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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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대통령 특별 사면의 경우 법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는 추징금 문제를 집중 검토했다. 노태우 씨의 경우는 추징금에 해당하는 재산을 대부분 보전 처분해 상관이 없지마는, 전두환 씨는 추징금 2,295억원의 10% 정도만 확보되어 있고 전두환의 경우 재산 추적에 진전이 없어, 나머지 2천억 원에 대해서는 집행 불능 결정을 내리고 이를 사면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법무부는 사면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형집행 정지도 검토했으나, 이 경우 사실상 언제든지 다시 수감될 수 있어 두 전 대통령이 거부할 것으로 보여졌다. 가석방은 형기의 1/3분을 마쳤을 때만 가능해 애초에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두 사람을 풀어주는 길은 특별 사면밖에 없지만 전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의중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법무부는 매우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함으로써 이미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사면 준비는 대선이전에 완료되었고 김영삼과 정부의 말 한마디면 곧바로 사면될 수 있었던 형국이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1557_19482.html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팔일오 사면 실무 검토] 1997.7.22 mbc뉴스 </ref>
법무부는 대통령 특별 사면의 경우 법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는 추징금 문제를 집중 검토했다. 노태우 씨의 경우는 추징금에 해당하는 재산을 대부분 보전 처분해 상관이 없지마는, 전두환 씨는 추징금 2,295억원의 10% 정도만 확보되어 있고 전두환의 경우 재산 추적에 진전이 없어, 나머지 2천억 원에 대해서는 집행 불능 결정을 내리고 이를 사면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법무부는 사면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형집행 정지도 검토했으나, 이 경우 사실상 언제든지 다시 수감될 수 있어 두 전 대통령이 거부할 것으로 보여졌다. 가석방은 형기의 1/3분을 마쳤을 때만 가능해 애초에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두 사람을 풀어주는 길은 특별 사면밖에 없지만 전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의중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법무부는 매우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함으로써 이미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사면 준비는 대선이전에 완료되었고 김영삼과 정부의 말 한마디면 곧바로 사면될 수 있었던 형국이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1557_19482.html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팔일오 사면 실무 검토] 1997.7.22 mbc뉴스 </ref>


