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테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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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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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는 2000-01시즌부터 [[첼시 FC]] 1군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였고, 선발로 23번 출전하여 '클럽의 올해의 선수' 뽑히기도 하였다. 그는 2001-02시즌 그의 발전을 계속하였고, 수비 라인의 주전 선수가 되어 당시 팀의 주장이자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던 [[마르셀 드사이]]와 짝을 이뤘다. [[2001년]] [[12월 5일]] [[찰턴 애슬레틱 FC]]와의 경기에서 그는 주장으로서 경기를 소화하였다. 첼시는 [[런던]] 라이벌인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과 [[토트넘 홋스퍼 FC]]를 각각 4라운드와 6라운드 준결승에서 격파하였고, 준결승에서 역시 런던 라이벌인 [[풀럼 FC]]를 상대로 테리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여 [[FA컵]] 결승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바이러스로 인하여 테리는 결승에서 선발 명단에 포함되지 못하였고, 후반전에 교체 출장하였으나 [[아스널 FC]]에 0-2로 패하고 말았다. 2003-04시즌을 앞두고 드사이가 팀을 떠나자, 그는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에게 그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주장 완장을 받게 되었다. 그는 [[윌리암 갈라스]]와 호흡을 맞추며 강력한 수비 라인을 형성하였고, 마르셀 드사이의 공백을 잘 매웠다.
테리는 2000-01시즌부터 [[첼시 FC]] 1군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였고, 선발로 23번 출전하여 '클럽의 올해의 선수' 선정되었다. 그는 2001-02시즌 그의 발전을 계속하였고, 수비 라인의 주전 선수가 되어 당시 팀의 주장이자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던 [[마르셀 드사이]]와 짝을 이뤘다. [[2001년]] [[12월 5일]] [[찰턴 애슬레틱 FC]]와의 경기에서 그는 주장으로서 경기를 소화하였다. 첼시는 [[런던]] 라이벌인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과 [[토트넘 홋스퍼 FC]]를 각각 4라운드와 6라운드 준결승에서 격파하였고, 준결승에서 역시 런던 라이벌인 [[풀럼 FC]]를 상대로 테리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여 [[FA컵]] 결승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바이러스로 인하여 테리는 결승에서 선발 명단에 포함되지 못하였고, 후반전에 교체 출장하였으나 [[아스널 FC]]에 0-2로 패하고 말았다. 2003-04시즌을 앞두고 드사이가 팀을 떠나자, 그는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에게 그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주장 완장을 받게 되었다. 그는 [[윌리암 갈라스]]와 호흡을 맞추며 강력한 수비 라인을 형성하였고, 마르셀 드사이의 공백을 잘 매웠다.


====주장으로서 2시즌 연속 우승====
====주장으로서 2시즌 연속 우승====
드사이가 팀을 떠난 이후 [[첼시 FC]]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조제 모리뉴]]는 테리를 클럽의 주장으로 선택하였고, 이러한 선택은 2004-05시즌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소 실점과 최다 무실점 경기, 최다 승점을 기록하며 첼시 FC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하였다. 그의 전 [[FC 포르투]] 수비수인 [[히카르두 카르발류]]와 호흡을 맞추며 첼시 FC가 [[유럽]] 제일의 수비 라인을 형성하도록 만들었다. 테리는 잉글랜드 선수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에 뽑혔고 8골을 기록했으며 이중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넣은 골도 있다. 그는 시즌 챔피언스리그 최고 수비수로 뽑혔다. 2005년 9월 그는 [[FIFPro 어워드]]에서 세계 베스트 11에 멤버로 선택되기도 했다. 그의 팀은 40개국의 프로 선수들에 의해 선정되는 것이다. 첼시는 2005-06시즌 프리미어리그 타이틀을 방어했으며 91점을 획득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3-0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드사이가 팀을 떠난 이후 [[첼시 FC]]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조제 모리뉴]]는 테리를 클럽의 주장으로 선택하였고, 이러한 선택은 2004-05시즌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소 실점과 최다 무실점 경기, 최다 승점을 기록하며 첼시 FC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는 전 [[FC 포르투]] 수비수인 [[히카르두 카르발류]]와 호흡을 맞추며 첼시 FC가 [[유럽]] 제일의 수비 라인을 형성하도록 하였고, 이러한 활약상과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한 득점을 포함하여 8골을 기록한 것으로 인하여 테리는 '동료들이 수여하는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시즌에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수비수'에 선정되었으며, [[2005년 9월]] 그는 [[FIFPro 어워드]]에서 40여개국의 프로 선수들에 의해 [[세계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첼시 FC는 2005-06시즌 승점 91점을 획득하였고, [[2006년]] [[4월 29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지으며 [[프리미어리그]] 우승 타이틀을 방어하게 되었다.


