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 하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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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 하리'''(Mata Hari, 1876년 8월 7일 [[네덜란드]] [[레이우아르던]] ~ 1917년 10월 15일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첩자 혐의로 처형된 [[네덜란드]] 출신의 무용가인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llang|nl|Margaretha Geertruida Zelle}})의 가명이다.
'''마타 하리'''(Mata Hari, 1876년 8월 7일 [[네덜란드]] [[레이우아르던]] ~ 1917년 10월 15일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첩자 혐의로 처형된 [[네덜란드]] 출신의 무용가인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llang|nl|Margaretha Geertruida Zelle}})의 가명이다.


== 생애 ==
== 초기 생애 ==
마타 하리는 [[네덜란드]]의 [[레이우아르던]](Leeuwarden)에서 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린 시절 유복한 삶은 끝나게 된다.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복무한 네덜란드군 장교와 결혼했을 정도로 마타 하리의 가난한 삶이 시작되었다.<ref>[http://windshoes.new21.org/person-matahari.htm 팜므 파탈(Femme Fatale),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모험녀 - 마타하리.]</ref>


어머니가 [[자바인|자바계]] 혼혈로,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교사]]로서의 취직과 결혼(네덜란드군 장교와 결혼)에 실패한 뒤 [[파리 시|파리]]로 이사했다. 마타 하리는 [[자바 섬]]에서 온 공주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며 "동양식" 춤을 선보였으며, 이때 만든 "마타 하리"라는 이름은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로 '새벽의 눈' 이라는 뜻이다. 그의 이러한 기만은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자와 섬|자바]]에서 살았던 경력 덕분이었다.<ref>[[문화방송]] 정길화 PD는 '마타하리'는 [[말레이 인도네시아어]]로, '마타'는 '눈'의 의미로, '하리'는 '새벽' 또는 '해가 뜨는 때'라는 뜻으로, '마타하리'는 '여명의 눈동자'로 해석할 수 있으며, 추리소설가 김성종의 동명소설인 '[[여명의 눈동자]]'에서 주인공인 '여옥'이 [[미군정]]에서 타자수로 근무하면서 남편 하대치가 가담한 [[좌익]]운동을 정보유출로 돕는 이중간첩격으로서 마타하리에 해당된다고 풀이했다.</ref>
=== 매춘부 ===
[[네덜란드]]의 안정적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그녀의 아버지가 [[파산]]했다. 그녀는 네덜란드 군대의 [[대위]]가 낸 배우자를 구하는 광고에 응해 그와 함께 잠바로 갔다. 그 후 1902년 26세가 된 그녀는 파리에 나타났다. 그녀는 풍만한 금발 미녀가 아니라, 키가 크고 몸매가 가냘프고 피부색이 어두워서 동양 미녀의 모습에 가까웠다. 당시 프랑스에서 고급 [[매춘부]]의 황금시대는 끝나가고 있었다. 때문에 [[자와섬]]에서의 경험과 관능적인 외무를 이용해 마타 해리라는 이름으로 거의 옷을 입지 않은 채 '동양적인' [[춤]]을 춤으로써 출세의 길을 개척했다. 그녀는 독일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프랑스어]]와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말하자면 국제적인 매춘부였다.<ref name=":0">{{서적 인용|url=|제목=미모의 역사 : 아름다운 외모는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가|성=아서 마윅|이름=|날짜=2009년 10월 26일|출판사=말글빛냄|쪽=202-204|isbn=978-89-92114-48-6|확인날짜=|번역자=채은진}}</ref>


