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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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FIFA 월드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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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메시는 [[2006년 FIFA 월드컵]] {{축구나라|아르헨티나}}의 엔트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메시는 그 뛰어난 기량을 갖고도 나이가 너무 어려서 벤치신세였으며 메시 대신 사비올라가 월드컵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월드컵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 아르헨티나가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압도적인 점수차이로 앞서자 메시의 경험치를 쌓게 하기 위해 메시를 투입했다. 이 때 관중들은 메시가 출전하자 엄청난 환호성과 기립박수로 메시를 응원했다. 놀라운 것은 아무리 아르헨티나보다 기량이 두 수 정도 아래인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라고는 하지만 메시가 그라운드에 올라오자마자 [[에르난 크레스포]]의 골을 어시스트하더니 그라운드에 올라온지 15분만에 자신이 골을 터뜨렸다는 점이다. 이로서 메시는 자신의 월드컵 무대에서의 경험을 통해 또 한 번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리오넬 메시는 [[2006년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엔트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 [[2008 베이징 올림픽]] ===
=== [[2008 베이징 올림픽]] ===

2010년 2월 10일 (수) 12:59 판

리오넬 메시
개인 정보
출생일 1987년 6월 24일(1987-06-24)(36세)
출생지 아르헨티나의 기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 로사리오
169cm
포지션 윙어
구단 정보
현 소속팀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등번호 10
청소년 구단 기록
뉴웰스 올드 보이스
FC 바르셀로나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2004-2005
2004-
FC 바르셀로나 B
FC 바르셀로나
005 0(0)
118 (61)
국가대표팀 기록
2005
2008
2005-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U-20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U-23
아르헨티나
007 0(6)
005 0(2)
036 (12)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또한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09년 11월 7일 기준임.
‡ 국가대표팀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09년 8월 30일 기준임.
메달 기록
아르헨티나의 기 아르헨티나
올림픽
2008년 베이징 남자 축구

리오넬 안드레스 메시(Lionel Andrés Messi, 1987년 6월 24일 - )는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 로사리오 출생의 축구 선수로 프리메라리가의 축구 클럽인 FC 바르셀로나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일원이다. 그는 22세의 나이에 최연소이자 최다득표로 발롱도르(Ballon d'Or)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수차례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후보에 오르며 현 세대 최고의 축구 선수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다. 2005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 FIFPro월드 사커 매거진 최우수 유망주로도 뽑힌 바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능력은 축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에 비견되곤 한다. 실제로, 마라도나는 메시를 그의 후계자라고 선언한 바 있다.

메시는 어린 나이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며 FC 바르셀로나가 그의 잠재력을 일찍부터 발견했다. 바르셀로나가 그의 성장 호르몬 장애를 치료해줄 것을 약속함으로써 그는 뉴웰스 올드 보이스 유스팀을 떠나 2000년 그의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이주했다. 2004–05 시즌 데뷔로, 그는 라 리가 최연소 선수 기록을 세웠으며 또한 최연소 리그 골도 기록했다. 메시가 데뷔한 해에 FC 바르셀로나는 리그에서 우승했고, 다음 해인 2006년에는 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달성했다. 메시는 2006–07 시즌부터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정규 주전멤버가 되었고, 엘 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며 리그 26경기에서 14득점을 기록했다. 아마도 그의 가장 성공적인 시즌은 2008–09 시즌일 것이다. 이 시즌 동안 메시는 38골을 기록하며 바르셀로나의 트레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메시는 2005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결승전의 두 골을 포함 총 여섯 골을 기록하여 득점왕에 올랐다. 그 직후 그는 아르헨티나 성인 국가대표팀의 일원이 되었다. 2006년 메시는 월드컵에서 뛴 최연소 아르헨티나인이 되었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와의 경기에서 후반 30분에 교체 투입되어 후반 43분 골을 넣는 등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의 6-0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다음 해에는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그의 성인 국가대표 경력 중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메시는 2009년 발롱도르, 2009년 유럽 올해의 선수상, 2009년 FIFA 올해의 선수상, 베스트 11에 모두 선정되는 등 축구와 관련된 모든 상을 휩쓸었으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어린 시절