김대중 후보는 8월 31일 국민 화합을 위해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할 것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3100209101008&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8-31&officeId=00020&pageNo=1&printNo=23638&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사면결정金(김)대통령 임기내" 金大中(김대중)총재 국민회의] 1997.8 .31 동아일보</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3100329101003&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8-31&officeId=00032&pageNo=1&printNo=16203&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현정권서 사면해야” 김대중총재 밝혀] 1997.8.31 경향신문</ref><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68472_19482.html 김대중 총재,김대통령 임기내 전직대통령 사면 요청] 1997.8.31 mbc 뉴스</ref><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68482_19482.html 국민회의와 자민련, 두 전직 대통령 사면 시기 이견] 1997.9.1 mbc뉴스 </ref>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역시 9월 1일 추석 전에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회창의 이같은 공약을 전해들은 [[전두환]]은 이회창에게 감사 인사를 할 만큼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329104010&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32&pageNo=4&printNo=16224&publishType=00010 옥중 전씨 사면건의 고맙다, 이회창 대표에 구두 메세지] 1997. 9.24 경향신문</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209105004&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20&pageNo=5&printNo=23659&publishType=00010 李(이)대표-全(전)씨 비밀메시지 오갔다 사면파동후 변호사 통해] 1997. 9. 24 동아일보</ref> [[이인제]]도 경쟁적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 복권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1600329104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16&officeId=00032&pageNo=4&printNo=16303&publishType=00010 빠른 시일 내에 전노씨 사면, 이인제 후보 기자회견서 밝혀] 1997.12.16 경향신문</ref><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2096_6187.html 97대선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경남,부산 유세,집권후 정계] 1997.12.15 mbc</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1600289104003&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12-16&officeId=00028&pageNo=4&printNo=3066&publishType=00010 이인제 pk다지기] 1997.12.16 한겨레</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4060032910101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4-06&officeId=00032&pageNo=1&printNo=16070&publishType=00010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대해 입장 밝힐 예정] 1997.4.8 경향신문</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40600209101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4-06&officeId=00020&pageNo=1&printNo=23501&publishType=00010 李(이)대표全(전)|盧(노)씨 사면건의 검토 金潤煥(김윤환)고문"대법 刑(형)확정후 실시 이미 건의"]1997.4.6 동아일보</ref>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9월 12일 당초 전두환 사면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이회창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으나 다시 말을 바꿔 대선 전에 사면을 할 것이라며 입장을 선회한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180032910100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18&officeId=00032&pageNo=1&printNo=16218&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대선前(전) 사면 검토] 1997.9.18 경향신문</ref> 당시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앞다투어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사회 각계에서는 개탄의 분위기가 쏱아졌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1100329105005&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11&officeId=00032&pageNo=5&printNo=16214&publishType=00010 한가위'정치오염'] 1997.9.11 한겨레신문</ref>
김대중 후보는 8월 31일 국민 화합을 위해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할 것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3100209101008&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8-31&officeId=00020&pageNo=1&printNo=23638&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사면결정金(김)대통령 임기내" 金大中(김대중)총재 국민회의] 1997.8 .31 동아일보</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3100329101003&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8-31&officeId=00032&pageNo=1&printNo=16203&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현정권서 사면해야” 김대중총재 밝혀] 1997.8.31 경향신문</ref><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68472_19482.html 김대중 총재,김대통령 임기내 전직대통령 사면 요청] 1997.8.31 mbc 뉴스</ref><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68482_19482.html 국민회의와 자민련, 두 전직 대통령 사면 시기 이견] 1997.9.1 mbc뉴스 </ref>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역시 9월 1일 추석 전에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회창의 이같은 공약을 전해들은 [[전두환]]은 이회창에게 감사 인사를 할 만큼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329104010&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32&pageNo=4&printNo=16224&publishType=00010 옥중 전씨 사면건의 고맙다, 이회창 대표에 구두 메세지] 1997. 9.24 경향신문</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209105004&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20&pageNo=5&printNo=23659&publishType=00010 李(이)대표-全(전)씨 비밀메시지 오갔다 사면파동후 변호사 통해] 1997. 9. 24 동아일보</ref> [[이인제]]도 경쟁적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 복권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1600329104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16&officeId=00032&pageNo=4&printNo=16303&publishType=00010 빠른 시일 내에 전노씨 사면, 이인제 후보 기자회견서 밝혀] 1997.12.16 경향신문</ref><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2096_6187.html 97대선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경남,부산 유세,집권후 정계] 1997.12.15 mbc</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1600289104003&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12-16&officeId=00028&pageNo=4&printNo=3066&publishType=00010 이인제 pk다지기] 1997.12.16 한겨레</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4060032910101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4-06&officeId=00032&pageNo=1&printNo=16070&publishType=00010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대해 입장 밝힐 예정] 1997.4.8 경향신문</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40600209101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4-06&officeId=00020&pageNo=1&printNo=23501&publishType=00010 李(이)대표全(전)|盧(노)씨 사면건의 검토 金潤煥(김윤환)고문"대법 刑(형)확정후 실시 이미 건의"]1997.4.6 동아일보</ref>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9월 12일 당초 전두환 사면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이회창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으나 다시 말을 바꿔 대선 전에 사면을 할 것이라며 입장을 선회한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180032910100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18&officeId=00032&pageNo=1&printNo=16218&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대선前(전) 사면 검토] 1997.9.18 경향신문</ref> 당시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앞다투어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사회 각계에서는 개탄의 분위기가 쏟아졌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1100329105005&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11&officeId=00032&pageNo=5&printNo=16214&publishType=00010 한가위'정치오염'] 1997.9.11 한겨레신문</ref>


결국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인 [[1997년]] [[12월 20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와의 협의로 사면 복권되었다. 다만, 이는 김영삼 대통령이 먼저 제안하고 김대중 당선자가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2221_6187.html 전두환과 노태우 특별사면 결정] 1997.12.20 mbc</ref> 이런 사면에 대해 낙선한 [[이회창]]후보 측근도 "이회창쪽에서도 추석전 조기사면을 요구한 만큼 [[김대중]]당선자도 사면을 주장했으니 당연한조치"라고 평했고 낙선한 [[이인제]]후보쪽에서도 전두환·노태우 사면에 대해 "이제는 국민대화합의 계기가 되어야 하고 매우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210020910700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21&officeId=00020&pageNo=7&printNo=23744&publishType=00010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사면에 여야 모두긍정적 반응] 1997.12.21 동아일보 </ref>
결국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인 [[1997년]] [[12월 20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와의 협의로 사면 복권되었다. 다만, 이는 김영삼 대통령이 먼저 제안하고 김대중 당선자가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2221_6187.html 전두환과 노태우 특별사면 결정] 1997.12.20 mbc</ref> 이런 사면에 대해 낙선한 [[이회창]]후보 측근도 "이회창쪽에서도 추석전 조기사면을 요구한 만큼 [[김대중]]당선자도 사면을 주장했으니 당연한조치"라고 평했고 낙선한 [[이인제]]후보쪽에서도 전두환·노태우 사면에 대해 "이제는 국민대화합의 계기가 되어야 하고 매우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210020910700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21&officeId=00020&pageNo=7&printNo=23744&publishType=00010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사면에 여야 모두긍정적 반응] 1997.12.21 동아일보 </ref>

