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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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진이 언제 최초로 사용되었는지는 다소 논란이 있으나 1502년에서 1652년 사이인 것으로 생각되며, 1675년 이후 널리 퍼졌다. 단종진에 동원된 강력한 군함을 [[전열함]](ship of line) 또는 단종진함(line of battle ship) 이라고 했으며, 이 중 후자가 "[[전투함]]"을 의미하는 배틀쉽(battleship)의 어원이 된다.
단종진이 언제 최초로 사용되었는지는 다소 논란이 있으나 1502년에서 1652년 사이인 것으로 생각되며, 1675년 이후 널리 퍼졌다. 단종진에 동원된 강력한 군함을 [[전열함]](ship of line) 또는 단종진함(line of battle ship) 이라고 했으며, 이 중 후자가 "[[전투함]]"을 의미하는 배틀쉽(battleship)의 어원이 된다.

== 단점 ==
전열이 얇아지기 때문에 적이 아군 화력을 받아내며 닥돌해 올 경우 자칫 진형이 붕괴될 수 있다. 적이 가까이 붙기 전에 화력으로 뭉개버리지 못한다면 거꾸로 아군이 위험해지는 양날의 검인 셈. 특히 바다를 지배하던 18~19세기 영국 해군은 단종진을 펼치는 적 해군을 상대로 2열, 3열씩 병행 돌격해 전열을 조각낸 다음 각개격파하는 식으로 이기는 경우도 많았는데, 특히 넬슨이 이런 데 능했다.

또 명령 전달 체계의 한계로 아군의 전열 일부가 집중적으로 얻어맞고 있는데 다른 전열의 함정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효과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제한된 숫자의 신호 깃발로 지시를 전달하는데 자세하고도 신속·정확하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깃발 자체를 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 그 밖에 적 함대를 발견하고 단종진을 형성하려다 선제공격을 당해 혼란에 빠져서 패한 사례도 여럿 있는데, 당시 함대의 진형이 박스형이었던 까닭에 배치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단종진을 빠르게 형성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함대원형진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 장점 ==
전열에 선 군함들이 아군함에 오사를 할 걱정 없이 현측에 장착된 화포를 전부 활용할 수 있다. 최대 횡진이 최대 화력을 보장한다는 리델 하트의 말과 같이 함상 포격전이 벌어질 때 가용 함포 전력을 최대한 전개할 수 있기 때문에 포격전을 벌일 때 최상의 진형으로 불리운다. 이런 이유로 함포가 군함의 주 전력으로 자리잡은 이후로는 전 세계 해군의 표준 전법처럼 되었으며, 그 때문에 적이 먼저 단종진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도전하지 않고 그대로 내빼는 양상이었다. 진형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적 함대를 T자로 가로지르면서 포격을 하는 것인데, 이 경우 아군 함대는 현측에 장착된 화포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으나 적은 대부분의 화력이 봉쇄되기 때문이다.

== 실전 사례 ==
쓰시마 해전에서 도고 헤이하치로가 지휘하는 일본 함대는 러시아의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지휘하는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상대로 단종진을 형성하여 궤멸적인 타격을 입힌다.

유틀란트 해전에서 존 젤리코 제독이 지휘하는 영국 대함대는 데이비드 비티 제독이 탈탈털리면서유인해 온 독일 주력 함대에서 24척의 전함으로 단종진을 형성하고 정면을 가로지르면서 포격을 가해서 쫒아냈고, 다시 독일 함대가 돌입했을 때 다시 한번 T자로 가로지르면서 독일 함대를 거의 일방적으로 두들겨패서 쫒아냈다. 이때 독일 함대는 2발을 명중시키는 동안 영국 함대는 37발을 명중시켜서 독일 함대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문제는 영국 포탄의 품질이 떨어져서 명중한 횟수에 비해서는 피해가 적었다.

타사파롱가 해전에서 미 해군은 일본군 보급 선단을 저지하려고 미리 단종진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중순양함이 함포사격을 늦게 하는 바람에 어뢰에 얻어맞아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5] 이는 단종진을 친 쪽이 무조건 유리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지만, 포격전이 아니라 산소 어뢰에 당한 것이므로 포격전이 아닌 경우라면 모를까 포격전을 벌이기 좋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함대 간 포격전에서 단종진이 활용된 마지막 사례는 태평양 전쟁 당시 접근하는 일본 해군 함대를 포착하고 미 해군 함대가 미리 단종진을 형성한 후, 압도적인 함포 위력으로 발라버린 수리가오 해협 해전이다. 레이테 만 해전 당시 올렌돌프 제독이 지휘하던 함대가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 휘하 전함 6척으로 단종진을 형성한 후 니시무라 함대를 구축함 한 척만 남겨놓고 전멸시켰다.

거함거포주의가 주류 사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전투 시에 자주 볼 수 있었지만, 항공모함이 주력으로 등장하면서 함포전을 펼칠 때를 제외하면 구경하기 어려워졌으며 함대의 주 위협이 잠수함 및 항공공격으로 변화됨에 따라점차 함대원형진으로 전환되었다.

현대 해군에서는 항공모함이 함대의 주력을 이루고 있는 관계로 포격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며 잠수함과 미사일의 위협에도 대처해야 하는지라 함대원형진이 더 널리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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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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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8일 (월) 18:29 판

코펜하겐 전투 (1801년)에서 단종진 포격전을 벌이는 영국과 덴마크 배들.