== 코르티잔과 스파이 활동 ==
=== 독일 ===
[[파일:Mata Hari Museum.jpg|250px|thumb|춤 추는 마타하리]]
젤러는 군복에서 느껴지는 성적 매력에 약했다. 그녀는 재능이 많고 개성이 강한 여인이었으나, 당시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 사이에서 생겨나고 있던 반감과 자신이 받고 있던 의심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의 기본적인 생활 방식은, 무엇이든 남성이 요구하는 일을 해줌으로써 불확실하지만 상류생활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1914년 7월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녀는 베를린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단지 댄서로 고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녀의 애인들 중에는 해군 장교와 육군 장교, 그리고 베를린의 경찰서장도 있었다. 영국인들은 그녀를 의심했는데, 명백히 독일 간첩이었던 다른 여자와 그녀를 혼동한 것도 부분적인 원인이었다.<ref name=":0" />
마타 하리는 [[코르티잔]]으로도 일하며 많은 장교들, 정치인들과의 스캔들을 남겼다. 마타 하리는 자신의 "정체" 가 네덜란드의 시골 출신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자신의 정체에 대해 수많은 헛소문을 뿌렸다. 인도 어느 지역의 사제라는 것부터 자바의 공주라는 것 등의 헛소문과 억측이 난무하는 중에 팬들의 열정은 더욱 깊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베를린에 있던 마타 하리는 독일 정보기관에 2만마르크를 받는 조건으로 포섭돼 암호명 'H21호'로 연합군 고위장교들을 유혹, 군사기밀을 정탐해 독일군에 제공해 왔다. 당시 그가 수집한 정보는 연합군 5만 명의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고급정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영국의 정보기관이 베를린-마드리드간의 외교통신을 해독, 그녀가 [[간첩|스파이]]임을 밝혀내 프랑스 정부가 파리에서 그녀를 체포했고, [[총살형]]에 처해졌다.
=== 첩자 ===
마타 하리는 [[중립|중립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부유한 반 데어 카펠렌 남작의 경제적인 후원을 받았지만,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은 지루하고 편치 못했다. 어느 날 독일 [[영사]] 크라머가 그녀에게 접근했고, 그녀는 프랑스 돈 2만 [[프랑]]을 조건으로 프랑스의 군사 기밀을 알아 오라는 제의를 수락했다(그녀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항상 주장했다).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배를 타고 먼저 [[영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간첩 행위|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네덜란드로 돌아가지 않고 [[스페인]]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그녀를 풀어주었다. 스페인에서 그녀는 독일의 권력자들과 어울렸고, 어쩌면 '첩보원 H-21'로 임명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의 목적은 파리였다. 그녀는 당시의 일류 댄서인 디아길레프와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파리에서 정보원의 국장 라두아는 마타 하리에 관한 경고를 듣고 그녀에게 프랑스 편에서의 스파이 활동을 제의했다. 그녀는 긍정적인 의사를 표하고 백만 프랑을 요구했다(돈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라두아는 그녀의 본성에 대한 의심을 굳혔다). 당시 그녀는 상당한 돈을 받고 있었고, 특히 반 데어 카펠렌에게서 받는 돈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엄격한 프랑스의 정보 장교들이 보기에 그 액수는 단순한 정부가 받기에는 지나치게 많아 보였다.<ref name=":0" />


그러나 마타 하리가 실제로 첩자였는지, 아니면 그것도 그녀가 뿌린 수많은 헛소문들 중 하나였는지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논란이 가중된 것은 [[1999년]] 영국 정보부 MI5가 한 정보보고서를 공개하며 마타하리가 'H21호'이라는 암호명으로 독일군에 주요 군사정보를 빼돌렸다고 자백했다는 프랑스측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혀 마타 하리 처형에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 처형 ===
[[1917년]] 2월 13일 아침 그녀는 샹젤리제의 엘리베 팔라스 호텔에서 체포되었다. 그녀는 이때부터 6월 21일까지 생 라자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강도 높은 심문을 받았다. 그녀는 고급 매춘부에게 필요한 사후 [[피임]] 용품으로 살정자제 스프레이를 가지고 다녔는데, 심문관은 이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잉크라고 확신했다. 결코 전문적인 스파이가 아니었던 그녀는 터무니없이 부주의했다. 그녀의 무죄를 주장하는 샘 와게나는 그녀가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말한다. 1917년 7월 24일부터 25일까지 이틀이 채 안 되는 재판 과정을 거쳐 군사위원회는 그녀에게 여덟까지 간첩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을 내리고, [[총살형]]을 선고했다. 10월 15일 그녀는 파리 중심부에서 뱅센의 군사지역으로 이송되었고 이곳에서 즉시 형이 집행되었다. 마타 하리는 사형대에 묶이거나 눈가리개를 쓰는 것을 거부하고 용감하게 죽음을 맞았다.<ref name=":0" />