2019년 5월 29일 (수) 09:41 판

대한민국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

← 1992년
1997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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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80.7%(감소 1.2%)
  파일:LEEHAECHANG2010.jpg
후보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정당 새정치국민회의 한나라당 국민신당
득표수 10,326,275 9,935,718 4,925,591
득표율 40.3% 38.7% 19.2%

시군별 우세지역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선거전 대통령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통령 당선자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선거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이다. 1997년 12월 18일 목요일에 실시되어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는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장면 내각이 실각한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계 정권이 집권한 최초의 평화적인 민주적 정권 교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대선 후보 선출

신한국당

신한국당1997년 7월 21일 전당대회에서 이회창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1]

새정치국민회의

새정치국민회의1997년 5월 19일 전당대회에서 김대중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2]

자유민주연합

자유민주연합1997년 6월 24일 전당대회에서 김종필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3]

민주당

민주당1997년 9월 11일 임시 전당대회에서 조순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다.[4]

건설국민승리21

국민승리211997년 10월 26일 결성대회를 가지고 권영길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다.[5]

국민신당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1997년 11월 4일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6]

한주의통일한국당

한주의통일한국당은 한얼교 창시자이자 한얼 사상의 창시자인 신정일을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하였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이은 두번째 대통령 선거 출마였다.[7]

후보간 합종연횡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의 대통령 후보 김대중자유민주연합 소속의 대통령 후보 김종필1997년 11월 3일 대선 후보 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하고 김대중으로 대선 후보를 단일화한 뒤 김대중이 당선될 경우 공동 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8].

신한국당 소속의 대통령 후보 이회창통합민주당 소속의 대통령 후보 조순은 1997년 11월 7일 양당을 통합하고 이회창으로 대선 후보를 단일화하고 조순이 당 총재가 되는 것으로 연대에 합의하였고[9], 1997년 11월 21일 통합 정당인 한나라당이 공식 출범하였다.[10]

논란

선거 기간 내내 갖가지 의혹들이 제기되었다.[11]

  • 이회창: 두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
  • 이회창: 호화 빌라 논란
  • 이회창: 며느리 원정 출산 의혹
  • 김대중: 차명 비자금 의혹
  • 김대중: 6.25 당시 병역 문제 의혹

전두환·노태우 사면

1997년 4월 17일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형 집행이 확정되자 집권당인 신한국당 내부에서 본격적으로 전두환·노태우의 사면에 대해 논의되기 시작했다. 당시 신한국당의 김윤환 고문과 대구경북쪽 인사들을 비롯한 구 여권 출신 대선주자들은 종전부터 사면에 찬성하는 쪽에 섰다.

법무부는 대통령 특별 사면의 경우 법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는 추징금 문제를 집중 검토했다. 노태우 씨의 경우는 추징금에 해당하는 재산을 대부분 보전 처분해 상관이 없지마는, 전두환 씨는 추징금 2,295억원의 10% 정도만 확보되어 있고 전두환의 경우 재산 추적에 진전이 없어, 나머지 2천억 원에 대해서는 집행 불능 결정을 내리고 이를 사면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법무부는 사면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형집행 정지도 검토했으나, 이 경우 사실상 언제든지 다시 수감될 수 있어 두 전 대통령이 거부할 것으로 보여졌다. 가석방은 형기의 1/3분을 마쳤을 때만 가능해 애초에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두 사람을 풀어주는 길은 특별 사면밖에 없지만 전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의중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법무부는 매우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함으로써 이미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사면 준비는 대선이전에 완료되었고 김영삼과 정부의 말 한마디면 곧바로 사면될 수 있었던 형국이었다.[12]