====최근 시즌====
====최근 시즌====

2010년 4월 6일 (화) 08:34 판

존 테리
개인 정보
출생일 1980년 12월 7일(1980-12-07)(43세)
출생지 잉글랜드의 기 잉글랜드, 런던
190cm
포지션 중앙 수비수
구단 정보
현 소속팀 잉글랜드 첼시 FC
등번호 26
청소년 구단 기록
센랩 FC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첼시 FC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98–
2000
첼시 FC
노팅엄 포레스트 (임대)
304 (19)
006 0(0)
국가대표팀 기록
2000–2002
2003–
잉글랜드 잉글랜드 U-21
잉글랜드
009 0(1)
058 0(6)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또한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10년 3월 2일 기준임.
‡ 국가대표팀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10년 3월 2일 기준임.

존 테리(John George Terry, 1980년 12월 7일, 잉글랜드 런던)은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로, 현재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한다. 동시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첼시 FC의 주장이기도 하며, 등번호는 26번이다.

테리는 2005년2008년UEFA 챔피언스리그가 지정한 최고 수비수로 뽑혔고, 2005년잉글랜드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FIFPro 월드 XI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 연속 선정되었다. 그는 또한 2006년 FIFA 월드컵에 올스타 멤버로 뽑혔는데, 이는 잉글랜드 선수 중 유일하다.

2007년 테리는 주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웸블리 경기장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둬 FA컵을 들어올렸고, 웸블리 경기장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1-1 무승부를 기록한 경기에서 헤딩골로 경기장 개장 이후 치뤄진 국가대항전에서 첫 골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7-08시즌 테리와 첼시 FC풋볼 리그 컵 결승에서 토트넘 홋스퍼 FC에 패하였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게 내주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테리가 승부차기를 실축한 끝에 패배해 도합 3개의 트로피를 눈 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모스크바에서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후 팀 동료인 프랭크 램파드는 테리를 '남자중의 남자(a man's man)'로 묘사하였다.

선수 경력

청소년 경력

테리는 런던 동부의 바킹에서 태어났고 이스트버리 종합중학교을 다녔다. 테리는 런던에 위치한 선데이 리그 소속의 센랩 FC에서 축구 선수로서 처음 뛰었다. 센랩은 5~17세 사이의 어린 선수들을 15개 팀으로 나누어 운영하는데, 현재 프리미어리그 소속의 솔 캠벨, 저메인 데포, 보비 자모라, 레들리 킹, 제이로이드 새뮤얼등 많은 잉글랜드 축구 스타를 양성하였다. 테리는 10살 때 밀월 FC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에서 유스 테스트를 받았고, 뛰어난 유스 시스템을 보유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과 계약하였다. 그 후 첼시의 유스 시스템에 14살에 참가해 유스팀과 리저브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센터백 포지션의 선수가 부족하여 센터백으로 옮긴 후 지금까지 센터백으로 뛰고 있다.

