉뚱한 죄명을 뒤집어씌우는 등 음성적 탄압을 서슴지 않았다.[11] 을사늑약 이후 이용익의 망명과 별세로 경영난에 빠진 학교를 1910년 12월 의암 손병희(孫秉熙) 선생이 도주로 있는 천도교에서 인수하였으며, 1915년 4월 일본의 지시로 "사립보성법률상업학교"로 승진 개칭되었다. (조선총독부에서 볼때는 각종학교로 분류) 이후 학교는 1918년 9월 낙원동으로 교사를 이전하였다. 하지만 손병희 선생이 3·1 운동 직후 피검되자 학교는 다시 난관에 봉착하였고[12] 1921년 12월, 김기태, 김성수, 박원호 등은 58명의 공동 명의로 "재단법인 보성전문학교" 설립을 신청하였으며 이를 조선총독부가 인가하였다. 이후 1932년 3월 재정난에 빠진 학교를 인촌 김성수 주도로 재단법인 중앙학원이 인수하게 되었다.[8][13] 당시 김성수 선생은 중앙중학교와 동아일보사를 경영하고 있었다.[12] 1934년 4월부터는 보성전문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예비시험 없이 일본의 사법고시를 볼 자격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이로써 보성전문학교는 일본의 본토 전문학교의 법학과와 동일한 대우를 받기 시작한 전문학교가 되었다. 현재 학교가 위치한 안암동으로의 이전은 1934년 9월에 이루어졌다.[12] 인문사회계지역의 중앙에 위치한 본관1933년 9월 착공하여 1934년 9월 준공되었으며[8], 1937년에는 보성전문학교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으로 도서관을 준공 및 개관하였다. 김성수 선생은 이 기념사업의 자금 조달을 위해 전국을 다니며 직접 모금 운동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3] 현재 본관과 (구)중앙도서관은 각각 사적 제285호와 사적 제286호로 지정되어 있다.[14][15] 1944년 4월 일제의 지시로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로 강제 개칭되는 수모를 당하였으나[12], 1945년 9월 광복을 맞아 보성전문학교로 교명을 환원하였다.[16]

광복 이후

4·18 피습사건은 4·19 혁명 발발의 도화선이 되었다.
종합대학으로의 승격과 4·18
  • 1946년 8월 기존의 '보성전문학교'가 '고려대학교'로 개칭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종합대학으로의 설립이 인가되었다. 법정(法政)대학, 경상(經商)대학, 문과대학을 설치하였다. 현상윤이 초대 총장을 지냈다.[12] 1947년 11월 3일에는 학생의 날 및 광주학생항일운동 기념일을 맞아 학생 주도로 고대신문을 창간하였는데, 학생기자들이 제작과정 전반을 담당하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17] 영자신문인 'The Granite Tower'는 1954년 9월에 현재 YBM시사 회장직을 맡고 있는 민영빈 선생[18] 에 의해 창간되었다.[19] 1950년 10월 한국 전쟁 중 현상윤 당시 총장이 납북되는 사고가 있었고[12], 유진오 교수가 이를 대신할 임시관리책임자 자리를 맡게 되었다. 유진오 교수는 이후 1952년에 제2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1952년 12월에는 수물학과, 화학과, 생물학과를 창설하고 문과대학을 문리과대학으로 개편함과 동시에 농림대학을 신설하였으며, 1954년 2월부터는 문리과대학 내 문학부와 이학부를 구분하였으며, 1959년 4월에는 문리과대학에 있던 정경학부를 정경대학으로 승격하였다.[20]
  • 1960년 4월 18일 : 1960년 4월 18일 이승만 하야 등을 외치며 경무대까지 시위 행진을 벌인 3천여 명의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던 중 유지광 등이 이끄는 정치깡패들에게 피습, 이튿날 4·19 혁명 발발의 도화선이 되었다.[2] 이후 매년 4월 18일에는 독재정권에 맞선 선배들의 정의로운 행동을 계승하기 위해 '4·18 구국대장정' 행사를 열고 있다. 구국대장정 행사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보려면 연례 행사 단락을 참조하도록 한다.
이공계캠퍼스 개교와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의 흡수·합병

1963년 12월에는 문리과대학이 문과대학과 이공대학으로 분리되었으며[20], 이듬해 5월, 본교는 기존의 캠퍼스 서쪽에 자연계 단과대학 관련 부지를 매입하였다. 또한 1962년 12월에는 통계학과를[21], 1965년 3월에는 신문방송학과를 설치하였는데[22], 신문방송학과는 경희대학교와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신문방송학과로 기록되고 있다.[23][24] 1971년 12월에는 1970년에 시작된 장기발전계획에 따라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을 흡수 및 합병하였으며[1][12] 1977년 12월에는 이공대학의 이학부와 공학부가 각각 이과대학과 공과대학으로 승격되었다.[25]

반복적인 시위와 잦은 휴교 사태

1960년대와 1970년대 사이에 고려대학교는 잦은 휴교 사태를 빚었다. 1965년 9월 4일, 한일협정 반대시위 사태로 고려대학교는 연세대학교와 더불어 문교부 당국으로부터 무기한 휴업 명령을 받았으며[26] 이 조치는 9월 20일까지 계속되었다. 1971년 10월 5일에는 부정부패 처단 요구 농성 중이던 고대생이 교내에 난입한 군인에게 무장 군인에게 연행되었으며, 이 사건이 확대되자 10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은 위수령을 발동하고, 군을 투입하였으며 문교부 명령으로 1971년 11월 11일까지 27일간 강제 휴교 조치하였다.[27][28] 이에 앞서 1971년 5월 16일에는 김병수 당시 학생회장 등이 교련 반대 데모를 선동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하였다.[29] 1975년 4월에는 7일부터 고려대학교에서 격렬한 독재정권 퇴진,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하는 시위가 열리자, 8일 박정희 대통령이 고려대학교만을 대상으로 대통령 긴급조치 제7호를 발동하여 고려대학교에 휴교를 명하고 교내에 군대를 진주하기에 이르렀다.[3][4] 이는 단일 학교만을 대상으로 한 전무후무한 긴급조치였으며, 이 긴급조치는 5월 13일 긴급조치 제9호와 함께 발효된 긴급조치 제8호를 통해 해제되었다.[30] 제5공화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독재정권을 향한 학생들의 시위는 계속되었다. 1984년 11월 14일에는 연세대학교성균관대학교에 재학중이던 일부 학생들이 민정당 당사에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로 인해 본교 재학생 81명이 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며 이 중 20명은 훈방 조치되었다. 이 사건으로 본교생 7명을 포함하여 모두 19명이 구속 수감되었다.[31] 당시 문교부는 학사징계 또한 병행하도록 각 대학에 지시하였으며 김준엽 당시 총장을 비롯한 29명의 교무위원이 전원 참석하여 처벌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였는데[32] 학생들의 처리 문제를 논의하다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김준엽 총장이 '제자들의 죽음 앞에서 밥이 넘어가냐'며 끝내 숟가락을 들지 않은 일화는 유명하다.[33] 1982년 제 9대 고려대학교 총장에 취임한 김준엽 총장은 군부정권의 압력에 맞서 학생들에 대한 처벌을 극소화하는 성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83년 가을 학생 수백 명이 학생회관의 문을 걸어 잠그고 시위를 벌일 때 밖에서 같이 밤을 샌 일화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33] 이러한 그의 성향에 힘입어 국내 대학 중 가장 먼저 학도호국단이 폐지되고 총학생회가 부활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34] 그는 결국 군부정권의 학생회 간부 제적 요구에 맞서다 1985년 2월 강제로 사퇴당했는데[35], 이후 학생들 스스로 1985년 3월에 '총장 승인권 폐지, 문교부 장관 사퇴, 총장 사퇴 결사반대' 등의 구호가 담긴 '민족고대정기(民族高大精氣) 장례식'을 거행하기도 하였다.[34][36][37]

교환협정 및 학술교류협정 체결 (2000년 이전)

고려대학교는 1973년 3월에 일본 와세다대학과 학생·교수 교환협정을, 같은 해 6월에 미국 워싱턴대학과 학술교류협정을 맺었다.[38] 뒤이어 1991년 5월에는 모스크바 대학교와, 1994년에는 중국 푸단대학(復旦大學), 하얼빈공과대학, 미국 미주리대학과, 이듬해인 1995년에는 미국 워싱턴주립대학, 콜로라도대학, 캐나다 오타와대학, 중국 시안(西安)교통대학, 난징(南京)대학, 저장(浙江)대학, 일본 아오야마 대학(靑山學院),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주오대학(中央大學), 베트남 하노이대학,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과, 그 다음해인 1996년에는 미국 뉴욕주립대학, 중국 지린(吉林)대학, 캐나다 맥길대학, 헝가리 부다페스트공과대학, 오스트레일리아 모나시 대학과 학술교류협정을 맺었다.[39]

교육시설의 확충

1973년 10월 서독정부의 무상원조에 의해 농과대학 캠퍼스가 준공되어 1977년부터 활용되기 시작하였고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으로 1937년 중앙도서관 구관이 개관한 데 이어, 1975년에는 창립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중앙도서관 신관을 신축하여 1978년 3월에 개관하였다.[12][40][41] 한편 1978년 5월 착공한 기숙사가 1979년 11월에 준공되어 1980년 3월에 개관하였다.[12]

세종캠퍼스 농심국제관
각종 학제 변경 및 조치원 분교의 탄생 (2000년 이전)

1981년 10월 행정학과가 법과대학에서 정경대학으로 소속 변경되었으며[22], 1998년 10월 의과대학 간호학과가 간호대학으로 승격되었다.[42] 이듬해인 1999년 2월에는 법대, 의대, 사범대, 간호대를 제외한 모든 단과대학의 신입생에 대하여 1.5+2.5년 또는 2+2년 형식의 학부제를 도입하였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미술교육과가 사범대학에서 독립하여 미술학부가 신설되었다. 한편 당국의 수도권 인구분산 정책에 따라 1980년 1월에는 8개 학과, 초기 정원 400명 규모의 조치원 분교(현 세종캠퍼스)의 설립이 인가되었는데[12], 조치원에 위치한 이 캠퍼스의 정식명칭은 1987년 11월 서창캠퍼스로 정해졌다. 캠퍼스의 이름은 이후 2008년 세종캠퍼스로 변경되었다.[12] 세종캠퍼스2010년 개교 30주년을 맞았다.[43][44]

2000년대 이후

해외 대학과의 각종 학술교류협정 체결 및 교류 (2000년 이후)

고려대학교는 2000년에 일본 게이오대학(慶應義塾), 미국 콩고디아 대학과, 2001년에는 싱가포르 국립대학, 홍콩 시립대학, 중문(中文)대학, 일본 고쿠시칸대학(國士館大學), 리쓰메이칸(立命館) 아시아태평양 대학, 무사시(武藏)대학,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였다. 그 이듬해인 2002년 9월에는 옌볜(延邊) 과학기술대학과 방문 및 학술교류협정을, 2003년에는 인도 자와할랄 네루 대학, 중국 난카이(南開)대학, 우한(武漢)대학, 중국인민대학(中國人民大學)과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였다. 2004년에는 일본 사이타마대학(埼玉大學), 도호쿠대학(東北大學), 인도네시아 브라위자야 대학, 빅토리아 대학, 중국 칭화대학(淸華大學), 중국정법대학(中國政法大學), 산둥(山東)대학, 멕시코 콜리마 대학, 네덜란드 레이든대학, 캐나다 요크대학과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였다.[45] 2006년 현재 54개국 543개교와 교류협정이 체결되어 있는 상태다.[46] 학술교류협정 체결 이외에도 2002년 10월에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에 고려대학교 생활관(KU-UBC House)을 짓기도 하였다.[47][48]

각종 학제 변경 및 졸업요건의 변화

2000년대 들어서도 교내에는 굵직한 학제 개편이 여러 차례 있었다. 2001년 3월부터 의과대학과 의료원이 통합운영되고 의료원은 독립채산제를 실시하였다.[49] 2001년 7월에는 국제학부가 신설되었으며[50], 이듬해인 2002년에는 신문방송학과가 정경대학에서 독립하여 언론학부가 신설되는 한편 같은 해 8월에는 컴퓨터학과가 이과대학에서 독립해 전파통신학과와 함께 정보통신대학이 신설되었다.[51] 2003년에는 생명공학원과 생명과학부가 생명과학대학으로 승격 및 개편되었다.[52] 2007년 3월에는 미술학부가 조형학부로 개칭되었으며[53], 2010년 3월에는 고려대학교 약학대학이 세종캠퍼스에 설립 인가되어 2011년 3월 새로 학생을 받기 시작한 한편[54], 언론학부가 미디어학부로 개칭되는 변화가 있었다.[24] 학제가 개편되는 변화 이외에도 2000년대 들어서는 Global KU 프로젝트 등의 영향으로 졸업요건이 대폭 강화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2000년 3월 신입생부터는 토익 700점 수준 이상의 점수를 획득하여야 졸업이 가능해지게 되었으며[55][56][57], 2004년 3월 신입생부터는 한자 2급 수준의 졸업요건이 신설되었다.[55][58] 한자 졸업요건의 경우 2011년 일부 학과의 경우 폐지된 상태다. 한자 졸업요건에 관한 부가적인 설명을 보려면 교육방침상의 특징 단락을 참조하도록 한다.[59] 이와는 별도로 2004년 3월 신입생부터는 심화전공이나 이중전공, 연계전공으로 세분화할 수 있는 제2전공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60]