단종진(單從陣, line of battle)은 함대 각 함이 종으로 늘어선 진형이다. 포격전에는 유리하지만 충각전에는 불리하다. 모든 군함이 한 줄로 늘어서면 함상포격전이 벌어졌을 때 아군 오폭 걱정 없이 모든 현측 대포를 포격에 동원할 수 있기 때문에 함대함 포격전 최상의 진형이지만, 함대결전이 퇴조한 오늘날에는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범선 시대의 유럽 해군은 최상급 사령관이 단종진 첫 번째 함(기함)에, 그 버금가는 사람이 제2함에, 세 번째 사람이 최후미에 탑승하게 되어 있다. 해군 최고위 장성을 순서대로 Admiral(제독), vice admiral(버금-부 제독), real admiral(후방 제독)이라고 칭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단종진이 언제 최초로 사용되었는지는 다소 논란이 있으나 1502년에서 1652년 사이인 것으로 생각되며, 1675년 이후 널리 퍼졌다. 단종진에 동원된 강력한 군함을 전열함(ship of line) 또는 단종진함(line of battle ship) 이라고 했으며, 이 중 후자가 "전투함"을 의미하는 배틀쉽(battleship)의 어원이 된다.

단점

전열이 얇아지기 때문에 적이 아군 화력을 받아내며 닥돌해 올 경우 자칫 진형이 붕괴될 수 있다. 적이 가까이 붙기 전에 화력으로 뭉개버리지 못한다면 거꾸로 아군이 위험해지는 양날의 검인 셈. 특히 바다를 지배하던 18~19세기 영국 해군은 단종진을 펼치는 적 해군을 상대로 2열, 3열씩 병행 돌격해 전열을 조각낸 다음 각개격파하는 식으로 이기는 경우도 많았는데, 특히 넬슨이 이런 데 능했다.

또 명령 전달 체계의 한계로 아군의 전열 일부가 집중적으로 얻어맞고 있는데 다른 전열의 함정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효과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제한된 숫자의 신호 깃발로 지시를 전달하는데 자세하고도 신속·정확하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깃발 자체를 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 그 밖에 적 함대를 발견하고 단종진을 형성하려다 선제공격을 당해 혼란에 빠져서 패한 사례도 여럿 있는데, 당시 함대의 진형이 박스형이었던 까닭에 배치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단종진을 빠르게 형성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함대원형진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장점

전열에 선 군함들이 아군함에 오사를 할 걱정 없이 현측에 장착된 화포를 전부 활용할 수 있다. 최대 횡진이 최대 화력을 보장한다는 리델 하트의 말과 같이 함상 포격전이 벌어질 때 가용 함포 전력을 최대한 전개할 수 있기 때문에 포격전을 벌일 때 최상의 진형으로 불리운다. 이런 이유로 함포가 군함의 주 전력으로 자리잡은 이후로는 전 세계 해군의 표준 전법처럼 되었으며, 그 때문에 적이 먼저 단종진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도전하지 않고 그대로 내빼는 양상이었다. 진형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적 함대를 T자로 가로지르면서 포격을 하는 것인데, 이 경우 아군 함대는 현측에 장착된 화포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으나 적은 대부분의 화력이 봉쇄되기 때문이다.

실전 사례

쓰시마 해전에서 도고 헤이하치로가 지휘하는 일본 함대는 러시아의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지휘하는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상대로 단종진을 형성하여 궤멸적인 타격을 입힌다.

유틀란트 해전에서 존 젤리코 제독이 지휘하는 영국 대함대는 데이비드 비티 제독이 탈탈털리면서유인해 온 독일 주력 함대에서 24척의 전함으로 단종진을 형성하고 정면을 가로지르면서 포격을 가해서 쫒아냈고, 다시 독일 함대가 돌입했을 때 다시 한번 T자로 가로지르면서 독일 함대를 거의 일방적으로 두들겨패서 쫒아냈다. 이때 독일 함대는 2발을 명중시키는 동안 영국 함대는 37발을 명중시켜서 독일 함대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문제는 영국 포탄의 품질이 떨어져서 명중한 횟수에 비해서는 피해가 적었다.

타사파롱가 해전에서 미 해군은 일본군 보급 선단을 저지하려고 미리 단종진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중순양함이 함포사격을 늦게 하는 바람에 어뢰에 얻어맞아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5] 이는 단종진을 친 쪽이 무조건 유리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지만, 포격전이 아니라 산소 어뢰에 당한 것이므로 포격전이 아닌 경우라면 모를까 포격전을 벌이기 좋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함대 간 포격전에서 단종진이 활용된 마지막 사례는 태평양 전쟁 당시 접근하는 일본 해군 함대를 포착하고 미 해군 함대가 미리 단종진을 형성한 후, 압도적인 함포 위력으로 발라버린 수리가오 해협 해전이다. 레이테 만 해전 당시 올렌돌프 제독이 지휘하던 함대가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 휘하 전함 6척으로 단종진을 형성한 후 니시무라 함대를 구축함 한 척만 남겨놓고 전멸시켰다.

거함거포주의가 주류 사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전투 시에 자주 볼 수 있었지만, 항공모함이 주력으로 등장하면서 함포전을 펼칠 때를 제외하면 구경하기 어려워졌으며 함대의 주 위협이 잠수함 및 항공공격으로 변화됨에 따라점차 함대원형진으로 전환되었다.

현대 해군에서는 항공모함이 함대의 주력을 이루고 있는 관계로 포격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며 잠수함과 미사일의 위협에도 대처해야 하는지라 함대원형진이 더 널리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