김대중 후보는 8월 31일 국민 화합을 위해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할 것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13][14][15][16]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역시 9월 1일 추석 전에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회창의 이같은 공약을 전해들은 전두환은 이회창에게 감사 인사를 할 만큼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17][18] 이인제도 경쟁적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 복권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19][20][21][22][23]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9월 12일 당초 전두환 사면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이회창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으나 다시 말을 바꿔 대선 전에 사면을 할 것이라며 입장을 선회한다.[24] 당시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앞다투어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사회 각계에서는 개탄의 분위기가 쏟아졌다.[25]

결국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인 1997년 12월 20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와의 협의로 사면 복권되었다. 다만, 이는 김영삼 대통령이 먼저 제안하고 김대중 당선자가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했다.[26] 이런 사면에 대해 낙선한 이회창후보 측근도 "이회창쪽에서도 추석전 조기사면을 요구한 만큼 김대중당선자도 사면을 주장했으니 당연한조치"라고 평했고 낙선한 이인제후보쪽에서도 전두환·노태우 사면에 대해 "이제는 국민대화합의 계기가 되어야 하고 매우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27]

여론 조사

날짜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박찬종 조순 김종필 비고
1월 3일[* 1] 15.3 16.3 1.7 16.5 2.5 4.3
4월 7일[* 2] 15.3 20.5 6.3 19.5 10.1 7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 임명
6월 14일[* 3] 25 17.8 15.8 20.2 5.7 이회창 대선자금 의혹, 국민회의 후보선출
7월 22일[* 4] 26.6 40.4 7.1 자민련,신한국당 후보선출
8월 31일[* 5] 25.2 15.2 31.7 16.5 7.9 이회창 병역의혹
9월 18일[* 6] 29.7 15.6 24 13 3.8 민주당 후보선출, 이인제 탈당
10월 27일[* 7] 34.3 10.6 21.9 4.7 2.9 김대중 비자금의혹
11월 10일[* 8] 35.3 21 28.1 김대중-김종필, 이회창-조순 단일화
11월 25일[* 9] 32.1 31.5 19.9

선거 결과

득표순위 기호 이름 정당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2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10,326,275 40.3%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 당선 당선
2 1 이회창 한나라당 9,935,718 38.7%
3 3 이인제 국민신당 4,925,591 19.2%
4 4 권영길 건설국민승리21 306,026 1.2%
5 7 신정일 한주의통일한국당 61,056 0.2%
6 6 김한식 바른나라정치연합 48,717 0.2%
7 5 허경영 공화당 39,055 0.2%
총투표수 26,042,633
선거인 수 32,290,416
투표율 80.7%
  • 득표율은 유효투표수 대비 백분율을 가리킨다.

지역별 득표수

광역시·도별 대선 투표결과 우세지역
연두색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우세지역,
파란색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우세지역이다.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권영길 허경영 김한식 신정일 합계
서울 2,394,309 40.9% 2,627,308 44.9% 747,856 12.8% 65,656 5,432 8,978 5,234 5,854,773
인천 470,560 36.4% 497,839 38.5% 297,739 23.0% 20,340 1,915 2,356 1,862 1,292,611
경기 1,612,108 35.5% 1,781,577 39.3% 1,071,704 23.6% 47,608 7,077 8,035 7,415 4,535,524
강원 358,921 43.2% 197,438 23.8% 257,140 30.9% 8,231 3,201 1,851 4,161 830,943
대전 199,266 29.2% 307,493 45.0% 164,374 24.1% 8,444 1,028 1,352 936 682,893
충남 235,457 23.5% 483,093 48.3% 261,802 26.1% 9,064 3,011 4,109 4,122 1,001,198
충북 243,310 30.8% 295,666 37.4% 232,254 29.4% 10,232 2,784 2,313 3,357 789,816
광주 13,294 1.7% 754,159 97.3% 5,181 0.8% 1,478 154 660 273 775,199
전남 41,534 3.2% 1,231,726 94.6% 18,305 1.4% 2,199 1,027 4,790 2,255 1,301,836
전북 53,124 4.5% 1,078,957 92.3% 25,037 2.1% 4,189 943 4,981 1,968 1,169,189
부산 1,117,069 53.3% 320,178 15.3% 623,756 29.8% 25,581 2,252 2,211 3,359 2,094,406
울산 268,998 51.4% 80,751 15.4% 139,824 26.7% 32,145 627 427 991 523,763
대구 965,907 72.7% 166,576 12.5% 173,649 13.1% 16,258 1,661 1,229 1,317 1,329,088
경남 908,808 55.1% 182,102 11.0% 515,869 31.3% 27,823 3,125 2,150 8,047 1,648,014
경북 953,360 61.9% 210,403 13.7% 335,087 21.8% 22,382 4,177 2,476 11,723 1,539,608
제주 100,103 36.6% 111,009 40.6% 56,104 20.5% 3,856 551 799 1,245 273,577

김대중 후보는 수도권·충청·호남·제주에서 승리했다. 지난 대선에서 서울,호남에서 승리했지만 자유민주연합 소속의 대통령 후보 김종필와의 단일화으로 인해 경기,인천,대전,충남,충북,제주까지 확대되어 정권교체에 발판되었다. 그리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영남,강원지역에서 승리했다. 그로 인해 동서현상이 발생한다.