파일:Centennialhall.jpg
100주년 기념관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2005년은 고려대학교가 개교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으며 5월 5일에는 개교 100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과 관련하여 2003년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출범하였고[61], 학술분과, 편찬분과, 행사분과, 모금분과, 건립분과의 5개 분과위원회를 두어 기념사업을 추진하였다.[62] 학술분과에서는 '한국, 100년을 향한 성찰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정치외교분과, 경제분과, 사회분과, 문화분과, 과학기술분과의 총 5개 영역에서 2005년 5월 23일에서 5월 25일까지 진행된 국제학술대회[63][64]와 8개 행사로 이루어진 교내학술회의를 주관하였다. 2001년 5월 신설된 편찬분과에서는 고대 100년사, 고대 100년 연표, 부문사, 고대 100년 화보집, 고대 100년사 자료집, 고대약사 영문판, 역대총장기념사의 정리 및 집필 작업을 주관하였다.[65][62] 행사분과에서는 2004년 11월 1일 KU Global Vision 선포식을 통해 본교가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있음을 알리는 등 다양한 행사들을 주관하였다. 2005년 한 해 동안 개교 100주년 기념 노벨상 수상자 연속 강연회가 개최되는 한편[66] 이 해 5월 4일에는 세계대학총장포럼이 개최되었으며[65][67], 같은 해 9월 11일에는 작곡가 알렉세이 라린의 고려대 개교 100주년 기념 '고려대학교를 위한 찬가'를 고려대학교 관현악단이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개교 10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 처음 연주하였다.[68][69] 모금분과는 기존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모금활동을 진행하였다. 건립분과에서는 백주년기념관과 타이거플라자, I-House 등을 시공하였으며[70], 학교 발전 마스터플랜에 기반을 둔 것이다.[62] 백주년기념관과 화정체육관의 건립은 재단 측의 계획과 맞물린 것이기도 하다. 고려중앙학원에서는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중앙광장과 백주년기념관, 화정체육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으며, 이 중 중앙광장이 2002년 3월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49][71] 중앙광장은 1938년 완공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였던 대운동장을 녹화하여 공원으로 만들고 지하에 열람실 및 각종 편의시설 등을 갖춘 지하캠퍼스를 일컫는다. 한편, 100주년을 전후하여 이를 기념하기 위한 엠블렘들이 발표되었는데, 2004년 3월 백주년 기념 엠블렘이 발표된데 이어[61][72] 2005년 5월 30일에는 개교 100주년 기념 글로벌 UI가 선포되었다.[66][73]

  • 이건희 삼성 회장 명예철학박사 학위수여식 사태 : 2005년 5월 2일에는 학교당국의 삼성 이건희 회장 명예박사학위수여식이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문과대 학생회와 '다함께' 고대모임 중심으로 한 60여명의 학생들이 당일 오후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진행하는 등 이 회장의 박사 학위 수여를 반대하였으며[74][75] 물리적인 충돌로 인해 수여식은 예정과 달리 본관 2층에서 치러졌다.[76] 이후 학교 당국은 삼성그룹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당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으나 이 조치는 얼마 후에 모두 취소되었다. 당시 이 사건을 두고 학생비판론이 우세한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며, 안티총학 카페가 개설되기도 하였다.[77]
  • 영문 머리글자 상표권 등록 문제 : 한편, 개교 100주년을 맞아 추진하고 있는 Global KU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외국인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영문 머리글자인 'KU'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이 표기에 대한 독점권을 인정받기 위해 상표권 등록을 시도하였지만, 건국대학교2005년 새로운 학교 마크를 선보이면서 'KU'라는 문구를 도입하였다는 점과, 'KU' 자체가 일반명사여서 상표권 등록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난항을 겪은 바 있다. 두 학교 모두 'KU'를 상표권으로 등록하는 데 실패하였다.[6]
병설 보건대학 폐지와 출교 사태

2006년 3월에 정릉에 위치해 있던 병설 보건대학을 폐지하고 본교 소속 단과대학으로 보건과학대학이 신설되었다. 같은 해 4월 5일에는 병설 보건대학 학생들의 안암캠퍼스 총학생회 선거권을 인정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당시 선본이었던 'Act Now!', '학생회 독립선언', '리얼리스트'의 대표와 선본원들 그리고 병설 보건대학 학생들이 본관 안에서 농성을 벌인 일이 벌어졌다. 투표권 인정 여부에 대해 이들 학생들과 학교 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으며, 결국 이들 학생들은 교수들을 본관에 감금하기에 이르렀다. 학교 측은 4월 19일 담화문과 징계결정 공지를 통해 참가 학생 중 7명을 출교(黜校)조치하였다. 그 밖에 5명에 대해서는 1개월 유기정학, 7명에 대해서는 1주일 견책 조치가 내려졌다. 견책 조치는 수업을 제외한 모든 학내활동을 금지하는 조치를 의미한다.[74][78] 출교된 7명의 학생들은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장기간 본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다.[74] 이들이 설치한 본관 앞 천막은 2008년 3월 20일에야 철거되었다.[79][80] 한편, 출교 조치 이후 출교생들과 학교 측 간에 장기간의 법적 분쟁이 빚어졌다. 2007년 10월 5일, 서울지방법원은 학교 당국의 학생 출교 방침이 절차적 정당성을 잃어 무효라고 판결하였다.[81] 고려중앙학원은 이 판결을 인정했지만, 얼마 뒤 출교생들에게 다시 '퇴학' 처분을 내렸다. 2008년 1월 29일, 출교생들이 학교 당국을 상대로 낸 출교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출교 관련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출교생들은 고려대학교 학생의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으며, 결국 같은 해 3월에는 2006년 출교된 학생들과 학교 당국의 법정공방 끝에 학교 당국이 해당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모두 철회하였다. 하지만 그 이듬해인 2009년 4월, 학교 당국이 출교생 7명에 대해 무기정학을 재의결하여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재판부는 이후 이들에게 내려진 무기정학 조치 또한 무효라고 2010년 9월 1일 판결하였다.[82] 이들은 이후 고려중앙학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지만 패소하였다.[83] 병설 보건대학을 통합한 것 이외에도 2007년 5월에는 건설교통부고려대 세종캠퍼스한국철도대학 인수 1순위 대학으로 선정하여 한국철도대학을 인수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협상은 결렬되었다.[84]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페이지를 참조하도록 한다.

의학전문대학원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고려대학교는 정부의 '의·치의학전문대학원' 도입 정책에 따라 2009년부터 기존의 의과대학을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일부 전환해 신입생을 선발하였다.[85]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2010년 7월 그간의 의·치전원 운영 성과를 평가해 의과대학과 의전원을 병행 운영하는 대학에 한하여 2015년부터 자율적인 학제 전환이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이에 따라 본교에서는 2015년부터 기존의 의과대학 체제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학제계획서를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하였다.[86][87] 의학전문대학원과 더불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도입되어 2009년부터 신입생을 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고려대학교는 120명을 배정받았는데[88], 인원 배정 발표 이후 본교에서는 로스쿨 배정 인원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예비 인가 반납을 심도있게 검토하였으나[89] 인가 철회 방침을 포기하고[90] 2009년 예정대로 개원하여[91] 운영되고 있다.[92] 한편, 로스쿨 예비인가 대학 선정과 관련해서 최근 5년간 사법고시 합격자 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등장하기도 하였다.[93]

신입생 선발 과정을 둘러싼 논란

이 학교의 신입생을 선발하는 전형 방식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이 존재하였다. 2008학년도 수시전형에서는 학교 당국이 지원자의 출신 학교별로 동등하지 않은 내신 점수를 부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와 같은 주장이 사실일 경우, 당시 정부에서 꾸준히 유지하고 있던 '3불(不) 정책'을 위반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문제 제기 당시 적지 않은 파장이 발생하였다.[94] 2009학년도 수시전형에서는 선발 과정에 부정 의혹이 제기되어 이 학교의 수시모집에 지원하였다가 탈락한 학생의 학부모 24명이 창원지방법원에 소를 제기하였으며, 1심 재판부는 학부모 24명에게 각각 7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학교 당국은 이 판결에 대해 항소하였다.[95] 또한 전국 전·현직 교육위원 25명이 '고려대 수시모집 소송지원단'을 구성하여 2010년 10월 22일 추가 소송 계획을 발표하였으며[95] 학부모 24명은 학교 측을 상대로 부산지방법원에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96] 또한 입학사정관제와 관련하여 2010년 대학입시에서는 고려대학교를 비롯한 5개 대학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어 지급된 국고 지원금의 20%에 해당하는 2억 5000만원이 환수 조치되기도 하였다.[97][98][99] 이는 학교 당국이 교과부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선발 인원과 관련하여 지적한 내용에 대해 수정 및 보완 작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학교 당국에서는 2500명을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겠다는 당초의 발표와 달리 언급된 인원 중 일부를 일반전형으로 선발한 바 있다.[97][98][100] 교과부의 조치에 대해 징계 수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주장이 존재한다.[97] 입학사정관제는 교과부대교협2007년부터 추진해 온 새로운 입학 전형 제도 유형의 하나이다.[101]

등록금 관련 논란

등록금과 관련하여 제 17대 이기수 총장이 2010년 1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된 자리에서 '우리나라 교육의 질에 비해 대학등록금이 아주 싼 편'이라고 밝혀 논란이 되었다. 그는 등록금 책정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위헌 논란이 있다며 등록금 상한제 도입에 반대 입장을 피력하기도 하였다.[102][103] 이와 관련하여 당시 총학생회장은 '학생과 학부모님들의 현실을 잘 모르고 하신 소리 같다'며 당시 총장의 발언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가하였다.[104] 이기수 총장은 그 밖에 2010년 2학기에 개설된 고려대학(學) 강의에서 연세대, 이화여대 등 타 대학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105] 2011년부터는 대학 내에 등록금 인상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한 등록금심의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되었으나 의결권이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으며 결국 학교 당국은 2011년 2월 7일 등록금을 2.9% 인상하는 조치를 단행하였다.[106] 등록금 인상 조치와 관련하여 총학생회 측은 3월 31일 중앙광장에서 비상학생총회를 개최하였으며, 이 자리에서 등록금 인상 조치를 철회할 것 이외에 청소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10개 요구안을 학교 측에 제시하였다.[107] 비상학생총회에서 진행된 투표 결과에 따라 44대 총학생회 측은 개교기념일을 하루 앞둔 5월 4일까지 한 달여간 본관 점거시위를 벌였다.[108] 이로부터 한 달 뒤인 6월 8일6월 9일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동맹휴업의 개최 여부를 놓고 찬반투표가 진행되었으나[109] 21.9%만이 투표에 참가하여 성사되지 못하였다.[110]

근래의 총장 선임 및 그 밖의 주요 사건
  • 2003년 2월에는 제 15대 총장으로 어윤대 박사가 취임하였다.[49][주 1] 2006년 12월에는 어윤대의 뒤를 이어 이필상이 제 16대 총장이 되었으나[66], 이필상 총장은 논문 표절 의혹으로 인해 취임 62일째가 되는 이듬해 2월 사퇴하였으며[114][115], 한승주가 총장 서리의 자격으로 뒤를 이었다. 2008년 1월 17일에는 이기수 교수가 제 17대 총장으로 선임되었으며[116][117], 2011년 3월에는 김병철 생명과학대학 식품공학부 교수가 제 18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현재의 총장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다.[118][119] 제 18대 총장 선거에서는 역대 최다인 10명의 후보가 출마하였다.[120][121]
  • 교수학습개발원에서는 학생들이 수업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게 하고 교수와 동료 학습자 간에 상호 활동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으로 EKU(E-Learning Korea University)에서 개발 및 관리하고 있다. 2004년 1학기 기간 동안 영어강의와 핵심교양 수업 등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한 다음 2학기부터 전체 강좌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도입 초기에는 이용률이 높지 않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각기 다른 커뮤니티에서 자료를 구하는 등의 불편을 겪기도 하였다.[122]
  • 근래에 세종캠퍼스에서도 몇 가지 가시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007년 11월, 본교는 세종특별자치시와 신캠퍼스 건설 MOU를 체결하였다. 이듬해인 2008년 3월에는 서창캠퍼스가 세종캠퍼스로 개칭되어 3월 13일 명칭선포식을 열었는데[123], 이 과정에서 세종대학교가 고려중앙학원을 상대로 2008년 3월과 6월 유사표장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124]과 소송을 각각 제기하였지만[125] 모두 기각 또는 패소로 일단락되었다.[126][127] 세종대학교 측에서는 '세종캠퍼스' 명칭 반대 궐기대회를 여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기도 하였다.[128] 한편, 약학대학이 2010년 2월 24일 현장실사를 거쳐 3월 2일 설립이 확정되어 2011년 3월 1일 세종캠퍼스에 개교하였으며[54], 같은 해 6월 2일 개교선포식을 거행하였다.[129]

개설 학과·전공(2011년)

구분 캠퍼스 설치학과 또는 유형 참조 페이지
학부 안암 법과대학, 경영대학, 문과대학, 생명과학대학, 정경대학, 이과대학, 공과대학, 의과대학, 사범대학, 간호대학, 정보통신대학, 자유전공학부, 조형학부, 국제학부, 미디어학부, 보건과학대학 대학안내
세종 인문대학, 과학기술대학, 경상대학, 약학대학, 공공행정학부, 사회체육학부
구분 유형 설치과정 참조 페이지
대학원 일반대학원 고려대학교 대학원 홈페이지
전문대학원 국제대학원, 정보경영공학전문대학원, 경영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전문대학원 소개
특수대학원 교육대학원, 생명환경과학대학원, 정책대학원, 공학대학원, 경영정보대학원, 언론대학원, 노동대학원, 법무대학원, 컴퓨터정보통신대학원, 인문정보대학원, 행정대학원, 보건대학원, 임상치의학전문대학원, 의용과학대학원

학부 과정

2010년 현재 안암캠퍼스에는 16개 단과대학이, 세종캠퍼스에는 6개 단과대학이 설치되어 있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2009학년도부터 기존 의예과의 정원 중 절반을 의학전문대학원의 정원으로 전환하여 임시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같은 해부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개원으로 인해 법과대학에서는 신입생을 받지 않고 있으며, 기존 법학과의 정원을 대신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학부과정에서는 제2전공(심화전공, 이중전공, 연계전공)이 의무화되어 있다.

