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성 (후쿠오카현):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5번째 줄: 5번째 줄:


[[633년]] [[백강 전투]]에서 [[백제]] 부흥을 위해 왜국은 나당연합군에 대패했다. 그래서, 왜국은 방비를 견고히 하기 위해 방비시설을 건설했다고 [[니혼쇼키]](日本書紀)에 기록되어 있다.
[[633년]] [[백강 전투]]에서 [[백제]] 부흥을 위해 왜국은 나당연합군에 대패했다. 그래서, 왜국은 방비를 견고히 하기 위해 방비시설을 건설했다고 [[니혼쇼키]](日本書紀)에 기록되어 있다.
* [[664년]] [[쓰시마 |쓰시마]], [[이키 |이키]], [[쓰쿠시노쿠니|쓰쿠시]]에 사키모리<ref>일본 [[나라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에 있던 군사제도</ref>와 봉화대를 설치, [[다자이후]]의 서쪽에 [[미즈키 성]]을 축성했다.
* [[664년]] [[쓰시마 |쓰시마]], [[이키 |이키]], [[쓰쿠시 국|쓰쿠시]]에 사키모리<ref>일본 [[나라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에 있던 군사제도</ref>와 봉화대를 설치, [[다자이후]]의 서쪽에 [[미즈키 성]]을 축성했다.
* [[665년]] [[나가토 |나가토]]에 성을 쌓았다.
* [[665년]] [[나가토 |나가토]]에 성을 쌓았다.
* 동년, 망명한 백제인 오쿠라이후쿠루(憶礼福留)와 시비후쿠후(四比福夫)를 쓰쿠시에 파견하고, 오노와 기에 성을 축성한다.
* 동년, 망명한 백제인 오쿠라이후쿠루(憶礼福留)와 시비후쿠후(四比福夫)를 쓰쿠시에 파견하고, 오노와 기에 성을 축성한다.
위와 같이 오노(大野)에 축성된 성이 오노 성이다. 기(椽)에 축성된 성은 기 성(基肄城)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위와 같이 오노(大野)에 축성된 성이 오노 성이다. 기(椽)에 축성된 성은 기 성(基肄城)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2010년 3월 12일 (금) 22:58 판

오노 성 또는 오노노키(일본어: 大野城, おおのじょう 또는 おおののき)는 아스카 시대 축성된 백제식 산성이다. 현재 후쿠오카 현 오노조 시 우미 정에 위치하고 있다. 국가지정 특별사적이다.

경위

633년 백강 전투에서 백제 부흥을 위해 왜국은 나당연합군에 대패했다. 그래서, 왜국은 방비를 견고히 하기 위해 방비시설을 건설했다고 니혼쇼키(日本書紀)에 기록되어 있다.

위와 같이 오노(大野)에 축성된 성이 오노 성이다. 기(椽)에 축성된 성은 기 성(基肄城)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개요

오노 성의 축성된 장소는 다자이후 후방의 시오지 산(四王寺山)이라고 추측된다. 시오지 산에 수 km에 이르는 토담이 산허리를 둘러싸고, 건물의 초석, 수문, 성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들은 고대 한반도의 축성형식을 따르고 있어, 조선식(백제식) 산성이라고 부른다. 다자이후 후방을 입지로 해, 다자이후 방비를 목적으로 세운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성내 다수 건물초석이 발견된 것을 볼 때, 유사시에는 오노 성이 다자이후의 기능을 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덧붙여 오노조 시의 명칭은 이 오노 성에서 유래되었다.

주석

  1. 일본 나라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에 있던 군사제도

바깥 고리

북위 33° 32′ 22.106″ 동경 130° 31′ 16.803″ / 북위 33.53947389° 동경 130.52133417°  / 33.53947389; 130.52133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