  •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영남과 강원 지역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수도권, 충청, 호남, 제주 지역에서 우세했다.
  • 하지만 같은 보수성향 후보인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와의 표차를 합하면 보수후보들은 수도권, 충청, 제주에서도 과반수 이상을 득표했는데, 보수정당의 분열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대부분 지역에서 1위를 한다. 수도권과 충북, 대전 전 지역, 충남 지역 일부, 영남 전 지역과 제주, 강원은 보수진영이 과반수를 넘었지만 보수정당 후보들의 분열로 김대중 후보가 2위 한나라 이회창 후보와의 격차가 39만표 차이로 1위를 한다. 서울에서는 서남권의 금천구, 관악구를 제외한 서울 모든 지역에서 보수진영이 과반수 이상 득표를 했고, 인천에서는 전 지역에서 보수진영이 과반수 이상 득표를 했다. 경기도에서는 성남 수정을 제외하면 보수진영이 과반수 이상 득표를 했다.

각주

  1. 與 대선후보 李會昌씨, 동아일보, 1997년 7월 22일.
  2. 金大中씨 大選후보 선출, 동아일보, 1997년 5월 20일.
  3. 자민련 대통령후보 김종필씨, 한겨레, 1997년 6월 25일.
  4. 민주, 조순 대선후보 선출, 한겨레, 1997년 9월 12일.
  5. 권영길씨 대선후보 추대, 한겨레, 1997년 10월 27일.
  6. 李仁濟후보 선출 어제 국민신당 창당, 동아일보, 1997년 11월 5일.
  7. 최종철 기자 (1997년 11월 1일). “통일한국당 신정일 후보는? 78년 한얼교 법통 취임”. 영남일보. 2014년 8월 18일에 확인함. 
  8. DJP단일후보체제 출범, 매일경제, 1997년 11월 4일.
  9. 신한국-민주당 통합 합의 후보 李會昌-총재 趙淳, 동아일보, 1997년 11월 8일.
  10. 한나라당 공식 출범, 한겨레, 1997년 11월 22일.
  11. 97대선 제2차 TV 합동 토론회, 병역 공방 치열 1997.12.7 mbc
  12.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팔일오 사면 실무 검토 1997.7.22 mbc뉴스
  13. 全(전)|盧(노)씨 사면결정金(김)대통령 임기내" 金大中(김대중)총재 국민회의 1997.8 .31 동아일보
  14. 全(전)·盧(노)씨 현정권서 사면해야” 김대중총재 밝혀 1997.8.31 경향신문
  15. 김대중 총재,김대통령 임기내 전직대통령 사면 요청 1997.8.31 mbc 뉴스
  16. 국민회의와 자민련, 두 전직 대통령 사면 시기 이견 1997.9.1 mbc뉴스
  17. 옥중 전씨 사면건의 고맙다, 이회창 대표에 구두 메세지 1997. 9.24 경향신문
  18. 李(이)대표-全(전)씨 비밀메시지 오갔다 사면파동후 변호사 통해 1997. 9. 24 동아일보
  19. 빠른 시일 내에 전노씨 사면, 이인제 후보 기자회견서 밝혀 1997.12.16 경향신문
  20. 97대선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경남,부산 유세,집권후 정계 1997.12.15 mbc
  21. 이인제 pk다지기 1997.12.16 한겨레
  22.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대해 입장 밝힐 예정 1997.4.8 경향신문
  23. 李(이)대표全(전)|盧(노)씨 사면건의 검토 金潤煥(김윤환)고문"대법 刑(형)확정후 실시 이미 건의"1997.4.6 동아일보
  24. 全(전)·盧(노)씨 대선前(전) 사면 검토 1997.9.18 경향신문
  25. 한가위'정치오염' 1997.9.11 한겨레신문
  26. 전두환과 노태우 특별사면 결정 1997.12.20 mbc
  27.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사면에 여야 모두긍정적 반응 1997.12.21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