연계전공(학부)

세종캠퍼스 농심국제관

다음은 복수의 학과·학부가 협력하여 개설한 연계전공으로, 제2전공의 하나로 선택할 수 있다. 좌측의 단과 대학은 해당 연계 전공을 직접 주관하는 대학이며, 다음 페이지를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문과대학 : 과학기술학, 인문학과 법
  • 정경대학 : PEL(Politics, Economics and Law), 법과행정, 금융공학
  • 생명과학대학 : 환경디자인학, 의과학, 기후변화
  • 이과대학 : 암호학, 통신수학
  • 공과대학 : 산업디자인공학
  • 사범대학 : 공통사회, 패션디자인 및 머천다이징
  • 보건과학대학 : 식품산업관리
  • 자유전공학부 : 공공거버넌스리더십
  • 인문대학(세종) : EU문화통상학, 사회복지학, 문화콘텐츠, 디지털매체문화
  • 과학기술대학(세종) : 파생금융공학, 나노바이오정보기술학

대학원 과정

안암캠퍼스의 경우 일반대학원과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으로 구분되어 있다. 의학전문대학원의 경우 전문대학원 53명을 의학과 53명과 병행하여 임시로 운영하고 있으며 2015년에 폐지될 예정이다.[87] 2009년 개원한 법학전문대학원은 120명을 배정받았다.[88]

세종캠퍼스의 경우 인문정보대학원, 경영정보대학원, 행정대학원 (대전 소재), 의용과학대학원의 4개 대학원이 설치되어 있다.

교육방침상의 특징

파일:KU5.jpg.jpg
LG-POSCO관 로비

해외 교류

현재 4개의 학교와 협정을 맺어 매년 다수의 방문학생을 파견하고 있다. 미국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UC Davis), 캐나다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UBC), 영국의 런던대학교 로열 홀러웨이 대학(RHUL), 호주의 그리피스 대학교 등이 그 대상이다. 등록금은 파견교와 본교에 납부하는 것이 원칙이나, 본교의 등록금은 장학금의 형식으로 대부분 반환된다.

Global KU 프로젝트와 한자졸업요건

  • Global KU 프로젝트 : 2010년까지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하는 것을 우선의 목표로 한 것으로, 제15대 어윤대 총장의 주도하에 2003년부터 본격 실시되었다.[46] 장기적으로 영어강의 확충[130], 해외대학과의 교류 증진[131], 외국인 교수 채용 확대 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졸업요건으로 요구하는 토익 점수를 대폭 상승시키고, 2005년 5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대학총장포럼을 개최[66]하는 등 단기적인 계획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일정 수준 이상의 공인영어 성적을 취득해야 졸업이 가능한 상태다.[57] 한편, Global KU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교내에 도입된 영어강의와 관련해서 학교 측에서는 각 단과대의 특성을 고려해 앞으로 영어강의와 관련된 졸업 요건을 단과대별로 완화하거나 강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132] 현재 영어강의 5개 이상을 수강하여야 졸업이 가능하다.[133]
  • 한자졸업요건 : 학부과정에서는 국가 공인 혹은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인증 한자 2급 획득 또한 의무화되어 있었으나, 법과대학을 시작으로 한자졸업요건은 단과대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방침이 변경되었다. 한자인증을 가장 먼저 폐지한 법과대학과 정보통신대학은 '한자인증의 사회적 필요성이 높지 않으며, 이에 학생들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설명과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한자인증의 폐지 이유로 각각 제시하였다.[59]

제2전공의 의무화

제1전공의 심화전공 또는 제2전공의 의무화

2004학년도 학부 입학생부터 적용된 졸업요구조건의 하나이다. 04학번 이후의 학부생들은 제1전공과 함께 심화전공이나 이중전공, 연계전공으로 분류되는 제2전공 중 하나를 선택해서 이수해야만 졸업할 수 있다.[60] 당초 학교에서는 학생설계전공도 제2전공의 한 갈래로 운영할 계획이였으나, 제반 여건 상의 문제로 현재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134]

  • 제1전공의 심화전공(advanced major) : 제1전공 학과에서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전공 과목 학점 이외에 각 학과에서 정한 심화전공 학점만큼을 더 이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학생이 속해 있는 제1전공 학과에서 기본전공 42학점과 심화전공 30학점이 지정되어 있다면, 그에 해당하는 학점을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이수해야 하는 학점은 학과마다 상이하다. 심화전공으로 졸업하면 졸업장에 심화전공 사실이 기재된다.
  • 이중전공(double major) : 제2전공의 하나로 1997년 처음 도입되었다.[135] 제1전공과 동시에 다른 학과를 이중으로 전공, 졸업 시에 2개의 학사(學士)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제도이다. 쉽게 말해 학생 개개인이 속한 학과 외에 다른 학과의 전공을 하나 더 가지는 것이다. 이중전공으로 졸업하면 제1전공과 동일한 졸업장에 이중전공 사실이 기재된다. 졸업 요건은 제2전공을 이수하는 학과의 내규에 의한다. 4년(8학기) 내에 이수할 수 있다는 점과 제2전공의 하나라는 점, 두 개의 졸업장이 아닌 한 개의 졸업장만 받는다는 점에서 복수전공과 다르다.
  • 연계전공(relation major) : 제2전공의 하나로 2개 이상의 학문분야를 융합해 학생들에게 보다 폭넓은 학문경험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2004년 처음 도입되었다.[136] 2개 이상의 학부·학과가 연계하여 별도의 교육과정을 편성, 설치하는 전공이다. 연계전공으로 졸업하면 제1전공과 동일한 졸업장에 연계전공 사실이 기재된다. 연계전공 독립 과목이 많지 않아 아직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평이 존재한다.[137]
  • 학생설계전공 : 제2전공의 하나이나 아직까지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한다. 아직 학교 측이 구체적으로 이 이수 방법을 제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없는 상태이다.[134]
부전공과 복수전공

04학번부터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제2전공 정책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학교에서 흔히 말하는 '복수전공' 또는 이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2전공'과는 다른 제도이다.

  • 부전공(minor) : 제1전공을 이수하는 동시에 다른 학과의 전체 전공 이수학점의 일부를 이수, 동일한 졸업장에 부전공(minor) 사실을 기재하는 것이다. 03학번 이전 학부생은 부전공하는 학과에 관계 없이 전공을 21학점을 수강하면 된다. 04학번 이후 학부생은 부전공하는 학과를 제1전공으로 할 때의 학점의 절반을 이수하면 된다. 만약 A학과의 전공 이수학점이 36학점인데 어느 04학번 학부생이 A학과를 부전공하려면, A학과에서 전공 18학점을 이수하면 된다. 이렇게 규정이 변경된 것은 제1전공의 심화전공 및 제2전공이 의무화되었기 때문에, 학점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부전공 이수를 신청할 수 있는 학생은 본교에서 제1전공을 배정 받고 3학기 이상 재학한 학부생이다. 부전공 이수를 신청한 이후에 해당 학과를 복수전공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
  • 복수전공(dual degree) : 많은 사람들이 이중전공과 혼동하는 교과 이수 방법이다. 복수전공은 기본전공 이수 후 졸업을 유보하고, 또 하나의 전공을 연속해서 이수하여 2개의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제도로, 제2전공의 일부가 아니다. 기본전공 이수가 끝난 후 반드시 최소한 2학기는 더 다녀야 복수전공 학위를 받을 수 있으며, 이 점에서 기본전공과 동시에 이수하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이중전공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또 이중전공 등 제2전공의 경우, 기본전공과 같은 졸업장에 학위가 표시되지만, 복수전공의 경우 기본전공과 별도의 졸업장을 만들어 그곳에 학위를 기재한다. 부전공으로 신청했던 학과를 추후에 복수전공으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때는 전환한 학과의 부전공 효력이 상실된다. 복수전공 전환 이전에 해당 학과의 전공 과목을 이수했을 경우, 21학점까지 복수전공 이수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캠퍼스 및 본교 소유 시설

서관 시계탑

두 캠퍼스 모두 전체적으로 웅장한 분위기의 건축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래 링크를 통해 각 캠퍼스의 구성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안암캠퍼스

안암캠퍼스(安岩-)는 인문사회계지역, 자연계지역, 녹지지역, 보건과학대학 캠퍼스를 포함한다. 전체적으로 건물 양식이 일관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어윤대 총장이 재임하던 시기에 3500억원의 발전 기금을 유치하고 기업체의 후원을 받아내 교내 전체 건물의 40%가량을 신축 및 리모델링함에 따라 전체적으로 건물 양식이 일관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138][139] 중앙광장과 하나스퀘어가 각각 인문사회계지역과 자연계지역에 위치하여 각 지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인문사회계지역

중앙광장과 본관이 위치한 지역이다. 부지의 대부분은 안암동에 속해 있으나 일부는 종암동에 속해 있다. 본관~중앙광장~정문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주 2] 본관과 대학원(구 중앙도서관) 건물은 각각 사적 제285호, 제28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문사회계지역은 편의상 본관과 중앙광장 주변, 중앙도서관 주변, 민주광장 주변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본관과 중앙광장
  • 본관 : 인문사회계지역의 중심에는 6층 높이의 본관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광장과 더불어 캠퍼스의 중앙에 위치한 본관은 인촌 김성수 선생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했을 때 지어진 건물로, 1933년 9월에 착공하여 1934년 9월에 완공되었다. 다른 대학 캠퍼스의 근대 건축물은 대부분 외국인에 의해 설계된 데 반해, 이 건물의 설계는 한국인 건축가 박동진 선생이 맡았다. 그는 본관 이외에도 도서관과 서관, 강당, 제2공학관 등 교내의 여러 건물을 설계하였다.[141] 본관 건물은 '배울 학(學)' 자를, 건물 앞에 위치한 정원은 '큰 대(大)' 자를 형상화하고 있다. [7] 준공 당시에는 법대, 경영대 등의 강의실로 쓰였다가 현재는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곳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딕 양식의 이 건물은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5호로 지정되었다.[142] 본관 양옆으로 오른편에는 고대의 기개를 표현한 호상(虎像)이, 왼편에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4·18을 기념하는 4·18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4·18 기념비의 비문은 조지훈 선생이 지은 것이다.[143] 호상의 바닥에는 조지훈의 호상 비문(碑文)이 새겨져 있다.[144]
파일:Ku central square.jpg.JPG
인문사회계지역 중앙광장
  • 중앙광장 : 본관과 더불어 인문사회계지역의 중앙에 자리한 중앙광장은 고려대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2000년 6월에 착공하여 2002년 3월에 완공되었다. 지상에는 5780평의 녹지공간과 잔디광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지하 1층에는 행정부서와 열람실 및 편의시설이, 지하 2층과 3층에는 10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중앙광장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대운동장이 자리하고 있었다.[145][146] [주 3]
  • 삼성백주년기념관 : 개교 100주년인 2005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건설 당시 삼성에서 418억원을 기부하였다. 건물 입구에는 카페와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나머지 게이트 안쪽 부분은 학술정보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학생증을 찍어야 들어갈 수 있는 학술정보관의 1층과 2층에는 멀티미디어실이, 3층에는 교육실과 화상회의실이, 4층에는 대열람실이 위치하고 있다.[148] 이 건물의 지하와 2층을 통해 각각 중앙광장과 경영대학 방면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 건물이 완공된 2005년 5월 2일에 이루어진[149] 이건희 회장의 명예철학박사 수여식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이를 반대하는 일부 학생들의 시위로 인해 파행으로 이루어졌다.[76]
중앙도서관 주변

중앙도서관 주변에는 법과대학경영대학, 사범대학이 위치해 있다.