첼시 FC

초기 시즌

테리는 1998년 10월 28일 4-1로 이긴 애스턴 빌라 FC와의 풋볼 리그 컵 경기에서 후반 막판에 교체되어 첼시 FC에서 데뷔하였다. 첼시에서의 첫 선발 경기는 시즌 막바지의 FA컵 3라운드 경기로, 올덤 애슬레틱 FC를 상대로 2-0 승리를 한 경기이다. 테리는 2000년 짧은 기간동안 노팅엄 포레스트 FC로 임대를 떠났고, 그곳에서 그는 1군 경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가 노팅엄 포레스트 FC에서 뛰는 동안, 수비수 영입에 £750,000를 투자하려던 그 당시 허더스필드 타운 FC의 감독인 스티브 브루스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첼시 FC는 그 제의를 받아들였지만, 테리는 프리미어리그에 남아 더 경험을 쌓기 위해서 그 제의를 거절하였다. 테리는 첼시 FC의 팀 동료인 조디 모리스윔블던 FC디 번과 함께 런던 서부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얽힌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였다. 테리는 폭행 및 소란 행위로 체포되었으나 이후에 무죄로 입증되었고, 이 사건 동안 테리는 잉글랜드 축구 협회로부터 일시적으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차출되는 것을 금지당했다. 그 사건 이전인 2001년 9월에 첼시 FC의 팀 동료인 프랭크 램파드, 조디 모리스, 아이두르 구드욘센과 이전 팀 동료였던 프랭크 싱클레어와 함께 술이 취한 후 9·11 테러 직후의 여파로 슬픔에 잠긴 미국인 관광객을 조롱하여 첼시 FC로부터 2주치 주급을 벌금으로 내기도 하였다. 첼시 FC의 초기 시즌동인 테리는 앤드루 크로프츠와 짝을 이뤄 출전하였다.

1군 주전

테리는 2000-01시즌부터 첼시 FC 1군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였고, 선발로 23번 출전하여 '클럽의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그는 2001-02시즌 그의 발전을 계속하였고, 수비 라인의 주전 선수가 되어 당시 팀의 주장이자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던 마르셀 드사이와 짝을 이뤘다. 2001년 12월 5일 찰턴 애슬레틱 FC와의 경기에서 그는 주장으로서 경기를 소화하였다. 첼시는 런던 라이벌인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토트넘 홋스퍼 FC를 각각 4라운드와 6라운드 준결승에서 격파하였고, 준결승에서 역시 런던 라이벌인 풀럼 FC를 상대로 테리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여 FA컵 결승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바이러스로 인하여 테리는 결승에서 선발 명단에 포함되지 못하였고, 후반전에 교체 출장하였으나 아스널 FC에 0-2로 패하고 말았다. 2003-04시즌을 앞두고 드사이가 팀을 떠나자, 그는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에게 그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주장 완장을 받게 되었다. 그는 윌리암 갈라스와 호흡을 맞추며 강력한 수비 라인을 형성하였고, 마르셀 드사이의 공백을 잘 매웠다.

주장으로서 2시즌 연속 우승

드사이가 팀을 떠난 이후 첼시 FC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조제 모리뉴는 테리를 클럽의 주장으로 선택하였고, 이러한 선택은 2004-05시즌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소 실점과 최다 무실점 경기, 최다 승점을 기록하며 첼시 FC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는 전 FC 포르투 수비수인 히카르두 카르발류와 호흡을 맞추며 첼시 FC가 유럽 제일의 수비 라인을 형성하도록 하였고, 이러한 활약상과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한 득점을 포함하여 총 8골을 기록한 것으로 인하여 테리는 '동료들이 수여하는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그 시즌에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수비수'에 선정되었으며, 2005년 9월 그는 FIFPro 어워드에서 40여개국의 프로 선수들에 의해 세계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첼시 FC는 2005-06시즌 승점 91점을 획득하였고, 2006년 4월 29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지으며 프리미어리그 우승 타이틀을 방어하게 되었다.

