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노 리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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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4일 (일) 09:34 판

센노 리큐의 초상

센노 리큐(千利休, 센 리큐, 1522년 ~ 1591년 4월 21일)는 일본에서 일본다도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다. 특히 와비챠(わび茶, 草庵の茶) 전통의 원조가 되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다조(茶祖)라 부르기도 한다. 조화와 존경, 맑음과 부동심을 의미하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의 정신을 강조하여 차마시는 것을 단순한 마시는 행위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로서 차도를 만든 사람이다.

리큐는 오늘날 오사카 지방인 사카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릴적 이름은 '요시로'였다. 58세때 오다 노부나가의 다도 스승이 되었으며 그가 죽은 이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선생이 되었다. 1585년의 오기마치 천황을 위해 일본 황궁에서 연 다도회에서 코지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았으며 그를 위해 크고 작은 다도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미움을 사게 되어 자결을 명받아 1591년 2월 28일, 주라쿠 다이에서 할복하였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일본다도는 17세기를 거쳐 자손들과 제자들에 의해 계승되며 귀족층과 일본 중산계급에도 널리 보급되게 된다.

와비

센노 리큐는 간소하고 차분한 일본의 미의식인 와비(侂び)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그의 와비(侂び)를 구현하기 위해 다도는 작은 족자 하나와 꽃 한 송이 꽂힌 꽃병 이외엔 아무 장식이 없는 작고 수수한 다다미 2장짜리 다실과 또한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다기들를 가지고 행하는 문화적 행위였다. 리큐는 이러한 미의식 추구를 바탕으로 차 달이기의 의례적인 측면, 다회의 진행순서, 회석요리 등을 양식화하여 다도를 확립한다.

다도와 조선 도자기

당시 일본은 좋은 도자기를 만들어내지 못하였고 중국산 도자기는 지나치게 화려하여 소박한 미를 추구하는 일본 다도에 적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에서 만든 도자기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는데,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였을 때 조선 도공들을 납치하고 조선 백자를 수집하는 데 혈안이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참고 서적

  • 다도와 일본의 미 - 한림신서일본학총서 17,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김순희 옮김, 소화, 2004년,ISBN(13) : 9788984102606
  • 일본다도의 이론과 실기, 곤니치안 지음, 박민정 옮김, 다도사, 2007년, ISBN(13) : 9788988651117
  • 일본 기행 조선도공을 생각한다, 최승범 지음, 신영출판사, 1994년, ISBN : 6000029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