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마어 히츠펠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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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의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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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1일 (화) 17:56 판

오트마어 히츠펠트
개인 정보
출생일 1949년 1월 12일(1949-01-12)(75세)
출생지 독일의 기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뢰라흐
포지션 감독 (과거 스트라이커)
구단 정보
현 소속팀 스위스
청소년 구단 기록
TuS 슈테텐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67-1971
1971-1975
1975-1978
1978-1980
1980-1983
FV 뢰라흐
FC 바젤
VfB 슈투트가르트
FC 루가노
FC 루체른


77 (38)

국가대표팀 기록
1972 서독 서독 U-23
지도자 기록
1983-1984
1984-1988
1988-1991
1991-1997
1998-2004
2007-2008
2008-
FC 추크
FC 아라우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FC 바이에른 뮌헨
FC 바이에른 뮌헨
스위스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또한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03년 1월 1일 기준임.
‡ 국가대표팀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03년 1월 1일 기준임.

오트마어 히츠펠트(독일어: Ottmar Hitzfeld, 1949년 1월 12일 ~ )는 은퇴한 서독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이다.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별명은 장군(Der General)이다. 현재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다.

선수 시절

히츠펠트는 1949년 다섯 자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에 하부리그 소속의 TuS 슈테텐FV 뢰라흐에서 뛰다 1971년 FC 바젤로 이적했다. 그는 1972년과 1973년에 리그 우승을 했고, 1975년 스위스 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아마추어 상태로 계속 남았고, 1972년 하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히츠펠트는 동독과의 경기에서 한골을 넣기도 했다.

1975년 그는 당시 2 분데스리가에 있던 VfB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했다. 그는 SSV 얀 레겐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6골을 넣었는데,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1977년 팀은 분데스리가로 승격되었다. 히츠펠트는 55경기에서 33골을 넣었고, 팀은 4위를 기록했다. 1978년까지 슈투트가르트에서 뛴 그는 1978년 스위스의 FC 루가노로 이적했고, 1980년 FC 루체른으로 이적한 후 1983년 그곳에서 은퇴했다.

감독 시절

히츠펠트는 은퇴 후 감독이 되었다. 그는 FC 추크를 1년 동안 감독했고, 1988년 FC 아라우를 4년 동안 감독했다. 1988년 스위스 컵 우승으로 주목을 받은 그는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로 옮겨갔고, 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90년과 1991년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1991년 그는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부터 제의를 받고 팀을 옮겼다. 그는 후에 13년 동안 같이 동행하게 되는 팀의 코치 미하엘 헹케와 같이 팀을 2위로 이끌었고 UEFA컵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다음 해에 토르트문트는 결승에 진출했지만 유벤투스 FC에게 패했다. 1995년에는 리그 우승을 했고 1996년 다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97년 리그 3위를 기록했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다시 재회한 유벤투스를 3-1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그 해에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는 인터컨티넨탈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1998년 FC 바이에른 뮌헨은 그를 감독으로 영입했다. 그의 팀은 1999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붙게 되었다. 바이에른 뮌헨은 추가시간까지 1-0으로 앞서나가고 있었으나 내리 2골을 내주어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다음 시즌에 그의 팀은 더블을 달성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준결승전까지 진출하였으나 레알 마드리드 CF에게 패했다.

2000-01시즌 뮌헨은 다시 리그 우승을 했다. 그의 팀은 챔피언스리그에 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를 이기고 결승전에 도착했다. 발렌시아 CF와의 승부차기 끝에 뮌헨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다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인터컨티넨탈컵에서는 가나 미드필더 새뮤얼 쿠푸르의 활약에 힘입어 우승을 차지했다. 리그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2002-03시즌 뮌헨은 리그 종료 4경기 전에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 어느 트로피도 들어올리지 못하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자 히츠펠트는 해임되었다. 그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았으나 휴식을 선택했다. 2007년 2월 1일 펠릭스 마카트가 해임됬을때 다시 뮌헨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뮌헨은 극적으로 4위를 차지했고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했다. 다음 시즌 그는 많은 돈으로 팀 보강을 시작했고, 리그 우승과 함께 DFB-포칼리가포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UEFA컵 2007-08에 출전한 그의 팀은 준결승전에서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만났고, 4-0으로 대패했다. 그는 사임했고 위르겐 클린스만이 그의 후임이 되었다.

2008년 여름에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