최근 시즌

2006년 10월 14일에 있던 경기에서 테리는 첼시의 원래 키퍼였던 페트르 체흐카를로 쿠디치니가 이 게임에서 부상으로 빠짐에 따라 골대를 넘겨 받아야만 했었다. 그는 3번키퍼인 엔리케 일라리우가 입는 40번을 입고 골문을 지켰다. 하지만 게임이 재개된 지 몇 분 후 테리는 세이브를 해내지 못했다.-사실 그의 키퍼능력은 페널티킥을 막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첼시는 한 골차 승리를 지켰고 테리는 무실점경기(클린시트)를 기록했다. 2006년 11월 5일 토튼햄 핫스퍼와의 경기에서 테리는 첼시선수로 뛴 기간 가운데 처음으로 퇴장을 당했다. 테리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첼시가 질때 1987년 이래로 처음으로 2장의 옐로우 카드를 받았다. 테리는 경기가 끝나고 경기주심이었던 그라함 폴의 공평서에 의문을 제기해 오심을 F.A.에 항의했고 2007년 1월 10일 존테리는 그의 마음을 바꾸고 죄를 인정한 후 FA로부터 부적당한 행동으로 £10,000 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2006-20007시즌에 그의 등부상 재발로 여러 경기를 놓치게 되었다. 후에 2006년 12월 26일 레딩과 비긴경기에서 조세 무리뉴는 그의 주장이 문제를 해결키위해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빠진 경기에서 첼시는 6골을 허용했다. 12월 28일에 첼시는 언론에 테리가 등수술을 했다고 말했다.:부골화된 요추추간판 탈출증(허리디스크)을 없애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쳤다. 비록 그는 위건과의 경기에서 복귀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테리가 만약 등부상이 재발된다면 다시 한번 경장하게 될 것이다. 그는 찰튼과의 2007년 2월 3일 경기에서 복귀하고자 한다. 그는 거의 3달전인 미들스브러와의 경기에서 첫 번째 풀타임을 기록했고 첼시의 충성스러운 팬들로 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비록 포르투와의 UEFA챔피언스리그 16강 토너먼트에서 출전하기는 했지만 그는 또 다른 부상에 시달렸다. 이번엔 발목부상이었다. 이 때문에 2007 리그컵 결승에서 아스날을 상대로한 결승에 결장할 계획되었지만 며칠 내에 부상에서 복귀했고 결승에서 뛸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경기 후반 도중에 공격코너에서 그는 공을 향에 다이빙헤딩을 했고 아스날의 에두 디아비가 공을 걷어내는 시도를 했고 테리의 얼굴을 찼다. 테리는 수분동안 정신을 잃었고 그의 혀를 거의 삼킬뻔했다. 이때 세브첸코가 그의 기도를 확보해주었고 옆에 있던 아스날 담당의에 의해 응급치료를 받고 경기장에서 들것에 실려나갔고 즉시 웨일스 대학병원로 후송되었고 그는 여기서 완전히 회복하였다. 그는 같은 날 스스로 퇴원했으며 밀레니움 스타디움에 가서 그의 팀의 2-1 승리를 축하했다. 그는 오직 후반전을 치루기 위해 경기장을 올라갔던 것만 기억했고 그가 부상당하기 10분전부터는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 사고 후, 테리는 그의 목숨을 구해준 아스날의 팀닥터인 게리 루인에게 감사해 했다. 게리 루인는 테리가 그의 숨통을 혀로 막은 후 그를 돕기 위해 처음으로 달려간 의사 이다. 벤치에서 2주를 보낸후 그는 3월 블랙번과의 경기에서 복귀했다. 그는 챔피언스리그 4강에 첼시를 올려놓았고 4년간 세 번째로 첼시가 4개의 경기에서 모두 결승에 오르게 했다. 2007년 FA컵에서 뉴웸블리스타디움 첫 번째 결승에서 첼시의 주장으로 나섰다.