  • 법과대학과 동원글로벌리더쉽센터 : 구법관과 신법관, 그리고 해송법학도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법학관은 본관에서 동쪽으로 가다 보면 나오는 약간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이다. 본래 법학과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법학과는 1층의 동아리 방과 반실만을 사용하고 있으며 문과대학 심리학과가 실질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법관은 2000년 완공된 건물로써 대법원을 모티브로 하여 건축되었으며 (구)법학관 바로 뒤에 자리잡고 있다. 2004년 11월 공청회를 거쳐[150] 2007년 3월 완공된 해송법학도서관은 법과대학 100주년을 기념함과 동시에 법학전문대학원 설립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조성[151]된 도서관으로 단과대학의 도서관으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115][151] '해송'은 이 도서관의 건립을 위해 총 공사비용 57억원 중 31억원을 기부한 대양상선 정유근 회장의 호이다.[152] 금속성의 특이한 외관이 특징인 해송법학도서관은 본관에서 (구)법학관으로 가는 길에 있으며, 건립 이전 이 곳에는 박물관이 있었다.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153]하기도 한 이 건물의 지하 1층 열람실에는 법대생만 출입이 가능하다.[154] 해송법학도서관 바로 왼편에는 2007년 11월 준공된 동원글로벌리더쉽센터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 건물 1층에는 여학생 휴게실 도들마루가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1958년 건축된 여학생 회관이 같은 자리에 있었으며, 동원글로벌리더쉽센터 1층에 여학생 휴게실이 자리하게 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이다.[155]
  • 중앙도서관 : 단행본만 160만권 이상[156]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다. 교내 도서관은 5개 분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중앙도서관, 과학도서관, 의학도서관, 세종학술정보원, 보건과학도서관이다. 중앙도서관은 현재 위치한 중앙도서관 신관과 특수서적이 주로 위치한 (구)중앙도서관, 과학도서관, 해송법학도서관, 백주년기념관에 위치한 학술정보관(CDL)을 총괄하고 있다. 언급된 분관들을 통틀어 2009년 현재 모두 2,183,311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157]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1978년 3월에 개관한[40][41] 중앙도서관은 이후 2005년 리모델링을 실시하였다.[65][74]
  • 사범대학 : 사범대학본관과 사범대학신관, 운초우선교육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도서관 옆에 위치한 사범대학본관에는 1958년 12월에 완공되었으며 사범대학 교수연구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사범대학·조형학부 학사지원부가 있었으나, 이 기능은 현재 운초우선교육관으로 이전되었다. 1988년 준공된 사범대학신관은 중앙도서관과 사범대학본관 사이에 있는 흰색 건물이며, 사범대학본관과 연결되어 있다. 운초우선교육관 건설 이전까지 대부분의 사범대 전공 강의와 교직 강의가 이 곳에서 이루어졌다. 1993년 증축된 데 이어 2002년 다시 리모델링을 실시하였다.[158] 운초우선교육관은 2010년 3월 7일에 완공된 건물로, 사범대학신관 옆에 있다. 교육관 설계는 2006년부터 진행됐으나 재원 부족으로 사업이 지연되던 중 박양숙 씨의 기부로 건립이 다시 추진됐다. 교육관의 명칭은 박양숙 씨 남편의 호인 ‘운초’와 박양숙 씨의 호인 ‘우선’을 합쳐 ‘운초우선’으로 정했다.[159][160] 지하 1층에는 서고가 있고, 1, 2, 3층에서는 주로 사범대학 전공 강의와 교직 강의가 행해진다. 4층에는 사범대학본관에서 옮겨온 사범대학·조형학부 학사지원부가 , 5층에는 고시실과 사범대학 교수연구실이 있다.
  • 사범대학분관 : 조형학부 전공 수업이 주로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사범대학 학과 사무실과 학생회실이 이곳에 있다. 현대자동차 경영관을 신축하면서 이 건물 옆에 자리하고 있던 경영별관을 철거하게 되었는데[161], 이 과정에서 안전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2011년 하계방학 기간 동안 철거가 결정되었다. 이에 조형학부 학생회는 민주광장에서 '학생들에게 안전이 보장되는 대체공간을 마련해 달라'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하였다.[162] 조형학부 학생들은 철거되는 사범대학분관 대신 앞으로 미디어관과 라이시움에서 수업을 받게 된다.
  • 경영대학 : 경영본관은 1972년 6월 건립된, 경영대학의 첫 번째 건물이다.[163] 2003년 10월 LG-POSCO 경영관 준공[74][163] 이후 이 건물에서는 교양수업이 주로 이루어지며, 경영학과의 전공수업은 대부분 LG-POSCO 경영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1층에는 '정진초'라 불리는 CPA 고시실이 있으며, 학생회실 등 경영대학의 자치공간도 이 건물에 있다. 중앙도서관에서 고려대역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LG-POSCO 경영관은 LG와 POSCO에서 기부금을 받아 지어진 건물로, 경영본관과 경영별관에 이어 경영대학이 사용하는 3번째 건물이다. 이 건물에는 다른 건물들과 달리 상당수 강의실 또는 건물 내 시설물에 각종 기업인이나 기업의 이름이 붙어 있으며, 그 중의 한 예가 건물 2층 로비에 해당하는 '이명박 라운지'다. 이 건물 꼭대기의 첨탑은 주가 상승시에 붉은색, 주가 하락시에 파란색 조명을 밝히는 것이 특징이다. 2003년 이 건물의 준공을 기념하여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초청되어 '한국 경영인을 위한 21세기 전략'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한 바 있다.[164] 중앙도서관 맞은편에는 인공폭포가 위치하고 있으며, LG-POSCO 경영관 건립시 같이 세웠다. 경영별관은 1988년 준공되어 경영본관 뒤에 위치하였으나, 2010년 말 시작된 현대자동차 경영관 건립으로 인해 철거되었다.[165]
민주광장 주변

민주광장 주변에는 문과대학(서관)과 정경관과 학생회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조지훈 시비
  • 서관(西館) : 문과대학이 사용하고 있는 서관은 1961년 6월에 준공되었으며[12][166] 중앙광장의 서편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 앞에 '서관'이라는 명칭이 적혀 있지는 않지만 '西館'과 동음어이면서 문과대학의 특성과 맞기 때문에 '서관(書館)'(책을 보관하는 건물을 의미)이라는 별칭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 건물의 꼭대기에는 4면으로 되어 있는 시계탑이 위치하고 있는데, 1968년 당시 쌍용그룹 회장이었던 김성곤 교우가 희사한 것이다.[167] 시계탑의 규모가 크다 보니 아르바이트생이 폐달을 밟아 이 곳의 시계탑을 작동시킨다는 등의 소문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168], 실제로는 이 건물의 3층에 위치한 기계실에 설치된 모터에 의해 가동되는 것이라고 한다. 매일 정오에 이 곳의 시계탑에서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노래가 나오는데, 녹두문대라는 별칭의 유래가 된 이 노래의 선곡에 관해서 학교 측의 공식적인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녹두장군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로부터 선곡되었다는 의견을 비롯하여 아리랑보다 더 낫기 때문에 선곡되었다는 의견 등이 존재한다.[144][167] '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오전 9시의 교가와 함께 인문사회계지역 뿐만 아니라 자연계지역에도 들을 수 있다.[167] 문과대학은 이 건물 이외에도 본관 맞은편에 위치한 (구)법학관과 인촌로 맞은편에 위치한 청산MK문학관을 사용하고 있다.
  • 조지훈 시비(詩碑) : 문과대학 교우회2006년 9월 29일 문과대학 뒷편 교정에서 조지훈 시비(詩碑) 제막식을 열었다. 시비(詩碑)에는 4·19 혁명이 일어난지 보름 뒤인 1960년 5월 3일자 고대신문에서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라는 부제와 함께 실린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시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169] 하지만 건립과 동시에 여러 가지 말썽을 많이 일으켰다. 2007년 8월 교우이자 명예교수인 인권환은 고려대학교 교우회보를 통해 지훈시비에 새겨진 시가 '완전히 다른 두 시가 오접(誤接)되어 생긴 정체불상의 작품'이라고 지적했다.[170]
  • 학생회관과 민주광장 : 학생회관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를 비롯하여 고려대학교 중앙동아리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다양한 학생자치활동이 이 곳에서 비롯된다. 1층에는 학생식당이 있으며, 2층에는 카페테리아가 있다. 학생증 없이도 자유로운 출입 및 대여가 가능한 생활도서관이 학생회관 2층에 위치하고 있다. 학생회관 정면으로 나왔을 때 보이는, 학생회관, 교양관, 홍보관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민주광장이라 한다. 민주광장이라는 이름은 광장 내부에 4·18 운동 참가자들을 기리는 곳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에는 이 자리에 목조 가건물 형태의 이학부 실험실 3동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 옆에 1960년 12월 과학관이 만들어지면서 이 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 곳에는 대신 잔디가 깔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민주광장의 기원이다. 돌로 바닥을 깔지 않은 것은 학생들이 돌을 빼내 집회 등에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집회 등으로 황폐화된 잔디밭에 벽돌을 깔고 중앙에 벤치를 배치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171] 민주광장 자리에 학생회관 옆에 위치한 4·18 기념관에는 경력개발센터와 학생자치기구 관리를 담당하는 학생처가 자리하고 있다.
  • 우당교양관 : 인문사회계지역의 가장 서편에 위치하고 있는 우당교양관은 우당 박종구 당시 교우회장이 120억원 공사대금 전액을 출연[172]함에 따라 2003년 10월 건립되었다.[173] 우당교양관이 지어진 자리에는 본래 1960년 12월에 지어진 과학관이 자리하고 있었다.[171] 1964년부터 교양학부제가 시행된 이후에는 교양학부와 이공대학이 같은 건물을 쓰고 있었는데 이로 인한 학문적 격리감을 해소하기 위해 사용하는 건물의 위치를 바꾸었으며 이와 더불어 '교양관'으로 명명되어 우당교양관 건립 이전까지 유지되었다.[174] 이 건물의 5층에는 교양교육원이 자리하고 있다.
  • 정경관 : 정경관은 정경대학언론학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안암역에서 인문사회캠퍼스로 들어오는 길목에 바로 위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안암역 방향 후문을 흔히 '정대후문'이라고도 부른다. 정경대 건물과 정대후문 사이에는 수많은 대자보를 붙일 공간이 있다. 2003년에 리모델링이 진행되었으며[175]리모델링 이전의 이 건물은 교내에서 유일한 붉은색 벽돌 건물이었다.
  • 국제관과 홍보관, 타이거플라자 : 국제관은 홍보관 뒤에 있는 건물로, 현재 국제학부국제어학원에서 쓰고 있다. 이 곳에서 각종 교양 외국어수업이 진행된다. 국제관과 민주광장 사이에 위치한 홍보관에는 고대신문, The Granite Tower, KUBS, KUTV 등 학내 언론단체 뿐만 아니라 문과대학 학생회실 및 문과대학 각 학과의 학생회실이 모여 있다. 고대신문만우절호에서 이 건물의 리모델링을 언급하였을 정도로 인문사회계지역의 대표적인 노후 건물로 손꼽히고 있으나[176] 이 건물에 별다른 계획 또는 변화는 없는 상태다. 이 건물의 3층에는 우체국이 있다. 한편 국제관과 정경관 사이에 위치한 타이거플라자는 본교 내 학생복지를 위한 첫 단독건물로써 2004년 10월 문을 열었다.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는 외부업체가 위탁영업을 하고 지상 4층 공간은 학생교류공간으로 활용되는데[177], 이 건물 내부 시설의 편리성을 두고 학생들 간에 찬반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178]
  • 인촌기념관 : 국제관 뒷편에 자리한 인촌기념관은 인촌 김성수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991년 10월 11일 개관하였으며[179][180] 각종 강연회, 음악회 등이 이 곳에서 빈번하게 열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6월 30일 이 곳에서 명예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바 있다.[181] 이 곳에서 열리는 공연의 좌석 예약은 이곳에서 할 수 있다.

자연계지역과 녹지지역

자연계지역
파일:Hanasquare nightview.jpg
자연계지역 하나스퀘어

2006년 9월 완공된 하나스퀘어를 중심으로 공과대학, 이과대학, 정보통신대학, 생명과학대학의 일부 교수 연구실이 위치하고 있다. 모든 부지는 안암동에 속해 있다.

