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천강지곡: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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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조선 세종]]이 지은 [[악장]]이다. 상·중·하 모두 3권으로 노래 500여 수로 추정된다. [[1447년|세종 29년]]에 왕이 [[수양대군]]이 엮은 《[[석보상절]]》을 보고, 그 대목대목을 되도록 [[한글]]로써 가사를 지은 것이다. 현존하는 것은 상권뿐이며, 나머지는 《월인석보》를 통해서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월인천강"(月印天江)이란 달이 하늘의 강을 비춘다는 뜻으로서 [[부처]]의 본체는 하나이나 모든 나라에 현신하여 교화함을 비유한 말이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조선 세종]]이 지은 [[악장]]이다. 상·중·하 모두 3권으로 노래 500여 수로 추정된다. [[1447년|세종 29년]]에 왕이 [[수양대군]]이 엮은 《[[석보상절]]》을 보고, 그 대목대목을 되도록 [[한글]]로써 가사를 지은 것이다. 현존하는 것은 상권뿐이며, 나머지는 《월인석보》를 통해서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월인천강"(月印天江)이란 달이 하늘의 강을 비춘다는 뜻으로서 [[부처]]의 본체는 하나이나 모든 나라에 현신하여 교화함을 비유한 말이다.
==정보==

'''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

▒ 지정번호 : 보물 제398호
▒ 지정연월일 : 1963년 9월 2일
▒ 시 대 : 조선 세종 29∼31년(1447∼1449)
▒ 종 별: 활자본(초주갑인자)
▒ 수 량: 1책
▒ 재 료: 저지
▒ 소 유 자 : 대한교과서(주)
▒ 소 재 지 : 서울 서초구 서초동 242-32 대한교과서(주)
세종이 세종 28년(1446) 3월에 죽은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당시 수양대군에게 석가의 일대기인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편찬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세종 29년(1447) 7월에 정음(正音)으로 번역되어 찬진되었다. 이에 세종이 이를 직접 보고 친제한 장편의 찬불가가 바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상·중·하의 세 권인데, 그 중 상권 1책이 오늘날 전래되었다.
이 책이 지니는 편찬의 특색은 표기에 있어서 한글을 위주로 하고 한자를 협주로 표기한 최초의 문헌이고, 한자음 표기에 있어서도 음가 없는 종성에 ‘ㆁ’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중성의 자형에 있어서는 ‘ㆍ’,‘ㆍ|’의 경우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은 악장체 찬불가로 석가의 일대기를 음곡에 의해 가창한 것으로 거기에 알맞은 운율로 조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의 묘사에서 서경이나 서정이 뛰어나고 수사법에서도 수려한 시로 완결되었다. 이 상권에 실린 노래는 모두 194곡인데, 월인석보의 발굴로 196∼302곡, 310∼429곡, 445∼494곡, 497∼524곡, 577∼583곡을 더 찾아내었다.
이 책의 간행은 세종 29년에 이루어진 ≪석보상절≫을 보고 세종이 직접 친제하여 초주갑인자로 인출하였으니, 이 책 역시 늦어도 세종 31년(1449) 2월까지는 인출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물을 통해서 보면, 초주갑인자본으로 사주단변(四周單邊), 무계(無界), 8행 15자, 흑구(黑口),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다. 다만, 한글활자는 이들 책을 간행하기 위해 특별히 주조된 최초의 한글활자로 전서체여서 초주갑인자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현재 권 상만 남아 있으며, 전북 부안 내소사의 백학명(白鶴鳴) 선사가 간직하였다가 김성련(金性連), 1916년 국묵담(鞠默潭) 종정, 1960년 진기홍을 거쳐 대한교과서주식회사로 인계된 것이다. 이 책은 전남대학교에서 등사판으로 원형대로 복사하여 나누어 가지게 되었고, 통문관(1961. 12. 30)에서 원본과 같은 크기로 사진판본을 내었고, 국어학회의 국어학 1집(1962. 4. 10) 부록으로 축쇄 사진판본을 내었고, 또 허웅·이강로의 ≪주해월인천강지곡(註解月印千江之曲)≫ 상(1962. 4. 15) 부록으로 축쇄 사진판본을 내어 널리 소개되었다.