2006-2007시즌 직전에 받은 새로운 재계약에대해 동의하는 것을 실패하였지만 테리는 첼시를 떠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7월 말에 그는 기본적인 주급은 £131,000에서 £135,000이고 이 주급은 그를 이 당시에 최고로 높은 주급을 받는 선수로 만들어준 새로운 5년 재계약에 사인하였다. 8월에 램파드는 테리의 주급을 능가하는 주급 £151,000에 재계약해 프리미어리그 최고 주급자가 되었다. 2007년 12월 16일에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공을 걷어내는 테리의 발을 엠마누엘 에부에가 지나갔고 테리는 그의 발에 3개의 불어진 뼈로 고통스러워 했었다. 그는 적어도 3달이상 결장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빠른 회복으로 토트넘과의 2008 리그컵 결승에서 주장직을 수행하게되었고 첼시는 이 경기에서 2-1패배를 당했다. 2008년 5월 11일에 볼튼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그는 골키퍼인 페트르 체흐와 충돌했고 부분탈구된 팔꿈치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 부상은 그를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그가 플레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의 선제골을 먹히고 프랭크 램파드의 동점골로 인해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갔다. 체흐에 의해 호날두는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첼시가 앞서고 있던 상황이었다. 만약 테리가 골을 넣었다며 첼시가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패널티킥을 실축하였다. 차는 순간 그의 발 중심축이 미끄러져버려 골을 넣치 못했고 이후 니콜라스 아넬카마자 실축하면서 첼시는 승부차기에서 6-5로 패배하였고 테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그는 빗물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욕할 수 없었다. 첼시를 결승전까지 이끌고 온 사람은 바로 테리였기 때문이다. 《존 테리의 눈물》 사건은 2007~08시즌 EPL 결산 10대 순간 1위에 선정 되었다.[1]

2008년 8월 28일에 테리는 모나코에서 열린 조별그룹대진에서 UEFA로부터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하였고 프랭크 램파드와 페트르 체흐 도 각각의 포지션 상을 수상하였다. 2008년 9월 13일에 테리는 맨체스터 시티의 조에게 럭비태클을 가해 그의 생에 첫 즉각퇴장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후에 항소해 결정을 폐지하였다. 그는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첼시에 2008-2009시즌 챔피언스리그 그룹A A.S.로마와의 홈경기에서 같은 중요한 골을 넣는다. 하지만 첼시는 이 원정경기에서 3-1로 패배하였다.

프랭크 램파드와 디디에 드록바 와 [[페트르 체흐와 함께 테리는 첼시의 중추로 평가되어진다. 그는 첼시주장으로 7개의 트로피를 들었다.(데니스 와이스보다 한개 더 많다.) 클럽에 유스시스템을 경험한 영국 선수로서 그는 첼시팬들에서 특히 더 인기가 많다.

2009년 7월 맨체스터시티는 테리에서 세 번째 거래를 만들었지만 첼시의 감독인 카를로 안첼로티는 테리가 첼시에 남을 거라 주장하여싿. 존 테리는 그의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시즌 데뷔를 헐시티 상대로 했고 이 경기에서 첼시는 이겼다. 2009년 11월 8일에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이번 시즌 완벽한 홈경기 기록을 지키는 결정적인 결승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10년 1월 30일 같은 잉글랜드 국가대표이자 첼시에서 함께 뛰기도 했던 웨인 브릿지의 애인인 바네사 페론첼과 불륜관계에 있음이 들통나 전 세계 축구팬들을 경악하게 했으며, 이로 인하여 잉글랜드 주장직을 박탈당했다.[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인 브릿지에게 사과는 하지 않고 프리미어리그 2009-10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 웨인 브릿지와 악수를 하겠다고 하여 많은 비난을 샀다.[4] 이는 웨인 브릿지가 악수를 거부하면서 존 테리의 망신으로 이어졌다.