메시는 공장 노동자인 아버지 호르헤 메시(Jorge Messi)와 파트타임 청소부였던 셀리아(Celia)의 사이에서 1987년 6월 24일,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태어났다. 그의 형제로는 로드리고(Rodrigo)와 마티아스(Matías)가 있고, 여동생으로는 마리아 솔(Maria Sol)이 있다. 다섯 살 때, 메시는 그의 아버지가 코치를 맡고 있었던 지역 클럽인 그란돌리(Grandoli)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1995년에, 메시는 그의 고향 로사리오를 연고로 한 클럽 뉴웰스 올드 보이스(Newell's Old Boys)로 자리를 옮겼다. 열한 살의 나이에 그는 성장 호르몬 장애를 선고받았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클럽인 리버 플레이트가 맨처음 메시의 능력에 관심을 보였으나,한달에 900달러가 드는 그의 치료비용을 감당할 자금이 없었다. 그 후 FC 바르셀로나의 스포팅 디렉터 카를레스 렉사흐(Carles Rexach)가 그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의 플레이를 보고 난 후 그는 구단 차원에서 메시의 치료비용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며 그에게 입단할 것을 권했다. 이를 통해 메시와 그의 가족들은 유럽으로 이주했고, 메시는 바르셀로나 유스에 입단하게 된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청소년 대표팀

2006 FIFA 월드컵

리오넬 메시는 2006년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의 엔트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메시는 그 뛰어난 기량을 갖고도 나이가 너무 어려서 벤치신세였으며 메시 대신 사비올라가 월드컵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월드컵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 아르헨티나가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압도적인 점수차이로 앞서자 메시의 경험치를 쌓게 하기 위해 메시를 투입했다. 이 때 관중들은 메시가 출전하자 엄청난 환호성과 기립박수로 메시를 응원했다. 놀라운 것은 아무리 아르헨티나보다 기량이 두 수 정도 아래인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라고는 하지만 메시가 그라운드에 올라오자마자 에르난 크레스포의 골을 어시스트하더니 그라운드에 올라온지 15분만에 자신이 골을 터뜨렸다는 점이다. 이로서 메시는 자신의 월드컵 무대에서의 경험을 통해 또 한 번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리오넬 메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자신의 팀인 바르셀로나 FC의 제의를 거부했다. 바르셀로나 측은 메시에게 올림픽의 출전을 불허하고 계속 리그에서만 뛰기를 강요했으나 메시는 FIFA를 찾아가서 해명하고 올림픽에 반드시 출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다. 결국 메시는 소속팀인 바르셀로나의 가용를 무시하고 자신의 임의대로 올림픽 축구종목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엔트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올림픽이 진행되면서 메시는 상대팀 섬수들이 자신을 집중마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팀 동료인 앙헬 디 마리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앙헬 디 마리아의 골을 계속적으로 어시스트해줬다. 그 결과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을 3-0, 결승전에서 나이지리아를 1-0으로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편 바르셀로나팀에서 임의로 빠져나가서 올림픽에 출전한 메시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메시의 지극한 애국심에서 비롯된 행동인 데다가 바르셀로나에서 메시는 가장 중요한 선수였기 때문이였다.

FC 바르셀로나

메시는 만 16세 145일 째 되는 날인 2003년 11월 16일FC 포르투와의 경기에서 비공식적인 첫 1군 경기를 가졌다. 약 1년 뒤인 2004년 10월 16일, 그는 RCD 에스파뇰과의 경기에 출전함으로써 첫번째 리그 경기에 출장했다. 이것은 그가 17세 114일 째 되는 날이었는데, 이로써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역사상 세번째로 어린 선수가 되었고, 라 리가에 출전한 가장 어린 선수가 되었다. (이 기록은 팀 동료인 보얀 크르키치에 의해 2007년 9월 새로이 경신되었다).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기록한 최초의 1군 경기 골은 2005년 5월 1일 알바세테와의 경기에서 터졌다. 그 당시 메시는 17세 10개월 7일의 나이였고, 이것은 라 리가에서 득점한 바르셀로나 선수중 가장 어린 나이였다. (이 기록은 역시 2007년 보얀에 의해 다시 깨졌다. 보얀의 그 골은 메시가 어시스트 한 것이었다)

