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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1404–1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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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프 3세 (1419–1467) |
* 필리프 3세 (1419–14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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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를 (1467–1477) |
* [[용담공 샤를|샤를 2세]] (1467–1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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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고뉴 여공 마리|마리 1세]] (1477–14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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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의 형식 == |
== 명칭의 형식 == |
2010년 12월 17일 (금) 17:58 판
발루아 왕조(프랑스어: Maison capétienne de Valois)는 카페 왕조의 한계열로 1328년에서 1589년까지 프랑스를 다스렸다. 직계 카페 왕조를 계승했고 그뒤 부르봉 왕조가 프랑스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발루아"(Valois)라는 명칭은 필리프 3세의 아들 샤를 드 발루아(1270년 - 1325년)의 영지인 "발루아"에서 유래된다. 직계 카페 왕조의 마지막 왕인 샤를 4세가 아들이 없자 살리카 법(Loi salique)에 기초하여,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와 나바르의 쟌느를 제치고 왕위 계승권을 가지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유산
카페 왕조는 필리프 4세 통치 기간과 그 이후에도 안전한 것처럼 보였다. 필리프는 세 명의 아들(루이, 필리프, 샤를) 과 한 명의 딸(이자벨라)을 남겼다. 세 아들은 차례로 프랑스의 왕이 되었지만, 젊어서 죽었거나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다.(모두 딸이 있었다) 샤를 4세가 1328년데 사망한 후, 프랑스의 왕위 계승은 여러 사람에게 그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당시 3명이 왕위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 필리프 드 발루아 : 필리프 4세의 동생인 샤를 드 발루아의 아들. 샤를 4세의 사촌.
-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 : 샤를 4세의 누나인 이자벨의 아들. 샤를 4세의 조카.
- 나바라 왕 펠리페 3세 : 필리프 4세의 동생인 루이 데브뢰의 아들로, 샤를 4세의 형인 루이 10세의 사위. 샤를 4세에게는 사촌인 동시에 처남이자 조카사위가 된다.
최종적으로는 필리프 드 발루아가 필리프 6세로 즉위하게 되나, 이 문제는 이후 백년 전쟁의 단초가 된다.
프랑스의 발루아 왕들의 목록
발루아 (직계)
- 필리프 6세 (1328-1350)
- 프랑스의 장 2세 (1350-1364)
- 샤를 5세 (1364-1380)
- 샤를 6세 (1380-1422)
- 샤를 7세 (1422-1461)
- 루이 11세 (1461-1483)
- 샤를 8세 (1483-1498)
발루아-오를레앙
- 샤를 도를레앙(프랑스어: Charles d'Orléans) 루이 1세의 아들
- 루이 12세(프랑스어: Louis XII le Père du Peuple) 국민의 아버지, 샤를 도를레앙의 아들, 루이 2세라는 이름으로 오를레앙 공작, 발루와 백작, 그리고 프랑스의 왕 (1498-1515)
발루아-앙굴렘
- 장, 앙굴렘의 백작 (프랑스어: comte d'Angoulême) 오를레앙 왕가의 루이 1세 오를레앙 공작의 아들
- 샤를, 앙굴렘의 백작 (프랑스어: comte d'Angoulême)
-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 (1515-1547)
- 앙리 2세 (1547-1559)
- 프랑스의 프랑수아 2세 (1559-1560)
- 카트린 드 메디시스 섭정
- 샤를 9세 (1560-1574)
- 앙리 3세 (1574-1589)
- 앙리 3세가 발루와 왕가의 마지막 왕이고 부르봉 왕가의 앙리4세가 프랑스의 왕권을 이어받았다.
폴란드의 발루아 왕 목록
부르고뉴의 공작
이 용어는 발루아 왕가의 왕족(장 2세의 아들인 필리프)에게 부르고뉴의 공작 작위가 주어진 이후로 시작된 왕가를 뜻한다.
명칭의 형식
발루아 왕을 언급할 때의 형식은 "가장 기독교적인 폐하"라는 호칭을 포함한다.
함께 보기
외부 링크
- www.valois.org - The Royal House Of Valo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