국가대표 커리어

테리는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하에서 잉글랜드의 주장이었다. 그의 국가대표 데뷔는 2003년 6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경기에서 이다. 2003년 8월 20일 테리는 그의 국가대표 첫풀타임 데뷔를 입스위치의 포트만 로드에서 했고 크로아티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였고 잉글랜드는 3-1로 승리하였다. 그의 주된 수비파트너는 리오 퍼디난드이다. 그는 잉글랜드를 위해 유로 2004에 출전하였고 잉글랜드 감독이었던 스벤 고란 에릭손은 테리를 1번센터백이라 말했고 이것은 솔 캠벨보다 앞서는 것이었다. 폴란드와의 피파월드컵 예선경기에서 테리는 마이클오웬이 교체되 나가면서 잉글랜드의 주장암밴드를 받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잉글랜드스쿼드에서 그의 자리를 2006 FIFA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로 채택되며 굳혔다. 2006년 5월 30일 헝가리와의 월드컵전 토너먼트에서 테리는 잉글랜드국대로 첫골을 기록하였고 이 골은 팀의 두 번째 골이었고 잉글랜드는 3-1승리를 거뒀다. 자메이카와의 친선경기에서 부상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회복되어 잉글랜드의 파라과이와의 예선 첫경기에서 1-0승리를 이끌어싿. 그 다음 경기였던 트리디나드 토바고와의 경기에서 카를로스 에드워즈가 잉글랜드의 폴 로빈슨과 다투는 사이 스턴 존이 흘러나온 공을 골을 넣기위해 헤딩을 시도했고 테리는 골라인에서 오버헤드킥으로 공을 걷어냈다. 포르투갈과의 8강 경기에 테리는 풀타임 출장했지만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서 패배해 그는 그의 동료들과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6일 후 그는 잉글랜드 선수로는 유일하게 월드컵 올스타팀에 이름을 올렸다.

2006년 8월 10일에 스티브 맥클라렌은 존 테리를 데이비드 베컴의 뒤를 잇는 잉글랜드 주장으로 임명하엿다. 맥클라렌이 말하길:"주장을 선정하는 것은 감독이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중에 하나이다. 나는 존테리를 선택한 것이 옳은 결경이라 확신한다. 나는 그가 잉글랜드 최고의 주장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 확신한다. " 테리는 잉글랜드 주장으로서 데뷔경기인 그리스와의 친선경기에서 골을 기록하였다. 이것은 이 경기에서 첫골일 뿐 하니라 맥클라렌이 잉글랜드 감독 데뷔후 첫골이었다. 그가 그의 새로운 주장 암밴드에 키스하는 것으로 골 세레머리를 했다. 하지만 테리가 주장으로써 잉글랜드는 유로 2008에 지역예선 탈락했다-이것은 1994년 월드컵이후 결선토너먼트에 첫 번째로 빠지는 것이다. 지역예선 도중에 테리는 잉글랜드가 탈락할지 모른다는 것에 큰 책임감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2007년 7월 1일에 테리는 뉴웸블리스타디움에서 성인잉글랜드국가대표선수로는 처음으로 국가대표 골을 기록하엿다. 이 경기에서 그의 골로 브라질과 1-1로 비겼다. 그는 데이비드 베컴이 올린 프리킥을 박스안에서 헤딩해 골을 넣었다. 거의 1년이 다되서 그는 다시 한번 데이비드 베컴이 올린 공을 비슷하게 헤딩골로 연결했는데 미국과의 2008년 5월 28일 경기로 잉글랜드는 1-0승리하였다.