  • 과학도서관과 하나스퀘어 : 과학도서관은 자연계지역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이공계 관련 서적은 대부분 이 곳에서 보유하고 있다. 단행본실 1층에는 한국도서, 2층에는 외국도서가 있으며, 이 건물의 1층과 4층, 5층에는 열람실이 위치하고 있다. 하나스퀘어는 2006년 8월 완공된 과학도서관 앞에 위치한 지하 건축물로서, 총무부, 열람실, 휴게실 등의 시설이 있다. 자연계 One-Stop 서비스센터는 하나스퀘어에 위치하고 있다. 하나은행에서 130억원을 기부하여 지어졌다.[182][주 4] 과학도서관과 하나스퀘어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지상을 통하지 않고 이동 가능하다.
  • 생명과학대학(자연계 지역) : CJ식품안전관은 자연계캠퍼스 북문을 지나기 직전에 바로 동쪽에 보이는 건물로, 2008년 준공되었으며 생명과학대학 식품공학부에 재직중인 일부 교수들의 연구실이 위치하고 있다. 생명과학관(서관)은 자연계캠퍼스 북문의 오른편, CJ식품안전관의 뒷편에 위치한 건물이다. 1973년 10월에 확정된 서독 정부의 원조[12]로 지어진 생명과학관(서관)은 1977년 준공되어 농과대학의 건물로 사용되다가 단과대 명칭 변경 및 통합 작업에 의해 생환대 본관 등의 이름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생명과학부, 생명공학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들의 연구실이 위치하고 있다. 2004년에 리모델링을 실시한 바 있으며, 자연계 북문에서 2층으로 바로 진입하는 입구가 별도로 존재한다. 생명과학관(동관)은 자연계캠퍼스 북문을 지나서 바로 왼편에 보이는 건물로, 2003년 준공되었다. 완공 당시에는 생환대 신관으로 불렸으며 생명과학대학 생명공학부, 환경생태공학부, 식품자원경제학과가 이용하고 있다.[74]
  • 미래융합기술관과 정보전산처 : 미래융합기술관은 자연계캠퍼스 북문을 지나면 정면에 멀리 보이는 건물로 2008년에 준공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영리 연구기관인 바텔연구소와 WCU(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사업에 따라 개설된 뇌공학과 등이 들어서 있다. 미래융합기술관 바로 아래편 또는 애기능생활관 맞은편에 위치한 정보전산처에는 학교 전산망를 담당하는 정보전산처와 전산실, 실습실 등이 있다.
  • 아산이학관 : 과학도서관 맞은 편에 있는 건물이다. 이과대학 수업 및 여러 가지 교양수업이 실시된다. 현관의 붉은 기둥 4개가 특징적이며,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F'자 형태를 하고 있다.
  • 애기능생활관과 애기능학생회관, 이학관별관 : 애기능생활관은 학생식당 및 교직원식당이 모여있는 건물로, 과학도서관 바로 아래편 또는 자연계동문에서 과학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해 있다. 일명 '밥통'이라고도 불리는데, 건물의 생김새 및 그 기능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그 바로 아래편에 위치한 이학관별관은 현재의 이학관(아산이학관)이 새롭게 지어진 후 이학관의 별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전략광물센터, 교양수학실 등이 있다. 애기능학생회관은 자연계남문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 건물로, 애기능동아리연합회 소속 각종 동아리실 이외에 각종 학생회실들이 모여있는 건물이다.
  • 공과대학과 산학관 : 1963년 설립된 공과대학은 공학관과 창의관, 제2공학관을 사용하고 있다. 과학도서관과 더불어 자연계캠퍼스의 중앙에 자리잡은 제2공학관은 원래 의과대학 설립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물이었지만, 당시 학교의 제반 문제에 의해 중단되었으며, 대신 교양학부와 공학부 교사의 용도로 1964년 건립되었다. '이공계 최악의 건물'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제2공학관이 석조건물로 바뀐다는 소식 또한 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변화는 없는 상태이며, 이 건물의 철거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또한 존재한다. 이 건물의 설계 또한 본관 등 교내 여러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박동진에 의해 이루어진 점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141] 산학관은 한국산학연종합연구단지 설립 기획에 의거 건설된 건물로, 1996년 6월 12일에 공학관과 동시에 완공되었다.[184] 이 건물에는 한국 산학연 종합연구원이 자리잡고 있다. 공학관의 아래쪽에 위치한 창의관은 2003년 준공되었으며 이 건물에는 공학대학원 및 산학협동에 관련된 연구실 등이 위치해 있다.[74]
녹지지역
프런티어관 뒷쪽 모습

의과대학간호대학, 생명과학대학의 일부 교수연구실이 위치하고 있고 기숙사와 체육 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모든 토지는 안암동에 속해 있다. 녹지운동장이 있어 녹지지역으로 불린다.

  • 의료원 : 고려대학교 의료원 산하에 있는 병원 세 곳 중 하나이며, 1971년 12월 고려중앙학원이 우석학원을 합병한 이후 과거 혜화병원을 1991년 8월 3일 CJ식품안전관 맞은편의 현재 위치에 신축 이전[185]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186] 의료원 오른편에 위치한 건물은 의과대학간호대학이 사용하고 있으며, 이들 건물 사이에는 의학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다. 현재 의과대학 건물 뒷편에는 의학관 건물 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자연계와 녹지를 잇는 길은 의료원의 오른편을 에둘러 지나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의과대학에서는 시신을 기증한 고인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매해 4월 말에 의과대학 뒷편의 감은탑 앞에서 '감은제'를 거행하는데[187], 감은탑 앞이 협소한 관계로 이 행사가 진행될 때는 부득이하게 녹지지역으로 향하는 길을 일시적으로 차단한다.
  • 생명공학원 : 생명과학대학 생명과학부생명공학부 교수 연구실 및 강의실이 위치하고 있다. 생명과학부의 학사지원부 또한 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의 뒷편에는 2층 규모의 컨테이너 건물인 특수연구동이 위치하고 있으며, 생명과학부 학생회실은 이 곳 2층에 위치하고 있다.
  • 녹지운동장과 화정체육관 : 녹지운동장은 잔디가 깔려있는 운동장으로, 예약을 하고 이용할 수 있다.[188] 매해 5월 응원단에서 주최하는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이 이 곳에서 진행된다. 이 행사는 화정체육관 공사가 진행되기 이전에는 노천극장에서 진행되었으나, 공사로 인해 노천극장이 폐쇄되어 녹지운동장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화정체육관은 중앙광장, 백주년기념관과 더불어 고려대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71]으로 2006년 7월 25일 건립하였으며, 고려중앙학원에서 공사비 262억원 전액을 출연하였다. 현승종 당시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은 화정체육관의 완공으로 '김병관 전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이 약속한 고려대 캠퍼스 종합개발 3대 마스터플랜이 마무리됐다'고 밝혔다.[189] 화정체육관 건립 이전에 이 곳에는 노천극장이 있었다.[190]
  • 학군단 : 본교에서는 녹지 지역 화정체육관 맞은편에 학생군사교육단 시설을 두고 있으며, 2010년 50기 학군사관 후보생을 모집[191]한데 이어 이듬해에는 51기와 52기 학군사관 후보생을 모집하였다. 연이은 기수를 한꺼번에 선발한 것은 2011년도 모집부터 1학년 학생들의 지원 또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192] 2010년 9월 14일 고려대학교는 숙명여대, 명지대, 충남대, 전남대, 영남대, 강원대와 더불어 최초로 여성 후보생 설치대학으로 선정되었으며[193], 본교에서는 첫 여성 ROTC 모집에 11명이 지원하여[194][195] 이 중 5명이 최종 합격하였다.[196][197]
파일:Korean pavillion.jpg
한국학관
  • 한국학관과 아이스링크 : 한국학관은 녹지운동장과 북악산길 방면 출입문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민족문화연구원이 사용하고 있는 한국학관에서는 한국학 관련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학관 뒷편에는 국제규격을 갖춘 아이스링크가 자리하고 있으며, 본교생이 이 시설을 이용시 이용료를 일정 부분 할인받을 수 있다. 2009년 5월 리모델링을 진행한 바 있다.[198]
  • 안암학사 : 안암학사는 안암캠퍼스의 기숙사이다. 관리동, 남학생동, 여학생동, 고시동, 외국인학생동, CJ International House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1년 민간투자 형식의 기숙사인 프런티어관이 완공되었다. 신축 기숙사가 완공됨에 따라 학생 수용인원이 2000여 명 가까이 늘어났다.

보건과학대학

고려대학교 내 단과대학인 보건과학대학이 사용하는 캠퍼스가 국민대학교 인근 정릉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에는 2·3년제 전문대학인 고려대학교 병설 보건대학의 건물이었으나 2005년 8월 24일 교육부가 통합 신청을 승인하면서 고려대학교와 통합[74]되어 2006년 신입생부터는 고려대학교 소속이다. 인문사회계지역 민주광장과 정릉을 오가는 셔틀버스 문제는 보과대에 재학 중인 학생 수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교생실습 등을 나가는 사범대학 학생 수요 등이 겹쳐 근래 들어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분류되고 있다. 두 지역 간을 오가는 데는 15~20분 가량이 소요된다. 한편, 보건과학대학 단과대의 캠퍼스가 정릉에 위치해 있는 것과 관련하여 보과대 학생의 상당수는 안암으로의 캠퍼스 이전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199], 2010년 5월 23일에서 5월 27일까지 보과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투표의 내용은 과거 단과대 학장의 인터뷰 내용[200]과 상반된다. 교생실습을 나가는 학생들 수요 문제가 언급되는 것은 정릉 보건과학대학 캠퍼스 내부에 사범대학 부속 ·고교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셔틀버스 문제와 캠퍼스 위치 문제 이외에도 신설 초기의 보건과학대학은 여러 문제점을 떠안고 있었다. 보과대 소속 학생은 보과대 소속 학과를 포함한 다른 학과로의 이중전공이 불가능하여 이로 인해 단과대 학생회 측과 학교 간의 마찰의 원인이 되었으며[201], 학사학위 문제도 이들 문제 중 하나였다. 학교 측에서는 당초 보과대 졸업생에게 일괄적으로 보건학사를 수여할 방침이었으나 각 학과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으며[202], 단과대 학생회 차원에서 학교 측과 논의한 끝에 식품영양학과 졸업생에게는 이학사를, 생체의공학과 졸업생에게는 공학사를 수여하는 것으로 방침이 변경되었다.[203]

주변 상권

본교의 주변상권은 6호선 안암역의 개통을 계기로 정문 앞에서 참살이길로 옮겨갔다. 안암역에서 안암오거리에 이르는 거리인 참살이길이 고려대학교의 대표적인 상권으로, 영화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업시설이 위치해 있다. 근래에 들어서 단순히 상권의 위치만 옮겨간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식사시간만 되면 밥집 앞에 길게 줄을 서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었지만, 학생들의 식생활 변화와 연이은 물가 상승 등의 이유로 학교 주변에 위치한 밥집들이 상당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04] 최근에는 정문 앞 캠퍼스타운 개발 문제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 있는 상태다.[205]

세종캠퍼스

세종캠퍼스 학술정보원

세종캠퍼스(世宗-)는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에 위치한 고려대학교의 또 다른 캠퍼스이다. 기존의 명칭은 서창캠퍼스였으나, 2008년 3월에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세종캠퍼스는 현재의 캠퍼스와 세종특별자치시에 새로 신설될 연구캠퍼스, 오송생명과학단지의 의생명공학원을 아우르는 통합명칭이다. 영어 약칭은 KUSC(Korea University Sejong Campus)이다.

  • 세종학술정보원 : 세종캠퍼스의 도서관으로서 정식명칭은 세종학술정보원이다. 1층에는 제1열람실과 제2열람실, One-Stop 서비스센터, 경력개발센터, 학군단 사무실, 보존서고가 있으며 2층에는 과학기술실과 인문과학실, 3층에는 전자정보실과 여학생 휴게실이 설치되어 있고 4층에는 사회과학실이, 5층에는 제3열람실이 있다. 분관대출을 통해 안암캠퍼스에 위치한 자료를 상호 대차 이용할 수 있다. 건물 옥탑에 4면 시계탑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호연학사 : 호연학사는 세종캠퍼스의 기숙사이며, 자유관, 정의관, 진리관, 호연4관의 총 4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용인원은 2,614여명으로 학부생 정원 대비 36.9%의 인원이 입사할 수 있다.

의료원 및 기타 시설

고려대학교 의료원 산하에 안암병원구로병원, 안산병원의 세 곳의 병원이 운영되고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에 위치한 안암병원은 약 900병상을 가동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에 위치한 구로병원 또한 약 900병상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안산병원은 약 600병상을 가동하고 있다.[206] 구로병원은 1983년 개원하였으며, 2008년 증축이 완료되었다. 안산병원은 1985년 개원했으며, 1998년 증축하여 시설을 확대 및 개선하였다.[207] 의료원 본부는 의료원 본부는 안암병원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의학도서관과 의과대학 건물 뒷편에 건립 중인 새 의학관이 완공되면 이전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고려대학교 대천수련원

그 밖에 본교 소유의 시설로는 낙산수련원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소재), 대천수련원 (충청남도 보령시 신흑동 소재)[208], 2010년 8월 10일 완공된 완도수련원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면 소재)[209], 송추운동장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소재), 덕소농장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읍)이 있다. 덕소농장에서는 참기름을 생산하고 있지만, 교내에서만 선물용으로 판매하고 있다.[210]

주요 학생 단체

총학생회

총학생회는 학교 당국과 독립적인 학생들의 요구를 대외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학생자치기구이다. 1960년 4·19 혁명 후 학생들은, 1949년 “학생층의 사상통일과 단체적 훈련을 강화하여 애국심 함양시키고 국가에 헌신봉사함을 목적”으로 이승만 정부에서 만든 어용기구였던 학도호국단을 탈퇴하고, 1960년 2학기에는 학생자치기구인 총학생회를 발족시켰다. 이후 군사정부의 탄압으로 그 명맥이 끊어질 뻔한 적도 있었으나 2011년 현재 44대 총학생회 후마니타스까지 재학생들의 자유선거로 매년 총학생회가 선출되고 있다.

