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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오승'''(全吾承, [[1923년]] [[3월 16일]] ~ [[2016년]] [[7월 3일]])은 [[대한민국]]의 작곡가이다. 본명은 '''전봉수'''(全鳳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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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진남포]]에서 부친 전상연(全常淵)씨와 모친 장중차(張中次)씨 사이의 5남 4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ref>[http://egloos.zum.com/GAYOMUSEUM/v/6389745], 박성서, 작가탐구[03]작곡가 전오승, 악기 탐닉이 남달랐던 '기타꾼'이자 '낚시광'</ref> 1939년 진남포 실천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홀로 월남해 서울 마포에 정착했고 서대문에 있던 작곡가 [[조두남]]의 자택을 드나들며 화성악을 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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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방송국(HLKA) 경음악단 전속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중앙방송국에서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했다. 여동생 [[나애심]]이 부른 《밤의 탱고》, 《과거를 묻지 마세요》 등 유행가를 작곡했다. 《이별의 인천항》, 《방랑시인 김삿갓》, 《백마야 우지마라》 등도 작곡했다. [[명국환]], [[박경원 (가수)|박경원]]에게도 곡을 줬다. 1978년 《전우가 남긴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정리하고 1980년대 초반에는 큰딸이 거주하고 있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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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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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전영선 (배우)|전영선]] |
* 딸 [[전영선 (배우)|전영선]]: 영화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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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동생 [[나애심]] |
* 여동생 [[나애심]]: 가수 겸 영화 배우. 본명 전봉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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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카 [[김혜림 (가수)|김혜림]] |
* 조카 [[김혜림 (가수)|김혜림]]: 가수. 나애심의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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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동생 [[전봉옥]] |
* 여동생 [[전봉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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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7일 (일) 21:51 판
전오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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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전봉수 |
출생 | 1923년 3월 16일 |
사망 | 2016년 7월 3일 | (93세)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작곡가 |
가족 | 전영선 (딸), 나애심 (여동생), 김혜림 (조카) |
전오승(全吾承, 1923년 3월 16일 ~ 2016년 7월 3일)은 대한민국의 작곡가이다. 본명은 전봉수(全鳳壽)이다.
생애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부친 전상연(全常淵)씨와 모친 장중차(張中次)씨 사이의 5남 4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1] 1939년 진남포 실천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홀로 월남해 서울 마포에 정착했고 서대문에 있던 작곡가 조두남의 자택을 드나들며 화성악을 배웠다.
정동방송국(HLKA) 경음악단 전속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중앙방송국에서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했다. 여동생 나애심이 부른 《밤의 탱고》, 《과거를 묻지 마세요》 등 유행가를 작곡했다. 《이별의 인천항》, 《방랑시인 김삿갓》, 《백마야 우지마라》 등도 작곡했다. 명국환, 박경원에게도 곡을 줬다. 1978년 《전우가 남긴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정리하고 1980년대 초반에는 큰딸이 거주하고 있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갔다.
가족
기타
- 낚시광으로도 유명하다. 동아방송에서 낚시 해설을 하기도 했다.