테리는 8월에 잉글랜드 주장을 확인하고 잉글랜드주장으로 2010월드컵예선에 출전하엿다. 그의 지속적인 잉글랜드주장으로서의 복귀경기는 밀란 바로스에 의해 몹시 힘든 경기였는데 밀란 바로스를 너무 쉽게 몸을 돌리게 해 체코에 첫골을 허용케 했다. 이 경기는 2-5 무승부로 끝났고 조콜은 92분에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는 그의 2010월드컵 예선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 경쟁이 심한 잉글랜드에서 첫 번째 골을 기록하였다. 다 잡은 경기를 나중에 쉬운 프리킥찬스를 내줬고 안드리 세브첸코가 동점골을 넣어 비겼다.

2010년 1월 30일에 전 첼시 동료이자 국가대표 동료인 웨인 브릿지의 전 여자친구와의 불륜이 발각되면서 파비오 카펠로 잉글랜드 감독에 의해 국가대표 주장직을 박탈당했고 그의 뒤를 이어 리오 퍼디난드가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파비오 카펠로는 월드컵 전까지 그가 주장완장을 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로 인해 웨인 브릿지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였다.

국가대표 골

# Date Venue Opponent Score Result Competition
1 30 May 2006 Manchester, England 헝가리 2-0 3-1 Friendly match
2 16 August 2006 Manchester, England 그리스 1-0 4-0 Friendly match
3 1 June 2007 Wembley, England 브라질 1-0 1-1 Friendly match
4 28 May 2008 Wembley, England 미국 1-0 2-0 Friendly match
5 19 November 2008 Berlin, Germany 독일 2-1 2-1 Friendly match
6 1 April 2009 Wembley, England 우크라이나 2-1 2-1 2010 FIFA World Cup qualification

사생활

테리는 현재 서리의 옥숏에 거주한다. 그와 그의 아내 토니 풀 테리는 2008년 5월 18일에 태어난 한 남자아이(조지 존 테리)와 한 여자아이 서머 로즈 테리)인 쌍둥이의 부모이며 테리는 그들의 탄생을 헝가리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축하했고 그는 흔들의자 세레머니를 했다.

이 커플은 2007년 6월 15일 블레넘 궁전에서 결혼했으며 헤러즈(영국 홍차브랜드) 선물상품권을 한 매거진이 보도하게해주는 조건으로 결혼선물로 받았다. 결혼식이 끝난 후 이 커플은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슈퍼요트 펠러로스에서 지중해를 즐기며 2주간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의 취미는 골프, 수영, 풋볼, 스쿼시와 다트이다

또한 테리의 형인 폴은 현재 컨퍼런스 네셔널 리그의 러쉬덴 앤 다이아몬드에 프로 축구선수이다. 그는 2009년의 올해의 아버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2010년 1월 30일 전 첼시 동료이자 국가대표 동료인 웨인 브릿지의 전 여자친구와의 불륜이 발각되면서 토니 풀 테리와의 관계역시 얼어붙었다. 테리는 토니를 풀어주기 위해 경기를 치른 후 두바이로 찾아가 용서를 받았다. 토니 풀 테리는 둘 사이가 회복되는 데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테리는 기꺼이 응했다.

또 그는 어릴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좋아했는데 그의 아버지와 그의 할아버지가 팬이었으며 어릴적 이기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실제로 알렉스 퍼거슨을 만나 사인을 받고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스폰서쉽

테리는 마이클 오웬과 함께 새로운 브랜드이름이나 제품 뿐 아니라 새로운 잉글랜드제품을 소개하는 엄브로 스포츠웨어브랜드의 간판모델이다. 그는 또한 삼성광고에 출연하며 국제적인 스웨덴의 베팅회사인 스벤스카 스펠뿐 아니라 축구게임시리즈인 프로 에볼루션 사커와 스폰서쉽을 맺고 있다. 잉글랜드 버전의 프로 에볼루션 사커 6에서 브라질 국가대표인 아드리아노와 표지모델로 출연하였다.

수상

첼시

UEFA 챔피언스 리그

프리미어리그

FA 컵

Football 리그 컵

FA 커뮤니티 실드

Individual

선수 경력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