2005-06 시즌

9월 16일, 바르셀로나는 메시에게 1군 선수로서의 연봉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는 계약을 2014년 6월까지 연장했다. 메시는 9월 26일에 스페인 시민권을 획득했고, 마침내 스페인 1부리그 경기에서 데뷔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엔 바르셀로나가 비유럽권 선수 할당(non-EU quota)을 모두 채운 상태였기 때문에 메시가 경기를 뛸 수 없었다. 메시의 첫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9월 27일 우디네세와의 경기였다. 그가 보여준 볼 앞에서의 침착함과 호나우딩요와의 패싱 조합을 본 캄프 누의 팬들은 메시가 교체 될 때 기립박수를 보냈다.

2006-07 시즌

메시는 첼시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11월 12일 레알 사라고사와의 경기에서 메시는 중족골 골절을 입는 부상을 당하여 그 후로 3개월 간을 뛰지 못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 회복과정을 거친 뒤 그는 2월 11일 라싱 산탄데르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로 경기장에 돌아왔다.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은 메시의 출전 시간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며 그의 완전한 회복을 기다렸다. 한 달 후인 3월 10일에 있었던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그는 부상 후 처음으로 풀타임 출전했다. 메시는 또한번 엘 클라시코에서의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 경기에서 메시는 해트트릭을 기록함으로써 10명이 뛰고 있는 상황이었던 바르셀로나에게 3-3 무승부를 안겨 주었다. 세 골 모두 동점골이었으며 마지막 세번째 골은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것이었다. 이로써 메시는 이반 사모라노(레알 마드리드 소속, 1994–95 시즌)와 바르셀로나의 호마리우(1993–94 시즌)에 이어 세번째로 엘 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또한 이것은 엘 클라시코에서 나온 득점 중 가장 어린 선수의 득점이기도 했다. (정규시즌 기준) 시즌 후반으로 갈 수록 그는 더 자주 득점을 기록했는데, 그의 리그 골 열네개 중 열한개는 마지막 열세경기에서 터진 것이었다.

메시가 헤타페전에서 마라도나를 연상시키는 골을 넣기 직전의 모습.

메시는 또한 마라도나의 가장 유명한 골들과 거의 흡사한 득점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새로운 마라도나"라는 별명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4월 18일, 메시는 헤타페와의 코파 델 레이 준결승전에서 두 골을 기록했는데, 그 중 한 골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넣은 골('세기의 골'이라고도 일컬어진다)과 매우 비슷했다. 세계 축구 언론은 이것을 두고 마라도나와 비교하며 대서특필했고, 스페인 언론은 메시에게 "메시도나(Messidona)"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는 21년전 마라도나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60미터를 달렸고, 똑같이 여섯명의 선수를 제쳤으며(골키퍼 포함), 거의 유사한 위치에서 골을 넣었고, 코너 깃발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경기 후 열렸던 기자 회견에서 메시의 팀 동료인 데쿠는 이렇게 말했다: "레오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메시는 그 후에도 에스파뇰을 상대로 마라도나가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넣었던 골과 거의 유사한 골을 넣었다. 메시는 볼을 향해 뛰어오른 상태에서 손으로 공을 건드렸고, 이것이 카를로스 카메니 골키퍼 뒤로 흘러들어갔다. 에스파뇰 선수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 골은 인정되었다.

2007-08 시즌

2007–08 시즌이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는 일주일에 다섯 골을 넣기도 하는 활약을 보여준다. 올림피크 리옹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득점 한 후 며칠 지나지 않은 9월 22일 그는 세비야를 상대로 두 골을 넣는다. 그리고 9월 26일 바르셀로나가 4-1로 레알 사라고사를 꺾은 경기에서 메시는 두 골을 더 추가했다.