== 각주 ==
== 각주 ==

2021년 3월 27일 (토) 08:52 판

마타 하리

마타 하리(Mata Hari, 1876년 8월 7일 네덜란드 레이우아르던 ~ 1917년 10월 15일 프랑스 파리)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첩자 혐의로 처형된 네덜란드 출신의 무용가인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네덜란드어: Margaretha Geertruida Zelle)의 가명이다.

초기 생애

마타 하리는 네덜란드레이우아르던(Leeuwarden)에서 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린 시절 유복한 삶은 끝나게 된다.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복무한 네덜란드군 장교와 결혼했을 정도로 마타 하리의 가난한 삶이 시작되었다.[1]

어머니가 자바계 혼혈로,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교사로서의 취직과 결혼(네덜란드군 장교와 결혼)에 실패한 뒤 파리로 이사했다. 마타 하리는 자바 섬에서 온 공주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며 "동양식" 춤을 선보였으며, 이때 만든 "마타 하리"라는 이름은 말레이어인도네시아어로 '새벽의 눈' 이라는 뜻이다. 그의 이러한 기만은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자바에서 살았던 경력 덕분이었다.[2]

코르티잔과 스파이 활동

춤 추는 마타하리

마타 하리는 코르티잔으로도 일하며 많은 장교들, 정치인들과의 스캔들을 남겼다. 마타 하리는 자신의 "정체" 가 네덜란드의 시골 출신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자신의 정체에 대해 수많은 헛소문을 뿌렸다. 인도 어느 지역의 사제라는 것부터 자바의 공주라는 것 등의 헛소문과 억측이 난무하는 중에 팬들의 열정은 더욱 깊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베를린에 있던 마타 하리는 독일 정보기관에 2만마르크를 받는 조건으로 포섭돼 암호명 'H21호'로 연합군 고위장교들을 유혹, 군사기밀을 정탐해 독일군에 제공해 왔다. 당시 그가 수집한 정보는 연합군 5만 명의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고급정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영국의 정보기관이 베를린-마드리드간의 외교통신을 해독, 그녀가 스파이임을 밝혀내 프랑스 정부가 파리에서 그녀를 체포했고,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마타 하리가 실제로 첩자였는지, 아니면 그것도 그녀가 뿌린 수많은 헛소문들 중 하나였는지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논란이 가중된 것은 1999년 영국 정보부 MI5가 한 정보보고서를 공개하며 마타하리가 'H21호'이라는 암호명으로 독일군에 주요 군사정보를 빼돌렸다고 자백했다는 프랑스측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혀 마타 하리 처형에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각주

  1. 팜므 파탈(Femme Fatale),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모험녀 - 마타하리.
  2. 문화방송 정길화 PD는 '마타하리'는 말레이 인도네시아어로, '마타'는 '눈'의 의미로, '하리'는 '새벽' 또는 '해가 뜨는 때'라는 뜻으로, '마타하리'는 '여명의 눈동자'로 해석할 수 있으며, 추리소설가 김성종의 동명소설인 '여명의 눈동자'에서 주인공인 '여옥'이 미군정에서 타자수로 근무하면서 남편 하대치가 가담한 좌익운동을 정보유출로 돕는 이중간첩격으로서 마타하리에 해당된다고 풀이했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