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단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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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대부분 4~5개 주요 부계 유전자를 중심으로 섞여 살고 있다.
대한민국엔 대부분 4~5개 주요 부계 유전자를 중심으로 섞여 살고 있다.


눈을 씻고 찾아본다고 하시는데 그냥 없다고 하면 되는 글은 꼭 굳이 공격적인 느낌으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시네요? 본인이 학자입니다. 못 믿으시겠습니까 본인이 쓴 글이 눈을 씻고 봐도 학자들이 안 보이는 저급의 글이었다니 유감입니다. 본인 논문을 올릴 수는 없으니 다른 문서처럼 넷상 출처를 쓴 것이지요. 그쪽 문서보면 넷상에서 환단고기 신봉자 관련 인터넷 기사 출처로 하고 환단고기 비판하는 글들 있는데 그건 학자들이 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눈을 좀 제대로 씻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쪽은 항상 그쪽이 쓰는 글은 유력하다 이러는데 역사학에 유력설이 어디 있습니까? 역사라는 것은 유력설이 없습니다. 단군과 텡그리설은 유명한 학설인데 기타로 굳이 옴기는 것은 친중성향때문이 아닌지요? 의도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눈 씻고 봐도 이런 발언은 상대방에게 기분나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중국어 번역해서 옴기는 건은 사학이 아니고 번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뜻은 아니고 솔직히 xakyntos씨 학계에서 꽤 유명한 사람으로 알고는 있습니다. ~유력하다~ 이 것으로요. 친중적인 성향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이해는 하지만 도대체 계속 그런 편집의 의도가 뭔가요? 중국 사서만 아무런 비판없이 옴겨 적는 것은 사학이 아니고 중국어 번역입니다. 그러니까 사학에는 고고학과 언어학이 연계가 되는 것입니다. 무덤만 파더라도 한국 고대사는 북방 흉노와 선비족에 관련이 더 크지 중국 한족과는 이질성이 있습니다. 중국어가 가능해서 대만 인터넷을 보면 대만인들은 몽골과 선비족등 북방 민족이 중국인들을 정복한 것에 어느 정도 트라우마와 열등감을 보이는데 고대 한민족이 고추대가, 거서간등 몽골계와 비슷하다고 해서 한민족이 중국 대만인들을 정복한 것이 아닌 겁니다. 본인이 연장자인 느낌인데 요새 세계에 관련된 일을 좀 알려주려고 합니다. 일단 중국은 고구려가 인접국인 백제, 신라, 가야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도 고구려를 한반도의 역사와 별개로 구분하려고 하는 사상을 대만인들이 빠르게 수용하였고 일본 넷우익들과 연계하여 학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한국 학계에서도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몽골계와 한민족을 아무리 별개로 놓으려고 해도 고대사의 근접함에 있어서는 중국 한족들보다 가까웠기 때문에 때어 놓을려고 해도 땔 수가 없습니다. xakyntos씨는 2008년도 부터 계속 위키백과에서 한국사에 관련하여 편집을 하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이런 편집하실려고 합니까? 본인은 xakyntos씨한테 식민사관주의네 이런말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거랑 다른 것 같고요. 좀 서로 알고 싶네요.[[특수:기여/220.71.168.122|220.71.168.122]] ([[사토:220.71.168.122|토론]]) 2019년 4월 21일 (일) 20:38 (KST)--

xakyntos씨 사용자 문서 잘 읽었습니다. 재야사학에 대해서 오해가 많으신 것같습니다. 본인도 매우 진보적인 성향이라서 이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재야사학이 아닌 일반 학계(동북아재단포함)에서도 중국 사서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에 비판적입니다. 알기 쉽게 이야기 설명하면 생각을 해보십쇼. 천년 몇백년전에 중국인이 사서를 쓰면 당연히 중국인의 입장에서 썼을 것이고 중국 왕조에 찬양도 있었을 겁니다. 목이 날아가지 않는 한 그런 사서를 쓰기 힘듭니다. 중국 사서에 대해서 아니까 이건 알죠? 중국 수양제가 위서가 마음에 안 들어서 계속 고쳐 쓰게 한 것이요? 일본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본인과 xakytos씨가 이렇게 건전하게 토론을 하고 있는데 본인이 만든 글씨로 xakyntos씨가 굴복했다 조공을 했다 이렇게 쓴다면 그게 소설이지 역사겠습니까. 중국 사서만 번역하는 것은 사학이 아닙니다. 위키백과 특성상 저작권이 있는 학자들 논문을 첨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쪽의 공격적인 편집 성향은 재야사학이 나치라고 핑계를 되면서 어떻게든 한국 역사를 중국인들이 흡족해 할 수있는 친중적 역사로 서술하려는 모습이 본인에게는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쪽이 너무 공격적인 편집 성향과 24시간을 걸치는 편집으로 본인 학자 지인 중에서도 이건 편집의 소용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xakyntos씨의 입맛에만 맛는 편집만 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사유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특수:기여/220.71.168.122|220.71.168.122]] ([[사토:220.71.168.122|토론]]) 2019년 4월 21일 (일) 20:3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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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6560 (토론) 2019년 3월 26일 (화) 18:49 (KST)[답변]