2009년 3월 19일 (목) 15:59 판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대한민국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398호호
소재지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제작시기 조선 시대
비고 1963년 9월 2일 지정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조선 세종이 지은 악장이다. 상·중·하 모두 3권으로 노래 500여 수로 추정된다. 세종 29년에 왕이 수양대군이 엮은 《석보상절》을 보고, 그 대목대목을 되도록 한글로써 가사를 지은 것이다. 현존하는 것은 상권뿐이며, 나머지는 《월인석보》를 통해서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월인천강"(月印天江)이란 달이 하늘의 강을 비춘다는 뜻으로서 부처의 본체는 하나이나 모든 나라에 현신하여 교화함을 비유한 말이다.

정보

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


▒ 지정번호 : 보물 제398호

▒ 지정연월일 : 1963년 9월 2일

▒ 시 대 : 조선 세종 29∼31년(1447∼1449)

▒ 종 별: 활자본(초주갑인자)

▒ 수 량: 1책

▒ 재 료: 저지

▒ 소 유 자  : 대한교과서(주)

▒ 소 재 지 : 서울 서초구 서초동 242-32 대한교과서(주)


세종이 세종 28년(1446) 3월에 죽은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당시 수양대군에게 석가의 일대기인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편찬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세종 29년(1447) 7월에 정음(正音)으로 번역되어 찬진되었다. 이에 세종이 이를 직접 보고 친제한 장편의 찬불가가 바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상·중·하의 세 권인데, 그 중 상권 1책이 오늘날 전래되었다. 이 책이 지니는 편찬의 특색은 표기에 있어서 한글을 위주로 하고 한자를 협주로 표기한 최초의 문헌이고, 한자음 표기에 있어서도 음가 없는 종성에 ‘ㆁ’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중성의 자형에 있어서는 ‘ㆍ’,‘ㆍ|’의 경우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은 악장체 찬불가로 석가의 일대기를 음곡에 의해 가창한 것으로 거기에 알맞은 운율로 조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의 묘사에서 서경이나 서정이 뛰어나고 수사법에서도 수려한 시로 완결되었다. 이 상권에 실린 노래는 모두 194곡인데, 월인석보의 발굴로 196∼302곡, 310∼429곡, 445∼494곡, 497∼524곡, 577∼583곡을 더 찾아내었다. 이 책의 간행은 세종 29년에 이루어진 ≪석보상절≫을 보고 세종이 직접 친제하여 초주갑인자로 인출하였으니, 이 책 역시 늦어도 세종 31년(1449) 2월까지는 인출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물을 통해서 보면, 초주갑인자본으로 사주단변(四周單邊), 무계(無界), 8행 15자, 흑구(黑口),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다. 다만, 한글활자는 이들 책을 간행하기 위해 특별히 주조된 최초의 한글활자로 전서체여서 초주갑인자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현재 권 상만 남아 있으며, 전북 부안 내소사의 백학명(白鶴鳴) 선사가 간직하였다가 김성련(金性連), 1916년 국묵담(鞠默潭) 종정, 1960년 진기홍을 거쳐 대한교과서주식회사로 인계된 것이다. 이 책은 전남대학교에서 등사판으로 원형대로 복사하여 나누어 가지게 되었고, 통문관(1961. 12. 30)에서 원본과 같은 크기로 사진판본을 내었고, 국어학회의 국어학 1집(1962. 4. 10) 부록으로 축쇄 사진판본을 내었고, 또 허웅·이강로의 ≪주해월인천강지곡(註解月印千江之曲)≫ 상(1962. 4. 15) 부록으로 축쇄 사진판본을 내어 널리 소개되었다.


틀:대한민국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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