학내 공식 언론단체

  • 고대신문(주간신문) : 1947년 창간[17]되어 학생 주도로 발행하는 고려대학교의 주간 교내신문으로, 발행비용은 학교 당국이 보조한다. 1960년 4월 2일 '우리는 행동성이 결여된 기형적 지식인을 배격한다'며 학생들이 독재정권에 저항할 것을 호소한 날카로운 사설[211]은 4·18 고대생 의거의 촉매제가 된 명문으로 유명하며, 1975년 긴급조치 제7호 당시 학교 앞에 진주한 군대를 상대로 학생들이 교문을 막고 서있는 사진과 함께 실린 '고대의 문은 누구도 닫을 수 없습니다'라는 광고는 수많은 교우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있는 기사보다는 학내 뉴스 위주로 1면을 내보내고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212] 서울대에서 발생한 대학신문 학생기자단의 편집권 투쟁[213]과 관련해 학생기자들의 투쟁을 촉구하는 의견이 개제되기도 하였다.[214] 한편 편집권 관련 분쟁으로 인해 서울대 대학신문의 2004년 11월 15일자 신문은 정상적으로 발행되지 않았다.[215] 1998년부터 인터넷 고대신문이 발행됨에 따라 인터넷으로도 고대신문의 기사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17] 신문사는 홍보관 건물 2층에 위치하고 있다.
  • The Granite Tower : 학내 영자신문사인 'The Granite Tower'는 현 YBM Sisa 민영빈 회장이 1954년 창간하였으며 고려대학교 유일의 영자 매체이다. 1997년에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하였다.[216] 신문사의 위치는 홍보관 2층이다.
  • 고대문화(월간지) : 1945년 창간된 고려대학교의 교지. 본래 학기마다 1회 발행하였으나, 2003년부터 월간으로 전환하였다가[217] 2010년부터는 계간으로 전환되어 발행 중이다.[218] 고대신문과 달리 학생들이 납부하는 교지대에 의존해 발행한다. '세계를 변혁하는 대항언론'을 표어로 하고 있으며, 학내외 여러 사안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많이 낸다.[219] 또한 총학생회 계열의 학생운동 세력과 다른 대안적인 주장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학생회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교지대는 등록금과 함께 학교당국이 수납을 대행하는 일괄납부 방식이었으나, 일부 학생들의 반발로 2005년 2학기부터 분리납부로 전환되었다.[74]
  • KUBSKUTV, KTN : 교내교육방송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KUBS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라디오 방송을 한다. 학내 특별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방송을 하며, KUBS의 방송은 인터넷으로도 들을 수 있다.[220] TV 방송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KUTV는 학내 곳곳에 설치된 TV를 통해 아침, 점심으로 방송을 하며,[221] 정규 방송은 1주일 단위로 편집된다.[222] 교내 TV 방송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KTV은 교내 행사의 영상 기록을 하고, 정규 프로그램을 만들어 송출하며[223], 교내 케이블TV 채널 4번을 통해 24시간 방송을 한다.
  • KDBS(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교내방송) : 1984년 개국[224]세종캠퍼스 대표언론기관이다. 방송을 통한 학내문화의 창달과 비판, 창조적인 여론형성으로 세종캠퍼스 구성원의 공감대와 일체감형성 및 학내문화의 발전을 통한 세종캠퍼스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학내언론기관이다. 오디오방송, 영상방송을 제작하여 학내 오디오스피커망, PDP를 통해 송출하며 인터넷 홈페이지로 방송을 재송출하고 있다.
  • 석순(여성주의 교지) : 1983년부터 시작[225]된 여성주의 교지로, 고대문화와 더불어 학생회비의 일부를 구성하는 교지대에 의해 운영된다. 역시 교지대 강제 징수를 둘러싸고 진통을 겪었다.[74] 학기당 1회 발행하며, 학내외 여성주의 문제 전반을 다룬다.

기타

  • 고려대학교 응원단 : 고려대학교 응원단은 1927년 11월 처음 치러진 보연전 시절부터 비공식적인 단체로 시작하여, 1968년부터 교내의 공식적인 단체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정기 및 비정기 고연전[226]을 이끌며, 고려대학교가 참여하는 스포츠 행사,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227] 등에서 응원을 담당한다.[228] 입실렌티 등 응원단이 주관하는 행사의 일정은 고려대학교 응원단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고려대학교 학생홍보대사 여울 : 고려대학교 대외협력처 홍보팀에 소속되어 재학생들로 이루어진 교내의 공식 홍보단체이다. 1998년 9월 1기가 선발[229]된 이래 2011년 현재 13기가 선발되어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를 방문하는 일반인들에게 캠퍼스 견학을 제공하고, 입학식과 졸업식, 비전 선포식 등 교내·외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여 고려대학교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정기견학 일정 등은 고려대학교 학생홍보대사 여울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세종캠퍼스홍랑이라는 별도의 학생홍보대사를 운영하고 있다.
  • 생활도서관 : 재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고 있는 인문/사회과학 전문 도서관이다. 1990년 5월에 만들어져 학생운동의 기지 역할을 맡아온 한편 2003년에는 대학도서관 개방운동에 참가하여 도서관의 대안적 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 고전음악감상실 : 1978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 학생들의 휴식공간 등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다양한 장르의 고전음악과 이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며 신청곡을 받아 멘트와 함께 틀어주기도 한다.[230] 홍보관 1층에 위치해 있다가 중앙광장 120호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로 인해 평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이루어지던 감상실 운영이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처럼 이용 가능 시간이 줄어들게 된 것은 새로 옮겨간 공간이 수업 용도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문제점에 직면하게 되자 감상실 측에서는 2011년 2월부터 재학생 커뮤니티인 고파스를 통한 '24시간 클래식 음악방송'을 개시하게 되었다. 현재는 더 풍성한 콘텐츠 제공을 위해 8월 31일까지 방송을 일시 중단한 상태다.[231]
  • 재학생 커뮤니티 : 재학생 커뮤니티로 고파스(안암캠퍼스)와 쿠플존(세종캠퍼스)이 운영되고 있다. 고파스와 쿠플존은 2011년 5월 5주 대학교 커뮤니티 순위에서 각각 1위와 6위를 차지하였다.[232]

연례 행사

사발식

사발식(沙鉢式)은 신입생들이 커다란 사발에 부어 놓은 막걸리를 선배들이 불러주는 '막걸리찬가'에 맞추어서 마시는 행사를 말하며, 고려대학교의 교우로 남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233] 사발식의 역사는 고려대학교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고 보아도 될 만큼 길지만, 정작 사발식의 기원이 언제부터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신입생환영회에서 많은 양의 막걸리를 마시도록 하는 것에는 "그간의 획일화된 교육과 얽매인 생활의 묵은 때를 모두 토해 비워버리고 학문의 진리와 민족의 정의를 위해 나아가는 고대인이 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234] 선배들이 불러주는 '막걸리찬가'의 내용이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늘 일정하게 유지된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전주 부분에 육두문자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현재의 노래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노래의 처음 부분에 있던 '사내답게' 가사에 성적 편견이 다분하다는 지적에 따라 현재는 '고대답게'로 바뀌었다.[233]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을 만큼 독특한 형식을 취하지만 이 행사에 대한 비판 또한 존재한다. 사발식을 비롯한 고대 문화가 지나치게 남성적이며, 이와 같은 문화의 형성에 여학우들의 경험이 반영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그것이다.[235] '막걸리찬가' 자체가 남성 편향적이라는 비판 또한 존재하였다.[236]

동아리 박람회

동아리 박람회(-博覽會; 약칭 '동박')는 고려대학교에 소속된 각 동아리들이 학부 신입생들에게 홍보를 하는 행사이다. 3월 중에 열리며, 고려대학교 중앙동아리연합회 주최의 동아리 박람회와 애기능동아리연합회 주최의 동아리 박람회가 각각 2일에 걸쳐 각각 학생회관 앞 민주광장과 애기능학생회관 앞에서 열리며, 열리는 열자는 날짜는 대개 겹치지 않는다.

4·18 구국대장정

매년 4월 18일4·18 고대생의거4·19 혁명을 기념하여 교내 중앙광장을 출발하여 수유동 국립 4·19묘지까지 행진하는 행사로, 1969년부터 매해 개최되었다. 행사 초기에는 시민들의 불편을 우려하여 참가자 수에 제한을 두었으나 1984년부터 이 제한이 폐지되었다. 이 행사에서의 구호는 해당연도의 이슈 또는 시대적인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이를 구호 뿐만 아니라 팜플렛을 통해서도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한다기보다는 고대생이 되기 위한 하나의 절차 정도로 인식되는 것과 관련하여 알맹이가 빠져 있다는 의견들이 존재하는 반면, 꾸준히 행사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237] 한편, 운동부원들을 주축으로 '4·18 마라톤'이라는 (다소 독립된 성격을 지닌) 행사 또한 진행된다.

석탑대동제와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

2011년 입실렌티 무대
  • 석탑대동제(石塔大同祭) : 석탑대동제는 매년 5월 중에 열리는 학생 축제이다. 1962년 5월 4일부터 3일간 개최된 '석탑축전'이 그 연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석탑'이라는 이름은 당시 본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조지훈 선생이 지었다고 한다. 석탑축전이 '대동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84년의 일이다.[238][239] 사회 비판적인 행사를 통해 학생들의 참여의식을 고취시켰으며, 당시 독재정권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 학생들을 추모하는 합동위령 굿 등을 지내면서 3년 후인 1987년에는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서 '대동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열 정도로 '대동제'라는 이름은 대학가 전역에 널리 퍼져나갔다. 인문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태환 교수는 '교내 구성원 간에 소속감과 일체감을 느낀다는 면에서 스트레스 해방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면서 교내 축제에 그 의미를 부여하였다.[239] 석탑대동제는 개교기념일의 대표 행사였으나 2000년대 들어 개최기간이 길게는 3주까지 미뤄지며 개교기념일과의 거리가 멀어졌다.[238] 대동제 기간에는 여러 학과/반 학생회와 동아리에서 주점을 비롯한 각종 이벤트들이 교내 곳곳에서 개최되며, 주요 행사 일정은 교내에 비치된 고대신문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0년에 총학생회와 모자이크축제기획단 사이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석탑대동제와 모자이크축제가 각각 한 주씩 따로 열리는 사건이 발생[240]함에 따라, 그 이듬해인 2011년에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는 축제만을 전담하는 '축제특별위원회(축특위)'를 신설하고, 신설 기구에 2011년 대동제에 대한 집행권한을 위임하였다. 2011년에 처음 설치된 이 기구가 상설화되려면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상설기구로 인준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241] 한편, 대동제 기간에 애기능 지역에서는 애기능동아리연합회의 주도로 별도의 행사가 열리며, 2011년의 경우 공과대, 생명대, 이과대, 보과대, 정통대의 5개 단과대학이 참여하여 노벨광장을 주 무대로 'Sound Festival'과 '애기능 실루엣 가요제', '애기능 요리 경연대회' 등과 더불어 각종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펼쳐졌다.[242]
  • 녹두축전 : 문과대 학생회가 주관하는 녹두축전은 상대적으로 행사가 적은 2학기에 열린다. 2010년 10월 5일10월 6일 양일간 개최된 녹두축전에서는 찻집과 전공박람회, 밴드 공연 등이 개최되었다.[243]
  •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Ipselenti: 知野의 喊聲) :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은 주로 석탑대동제 마지막 날 저녁을 기해 고려대학교 응원단이 주최하는 응원제로 2011년에 34회째를 맞았다. 학생들은 모교의 응원가를 부르고 응원단의 안무를 따라하면서 즐기며, 초청 연예인들의 공연도 이루어진다. '입실렌티(Ipselenti)'란 보성전문학교 시절부터 사용된 고려대학교의 교호(校號)의 일부이며, '지·야'란 지성(知性)과 야성(野性)을 가리킨다.

고연전

파일:Koyon Games.jpg
고연전(잠실 주 경기장)
파일:20051105 044.jpg
2006년 정기고연전(잠실 야구장)

고연전(高延戰)은 광의로는 스포츠, 과학기술, 온라인게임경기 등 모든 분야에서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와 승부를 겨루는 행사 일체를 의미하며, 협의로는 매년 가을 연세대학교와 우호를 다지기 위해 개최하는 5개 스포츠 종목의 정기친선경기대회(정기 고연전)를 의미한다. 대학리그 등 정기 고연전 이외의 체육경기에서 연세대학교와 우연히 승부를 겨루게 되는 경우를 특별히 '비정기 고연전'이라고 칭한다.

고연전의 기원은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가 처음으로 맞붙었던 1925년 전조선(全朝鮮) 정구대회 전문부 제1회전에서 찾는다. 그러나 이 때에는 응원의 열기가 높지 않았으므로, 양교의 실질적인 첫 전면시합은 1927년 경성운동장에서 거행된 제8회 전조선 축구대회 준결승으로 본다. 이때부터 양교는 1942년까지 조선 축구 정상을 놓고 뜨거운 경쟁을 벌여 14승 14패의 무승부를 기록하였다.[244] 이때에는 보성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의 앞글자를 따서 '보연전'으로 통칭되었으나, 1946년 보성전문학교가 고려대학교로 개칭한 이후에는 '고연전' 으로 불리고 있다.[244]

지금처럼 양교가 매년 직접 주최하는 정기친선경기대회(정기전)의 시초는, 1945년 '제1회 보연 OB 축구대회'로 볼 수 있다.[244] 이듬해인 1946년부터는 축구농구의 재학생 간 정기전이 매년 열리게 되었고, 1956년에는 야구, 럭비, 빙구의 세 종목이 추가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규모의 고연전 기틀이 마련된 것은 1959년의 일이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지는 5·16 군사정변 등의 이유로 정기전이 열리지 않았다.[244] 1965년부터는 이틀 동안 다섯 경기가 일제히 치러지는 지금과 같은 경기방식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으며, 역대 고연전 전적은 다음과 같다. 매년 9월에 열리는 정기전은 고연 양교가 매년 번갈아 주관하는데, 정기전의 정식 명칭은 매년 주최대학 이름을 뒤에 붙이는 방식으로 번갈아 정한다. 즉, 해당 연도에 고려대학교가 주최 및 주관을 하게 되면, '연세대학교 대 고려대학교 정기친선경기대회(정기 연고전)'가 되고, 연세대학교가 주최 및 주관을 하게 되면 '고려대학교 대 연세대학교 정기친선경기대회(정기 고연전)'가 된다. 그러나 정식 명칭은 실질적으로 방송 중계나 신문 보도 등의 공식 석상에만 사용될 뿐이며, 고려대학교에서는 고연전, 연세대학교에서는 연고전이라고 통칭한다. 고연전을 며칠 앞두고 세종 오리엔테이션과 안암 오리엔테이션, 합동 오리엔테이션이 각각 진행된다.[245] 고연전 때 붉은색 티셔츠를 입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의 일이다.[246]

교우회 및 고려대학교 출신 유명인

  • 고려대학교 교우회 : 고려대학교 출신 교우들의 모임인 '고려대학교 교우회'는 1907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동문회인 보전 친목회로 창립되었다. 초대회장은 조성구(趙聲九)가 맡았다.[247] 고려대학교 교우회관 건물은 1994년 9월 29일에 기공하여 1996년 5월 30일 문을 연 것으로[39] 사범대학 동쪽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1동 29-26에 위치하고 있다.
  • 고려대학교 출신 유명인 : 고려대학교는 지난 100여년의 역사동안 수많은 유명인을 배출하였다. 독립운동가 손병희는 보성전문학교의 중흥자였으며, 그밖에 학계, 정치계, 체육계, 예술계, 언론계, 법조계, 연예계, 금융계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바 있다. 상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 출신 유명인 페이지를 참조한다.