고조선 수도는 랴오닝성 어딘가에 있다

1. 환桓인현, 지명, 환桓인, 환桓웅, 환桓 동일한 글자,요동 선양시로 부터 200Km 떨어진 졸본 부여 오녀산성에 위치, 단군조선 이전 국가는 환桓국, 랴오닝성 외곽에 위치한 산악 지형

2. 단군(檀君) 단檀 글자는 박달나무를 뜻한다.

가침 박달은 장미과에 속하는 작은 나무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베이징 및 랴오닝성 일대에 분포한다.
우연치곤 너무 여러 내용이 랴오닝성에 집중됩니다.

<<제왕운기》는 《본기(本記)》를 인용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의 손녀와 신단수(神檀樹)의 신이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박달나무 단檀 나무 수樹 귀신 신神 랴오닝성 어딘가 박달나무 숲 마을에 사는 호족으로 생각되고, 졸본 오녀산성 환桓 지역에서 내려왔으니 하늘에서 내려 온 셈입니다.

3. 상나라는 단군조선족이다. 1대 조 자子 설契이 랴오닝성 서부=요서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고, 요동,요서는 요하를 경계로 동서로 나뉘지만, BC500년 중국 지도는 만리장성 끝 갈석산 경계로 연나라 밖 중원과 지리적으로 별개 지역이고, 상나라가 망할 때 수도 지역 은허 유적과 랴오닝성 홍산문화 유적은 같은 유물로 취급된다. 상나라가 망한 시기인 1122년 상나라 왕족 기箕 지역 제후 자子 서여는, 5,000 유민을 이끌고, 조상들이 살던 본향 평양으로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다.

4. 왕검(王儉)이란 글자가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삼국사기》의 고구려 동천왕 21년(247년)조이다. 동천왕이 평양으로 천도하였을 때의 기록에 세주로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이 살던 곳(원문,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王之都王險)’으로 등장한다. 인명(人名)으로 왕검이 등장하는 것은 이 기록이 최초이다. 인명이 아닌 경우 위만이 도읍하였던 고조선의 수도에 왕검 또는 왕험(王險)이 나타나기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선인 왕검에 대한 기록과 함께 선인 왕검이 왕이 되어 도읍한 곳이 왕험이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BC 300년 연나라 진개가 고조선 침공 2000리는 현재 랴오닝성 전체 + 현재 평양 북쪽 지역 강, 만번한(滿番汗)을 경계로 삼았다. 항우의 십팔제후왕 BC 206년 지도 따라서 BC 194년 중국 사람 위만이 도읍하였던 곳은 현재 평양 지역이다. 왕검성은 그냥 왕이 사는 성이란 단순한 뜻이고, 따라서, 동천왕이 말했던 평양은 현재의 평양이 아닌, 랴오닝성 어딘가에 있는 평양성이다. 평양은 넓고 평평한 지역을 뜻한다. 고구려 사람 동천왕이 선인 왕검이 살던 곳 평양이란 언급은, 랴오닝성 양평성을 의미하고, 졸본부여 오녀산성은 산악 지역이라 해당되지 않고, 요하와 산악지형 경계 어딘가에 있는 평양을 뜻하는, 고조선 도읍지를 말하고 있다.

5. 환단고기에서 환국은 약 9,000년전 국가로 묘사되고 있고, 홍산문화유적은 BC 8,000~ BC 7,000년 경에 정주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원 국가들 기원 보다 훨씬 오래전에 랴오닝성과 유목 지역에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6. BC600년경 스키타이족은 이란계 기마민족인데, 랴오닝성은 물론 신라까지 후손들이 살고 있는 것은, 환국에서 언급되는 북방 유목 국가 연합 형태 존재 가능성 높여준다.

7. O1b2a2b-F940 유전자 분포는 동북 3성과 청주 지역에 분포 돼있고, 가장 집중돼있는 지역이 홍산문화유적지역,

BC 300년 경, 연나라 진개 공격 받기 전까지 요하에 있었던 기자조선,
마지막 왕 기준은 밀려서 수도를 현재 평양으로 옮겼지만,
위만에 평양마저 뺏기고 기자조선이 망하면서, 해로를 따라 남하, 마한을 세웠고, 청주한씨 시조 한준이 됐고,
마한 8대 원왕 아들이 백제 온조에 망하면서 성씨를 행주기씨 시조가 됐다.

성씨는 나라를 세우거나 망할 때 바뀐다.