그는 2007년 FIFPro가 선정한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었다. 스페인 지역의 신문인 마르카의 설문조사 결과 77%의 투표자가 메시를 세계 최우수 선수로 꼽았다. 바르셀로나 기반의 신문인 엘 문도 데포르티보스포르트의 칼럼니스트들은 발롱도르가 메시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프란츠 베켄바우어요한 크라위프도 이에 동조했다. 호나우딩요, 사무엘 에투, 프랑크 레이카르트, 빅토르 페르난데스, 베른트 슈스터, 구티, 라울, 잔루카 참브로타, 프란체스코 토티, 안토니오 카사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디에고 마라도나와 펠레 등의 축구계 유명인사들도 메시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축구선수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2월 27일 발렌시아의 경기에 출전함으로써 메시는 바르셀로나 선수로서 공식 100번째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메시는 3월 4일 셀틱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근육부상을 얻어 6주동안 출전하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교체되면서 메시는 눈물을 보였다. 이러한 종류의 부상이 발생한 것이 세 시즌동안 벌써 네번째였다.

2008-09 시즌

호나우딩요가 클럽을 떠나면서 메시는 그의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았다. 2008년 10월 1일 샤흐타르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앙리와 교체된 메시는, 7분만에 두 골을 성공시키면서 0-1로 뒤지고 있던 팀에게 2-1의 역전승을 선물했다. 바로 다음에 있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선 프리킥 득점과 도움 하나를 기록하면서 팀의 6-1 대승을 이끌었다. 세비야와의 경기에서는 23미터 거리에서 발리슛을 성공시켰고, 골키퍼를 돌아 드리블해 들어간 후 각도가 없는 곳에서 한 골을 추가로 성공시키기도 했다. 바르셀로나가 2-0으로 승리한 전반기 엘 클라시코에서 메시는 두번째 골을 넣었다. 연말에는 678점을 얻음으로써 2008년 FIFA 올해의 선수 시상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메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코파 델 레이 경기에서 2009년 첫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한다. 팀은 이에 힘입어 3-1로 승리했다. 2009년 2월 1일에있었던 라싱 산탄데르전에서는 팀이 1-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었고, 두 골을 성공시켜 팀의 1-2 역전승을 이끄는 훌륭한 플레이를 보였다. 그 중 두번째 골은 바르셀로나의 통산 5000호 리그 골이었다. 6-0으로 승리한 리가 28라운드 말라가와의 경기에서는 08-09 시즌 통산 자신의 서른번째 골을 터뜨렸다.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시즌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캐릭을 상대하고 있는 메시.

시즌이 종반부에 다다른 시기에 열린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의 엘 클라시코에서, 메시는 환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두 골을 득점, 팀의 2-6 대승을 도왔다. 이것은 레알 마드리드에게는 1930년 이후로 경험한 가장 큰 패배가 되었다. 골을 넣을 때마다 메시는 카메라로 달려가 유니폼을 들어올려 그 속에 입은 티셔츠를 보여주었다. 이 티셔츠에는 'Síndrome X Fràgil(카탈루냐어프래자일 엑스 증후군이라는 뜻)'라는 단어가 새겨져있었는데, 이는 자신이 후원하는 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메시는 또한 첼시 FC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터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골에도 기여를 했고, 이로써 팀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결승전으로 이끌었다. 그는 5월 13일에 열린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여 팀의 4-1 승리를 도왔고, 생애 첫 코파 델 레이 우승컵을 들었다. 그는 팀이 리그까지 우승함으로써 더블을 달성하는 것에도 일조했다. 5월 27일, 메시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후반 70분 팀의 두번째 골을 성공시켰고, 9득점으로 챔피언스리그 최다득점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결국 이로써 바르셀로나는 코파 델 레이, 리가, UEFA 챔피언스리그의 우승컵을 전부 들어올리는 위업을 달성했다. 스페인 클럽이 트레블을 달성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수상 기록

클럽

FC 바르셀로나

국가 대표팀

개인

외부 링크

바깥 고리

틀: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아르헨티나 선수 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