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분리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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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0일 (금) 00:15 판

연은분리법(한자:鉛銀分離法, 다른 이름:단천연은법)은 16세기 초에 조선 연산군 시기에 조선에서 발명된[1] 은광석에서 순수 은을 뽑아내는 기술이다.

조선에서 만들어졌지만 본국에서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의 은 생산량을 크게 높여 대항해시대 서양인들의 탐험을 촉진시키고, 일본이 서양과 잦은 교류를 하게 되는 등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기술이다.


역사

1503년 6월 13일, 조선의 왕 연산군 앞에서 김감불(金甘佛)과 김검동(金儉同)이라는 사람이 시연했던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2]. 이후, 명나라에 책 등을 통하여 알려졌다. 연은분리법을 만든 나라인 조선중종반정 이후 중종이 왕위에 오르자, 전국의 은광 개발을 억제하는 등 연은분리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따라서 조선의 화폐경제 발달이 늦춰졌다.

1526년, 일본은 조선에서 두 기술자를 데려와서 연은분리법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일본 전국으로 연은분리법이 전파된다. 에도 시대에 이르러, 연은분리법의 도움으로 은 생산량이 크게 증가한 일본은 은본위제를 확립하였다.

17세기, 에도 시대 일본은 세계 3위의 은 생산국으로 떠오른다. 따라서 청나라와 함께 서양 국가들의 교역 욕구를 자극했다. 결국 연은분리법은 개발국인 조선에게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일본의 화폐 경제 발달에 큰 기여를 하였다.

원리

연은분리법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은광석 안에는 이 섞여 있는데, 둘은 서로 다른 물질이기 때문에 녹는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납이 먼저 녹아 산화되어 은광석으로부터 분리되고, 순수한 만 남아 은을 추출하는 원리이다.

  1. “조선왕조실록”. 2020년 3월 19일에 확인함. 
  2. “조선왕조실록”. 2020년 3월 19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