대한민국엔 대부분 4~5개 주요 부계 유전자를 중심으로 섞여 살고 있다.


눈을 씻고 찾아본다고 하시는데 그냥 없다고 하면 되는 글은 꼭 굳이 공격적인 느낌으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시네요? 본인이 학자입니다. 못 믿으시겠습니까 본인이 쓴 글이 눈을 씻고 봐도 학자들이 안 보이는 저급의 글이었다니 유감입니다. 본인 논문을 올릴 수는 없으니 다른 문서처럼 넷상 출처를 쓴 것이지요. 그쪽 문서보면 넷상에서 환단고기 신봉자 관련 인터넷 기사 출처로 하고 환단고기 비판하는 글들 있는데 그건 학자들이 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눈을 좀 제대로 씻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쪽은 항상 그쪽이 쓰는 글은 유력하다 이러는데 역사학에 유력설이 어디 있습니까? 역사라는 것은 유력설이 없습니다. 단군과 텡그리설은 유명한 학설인데 기타로 굳이 옴기는 것은 친중성향때문이 아닌지요? 의도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눈 씻고 봐도 이런 발언은 상대방에게 기분나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중국어 번역해서 옴기는 건은 사학이 아니고 번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뜻은 아니고 솔직히 xakyntos씨 학계에서 꽤 유명한 사람으로 알고는 있습니다. ~유력하다~ 이 것으로요. 친중적인 성향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이해는 하지만 도대체 계속 그런 편집의 의도가 뭔가요? 중국 사서만 아무런 비판없이 옴겨 적는 것은 사학이 아니고 중국어 번역입니다. 그러니까 사학에는 고고학과 언어학이 연계가 되는 것입니다. 무덤만 파더라도 한국 고대사는 북방 흉노와 선비족에 관련이 더 크지 중국 한족과는 이질성이 있습니다. 중국어가 가능해서 대만 인터넷을 보면 대만인들은 몽골과 선비족등 북방 민족이 중국인들을 정복한 것에 어느 정도 트라우마와 열등감을 보이는데 고대 한민족이 고추대가, 거서간등 몽골계와 비슷하다고 해서 한민족이 중국 대만인들을 정복한 것이 아닌 겁니다. 본인이 연장자인 느낌인데 요새 세계에 관련된 일을 좀 알려주려고 합니다. 일단 중국은 고구려가 인접국인 백제, 신라, 가야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도 고구려를 한반도의 역사와 별개로 구분하려고 하는 사상을 대만인들이 빠르게 수용하였고 일본 넷우익들과 연계하여 학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한국 학계에서도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몽골계와 한민족을 아무리 별개로 놓으려고 해도 고대사의 근접함에 있어서는 중국 한족들보다 가까웠기 때문에 때어 놓을려고 해도 땔 수가 없습니다. xakyntos씨는 2008년도 부터 계속 위키백과에서 한국사에 관련하여 편집을 하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이런 편집하실려고 합니까? 본인은 xakyntos씨한테 식민사관주의네 이런말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거랑 다른 것 같고요. 좀 서로 알고 싶네요.220.71.168.122 (토론) 2019년 4월 21일 (일) 20:38 (KST)--[답변]

xakyntos씨 사용자 문서 잘 읽었습니다. 재야사학에 대해서 오해가 많으신 것같습니다. 본인도 매우 진보적인 성향이라서 이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재야사학이 아닌 일반 학계(동북아재단포함)에서도 중국 사서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에 비판적입니다. 알기 쉽게 이야기 설명하면 생각을 해보십쇼. 천년 몇백년전에 중국인이 사서를 쓰면 당연히 중국인의 입장에서 썼을 것이고 중국 왕조에 찬양도 있었을 겁니다. 목이 날아가지 않는 한 그런 사서를 쓰기 힘듭니다. 중국 사서에 대해서 아니까 이건 알죠? 중국 수양제가 위서가 마음에 안 들어서 계속 고쳐 쓰게 한 것이요? 일본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본인과 xakytos씨가 이렇게 건전하게 토론을 하고 있는데 본인이 만든 글씨로 xakyntos씨가 굴복했다 조공을 했다 이렇게 쓴다면 그게 소설이지 역사겠습니까. 중국 사서만 번역하는 것은 사학이 아닙니다. 위키백과 특성상 저작권이 있는 학자들 논문을 첨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쪽의 공격적인 편집 성향은 재야사학이 나치라고 핑계를 되면서 어떻게든 한국 역사를 중국인들이 흡족해 할 수있는 친중적 역사로 서술하려는 모습이 본인에게는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쪽이 너무 공격적인 편집 성향과 24시간을 걸치는 편집으로 본인 학자 지인 중에서도 이건 편집의 소용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xakyntos씨의 입맛에만 맛는 편집만 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사유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20.71.168.122 (토론) 2019년 4월 21일 (일) 20:38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