위치 및 교통편

위치

안암캠퍼스 풍경
소속 소재지
안암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5가 1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인문사회계지역
녹지지역
서울특별시 성북구 인촌로 56 자연계지역
서울특별시 성북구 인촌로 73 의료원
의과대학
간호대학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산1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로 161 보건과학대학
세종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 세종로 1135 세종캠퍼스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 둔지미길 56 행정대학원동

교통편

안암캠퍼스

교통수단 역/정류소명 해당지역 또는 노선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인문사회계지역 동편, 교우회관, 체육생활관
6호선 안암역 인문사회계지역 서편, 자연계지역, 녹지지역, 의료원
시내버스 인문사회계
지역
고려대학교
(본교 정문)
101, 144, 163, 273, 1017, 1111, 1222, 2222, 7211, 111 (의정부)
고대앞삼거리
(6호선 고려대역)
110A/B, 130, 141, 148, 410, 1213, 1222, 2222 (하행만)
자연계/녹지
지역
안암역 273, 1111, 1212, 성북04(마을)
고려대이공대(의료원) 273, 1111, 1212, 성북04(마을)
안암오거리 101, 144, 163, 1017, 1222, 7211, 성북04(마을), 111 (의정부)
(법대후문, 안암학사입구,
아이스링크)
성북20(마을)
보건과학대학
(정릉)
보건과학대학 110A/B, 153, 171, 1020, 1213, 7211, 8153 (맞춤)
청덕초등학교 110A/B, 153, 171 (길음역 방향만),
1020 (평창동 방향만), 1213, 1711, 7211, 8153 (맞춤)
보건과학대학
후문
1166
셔틀버스 교내셔틀 과학도서관~의과대학~녹지운동장~한국학관~
안암학사~중앙도서관~학생회관
(10분 간격, 점심시간 20분 간격, 평일만 운행)
보건과학대학 학생회관(민주광장)~중앙도서관~보건과학대학
(15분 간격, 점심시간 운휴)
보건과학대학 셔틀버스 운행시간표
세종캠퍼스 풍경

세종캠퍼스

교통수단 이동방법
자가용 논산천안고속도로 남천안IC에서 조치원 방면으로 약 15km
경부고속도로 청주IC에서 조치원 방면으로 약 10km
기차 조치원역에서 하차, 역 광장에서 교내까지 셔틀버스로 5분 소요
고속버스 강남터미널(서울)에서 조치원행 탑승, 고려대 앞 정류장 하차
비행기 청주국제공항에서 조치원 방면으로 약 20km


주해

  1. 어윤대 총장의 재임기간 동안 본교는 2005년 영국 더 타임즈 지가 발표한 '2005년' 세계 200대 대학'에서 184위에[111], 이듬해인 2006년 10월에는 같은 기관에 의해 이루어진 평가에서는 종합 150위에 오르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기록하였다.[112][74] 하지만 2006년의 평가 결과에 대해서는 학교 측이 비전임 교원 수까지 포함된 수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교원 수를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113]
  2. 인문사회계의 진입공간은 '2005 서울사랑시민상 환경부문'의 조경생태 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다.[140]
  3. 중앙광장은 서울시가 주는 '올해의 조경상'을 수상한 바 있다.[147]
  4. 하나스퀘어 건물은 2007년에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183]

주석

  1. 정연춘 기자. “진통(陣痛) 1年9개月만의 안주(安住) 고려대(高麗大) 우석대(友石大)병합의 언저리”. 동아일보.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 “굽이굽이 미완의 숙제 남기고 흐르는 '굴곡의 현대사'. 경향신문.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3. “대통령긴급조치 제7호(1975.4.8)”.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4. “긴급조치(緊急措置) 7호선포”. 매일경제.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5. “高大의 문은 누구도 닫을 수 없습니다!”.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6. 강훈상 기자. “고려대 "`KU' 상표권 등록 어떻게 안될까". 연합뉴스. 2011년 6월 7일에 확인함. 
  7. 심서현 기자. “대학 캠퍼스 안의 역사적 건물”. 중앙일보.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8. 주남철 교수. “절제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 고려대학교 본관”.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9. 김대호 교수. “글로벌 리더로 인도하는 세계 경영 내비게이터”.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0. “연표”.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1. “사학(私學)의 수난(受難) 고대(高大)·연대(延大)의 발자취”. 경향신문.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2. “고려대학교 약사”.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13. “仁村(인촌)선생의 나라사랑-교육사상을 중심으로 40周忌(주기) 추념강연”. 동아일보.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4. 이광표 기자. “웅장…화려…고풍…절제…대학가 근대건축물 관람”. 동아일보.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5. “고려대학교중앙도서관(高麗大學校中央圖書館)”.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16. “연표”.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7. “고대신문 소개”.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8. '민영빈' 검색 결과”.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9. “민영빈 YBM 시사 회장”. 연합뉴스.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20.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주요 연혁”.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1. “연혁”.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2. “소개 및 교육목표”.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23.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60년대편 3권〉(인물과사상사, 2004) 58쪽.
  24. “미디어학부 소개”.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25. “현황 및 연혁”.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6. “어리둥절 모두 어리둥절”. 경향신문.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7. “무거운침묵(沈默) 위수·휴업령(休業令)내려져 굳게닫힌 캠퍼스”. 동아일보.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8. 김도형 논설위원. “27년 만에 빛 본 1980년 ‘신동아’ 계엄검열 삭제 기사 ‘4·19에서 10·26까지 학생운동이 걸어온 발자취’”. 신동아.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9. “고대학생회장(高大學生會長)등 셋구속(拘束)”. 매일경제.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30. “35日만에 門열린 고려大 校門의軍人에 "수고했오". 동아일보.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31. “민정당사(民正黨舍)난입 대학생19명 구속(拘束)”. 경향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32. “잇단 교수(敎授)·교무회의(會議)·결론(結論)못내려 각대학(大學) 농성학생 징계 고민”. 동아일보.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33. 변상욱 기자. '마지막 광복군' 김준엽 선생의 대장정 90년”. 노컷뉴스.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34. 임기창 기자. "김준엽 전 총장은 `진정한 선비'의 전형". 연합뉴스.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35. 박수진 기자. “실천하는 지성, 시대의 스승 故 김준엽 전 총장”. 헤럴드경제.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36. 김대원 기자. “진정한 高大魂의 부활을 꿈꾸며”.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37.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타계”. 2011년 6월 22일에 확인함. 
  38. “연표”.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39. “연표”.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40. “도서관 연혁”.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41. “고대(高大) 새도서관(圖書館)개관”. 동아일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42. “주요연혁”.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43. 김준호 기자. “고려대 세종캠퍼스 개교 30주년 기념식”. 연합뉴스.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44. 이범종 기자. “30년 쌓아올린 세(世)상의 종(宗)심”. 고대신문.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45. “연표”.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46. 하남현 기자. "고려대 글로벌化"아직도 배고프다”. 헤럴드경제.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47. 오남석 기자. “고려대, 캐나다 UBC에 한국학생위한 기숙사 준공”. 문화일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48. 권지현 기자. “KU-UBC House 준공식”. 고대신문.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49. “고려대학교 약사”.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50. “The Division of International Studies”.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51. “대학소개”.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52. “연혁”.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53. “조형학부 연혁”.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54. “연혁”.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55. 오연주 기자. “빛나는 졸업장 받기 힘들다”. 헤럴드경제.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56. 양정대·고찬유 기자. “대학졸업門 갈수록 '좁은門'. 한국일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57. 구성미 독자리포터. “영어못하면 졸업하기 힘들어진다”. 고대신문. 2011년 6월 15일에 확인함. 
  58. 김연정 기자. “04학번, 한자이해능력 인증돼야 졸업한다”. 고대신문. 2011년 6월 15일에 확인함. 
  59. 우수임 기자. “한자졸업요건폐지, "단과대 자율에 맡기겠다". 고대신문.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60. 금보운 기자. “04학번 제2전공 꼭 선택해야”. 고대신문. 2011년 6월 15일에 확인함. 
  61. 최창식 기자. “내년 개교 100주년 맞는 고려대”. 한국대학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62. 김연정 기자. “치밀한 준비가 본교 도약의 전환점”. 고대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63. 정양환 기자. “고려大 100주년 국제학술회의”.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64. 정인지 기자. “백주년 학술대회 성황리에 마쳐”. 고대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65. 고찬유 기자. “내달 5일 100돌 고려대학교”. 한국일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66. “고려대학교 약사”.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67. 전혜영 기자. “세계대학총장포럼, 성공적 개최”. 고대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68. 전승훈 기자. “‘고려大 교향곡’ 탄생…러 라린교수 작곡, 11일 초연”. 동아일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69. 김원경 기자. “본교 관현악단 오는 11일 공연”. 고대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70. 안준현 기자. “고대-국제화 프로그램 활발”. 한국일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71. 심규선 기자.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별세”. 동아일보.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72. 박설수 기자. "색상·형태 맞춰 엠블렘 사용해 달라". 고대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73. 강동호 기자. “대학가 'UI 바꾸기’ 바람”. 서울경제.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74. 고대신문. “10대 사건으로 돌아본 어윤대 총장 임기 4년”. 고대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75. 배선주 기자. “고려대 ‘이건희 회장 명박 수여’ 시위싸고 시끌”. 세계일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76. 김기성 기자. “이건희 회장 名博학위수여식 `파행`”. 이데일리.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77. 손병관 기자. "고대생 삼성 취업 물건너갔다" 홈피에 '학생비판론' 우세”. 오마이뉴스.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78. 백소용 기자. “고려대 '교수감금' 7명 출교…재입학 불가능”. 세계일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79. 강건택 기자. “고려대 출교생 700여일만에 천막철거”. 연합뉴스.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80. 이예솔 기자. “출교생, 마침내 복학한다”. 고대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81. 박영회 기자. “고려대 학생 "출교조치 무효". MBC.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82. 이세원 기자. “법원 "고대 출교생 무기정학 처분 무효". 연합뉴스.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83. 임수정 기자. '고대 출교생' 학교 상대 손배소 패소”. 연합뉴스.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84. “한국철도대학 사립화사업 우선협상종결”. 대한민국 정책포털 공감코리아.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85. 지민섭 기자. “본교 의학전문대학원 2009년 개원”. 고대신문. 2011년 6월 7일에 확인함. 
  86. 정태웅 기자. “서울대·연대·고대, 의학전문대학원 포기”. 한국경제.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87. 김경민·윤다솔 기자. “2년만에 단독 의대체제로 돌아가기로”. 고대신문. 2011년 6월 7일에 확인함. 
  88. “로스쿨 예비大서울권15곳 1140명,지방10곳 860명 잠정 확정”. 동아일보. 2011년 6월 7일에 확인함. 
  89. 엄성섭 기자. “고려대, 로스쿨 반납 오늘 결정”. MBN. 2011년 6월 7일에 확인함. 
  90. 조기호 기자. “고려대 "로스쿨 반납 방침 거두기로". 노컷뉴스.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91. 이성진 기자. “고려대 로스쿨 "호랑이의 기상으로..." 신입생 OT 가져”. 법률저널. 2011년 6월 7일에 확인함. 
  92. 김의성 명예기자. “명예기자 리포트 '지금, 우리 로스쿨은?' 고려대 로스쿨”. 법률저널. 2011년 6월 7일에 확인함. 
  93. 송형석 기자. "사시합격자 수가 `로스쿨 당락` 갈랐다". 한국경제. 2011년 6월 7일에 확인함. 
  94. 최민영 기자. “고려대 ‘고교등급제’ 의혹”. 경향신문.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95. 윤성효 기자. “고려대 2009학년도 입시부정, 추가소송 벌인다”. 오마이뉴스.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96. 이정훈 기자. “고려대 수시지원 탈락 학부모 12명 추가 소송”. 연합뉴스.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97.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 “사정관제 위반 두루뭉술 넘기면 안된다”. 경향신문.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98. 서진우 기자. “입학사정관제 위반 5개大 재정 일부 회수”. 매일경제.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99. 김형기 논설위원. “입학사정관제의 걱정스러운 사정”. 조선일보.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100. 위대용 기자. “본교, 입학사정관제 지침 위반”. 고대신문.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101. 구교형 기자. “입학사정관제 첫 도입 故 김영정 서울대 교수 ‘공무상 재해’ 유족 승소”. 경향신문.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102. 오승재 기자. “이기수 대교협 신임 회장 “등록금 아주 싼 편””. EBS.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103. “이기수 고대총장 "대학등록금 아주 싼 편". MBN.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104. 최훈길 기자. “고대총학 "이기수 총장, 등록금 발언 철회하라". 미디어오늘.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105. 남상욱 기자. “고대총장의 엇나간 高大예찬”. 한국일보.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106. 강경석 기자. “등록금심의委 첫해부터 ‘삐걱’”. 동아일보.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107. 김세진 기자. “고대 6년만의 비상학생 총회..등록금 인하 등 요구”. 경향신문.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108. 김경수 기자. “고려대 본관점거, 개교기념식 맞춰 중단”. 파이낸셜뉴스.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109. 허재현 기자. “‘학생들 힘 보여주자’ 동맹휴업투표 뜨거운 열기”. 한겨레.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110. 배준희 기자. “반값등록금 '동맹휴업' 무산...대학생 외면 이유는?”. 머니투데이.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111. 손일선 기자.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매일경제.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12. 이호준·김기범 기자. “자본·시장논리에 ‘상아탑 반기’…어윤대 총장 탈락”. 경향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13. 이재명 기자. “‘세계대학평가 150위’ 고려대, 교원수 부풀려 자료 냈다?”. 한겨레.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14. 김현우 기자. '논문표절 의혹' 이필상 총장 끝내 사의 표명”. SBS.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115. 이후연 기자. “103번째 새끼호랑이들의 '개강'. 고대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16. 강건택 기자. “고려대 이기수 총장 취임.."法古創新정신 상기". 연합뉴스.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17. 전혜원 기자. “본교 제 17대 이기수 총장 취임”. 고대신문.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118. 나소민 기자. “제18대 김병철 총장 취임”. 경향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19. 박서현 기자. “28일, 제18대 총장 취임식 열려”. 고대신문.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120. 박태진 기자. “고려대 차기 총장선거 역대 최다 10명 출마”. 이투데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21. 장용민 기자. “18대 총장선거에 교수 10명 등록...본격적인 일정 시작”. 고대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22. 임태섭 독자리포터. “준비된 EKU,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고대신문.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23. 양길모 기자.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명칭 선포식”. 뉴시스.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24. 양길모 기자. “세종대, 고려대의 '세종캠퍼스' 표장사용금지 가처분신청”. 뉴시스.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25. 양길모 기자. “세종대, "세종캠퍼스 사용말라" 고대 상대 소송”. 뉴시스.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26. 박인옥 기자. “법원 "고려대 세종캠퍼스..표장 사용할 수 있다". 파이낸셜뉴스.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27. 강현석 기자. “고대 '세종캠퍼스' 명칭은 도용 아냐”. 노컷뉴스.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28. 박준호 기자. “세종대, 내달 2일 高大 '세종'캠퍼스 명칭 반대 궐기대회”. 뉴시스.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29. 배준희 기자. “고려대 세종캠, 약대 개교선포식 개최”. 머니투데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30. 이정인 기자. “수강생 56% 영어강의 불만족”. 고대신문. 2011년 6월 4일에 확인함. 
  131. 하현희 기자. “글로벌 KU 국제하계대학의 현주소”. 고대신문. 2011년 6월 5일에 확인함. 
  132. 류난영 기자. “고려대 영어강의, 단과대별 탄력운용키로”. 뉴시스.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33. “영어강의 효율성 높여 내실 갖춰야”. 고대신문.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34. 김효원 기자. “학문융합 모양만 있고 '내실'이 없다”. 고대신문.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35. “2중전공”.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36. 이승은 기자. “2004년부터 연계전공 시행”. 고대신문.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37. 박은별 기자. “연계전공, 빈틈 메워 내실있게 운영해야”. 고대신문.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38. 최영희 기자.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어윤대는 누구”. 이투데이.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39. 문혜정 기자. “대학캠퍼스 리모델링 전도사 고려대 장동식 교수”. 한국경제. 2010년 3월 28일에 확인함. 
  140. “2005 서울사랑시민상 환경부문 시상”. 연합뉴스.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41. 김현섭 교수. “제2공학관을 위한 변명”.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42. “멋진 건축, 뽐내는 건축”.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43. 김경민 기자. “그때 그곳엔 4·18기념비”.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44. 구지선 (2009년 6월 15일). 《ENJOY 서울》. 넥서스BOOKS. 227쪽. ISBN 9788960005549. 
  145. 김선미 기자. “고려대 중앙광장 준공”. 동아일보.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46. 김경민 기자. “그때 그곳엔 중앙광장”.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47. 이광표 기자. “고대광장 등 6개 건축물 '올해의 조경상' 수상”. 동아일보.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48. “실별이용안내”.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49. 최철 기자. “고려대의 과공비례(過恭非禮)”. 노컷뉴스.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50. 장우정 기자. “법학도서관 신축 공청회 열려”. 고대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51. 배민욱 기자. “고려대, 국내 최대 법학도서관 개관”. 뉴시스.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52. 정혜림 기자. “국내 최대 규모 법학도서관 준공”. 고대신문. 2011년 6월 11일에 확인함. 
  153. “한국건축문화대상 해송법학도서관”. 서울경제.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54. 김솔지 기자. “법학도서관의 출입 범위는?”.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55. 김경민 기자. “그때 그곳엔 동원글로벌리더쉽센터”.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56. 고려대학교 도서관 장서현황 참고
  157. “2009 한국도서관연감”.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58. 박병준 독자리포터. “리모델링한 사범대 더워 수업받기 힘들어요”. 고대신문. 2011년 6월 15일에 확인함. 
  159. “박양숙 여사, 유니세프에 100억 기부”. 한국경제.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60. 전민지 기자. “운초우선 교육관 준공식 열려”. 고대신문.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61. 목정민·박은하·이서화 기자. “‘수익’에 눈먼 대학, 학생 ‘자치공간’ 허문다”. 경향신문.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62. 양길모 기자. “고려대 학생 "사범대 분관 철거 대체공간 마련해라". 뉴시스.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63. “경영대학 역사”.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64. 정윤섭 기자. “한국경제,가장 큰 위협은 통일”. 연합뉴스.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65. 정진욱 기자. “경영대 신경영관(가칭) 기공식 열려”. 고대신문.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66. 김경민 기자. “그때 그곳엔 서관”.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67. 최세아 기자. “서관 시계탑, 사람이 돌리나”. 고대신문. 2011년 6월 15일에 확인함. 
  168. 위대용 기자. “고대 2만 학우를 위해 달리는 청년”. 고대신문. 2011년 6월 15일에 확인함. 
  169. 김병규 기자. “조지훈 시비(詩碑) 제막”. 연합뉴스.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70. “정체불명의 시가 지훈시비에 새겨져 있다! (인권환 국문56)”.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71. 김경민 기자. “그때 그곳엔 민주광장”.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72. 강영수 기자. “삼구 박종구회장 120억 高大 기탁”. 국민일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73. 문성현 기자. “고려대 우당교양관 준공식”. 경향신문.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74. 김경민 기자. “그때 그곳엔 우당교양관”.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75. 박설수 기자. “30일부터 정경관 입주 시작”. 고대신문.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76. 윤준보 기자. “제2공학관, 홍보관, 조형학부 건물 바뀐다”. 고대신문.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77. 김연정 기자. “유명 브랜드 입점예정, 휴게실은 4층에 마련”. 고대신문.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78. 조철희 기자. “고려대 교내 상업시설 ‘타이거플라자’ 입점 논란”. 세계일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79. “인촌(仁村)기념관 개관”. 동아일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80. 김경민. “그때 그곳엔 인촌기념관”. 고대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81. 김웅철·김경도·이원종 기자. “지식(知識)으로 민족의 미래 열자”. 매일경제.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82. 김경민 기자. “그때 그곳엔 하나스퀘어”.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83. “하나스퀘어”. 서울경제. 2010년 3월 28일에 확인함. 
  184. “연혁”. 2011년 6월 15일에 확인함. 
  185. 김경민 기자. “그때 그곳엔 의과대학”.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86. “연혁”.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87. 김성지 기자. “고대의대, 의학교육 위해 시신 기증한 뜻 되새겨”. 메디파나.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88. “예약하기”.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189. 신수정 기자. “국내 대학 최대규모 고려대 화정체육관 준공”. 동아일보.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90. 김경민 기자. “그때 그곳엔 화정체육관”.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91. 김솔지 기자. “2010년 학군단 모집”.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92. 윤준보 기자. “학군단 1학년도 지원 가능”.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93. 박인옥 기자. “여성 ROTC 설치대학,숙명여대 등 7개大 선정”. 파이낸셜뉴스.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94. 박인옥 기자. “첫 여성ROTC 경쟁률..6 대 1”. 파이낸셜뉴스.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95. 조세현 기자. “여성 ROTC 모집에 11명 지원”.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96. “고려대 첫 여성 ROTC 후보생 입단”. 서울경제.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197. 장용민 기자. “여성 학군장교후보생 5명 선발”.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198. “고려대학교 아이스링크 리모델링 개관”.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199. 김민형 기자. “보과대 학생들, 캠퍼스 이전 원해”. 고대신문.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200. 김민형 기자. “융합학문의 허브대학으로 키우겠다”. 고대신문.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201. 정부경 기자. “보과대 이중전공 허용 논의 이뤄져”. 고대신문. 2011년 6월 15일에 확인함. 
  202. 이지현 기자. “보과대 졸업학위명 논란”. 고대신문. 2011년 6월 15일에 확인함. 
  203. 김경민 기자. “학과 특성 고려해 일부 학과의 학사학과명 변경”. 고대신문. 2011년 6월 15일에 확인함. 
  204. 김민형 기자. “고대에 밥 먹을 곳이 사라지고 있다”.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205. 조성흠 기자. “고려대앞 캠퍼스타운 개발 반대”. 연합뉴스.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206. “현황”.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07. “연혁”.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08. “편의시설안내”.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09. 김유경 기자. “고려대 '완도청해진 수련관' 준공식 개최”. 아주경제.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210. “유니스토어 상품소개”.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211. 전승훈 기자. “1960년 고대생들 깡패들에게 피습”. 동아일보.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12. “고대신문의 최근 편집 경향에 대한 단상”.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213. 박선영 기자. “서울大 대학신문 편집권 갈등 창간후 첫 '半백지'발행 파문”. 한국일보.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214. “대학신문 학생기자단의 '편집권 투쟁'을 지지한다”.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215. 대학신문. “사과드립니다”. 대학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216. “About”.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17. “월간호 보기”.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18. “계간호 보기”.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19. “고대문화란?”.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20. “KUBS 소개”.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21. “정규방송 편성표”.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22. “정규방송 전체보기”.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23. “정규방송”.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24. “연혁”. 2011년 6월 7일에 확인함. 
  225. “석순 소개”.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26. “정기 고연전”.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27. “지.야의 함성”.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28. “응원단 역사”.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229. “여울 현황”. 2011년 6월 3일에 확인함. 
  230. 정부경 기자. “고전음악들으며 공부할까요?”.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231. 신효식 기자. “고파스에서 24시간 클래식 음악방송을 즐겨보세요”.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232. “사이트 순위정보”.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233. 정운용 교수. “막걸리 찬가”. 고대신문. 2011년 6월 10일에 확인함. 
  234. 박철성 기자. “전통을 이어가는 고려대학교 막걸리사발식”. SPORTS WORLD. 2011년 6월 10일에 확인함. 
  235. 문화부. “대담 전문”. 고대신문. 2011년 6월 10일에 확인함. 
  236. "고대생들은 대학생이 안 되었으면 다 깡패가 되었을 놈들이여...". 2011년 6월 10일에 확인함. 
  237. 공인주 기자. “4·18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가”. 고대신문. 2011년 6월 3일에 확인함. 
  238. 장민석 기자. “다사다난했던 개교기념일”. 고대신문.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239. 김다혜 기자. “고려대 대동제, 어떻게 변해왔을까?”. 고대신문. 2011년 6월 3일에 확인함. 
  240. 정아윤 기자. “2010년 10대 사건 - 5월 모자이크 축제 개최”. 고대신문. 2011년 6월 3일에 확인함. 
  241. 정아윤 기자. “축특위 중심의 달라진 축제 준비”. 고대신문. 2011년 6월 3일에 확인함. 
  242. 김민형 기자. '이공계인' 사로잡을 애기능 축제”. 고대신문. 2011년 6월 3일에 확인함. 
  243. 이지현 기자. “5일부터 '녹두축전' 열린다”. 고대신문. 2011년 6월 3일에 확인함. 
  244. “고연전 역사”. 
  245. 조세현 기자. “응원오티에 참여하세요”.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246. 김다혜 기자. “캠퍼스 가득한 크림슨, 비슷해 보여도 다 달라요”. 고대신문. 2011년 6월 9일에 확인함. 
  247. “교우회 연혁”. 2011년 6월 6일에 확인함. 

같이 보기

바깥 고리


틀: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틀:서울특별시의 대학교

틀:유니버시타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